구자홍 LS그룹 회장은 올 초 새로운 경영이념 ‘LS파트너십(LSpartnership)’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이후 줄곧 경영의 방향타 구실을 해온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기존 경영이념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구 회장은 평소 “고객을 가족같이 대하는 기업이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고객과 함께하는 기업’은 그런 신조에서 비롯된 이념이다. LS그룹의 사명(社名) LS(Leading Solution의 약자)에는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담았을 정도다.
그렇다면 LS그룹의 새로운 경영이념 ‘LS파트너십’은 어떤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LS파트너십이라는 슬로건은 언뜻 보면 단순하고 진부한 듯하지만, 사실 LS그룹 경영진과 임직원이 1년간 머리를 맞댄 끝에 품에 안은 ‘옥동자’다. 실질적인 산파는 물론 구자홍 회장이다. 그는 21세기라는 불확실성과 변화의 시대에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어가려면 ‘LS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를 임직원 전체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뜻에서 모두가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LS만의 성공 DNA’를 찾아내 공유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구 회장은 2011년 신년사에서 LS파트너십을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LS파트너십은 내부적으로는 존중과 배려, 신뢰를 기반으로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들이 함께 탁월한 성과를 만드는 것이며, 외부적으로는 열린 마음으로 협력하여 함께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LS파트너십은 그저 멋진 구호나 표어에 머무는 게 아니다. 이를 어떻게 실천해나가느냐 여부에 LS그룹의 미래가 달렸다는 게 구 회장의 확신이다. 그가 요즘 LS파트너십의 전도사 역할에 여념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6월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 자리잡은 ㈜LS(LS그룹의 지주회사) 접견실에서 구 회장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멜빵 패션’으로 강석진 회장과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전 9시30분 접견실에서 시작된 대담은 오찬을 곁들여 4시간 이상 이어졌다. 구 회장은 이날 강 회장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경영철학과 비전은 물론 범 LG가(家)의 일원으로 살아온 인생 스토리도 생생하게 들려줬다.

‘파트너십 경영’의 전도사 구자홍 LS그룹 회장

‘트루 파트너십’에 LS의 미래 있다

LS그룹은 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을 제외하면 자산 규모로 재계 13위(2010년 기준)에 해당하는 대기업집단이다. LG그룹에서 분가한 지 불과 7년 만에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이제는 ‘LG 색깔’을 완전히 지워냈지만, 굳이 뿌리를 논하자면 역시 LG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LS그룹이 과거 LG그룹의 비(非)주력사업이었던 전선, 산전, 동(銅)제련 부문 등을 갖고 독립했음에도 눈부신 발전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계가 구자홍 회장이 이끄는 LS그룹의 행보를 주목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 LG그룹서 계열 분리한 이후 그 짧은 기간 동안 LS그룹이 보여준 성장세는 재계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구 회장님께서는 LS호의 선장으로서 그 비결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구자홍 회장(이하 구 회장) | 저희 사업은 LG그룹 시절만 해도 ‘메인’이 아니라 ‘변두리’ 사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2부 리그’였던 셈인데, 그게 어느 날 ‘1부 리그’가 된 겁니다. 그러니까 조직 구성원들도 ‘우리가 이제 메인이 되는구나’ 하며 마음가짐이 바뀌게 된 거죠. 비결이라면 그게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자발적 동기부여가 됐던 거죠. 사실 우리가 처음 계열 분리를 할 때만 해도 ‘안정성은 있지만 성장하기는 힘든 사업군’이라는 견해가 많았어요. 저와 친구처럼 지내는 필립스 고위 임원은 “Very stable, profitable, but boring(아주 안정적이고 수익성도 있지만 지루하겠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겠고, 그냥 속으로 ‘우리가 그 마지막 지루한(boring) 대목을 흥미진진(exciting)하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다짐했죠. 때마침 세계적으로 전기·전력 인프라, 신·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전선, 산전 제품이 쓰일 수 있는 시장이 우리 예상보다 더 빨리 성장하면서 덕을 좀 봤습니다. 또 냉정하게 말하자면 국제 시장에서 동(銅) 가격이 지난 수년간 크게 오른 것도 그룹 규모가 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구자홍 LS그룹 회장(오른쪽)과 강석진 회장은 파트너십 경영에 관해 진지한 의견을 교환했다.

‘1부 리그’ 마음가짐이 급성장 동력



1. 2005년 LS그룹 CI 선포식에서 구자홍 회장이 LS기를 흔들고 있다. 2. 구자홍 회장이 전기자동차용 초고압 커넥터를 살펴보고 있다(가운데). 왼쪽은 구자열 LS전선 회장.

LS그룹의 외형 확대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된 결과다. 가장 큰 동력은 역시 본업인 전기·전자, 소재, 에너지 분야의 핵심역량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여러 건의 기업 인수합병(M&A)도 한몫 했다. LS그룹의 M&A는 단순히 몸집을 불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기존 주력사업과의 연관성 및 시너지가 모든 M&A의 대전제다. ‘빅딜’보다는 ‘스몰딜’이 눈에 많이 띄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그간 LS그룹이 성사시킨 일련의 M&A는 대부분 수십억~수백억원대다. 작지만 알찬 기업을 사들여 핵심사업을 보완해나가겠다는 계산인 셈이다.

LS그룹의 M&A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2008년 8월 인수한 미국 전선회사 슈페리어에식스(SPSX)다. SPSX는 권선(산업용 전선), 통신선을 주력사업으로 하는데, 특히 권선 부문에서는 미국 시장 1위 업체다. 당시 인수금액은 약 9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M&A 시장에서조차 수조원대의 빅딜이 종종 이뤄지는 데 비춰보면 그다지 큰 거래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SPSX는 LS그룹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게 구 회장의 설명이다.

“LS전선을 세계 5위권으로 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SPSX가 마침 매물로 나왔어요. 이 회사를 인수하고 나니까 자연스레 세계 톱3가 되더군요. SPSX는 LS전선과 사업적으로 중복되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나 기술 면에서 상당히 시너지 효과가 났지요. 무엇보다 신규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 유럽 진출은 힘들어서 주로 아시아, 중동에 집중했거든요. 그런데 SPSX를 인수하면서 미국, 유럽 공략의 교두보를 단숨에 확보하게 된 거죠. SPSX와 거래하는 GE나 지멘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자연스레 고객으로 얻게 됐습니다. SPSX는 우리에게 꽤 큰 규모의 M&A였는데 전략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구자홍 회장은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간간이 A4지 몇 장을 클립으로 고정시킨 자료를 손에 들고 말을 이어가곤 했다. 취재진이 미리 전달한 대담 질문지였다. 사전에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메모해둔 듯했는데, 그는 LS그룹의 성장 비결에 대한 답변 요지를 나중에 따로 전해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업인 전기전자 및 소재, 에너지 분야 역량 강화 ●부문 회장 제도의 정착, CEO 중심의 책임경영과 이사회경영 중시 ●지주사의 경영 코디네이터 역할 수행 ●오너경영인들과 전문경영인들 간의 시너지 창출 ●빠른 의사결정과 적기(適期)의 R&D 투자 ●다양한 혁신활동과 글로벌 성장전략 등이 LS의 성공 에너지.

Tip l LS그룹 경영현황

계열분리 후 7년 만에 3배 성장

●● LS그룹은 2003년 LG그룹에서 LG전선, LG산전, LG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를 계열 분리해 출범했다. 현재는 LS전선, LS산전, LS니꼬동제련, LS엠트론, 가온전선, E1, 예스코 등 7개 주력회사를 포함해 모두 44개의 자회사 및 계열사(2010년 기준)로 이뤄져 있다. LS전선은 전력·소재·정보통신 사업, LS산전은 산업용전기·자동화기기 사업, LS니꼬동제련은 전기동(銅) 등 비철금속 제련 사업, LS엠트론은 기계·부품 사업, 가온전선은 전력케이블·광케이블 사업, E1은 LPG 공급 사업, 예스코는 도시가스 공급 사업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LS그룹 자산총액은 18조원이다. 또 2010년 매출액은 약 25조원에 달했다. 계열 분리 직후인 2004년에 비해 자산과 매출액이 거의 3배 증가했다.



1999년 LG전자 CEO 시절 회사 친목대회에서 노조위원장을 업고 뛰는 구자홍 회장.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올해 새로운 경영이념인 ‘LS파트너십’을 선포하셨는데 어떤 경영철학이 담겨 있습니까? 임직원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자 하셨던 겁니까?

구 회장 |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폭력적인 요소를 많이 볼 수 있잖습니까? 특히 말로 하는 언어폭력의 독성은 더 강합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루던 시기에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문화가 어느 정도 필연적이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옛 관행을 그대로 가져가도 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합니다. 저를 보고 ‘젠틀하다, 합리적이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저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쪽에 서 있는 편입니다. 이것이 바로 LS파트너십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 ‘행복’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저는 ‘행복’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은 거의 다 읽어봤을 겁니다.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 조직 구성원들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죠. 저는 ‘컴패션(compassion)’이라는 영어단어를 좋아합니다. 달리 말하면 배려, 혹은 종교적으로는 사랑이겠죠. 그런 부분에서 윗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베풀어주는 문화, 조직, 삶, 이것이 LS파트너십이 가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일에서든 LS파트너십의 영원한 전도사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흔히 파트너십 하면 다들 쓰는 말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LS파트너십은 ‘트루(true) 파트너십’을 지향합니다. 말로 하는 파트너십이 아니라 진짜 파트너십, 실천하는 파트너십,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트루 파트너십’이라는 것은 계속 발전, 혹은 ‘버전업(version up)’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배려·사랑·행복이 LS파트너십의 원천

구 회장에게는 ‘파트너십’의 가치를 마음속 깊이 새기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 과거 LG전자 근무 시절의 경험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국내 산업계는 극심한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았다. LG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무렵 해외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던 구 회장은 어느 날 노사관계를 책임지는 관리담당 임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이헌조 사장이 “이 일은 당신이 해보지 않은 분야라 힘들겠지만 앞으로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반드시 배워둬야 한다”며 그 자리를 맡겼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회고다.

“90년대 초 몇 년간 그 일을 했는데 아마 평생 먹을 소주를 그때 다 먹지 않았나 싶습니다(웃음). 당시 현장에서 근로자들과 부대끼며 ‘그동안 우리가 현장의 목소리를 너무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인간적인 배려가 너무 없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더군요. 현장 직원들은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에 초점을 맞춰 시작한 일이 아침마다 공장 입구에 서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직원들이 한 2년쯤 지나니까 경영진의 마음을 받아들이더군요. 그리고 저는 직원들과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킨다는 원칙도 세웠습니다. 그렇게 5년쯤 지나면서 ‘노사(勞使)’가 ‘노경(勞經)’이 됐습니다. 한번은 회사 체육대회 때 저와 노조위원장이 서로 업고 달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친목 도모 차원에서 노조가 먼저 제안했던 거죠. 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 장면을 인상적으로 봤더군요.”

알려진 대로 LG전자는 ‘노사’라는 말 대신 ‘노경’이라는 말을 쓴다. 노사분규로 회사가 망가질 뻔했던 위기를 헤쳐나오면서 얻은 깨우침이다. 사(使)라는 말은 사람을 부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수직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 말부터 없애야 수평적,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노경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구 회장이 LG전자 시절 남긴 큰 발자취 중 하나다. 그 정신은 고스란히 LS그룹으로 흡수돼 지금의 LS파트너십으로 승화한 셈이다.



1. 새로운 경영이념 ‘LS파트너십’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구자홍 회장.

2. 구자홍 회장이 ‘LS 혁신한마당’행사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가운데).

Tip l LS그룹의 신성장엔진

‘그린 비즈니스’에 미래 걸어

●● LS그룹은 이른바 ‘그린 비즈니스(녹색성장 사업)’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핵심부품, 자원재활용 등이 차세대 핵심사업이다. LS전선은 지난해 말 스마트그리드 백본(back bone) 역할을 하는 초전도 케이블 시스템 상용화를 위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또 미국의 세계 최초 초전도망 상용화 프로젝트에 케이블을 공급하는 등 초전도 케이블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LS산전은 정부가 추진 중인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린카(green car) 솔루션, 전력용 반도체, 연료전지 등 신사업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유일의 동제련 회사인 LS니꼬동제련은 금속 재활용(Metal Recycling), 자원개발 등에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LS엠트론은 2차전지 핵심부품인 전지박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노리고 있는 가운데 차세대 에너지 저장장치인 울트라 커패시터(Ultra-Capacitor)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구 회장은 LS파트너십을 설명하던 도중 “저기 한번 보세요”라며 접견실 한쪽 벽면에 높이 걸린 현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함께하여 더 큰 가치를!’이라는 구호가 씌어 있는 한편 다수의 원(圓)으로 형상화된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심벌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LS파트너십이 추구하는 가치를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나타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LS파트너십은 완성 혹은 규정된 게 아니라 서로가 함께 계속 채워 넣고 발전시켜 나가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강 회장 | LS파트너십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니까 선진기업들이 추구하는 굉장히 열린 조직문화, 비관료적인 조직문화를 LS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구 회장님은 종업원이라는 말을 한번도 쓰지 않고 팀, 조직, 구성원이라는 말을 쓰시는군요. 사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종업원(從業員)이라는 단어예요. 아직도 우리나라 경영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인데, 이건 옛날 관료적인 조직문화에서 사람들을 채용해서 그냥 부릴 때 쓰던 말이에요. 무조건 따라오라는 거죠. 제가 한번은 네덜란드 대학교수들에게 “네덜란드 기업인들은 (직원을) 뭐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코워커(co-worker: 동료)’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Tip l 구자홍 회장의 경영수업 시절

사원에서 회장까지 ‘일복 터졌던 30년’

●● 범 LG가는 오너 일가의 자제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다 보니 경영수업을 받을 때도 ‘특별대우’란 게 있을 수 없었다. 구자홍 회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말단사원에서 시작해 몸으로 현업을 배우며 한 계단씩 경영자로 성장했다.

경쟁사 납품하려 한 달간 ‘말뚝영업’ 뚝심

#1. 구 회장은 1973년 반도상사(현 LG상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처음 지시받은 일은 전선 피복용 폴리에틸렌 수지를 금성전선(현 LS전선)과 대한전선에 팔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대한전선이 금성전선과는 앙숙 같은 경쟁사라는 점이었다. 어쨌든 ‘신입사원 구자홍’은 대한전선 구매부서를 찾아가 열심히 제품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쪽 직원들은 들은 체도 안 하는 것이었다. 구 회장의 회고다. “결국 한 사람을 붙들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저를 툭 치며 ‘당신은 구(具)가야, 구가인데 뭘 보고 사주겠냐? 당신이 구가가 아니라도 사줄까 말까 한데’라는 것 아니겠어요. 당시 대한전선 사람들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네’, ‘성이 구가라네’라며 제게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구 사원’은 굴하지 않고 매일 대한전선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구매부서 직원들이 도시락을 배달시켜 점심을 먹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구 사원’은 곧장 도시락을 시켜 그쪽 직원들 옆에 달라붙어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달쯤. 구매부서 과장이 ‘구 사원’을 다방으로 불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구씨 집안 사람이니 ‘너 한번 당해봐라’는 식으로 대하면 아마 한 달도 못 버티고 손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당신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면서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러면서 과장은 첫 주문을 ‘구 사원’에게 안겨줬다. 그야말로 지성이면 감천. ‘구 사원’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사무실로 돌아가 자신의 첫 번째 실적을 떠들썩하게 자랑했다. 구 회장은 “지금도 가끔 ‘도시락이 나를 살렸구나’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역시 답은 현장에 있는 법입니다”라고 말했다. 

3일간의 ‘음주 대전’서 버티며 오더 따내

#2. ‘구 사원’은 이후 업무 실적을 꾸준히 쌓아 올려 1977년 반도상사 홍콩지사 과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는 외교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던 한국과 중국 간에 홍콩을 통한 간접무역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구 과장’은 당시 홍콩의 비즈니스 정보를 꽉 잡고 있던 코트라 홍콩 무역관장과 알게 되어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무역관장이 ‘구 과장’을 부르더니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미스터 구, 지금 저쪽(중국)에서 흑백TV 오더가 드디어 처음으로 왔는데 할 수 있겠어?”

최고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TV를 제조하는 금성사가 식구인데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 오더를 성사시키자 무역관장은 또 다른 오더를 줬다. 이번에는 흑백 브라운관 구매 오더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금성사도 흑백 브라운관 사업을 했지만, 오리온전기가 더 큰 업체로 이름을 날릴 때였다. 따라서 오더를 성사시키는 관건은 오리온전기를 잡는 것이었다.

때마침 오리온전기에서 흑백 브라운관 판매를 담당하는 총책임자가 홍콩을 3일 동안 방문했다. 그는 ‘구 과장’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만약 자네가 3일 동안 나와 술을 똑같이 마시되 안 뻗으면 오더를 주지.” ‘구 과장’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는 3일 내리 새벽 3시까지 그와 함께 술을 들이마셨다. 물론 꼿꼿하게 버티면서. 3라운드의 ‘음주 대결’이 끝나자 그는 약속을 깨끗하게 지켰다. “당신, 그 자세면 됐어. 내가 물건을 주지.” 구 회장의 말이다.

“당시 제가 홍콩지사에서 5년간 연평균 400%씩 매출을 신장시켰는데 이건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매출이 커졌냐’고 묻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인적 자원(네트워크)과 시운(時運)’이 비결이었다고 봅니다.”

LG전자 시절 ‘디지털 CEO’로 꽃피워

#3. 구 과장은 1979년 부장으로 승진한 다음 82년 싱가포르지사 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초 그는 홍콩지사 근무가 끝나면 일본에서 일해볼 계획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덕에 영어는 자신이 있었고, 일본어만 배우면 겁날 게 없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상황이 꼬인 것이다.

“어느 날 호남정유(현 GS칼텍스) 사장으로 계시던 구평회 명예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서울로 좀 오라시는 거예요. 구 회장님을 찾아뵈니 ‘내년부터 칼텍스로부터 원유구입 권한의 50%를 받게 된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무역도 알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데 현재로선 적임자가 너밖에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일본에서 공부하기로 돼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 어른께서 ‘그럼 2년만 해라. 자리만 잡아놓으면 누가 가도 되니까’라고 협상 카드를 내미시는 거예요. 결국 그 2년이 5년이 되고 말았죠(웃음).”

싱가포르지사 근무를 마칠 때쯤 ‘구 본부장’은 또다시 뜻하지 않은 ‘징집’을 당하게 됐다. 금성사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제조의 ‘ㅈ’자도 몰랐지만 금성사는 그가 CEO로 성장하는 데 크나큰 발판이 됐다. 1987년 금성사 해외사업본부 상무이사로 시작해 91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고, 95년 마침내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2년에는 LG전자 대표이사 회장에 오름으로써 LG그룹 소속으로는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그는 부사장 시절을 포함해 LG전자 CEO로만 10년 이상 장수했다. 그 시절 LG전자의 디지털 사업을 앞장서 이끌며 ‘디지털 CEO’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임직원들은 ‘종업원’ 아닌 ‘코워커’

구 회장 | (강 회장이 ‘코워커’라는 단어를 말하자마자 무릎을 탁 치듯이 공감을 나타냈다) 그거 참 좋은 말이군요. 우리도 ‘코워커’라는 용어를 좀 써야겠습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좋은 것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영어로 ‘임플로이이(employee: 피고용자, 종업원)’라는 단어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부터는 ‘코워커’를 대신 써야겠네요.

사실 ‘파트너십’은 LS그룹 오너 일가의 정신적 뿌리이자 삶의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LS그룹이 분리되어 나온 LG그룹의 태생 자체가 구씨와 허씨 가문의 동업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동업은 친구는 물론 심지어 부모형제 간에도 하지 말라는 경구가 있다. 돈 욕심 앞에서는 의리도, 핏줄도 희석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씨와 허씨 가문은 무려 3대(代) 반세기에 걸친 동업을 통해 LG그룹을 한국 대표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사업과 재산을 나눌 때도 아무런 잡음 없이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한국 기업사(史)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LS그룹 역시 계열 분리를 통해 신설 그룹으로 출범할 때부터 ‘파트너십’을 밑바탕에 깔았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구태회 명예회장(구자홍 회장의 부친), 구평회 명예회장, 구두회 명예회장의 세 집안이 LS그룹을 함께 키워나가자며 공동경영 원칙을 세웠던 것이다. 세 명의 창업 1세대 형제들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 아들들(8명)은 형제의 우애를 디딤돌 삼아 LS호의 키를 함께 잡아나가고 있다. 구 회장은 “세 분 명예회장님이 파트너십에서 출발했을 뿐 아니라, 범 LG가 자체가 태생적으로 파트너십이 ‘DNA화’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Tip l 범 LG가 집안 이야기

“화목한 가풍은 어른들 본받은 덕분”



계열분리 후 아셈타워 입주식에서 3명의 명예회장들이 테이프를 끊고 있다(왼쪽부터 구평회, 구태회, 구두회 명예회장).

●● 범 LG가의 집안을 이야기할 때 2가지 키워드를 꼽자면 ‘대가족’과 ‘인화(人和)’를 들 수 있다. 그만큼 자손이 번창했고 또 화목한 가풍을 유지해왔다는 뜻이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1907~1969)는 철회(작고), 정회(작고), 태회, 평회, 두회 씨 등 5명의 동생을 뒀다. 이들 6형제는 ‘자(滋)’자 항렬 아들만 23명이나 낳았다. 그 아래 ‘본(本)’자 항렬의 손자는 구인회 창업주 직계로만 11명에 달한다.

구자홍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자홍 회장 아래로는 구자엽 LS산전 회장,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철 한성 회장 등 3명의 동생이 있다. 현재 LG그룹 총수인 구본무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으로 이어지는 직계 장손이다.

워낙 자손이 많다 보니 가계도를 한눈에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구자홍 회장은 외국 지인들에게 집안 식구들을 소개할 때는 숫자로 된 ‘코드’를 활용한다고 한다. 장남은 1, 차남은 2, 3남은 3, 이런 식으로 숫자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구자홍 회장의 코드 네임은 ‘4-1’이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1-1-1’이 된다. 이렇게 하면 구인회 창업주를 기준으로 세대간, 자손간 관계가 비교적 명쾌하게 드러난다.

이 많은 대가족이 별다른 갈등과 잡음 없이 인화단결을 이뤄온 비결은 뭘까? 구자홍 회장은 “자연스레 집안 어른들의 본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구 회장의 증조부(구인회 창업주의 조부)는 홍문관 교리(校理: 정오품 관직)를 지냈는데, 자상하고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성품이었다고 한다. 또 조부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효자였을 뿐 아니라 근검절약과 분수를 지키는 가풍을 세웠다고 한다.

구 회장은 구인회 창업주에 대한 기억도 털어놓았다. “큰아버지께서는 요즘 말로 ‘한 카리스마’ 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을 굉장히 살뜰하게 보살피셨어요. 제가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큰아버지께서는 집안의 장손이자 맏형으로서 늘 가족들을 보살피는 데 신경을 쓰셨던 분으로 기억됩니다. 그야말로 ‘큰아버지’셨지요. 어른들의 이런 모습들이 가풍이 되면서 후손들이 본받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인회 창업주는 1969년 섣달 그믐날 6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타계했다. 구씨 일가는 매년 12월31일 장손 구본무 회장의 집에 모여 구인회 창업주의 제사를 함께 모신다. 덕분에 구씨 일가는 송구영신도 함께하는 셈이다. 이때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 수만 해도 족히 100명은 넘는다고 한다.



구자홍 회장이 2009년 ‘하노버 메세’ 산업전시회에서 LS부스를 찾은 독일 총리에게 LS를 소개하고 있다.

구 회장 | 이런 말을 하면 팔불출 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참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게 회장단을 이루는 형제들입니다. LS전선의 구자열 회장, LS산전의 구자엽 회장, LS니꼬동제련의 구자명 회장, E1의 구자용 회장, LS산전의 구자균 부회장 등인데요. 이 친구들이 모두 외국에서 상당 기간 공부했거나 일한 경험이 있어 글로벌한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해도 ‘파인 튜닝(fine tuning: 거시경제정책의 미세조정. 구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의 의견조율을 뜻하는 듯했다)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 형제들이 모두 나름대로 ‘현장’을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장점도 있어요. 참, 구자엽 회장에게는 ‘청하(술)’ 만드는 회사가 표창장을 줘야 할 겁니다(웃음). 그 친구는 회식할 때 보면 늘 “우리 이거(청하) 마시고 파이팅하자”고 외칩니다. 이런 모습은 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아마도 이런 회장단의 모습이 구성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너경영인들이) 다들 앉아서 폼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구 회장은 올 초 LS파트너십 선포 직후 회장단과 저녁식사를 가졌다. 그때 그는 형제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전자발찌’를 찬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파트너십을 선언해놓고, 가령 서로 싸운다거나 ‘개판’을 친다면 사람들이 뭐라 하겠나? 이건 우리 스스로에게 엄청난 자기절제, 자기구속을 요구한다. 그래도 하겠느냐?” 구 회장은 자못 심각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형제들은 즉각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래도 해야죠!”

‘LS파트너십’은 엄격한 자기절제 필요

구 회장 | 저는 그날 이런 ‘파운데이션(기초)’을 가진 우리 회사에서 큰 희망을 봤습니다. LS파트너십은 모든 임직원의 꿈과 행복을 향해 나가는 ‘대장정’이에요. 정말 변할 수 없는 가치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LS그룹 구성원들이 나중에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가장 큰 회사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LS에 다닐 때 정말 행복했고 가족들도 더불어 행복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싶습니다. 힘든 도전이겠지만 구성원들과 함께 가보고 싶어요.

강 회장 | LS그룹은 산업용 전기, 전자, 소재 등이 주축사업인데,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하면서 많은 사업 기회도 생기고 있을 텐데요. 회장님께서는 LS그룹의 글로벌 사업구도를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요?

구 회장 | LS그룹이 삼성이나 LG처럼 커다란 글로벌 존재감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지역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전선이나 산전 사업도 어찌 보면 지금부터가 글로벌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전선의 경우 전력·통신선 등은 상당한 수준에 와있지만 해저케이블 같은 분야는 이제 시작입니다. 산전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전략은 지금까지 잘해온 사업을 글로벌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키우는 겁니다. 그러려면 성장성과 잠재력 면에서 중국과 인도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겠죠. 두 나라는 LS그룹의 지역전략에서 양대 포스트이기 때문에 최고경영진이 앞장서서 시장개척과 사업확대에 나설 요량입니다. 특히 중국은 LS그룹에게 제2의 생산기지나 핵심시장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홍치전기(현 LS홍치전선) M&A는 그런 차원에서 추진한 일입니다.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정면승부를 하려면 우리 ‘주력부대’가 진출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가 당면 과제입니다. 특히 중국 국영전력회사 같은 곳과 거래관계를 맺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지만 꼭 성공해야만 할 일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그런 도전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사례가 많거든요.

Tip l 구자홍 회장의 가족 이야기

벤처캐피털 창업한 아들 본웅씨, LS 미래 위한 지원사격에 열심

●● 구자홍 회장의 부친은 구태회(88) LS전선 명예회장이다. 구태회 회장은 일본 후쿠오카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징병을 당해 만주에 끌려간 적도 있다. 1950년 락희화학(현 LG화학) 전무로 입사해 구인회 회장이 사업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다 58년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후 82년 LG그룹 고문으로 복귀했다. 현재 범 LG가의 최연장자이자 가장 웃어른이다.

구자홍 회장은 한 살 연상의 부인 지순혜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그런데 아들 본웅(32) 씨는 여느 재벌가 자녀들과는 사뭇 다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든든한 아버지의 품을 마다하고 독자적인 창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본웅 씨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학부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후 대학원 동기 2명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회사인 ‘하버퍼시픽캐피털(Harbor Pacific Capital)’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그의 창업 동지들은 홍콩의 유명 기업인 집안 출신이다. 구 회장은 본웅 씨가 처음 창업 결심을 밝혔을 때는 예상 밖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본웅 씨의 두 친구 아버지들을 홍콩에서 직접 만난 후 서로 신뢰가 생겨 결국 허락을 했다고 한다.

본웅 씨는 구 회장이 홍콩지사에 근무할 때 태어나 홍콩과는 태생적으로 인연이 깊다. 홍콩 출신 친구들과 의기투합한 것도 그런 배경 덕분일 것이다. 본웅 씨의 회사 이름은 ‘홍콩(하버)과 관련된 3명이 모여 아시아와 미국을 잇는(퍼시픽) 투자회사를 만들어나가자’는 뜻으로 지었다는 게 구 회장의 설명이다.

본웅 씨는 독자적인 사업을 하면서도 LS그룹의 미래를 깊이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산전, 전선 등 LS의 주력사업 분야에 대한 관심도 크다.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갖고 와서 LS 임원진에게 설명한 적도 있는데, 꽤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들이었다고 한다. 구 회장은 그런 본웅 씨가 이제는 꽤 대견하다.

“본웅이가 주로 IT, 멀티미디어 분야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에너지, 전력 분야 기업이 앞으로 매우 유망할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LS그룹의 사업들이 잘만 하면 대박이 날 거라는 말도 하는 거예요. 그 녀석이 일에 대한 의욕이 넘쳐 기대가 되는 게 사실입니다.”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해외시장 공략



1. 구자홍 회장이 신입사원에게 회사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2. 구자홍 회장이 신입사원들과 함께 어울려 파이팅하고 있다.

구 회장은 7월 중에 LS그룹 회장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중국 시장 진출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그는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합작투자), M&A, 지분참여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조는 역시 ‘파트너십’ 형태의 진출이다. 그의 파트너십 철학은 회사 내부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시장 혹은 세상 전체를 파트너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하노버 메세(독일 하노버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 최대 산업박람회)’ 같은 세계적인 산업전시회에 적극 참가하는 것도 멋진 사업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히 구 회장은 LS그룹의 미래 핵심 성장동력인 ‘스마트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 분야에서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말이다. “기업들이란 경쟁만 하는 게 아닙니다. 협력도 할 수 있습니다. 경쟁과 협력이 합쳐지는 사업 모델은 앞으로 계속 생겨날 것으로 봅니다. 특히 LS는 인프라와 IT가 융합하는 시장, 자원 개발 등에서 미래를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 자율경영, 투명경영을 강조하십니다. 국내 재벌그룹 상당수가 총수 중심의 경영체제인 데 비춰보면 매우 혁신적인데요. 어떤 신념에서 이사회 중심 경영체제를 선택하셨는지요?

구 회장 | 저는 그 방식이 결국 대세가 될 것으로 봅니다. 선진기업들은 대부분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하고 있어요. 대주주를 위해서도 이사회 중심 경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녀가 경영을 맡았을 때 잘못되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이 조언과 견제를 통해 회사를 바로잡을 수가 있어요. 특히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이 못 보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맹점)’을 짚어내는 ‘워치독(watch dog: 감시견,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저는 대주주 입장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충실히 수행하면 전문경영인들과 적절한 상호협력 및 견제를 통해 충분히 회사 경영을 잘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 그러고 보면 범 LG가는 사외이사 제도나 이사회 운영 방식이 선진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LG전자 사외이사를 6년 동안 맡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강유식 ㈜LG(LG그룹 지주회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었는데도 지주회사에서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는 식의 요구를 전혀 안 했어요. 이사회에서는 CEO나 다른 이사들도 모두 이사 자격으로 안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했던 기억이 납니다.

구 회장 | LG그룹에서도 그런 좋은 관습과 전통을 가져오고 있지만 LS그룹도 그 못지않게 엄격하고 투명한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게 LS파트너십 정신에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범 LG가처럼 기업지배구조가 국제적 기준을 충족시킨 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이 많이 이뤄졌었죠. 제가 당시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 초대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만드느냐를 놓고 많이 고민했어요. 그 후 많은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개선했지만 제 생각에는 지금 범 LG가처럼 지주회사 체제가 완벽하게 정비된 곳은 드물다고 봅니다. 범 LG가에는 무슨 공감대라도 있었던 건가요? 

지주회사 제도 ‘투명경영’에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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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l 구자홍 회장의 글로벌 인맥

빌 게이츠 등 국제적 거물과 교분

●● 구자홍 회장은 상당한 글로벌 인맥을 갖고 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과도 친분이 돈독하다. 북미·아시아·유럽의 전직 고위관리, 학자, 기업인 등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회의체인 ‘TC(Triliteral Commission: 삼각위원회)’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TC는 1972년 데이비드 록펠러의 후원으로 결성됐으며, 정치·경제·환경 등에 관한 국제현안을 토론하는 모임이다.

구자홍 회장은 서울국제포럼(SFIA·The Seoul Forum for International Affairs)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국제포럼은 1986년 비영리·초당파 조직으로 출범한 모임으로 이홍구·한승수 전 국무총리, 김경원 전 주미대사·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포럼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현재 회장은 김달중 연세대 명예교수이고 이 전 총리는 의장, 한 전 장관은 명예회장이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멤버로 활동 중이다. 구 회장이 서울국제포럼에 가입하게 된 것은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이 LG그룹 대표 자격으로 활동하다 후임자로 추천하면서부터다. 서울국제포럼 회원 중 10명 정도가 TC 멤버로 가입돼 있다.

구 회장 | 그러고 보니 LG, GS, LS 등 범 LG가 그룹들은 하나같이 지주회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네요. GS그룹의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LG그룹 경우는 확실하게 지주회사 체제로 간다고 방향을 잡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벤치마킹을 한 경우죠. 저희가 지주회사 체제로 가게 된 것은 참 잘된 일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봐도 지주회사 체제가 되니까 투명경영을 실천하기가 훨씬 수월하더군요. 책임과 권한도 명확해지고요. 게다가 최근에는 부문 회장 제도를 도입했는데, 부문 회장들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지만 CEO 역할은 전문경영인이 맡는 체제를 만들었지요. 그러다 보니 전문경영인들도 CEO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고, 나아가 부문 회장과도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자홍 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익히 봐온 전형적인 재벌 총수, 가령 ‘제왕적 총수’의 모습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권위주의의 냄새라곤 전혀 맡을 수 없다. 그는 총수보다는 오히려 코디네이터, 어드바이저, 멘토 등의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LS그룹 회장단 중에서도 맏형이지만, 그룹 임직원들을 이끌어가는 모습도 넓은 품을 가진 ‘맏형 리더십’에 가깝다. 그는 ‘고객 및 임직원과의 소통 능력과 스스로 본을 보이는 솔선수범’을 최고경영자의 이상적 리더십으로 밝히고 있다.

구자홍 회장은 주말만 되면 배낭 하나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그의 모친이 ‘구삿갓’이라는 애칭으로 부를 만큼 전국 방방곡곡을 주유(周遊)한다. 행선지는 다름아닌 LS그룹의 지방 사업장들이다. 그는 사업장에 들르면 현장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교류의 장을 만든다. 서로 회사 일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인근 산에 올라 자연도 함께 즐긴다. 그런데 그 재미가 보통이 아닌 듯한 눈치다. “젊은 직원들과 어울려 대화도 나누고 산행도 하는데, 그 다음에 마시는 막걸리 맛이 정말 일품이에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역 토산 막걸리는 거의 다 마셔봤을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서울장수막걸리’가 최고던데요(웃음).”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지난해 신임 임원들과의 첫 면담에서 ‘일과 삶의 조화’를 강조하셨던 것으로 압니다만. 치열한 경쟁시대에 직장인들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어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구 회장 | 저 스스로도 일과 삶의 조화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만 해도 저는 이 두 가지가 양립하기 힘들다고 봤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젊은 직원들에게도 일과 삶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동안 우리 주위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은 분들을 보면 이 두 가지의 조화를 이뤘다기보다 한쪽에 몰입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과연 그게 맞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저 개인에게나 LS 구성원들에게나 일과 삶, 그리고 가정의 조화는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일과 삶의 조화 위해 ‘영성’ 탐구

강 회장 | 회장님께서도 젊었을 때는 일에 몰입해 사셨을 텐데요. 요즘은 일과 삶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고 계십니까?

구 회장 |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예전에는 골프를 제법 쳤는데 나이 들수록 골프보다는 산과 바다가 더 좋아지더군요.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디톡스(해독)’된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주말 산행이 좋습니다.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 관련 서적들도 많이 읽죠. 특히 법정스님의 책들은 다 갖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에세이도 좋아합니다.

구 회장은 대담을 가진 그날(6월 1일) 오후 강화도로 떠났다. 1년에 한번씩 회합하는 ‘길벗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구 회장이 주선해 만나는 모임이란다. 특별한 것은 모임 멤버들 대다수가 신부, 목사, 스님, 종교학자, 철학교수 등이라는 점이다. 구 회장은 “이 모임에서 귀동냥하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종교는 영성의 영역이고, 경영은 세속의 영역이다. 하지만 인간세계의 진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대목이 없지 않다. 구자홍 회장의 ‘영성 탐구’는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더 나은 경영, 인간을 위한 경영을 향한 자발적인 수행(修行)이 아닐까 싶다.

■ 구자홍 회장은… 

1946 경남 진주 출생 / 1965 경기고 졸업 / 1973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졸업 / 1973 반도상사(현 LG상사) 사업부 수입과 입사 / 1982 반도상사 싱가포르지사 본부장 / 1987 금성사(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이사 / 1991 금성사 대표이사 부사장 / 1995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 2002 LG전자 대표이사 회장 / 2003 LS전선·LS산전 회장, 이사회 의장  / 2008 (주)LS 대표이사 회장, 이사회 의장

■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GE 신화의 비밀>, <잭 웰치와 GE방식> 등

Tip l 재계의 ‘멜빵 신사’ 구자홍 회장

친근한 소통의 상징이 트레이드마크로

●● 구자홍 회장은 멜빵을 즐겨 멘다. 국내 기업인 가운데 ‘멜빵 패션’을 고수하는 인물은 아마도 구 회장이 유일할 것이다. 멜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그가 멜빵을 메기 시작한 것은 한 20년쯤 됐다. LG전자 시절 ‘CEO 아이덴티티’ 차원에서 시작한 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가 멜빵을 선택한 것은 권위적인 모습을 탈피해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임직원들과 소통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구 회장이 애용하는 멜빵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미국 브랜드 ‘트라팔가’다. 역시 트라팔가 멜빵 패션을 즐겼던 최관희 전 LG전자 부사장의 권유로 이 브랜드를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때 15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7개 정도를 번갈아 멘다고 한다.

 

김윤현 기자, 송창섭 기자 / 대담 :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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