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할인점 업계의 리딩 기업 중 하나인 홈플러스(이승한 회장)는 여러 면에서 참으로 흥미로운 회사다. 우선 성장세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다. 1999년 창립 이후 12년간 연평균 매출액·이익 증가율이 각각 45%와 150%에 달할 만큼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는 사이 회사 창립 10년 만에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하는 이른바 ‘10-10 신화’도 창조했다. 회사 덩치만 커진 게 아니다. 기업 이미지와 경영활동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더욱 놀랍다. 그간 홈플러스가 고객만족, 경영혁신, 사회공헌, 기업문화 등 경영 전 분야에 걸쳐 대외적으로 수상한 각종 상(賞)만 하더라도 150개가 넘는다. 불과 10여 년의 업력을 가진 ‘젊은 기업’이 한 사회에 이토록 눈부시게 뿌리내린 사례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홈플러스의 신화창조 비결은 무엇일까? 만약 딱 한 가지 답을 찾는다면, 그건 ‘매니지먼트 아티스트(Management Artist)’라고 불리는 한 CEO의 샘솟는 열정과 창조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물론 이승한 회장이다. 그는 “홈플러스는 아내를 빼고는 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인생을 건 도전의 결실이 바로 홈플러스인 셈이다. 필생의 역작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 회장은 할인점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주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창고형 할인점 일색이던 시장에 이른바 ‘가치점(Value Store)’의 깃발을 세계 최초로 꽂고 변화의 바람을 선도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창조경영’은 한시도 멈춤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화수분 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늘 꿈꾸는 청년’의 모습처럼.
‘매니지먼트 아티스트’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

집념의 ‘창조 바이러스’로 유통 패러다임을 바꾸다

유통업은 ‘종합예술’…예술처럼 경영해야 최고 될 수 있다

이 회장과 강 회장이 '테스코 · 홈플러스 아카데미'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회장과 강 회장이 '테스코 · 홈플러스 아카데미'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 가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승한 당시 삼성테스코 사장은 새신랑처럼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승부수를 던진 새로운 형태의 할인점이 마침내 선을 보이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은 삼성물산과 세계 3대 소매유통기업 테스코가 손잡고 설립한 삼성테스코가 드디어 합작 후 첫 번째 점포인 홈플러스 안산점을 여는 날이었다.

안산점은 이름하여 ‘가치점’의 슬로건을 내세웠다. 가치점은 기존 할인점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공한다는 뜻을 담은 용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나아가 쾌적하고 친절한 쇼핑환경과 다양하고 편리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커뮤니티센터’ 역할도 수행한다는 개념이다.

이승한 당시 사장이 야심차게 쏘아 올린 화살은 수많은 고객들의 잠재적 니즈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그의 승부수는 멋들어지게 적중했다. 홈플러스 안산점은 개점 첫날 무려 1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을 빨아들였다. 주변 반경 5km 안에 거주하는 인구와 맞먹는 숫자였다. 덩달아 국내 할인점 업계 개점 당일 매출 신기록도 달성했다. 홈플러스 안산점을 찾은 고객들은 그때까지 봐왔던 할인점과는 확연히 다른 매장 분위기와 시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국 1호 가치점의 첫 출발은 그렇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강석진 회장(이하 강 회장) | 이 회장님께서는 회사 창립 초기에 다른 경쟁사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가치점’을 창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치점은 어떤 계기로 만드셨고, 또 어떤 뜻이 담겨 있습니까?

할인점 업계 상식 깨뜨린 ‘가치점’ 창조

1. 이 회장이 2009년 10월 홈플러스 e파란재단 창립식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2. 이 회장이 점포를 방문해 현장경영을 펼치고 있다. 3. 이 회장은 2008년 한국과 영국간 경제협력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 Commander of the Order of British Empire)’을 받았다. 4.이 회장 집무실 한쪽에 진열돼 있는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

이승한 회장(이하 이 회장) | 월마트, 까르푸 등 세계적인 할인점들은 모두 창고형 매장을 운영합니다. 각종 생활 편의시설이나 생활 서비스는 전혀 없죠. 수많은 제품을 값싸게 판매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거죠. 서구 사회에는 어쩌면 맞을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문화시설, 취미클럽, 도서관 등을 갖춘 타운센터가 있어 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도시 구조가 다른 데다 타운센터 개념이 없었어요. 그래서 타운센터나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접목한 개념의 할인점을 내놓으면 성공할 수 있겠다 싶더군요. 제가 처음 시도한 게 매장 1층에 문화센터(지금은 ‘평생교육스쿨’로 부름), 어린이 놀이터, 푸드코트, 민원업무센터, 클리닉, 미용실 등을 집어넣은 거예요. 당시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매출 효율이 가장 높은 1층에다 문화센터, 어린이 놀이터 같은 시설을 설치하니까 저 보고 미쳤다고들 했어요. ‘미친 놈’ 아니면 저렇게 안 한다는 거죠. 하지만 막상 가치점 1호점 문을 여니까 고객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겁니다. 사람들이 치여 죽을까봐 문을 몇 번이나 닫을 정도였다니까요. 1호점은 인근 경쟁업체 점포 두 개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1.5배 많은 매출을 올렸습니다. 주변에서는 재수가 좋았다, 운이 따랐다, 좀 있으면 망할 거다, 이런 식으로 수군대더군요. 하지만 2, 3, 4호점을 열 때마다 잇달아 잘 되니까 서서히 긴장하는 겁니다. 2~3년쯤 지나 홈플러스 점포가 많아지니까 그때부터는 경쟁업체들이 우리를 베끼기 시작하더군요. 예전에는 국내 할인점들이 월마트, 까르푸 방식을 따라 했거든요. 말하자면 가치점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어낸 겁니다. ‘원스톱 쇼핑 서비스’에 ‘원스톱 리빙 서비스’를 보탠 새로운 형태의 가치점이 국내 유통산업, 특히 매장 개념에 혁명을 가져온 거죠. 기존 할인점이 1세대라면, 가치점은 2세대 할인점인 셈입니다. 사실 테스코에서도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 돈 안 되는(non-profitable) 투자를 하느냐, 돈 안 되는 건 아주 골라서 하는구나 하면서 말이죠(일동 웃음).

Tip l 홈플러스 탄생서 오늘까지

점포 2개 밑천으로

할인점 시장의 주역 성장

홈플러스는 1999년 5월 삼성물산과 세계 3대 소매유통기업 테스코의 합작법인으로 탄생했다. 삼성물산은 IMF 외환위기 이후 유통사업 부문을 분사하려던 참이었는데, 당시 유통부문을 맡고 있던 이승한 대표이사가 삼성의 유통사업 존속 및 외자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주도한 합작 프로젝트의 결실이었다. 테스코는 이승한 대표이사가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역량을 높이 평가해 합작법인 삼성테스코의 초대 사장으로 기용했다.

삼성테스코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던 홈플러스 2개 점포(대구점, 서부산점)를 밑천으로 시작해 세계 최초의 신개념 할인점인 가치점(2세대 할인점)을 잇달아 선보이며 유통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이어 2007년에는 예술과 하이테크를 접목한 ‘감성스토어’라는 3세대 할인점을 제시했고, 2008년에는 신·재생에너지와 첨단환경기술을 채택한 ‘그린스토어’를 국내 최초로 열었다.

홈플러스는 2008년 홈에버 인수와 아띠제블랑제리(호텔신라와 합작한 베이커리 전문업체) 설립, 2009년 홈플러스e파란재단(사회공헌재단) 출범을 거치며 그룹 체제로 거듭났다. 현재 홈플러스그룹은 123개의 홈플러스, 255개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슈퍼마켓) 점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터넷쇼핑몰과 신유통서비스 등 신사업도 강화해나가고 있다. 2010년 기준 전체 임직원은 약 2만6000여명, 매출액은 11조원에 달한다.

강 회장 | 홈플러스가 표방한 가치점 형태는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에 전혀 없었던 매장 모델을 어떻게 고안하게 됐습니까?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말하자면 ‘스파크 오브 지니어스(Sparks of Genius)’는 언제였습니까? (강 회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창조적 천재들의 발상법을 탐구한 <생각의 탄생(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저)>이라는 책의 원제인 ‘Sparks of Genius’를 비유적으로 사용했다)

이 회장 | 제가 새로운 매장 개념을 잡으려고 당시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았습니다. 월마트, 까르푸 등 할인점은 물론 세계의 유명한 쇼핑센터, 백화점, 카테고리 킬러(특정 품목의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는 대형 전문매장), 스페셜티 스토어(비교적 규모가 작은 전문점) 등 온갖 형태의 유통업체들을 모두 가봤어요. 그곳들의 장점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미국에 가니까 쇼핑센터라는 게 수없이 많더군요. 이곳에는 백화점, 할인점, 전문점,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이 집결해 있는데 주말만 되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들었어요. 이를테면 ‘위크엔드 커뮤니티센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런 형태의 점포에 한국적인 가치를 추가한다면 고객들이 무지 좋아하겠구나 하는 영감이었죠. 그런 후 국내에 돌아와 소비자 조사를 하는데 어느 고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는 할인점이 불편해 죽겠습니다. 가족과 함께 물건을 사러 가긴 하는데 도무지 쉴 데도, 먹을 데도 없어요.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어 꼭 외발자전거 타는 기분이 듭니다.” 외발자전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번개처럼 생각이 스치더군요. ‘아, 지금 고객들은 할인점에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곡예를 하고 있구나, 고객들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두발자전거를 제공하자, ‘원스톱 쇼핑 서비스’라는 바퀴 하나에 ‘원스톱 리빙 서비스’라는 바퀴 하나를 더 달아드리면 고객들이 자전거 타러 더 많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해서 바퀴 하나를 더 달아 커뮤니티센터라는 역할을 부여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저의 ‘자전거 이론’입니다.

이승한 회장은 어떤 생각과 아이디어를 쉽고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수완이 뛰어나다. 자전거 이론도 그런 독특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자전거 이론을 직접 도식화(圖式化)한 그림을 보면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 따로 없다. 그림을 묘사하면 이렇다. 앞바퀴는 ‘다양한 상품 구색, 저렴한 가격, 더 좋은 품질, 최적의 친절 서비스, 즐겁고 편안한 쇼핑’의 5가지 바퀴살로 이뤄져 있다. 기존 할인점에서 볼 수 있었던 서비스다. 이 회장은 여기에다 ‘쾌적한 매장 환경, 최상의 편의시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재미있는 문화·오락 서비스, 신(新)유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뒷바퀴를 달았다. 바퀴가 두 개가 되면서 고객이 불편을 느끼던 자전거는 ‘커뮤니티센터’라는 새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평소 “경영이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이란 말을 자주 한다. 그의 그림 경영론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 회장의 설명이다. “그림에 구도가 있듯이, 경영에도 구도가 있습니다. 처음에 구도를 잘못 잡으면 회사가 ‘삼천포’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경영회의를 할 때도 그림이나 비유법을 자주 활용합니다.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한 후에 그 결과를 간단한 그림으로 그려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하며 의견을 묻곤 합니다. 저는 어떤 마케팅 전략, 어떤 경영철학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씩 세상의 모든 경영이론을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동안 체험으로 깨달은 경영철학과 경영이론에 대해서는 현재 체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Tip l ‘큰 바위 얼굴’ 경영을 아시나요

‘성장과 기여’의 두 얼굴로 존경받는 기업 명성

홈플러스 평생교육스쿨

이승한 회장은 이른바 ‘큰 바위 얼굴 경영’을 추구한다. ‘큰 바위 얼굴’은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호손의 작품에서 ‘큰 바위 얼굴’은 현명하고 존경받는 이상적 인간형을 상징한다. 이 회장은 중학생 시절 <큰 바위 얼굴>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어니스트처럼 친절하고 품격 높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된 계기였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홈플러스 창립 초부터 평생 간직해온 그 꿈을 서서히 실현해나가고 있다. ‘지속성장’과 ‘사회적 기여’라는 두 개의 얼굴, 즉 ‘큰 바위 얼굴’을 갖춘 존경받는 기업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려가는 행보다. 특히 2009년에는 사회공헌활동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수행하는 ‘홈플러스e파란재단’을 출범시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회공헌활동이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다. 사회공헌이 기업이미지 제고 및 경영성과 향상을 낳아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사회공헌활동 확대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선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논리다.

홈플러스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랑, 환경사랑, 이웃사랑, 가족사랑의 4개 영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4랑 운동’으로 불린다. 특히 올해 7월 기준 108개에 달하는 평생교육스쿨(문화센터)은 연 회원 100만명, 전문강사 6000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평생교육시설이자 지역사랑 운동의 메카로 꼽힌다. 

환경사랑 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홈플러스는 2020년까지 ‘탄소 제로’기업을 만든다는 전사적 목표 아래 탄소감축 경영활동, 어린이 환경운동과 녹색소비 캠페인 등 친환경 경영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10만명의 차세대 ‘그린리더’를 양성한다는 목표 아래 전국 최대 규모의 어린이 대상 환경교육을 실시해오고 있다. 벌써 2만명의 어린이가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환경전사’의 꿈을 키워가는 중이다.

이승한 회장은 “홈플러스 사회공헌활동 프로그램은 다른 유수의 기업들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자부한다”며 “임직원들에게 우리가 사회공헌활동의 불씨를 지피는 ‘R&D센터’ 역할을 해나가자고 말하곤 한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홈플러스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명예의 전당(한국능률협회 주관)’에 헌액됐다.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5년 연속으로 선정된 기업만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홈플러스가 지금까지 받은 수많은 기업·경영 관련 상(賞) 중에 이 회장이 가장 뿌듯해하는 것도 바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이다. ‘큰 바위 얼굴’을 향한 그의 꿈이 어느덧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셈이다.

기업문화 '신바레이션' 사전에도 등재

강 회장 | 홈플러스의 기업문화를 일컫는 용어가 ‘신바레이션(Synbaration)’이지요. 표현이 참 이색적입니다. 신바레이션은 우리말 ‘신바람(synbaram)’과 합리적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rational’에서 각각 ‘synba’와 ‘ration’을 따온 합성어인 것으로 아는데, 어떤 계기로 탄생했습니까?

이 회장 | 제가 회사 창립 즈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기업문화였습니다. 직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줄 것이냐, 기업문화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 이런 고민이었죠. 한 번 잘못 끼워진 기업문화라는 단추는 몇 년 지나서 고쳐 끼우려면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업문화를 잘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기업문화와 비전에 대해서는 아주 ‘염불’을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강한 기업문화는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어요. 저는 삼성의 가장 강한 점, 한국의 가장 강한 점, 여기에다 영국과 서구의 훌륭한 점을 합치면 큰 시너지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우리 특유의 신바람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신바람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신바람에만 의지하면 자칫 회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어요. 저는 합리주의의 바탕 위에서 신바람을 냈을 때 엄청난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는 두 가지 가치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독특한 용어를 하나 만들면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겠다 싶더군요. 왜 사람들은 어떤 용어에 깊은 인상을 받으면 잘 잊어버리지 않잖습니까?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 해보다가 ‘신바레이션’을 만들게 된 거죠.

강 회장
강 회장

| 새로운 용어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셈이군요. 그런데 테스코그룹 사람들도 신바레이션을 알고 있습니까?

이 회장 | 물론 다 알지요. 그뿐 아니라 영국 ‘시티(City of London: 런던 금융 중심가)’에 있는 투자분석가와 투자자들도 이 용어를 압니다. 제가 회사 창립 초기 영국에 처음 IR(기업설명회)을 하러 갈 때 ‘신바레이션’과 ‘글로컬(GloCal) 스탠더드’라는 두 가지 경영 키워드를 가지고 갔었거든요. ‘글로컬’이라는 용어도 사연이 좀 있습니다. 제가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GloCal’이라고 써 놓았더니 그쪽 사람들이 ‘Global’을 잘못 쓴 건 줄 알고 C를 b로 고쳐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건 b가 아니라 C가 맞다 하니까 그 사람들 눈이 동그래지더군요. 그때 제가 신바레이션과 글로컬을 그들에게 처음 설명했던 거죠. 참, 신바레이션은 2003년에 국어사전에 신어(新語)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강 회장 | 국어사전에요? 아, 그렇군요. 제 생각에는 신바레이션을 자꾸 쓰다 보면, 특히 테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그 단어를 널리 사용하면 나중에 영어사전에도 올라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 회장 | 안 그래도 한국을 방문한 테스코 IR 담당자에게 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신바레이션이 한국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는데, 내 희망사항은 앞으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록되는 거다”라고 말이죠(그는 이 대목에서 너털웃음과 함께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승한 회장이 영국서 처음 개최한 IR에서 신바레이션과 함께 소개한 글로컬 스탠더드는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글로컬은 글로벌(Global)과 로컬(Local)을 조합한 단어다. 여기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바탕으로 ‘로컬 프랙티스(Local Practice: 현지화)’를 중시하는 경영을 펼쳐가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당시 IR에서 이 회장은 글로컬의 맥락과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적인 유통기업 테스코의 경영원칙과 유통 노하우, 운영 시스템 등 글로벌 스탠더드는 그대로 적용하되 상품과 서비스, 마케팅, 점포 구성 등은 철저히 한국 시장과 문화에 맞게 하는 현지화 전략을 취하자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말도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이 회장이 IR에서 글로컬을 주창했던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은 낯선 개념이었다. 우리 사회 역시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영의 업그레이드 방향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고 있었던 시절이다. 그런 점에서 테스코 경영진과 런던 금융가 투자자들 앞에서 ‘글로컬 경영’을 선언한 이 회장의 창의와 기개는 단연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Tip l 이 회장이 만든 홈플러스의 ‘필살기’

빅벤 닮은 시계탑 ‘점포 아이덴티티’ 확립

중독성 강한 CM송으로 소비자 꽉 잡아

홈플러스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든 점포의 한쪽에 우뚝 솟아 있는 시계탑, 그리고 다른 하나는 CM송이다.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이승한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먼저 시계탑. 홈플러스 임직원들이 ‘고객의회(Customer Parliament)’라고 부르는 이 시계탑은 영국 국회의사당 동쪽 끝에 자리한 대형 시계탑 ‘빅벤(Big Ben)’에서 착안한 것이다. 디자인도 이 회장이 직접 했다. 그의 설명이다.

“고객들이 홈플러스 점포 외관을 보면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 시계탑일 겁니다. 제가 홈플러스 경영을 맡으면서 ‘스토어 아이덴티티(Store Identity)’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점포의 개성이 뚜렷해야 고객들 머릿속에 훨씬 더 각인되니까요. 스토어 아이덴티티는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월마트, 테스코, 까르푸를 가봐도 스토어 아이덴티티가 없어요. 이것저것 짬뽕이 되어 있다 보니 다녀와도 기억에 남는 게 없어요. 하지만 우리 점포는 간판을 안 봐도 시계탑만 보면 바로 홈플러스인 줄 알 수 있죠. 홈플러스 점포가 어느 도시에 들어가면 다른 유통매장에 비해 아름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주변 도시경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군요.”

유통업계에 떠도는 농담 같은 실화가 한 가지 있다. 어느 대형할인점 업체에 다니는 아빠를 둔 초등학생 아들이 집에서 “홈~플러스, 가격이 착해, 홈~플러스, 행복이 더해!’라며 홈플러스 CM송을 부르다가 혼났다는 것이다. 아들은 홈플러스 TV 광고를 자주 듣다 보니 자연히 흥얼거리게 된 건데, 홈플러스 경쟁사에 다니는 아빠 입장에서는 속상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던 셈이다.

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불러온 문제(?)의 홈플러스 CM송은 2008년 가을 첫 전파를 탔다. 이것 역시 이승한 회장의 의중이 깊숙이 반영된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제가 먼저 노래(CM송)를 만들자고 했어요. 평소 음악에 관심이 좀 많은 편이거든요. 기왕 만들려면 지속성, 중독성 있는 노래를 만들라고 주문했죠. ‘착한 가격’이라는 컨셉트는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사실 ‘착한’이라는 형용사와 ‘가격’이라는 명사가 어울리는 쌍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신조어를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갔던 겁니다.”

어쨌거나 이승한 회장이 ‘창조’한 고객의회 시계탑과 CM송은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전국 어디서나 고객들의 눈과 귀를 홈플러스에 붙들어 매고 있으니 말이다.

현지화 중시한 ‘글로컬 경영’ 주창해

Tip l 이 회장은 도시계획 전문가(?)

종로타워·리움미술관의 숨은 산파역

이승한 회장은 현재 최고의 유통 CEO 반열에 올랐지만, 사실 유통업이 애초부터 전공은 아니었다. 그는 80년대 삼성물산(건설부문) 런던지점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도시·국토개발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유럽의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 경관에 매료됐던 까닭에 ‘우리나라도 저렇게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 가슴속에 자라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국 후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도시계획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마침내 석사·박사학위까지 따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신경영추진팀장(전무)으로 근무하던 시절 여러 건의 대형 도시·국토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값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종로타워, 리움미술관이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쳐 태어난 걸작들이다.

특히 가장 위층이 바로 아래층과 30m가량 떨어져 마치 하늘에 떠 있는 UFO 형상을 한 종로타워의 기본 컨셉트는 다름아닌 그가 제시한 것이다. 또한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램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리움미술관의 마스터플랜도 그가 기획했다.

이승한 회장의 글로컬 경영은 사실 테스코 경영진과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어렵사리 쟁취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는 삼성테스코가 설립될 무렵의 숨은 에피소드를 한 가지 들려줬다.

“처음에 테스코는 임원급을 포함해 주재원 12명을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뭔 소리냐? 턱도 없는 소리 마라. COO, CFO, 커머셜(상품) 담당임원 등 3명이면 충분하다. 세 사람만 보내라’고 반박했죠. 그쪽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뜻대로 회사를 경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영국에 가서 테스코 회장과 총괄 CEO를 만나 담판을 짓기도 했어요. 제가 ‘새로 만드는 홈플러스가 한국 100대 기업, 10대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테스코의 지점 정도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한국 톱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독립법인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죠. 만약 지점 정도로 간주하겠다면 난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그들도 당황하더군요. 그 후 무슨 일이든 내가 의사결정을 하는 대로 해보니까 잘 되거든요. 그러니까 COO 등 테스코 주재원들이 무릎을 딱 꿇고 ‘형님’ 하더라고요. 이후로는 영국서 온 주재원들을 모두 저의 경영 전도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신뢰가 점차 쌓여가니까 제가 한 마디 하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듣더군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점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 홈플러스가 단기간에 최고의 유통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창립 초창기에 ‘브랜치 오피스(지점)’를 넘어 독립경영을 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확보한 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이 회장 | 그렇습니다. 사실 홈플러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제가 뜻하는 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독립적인 경영이 없었다면 지금의 홈플러스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1. 미술관형으로 지어진 홈플러스 부천 상동점 전경. 2. 지난해 미국 뉴욕서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 리더스 서밋에서 연설 중인 이 회장.

올해 삼성물산과 테스코는 지난 10여 년간의 합작관계를 청산했다. 테스코는 삼성이 갖고 있던 잔여 지분을 몽땅 인수했다. 그러면서 삼성테스코는 사명(社名)을 아예 홈플러스로 바꿨다. 삼성테스코라는 법인과 홈플러스라는 점포 브랜드가 명실상부한 일체(一體)로 거듭난 셈이다.

이제 홈플러스는 100% 외국인투자기업이 됐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홈플러스는 외국계기업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외국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세간에서는 토종기업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승한 회장이 창립 초부터 ‘글로컬 스탠더드’라는 경영방침을 확고하게 뿌리내린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테스코그룹은 본고장인 영국을 비롯해 세계 14개국에 점포망을 운영하고 있는데, 홈플러스라는 점포 브랜드를 쓰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든 점포가 테스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어찌하여 한국만 예외일까? 이것 역시 이 회장의 신념과 뚝심이 관철된 결과다. 그의 설명이다.

1.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날. 이 회장이 인증 깃발을 흔들고 있다. 2. 홈플러스 신선식품 코너 

“테스코는 당초 홈플러스 브랜드를 사용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졌어요. 그들을 설득할 논리가 필요했죠. 그래서 국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테스코’와 ‘홈플러스’라는 두 브랜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본 거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세요? 테스코는 어딘가 석유회사나 기술회사 같다는 의견이 많았던 반면 홈플러스는 생활에 보탬이 되는 회사 이미지가 강하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갖고 테스코 경영진을 설득했어요. ‘홈’이나 ‘플러스’는 한국인에게 영어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홈플러스라는 브랜드가 훨씬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이죠.”

Tip l 외국 학계가 주목하는 홈플러스

‘글로컬 경영’ 성공 스토리 하버드도 인정했다

이 회장이 2005년 4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성공적인 경영 스토리는 미국 경영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승한 회장은 200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주제는 홈플러스의 성공비결과 기업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사례 발표를 한다는 것은 기업들에게 큰 영예로 통한다. 세계적으로 성가를 인정받는 일부 기업들만 초청받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한국 시장에서 월마트나 까르푸는 실패했는데 테스코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 같다. 특히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는 아시아적 가치를 반영한 홈플러스의 독특한 경영방식에 대해 매우 신선함을 느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밥슨 칼리지는 1년에 하루를 ‘홈플러스 데이’로 정해 홈플러스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발표·토론회를 갖고 있다. 밥슨 칼리지 측은 홈플러스가 평생교육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서구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강 회장 | 테스코에서는 홈플러스를 가장 성공한 외국투자 사례로 꼽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테스코의 글로벌 사업에서 홈플러스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은 어느 정도 됩니까?

이 회장 | 홈플러스는 제가 실질적으로 창업한 회사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애착과 애정이 누구보다 큽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저를 오너처럼 보더군요. 테스코에서도 저를 단순한 CEO로 보지 않고 ‘파트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국에서 온 친구들을 굉장히 많이 훈련시켰습니다. 그 덕에 승진도 많이 시켰어요. 내게 오면 승진한다고 하니까 서로 오려고들 합니다. 홈플러스에서 근무한 후에 각국 테스코 CEO로 승진한 사람이 5명이나 됩니다. 중국, 태국, 폴란드 테스코 CEO가 그런 예죠. 제가 승진 인사 때 영향력을 좀 발휘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들이 제게는 껌뻑 죽습니다(웃음).

홈플러스 경영방식 영국 테스코로 ‘역수출’

지난해 홈플러스의 매출 규모는 11조원에 달했다. 영국 테스코를 제외하면 테스코그룹 내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곳이 바로 홈플러스다. 태국(5조원), 아일랜드(4조1000억원), 폴란드(3조8000억원) 등 테스코가 진출한 여타 국가의 실적을 압도하고 있다. 당연히 테스코그룹 내에서는 한국의 홈플러스가 가장 성공적인 해외진출 사례로 꼽힌다.

그러다 보니 이제 세계 각국의 테스코 매장이 홈플러스 고유의 경영방식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는 단계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홈플러스가 ‘경영 한류’를 외국의 유통산업에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압권은 홈플러스 브랜드를 테스코의 본거지인 영국 시장에 역수출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영국 테스코는 2005년 10월 맨체스터 인근의 덴톤에 ‘테스코 홈플러스(TESCO-DENTON HOMEPLUS)’라는 점포를 열었다. 이곳은 가정용품, 주방용품, 전자제품, 의류, 액세서리 등 식품을 제외한 ‘비식품(non-food)’을 판매하는 매장으로, 홈플러스 브랜드를 단 해외 최초의 점포로 기록됐다. 테스코는 전통적으로 식품 유통에 강점을 지녔는데, 비식품 분야 경쟁력도 강화하기 위해 홈플러스 브랜드와 매장 컨셉트, 운영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테스코 홈플러스’ 매장은 영국 전역에 걸쳐 13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향후 점포 수를 더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강 회장 | 이병철 삼성 창업주께서는 생전에 경영자들에게 ‘업(業)의 본질’을 먼저 깨우칠 것을 강조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이 회장님께서는 삼성그룹 전문경영인 출신으로서 대형할인점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업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회장 | 유통업은 무엇보다 ‘스페이스 게임(Space Game)’이에요. 한 치의 작은 공간이라도 누가 더 유효·적절하게, 밀도 있게,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려요. 제가 점장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당신들이 맡고 있는 매장의 3차원 레이아웃(배치도)이 떠오를 정도가 돼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100개가 넘는 홈플러스 점포의 레이아웃을 거의 모두 눈감고 그려낼 정도거든요. 그렇게 돼야 매장을 어떻게 구성하면 고객들이 가장 좋아할 것이냐 하는 게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도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점장이 될 수 있겠느냐는 거죠. 제가 한 번은 임원들한테 백지 한 장씩을 나눠주고 어느 점포를 지정해 그 점포의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약간 비슷하게 그린 친구는 있는데, 완벽하게 그린 친구는 없고, 괴발개발 그린 친구도 있더라고요. 헌데 제가 점포를 하나 그려서 보여주니 다들 놀라가지고, 하하하.

Tip l 인천 무의도에 테스코 인재사관학교

14개국 핵심인재 모여 차세대 CEO 교육

홈플러스는 지난 7월7일 인천 무의도에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를 개관했다. 이곳은 테스코그룹이 진출해 있는 세계 14개국의 핵심인재 육성을 담당하는 글로벌 인재양성소 역할을 하게 된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 본토가 아닌 해외에 인재교육 시설을 세운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테스코그룹 내에서 홈플러스가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는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아카데미’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이 시설은 LED조명, 빌딩에너지관리시스템 등 총 70가지의 친환경 장비·시스템을 적용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크게 줄이는 한편 태양광, 태양열,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해 전력으로 충당한다. 연간 전력 생산량은 약 100만K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는 대지 면적 5만9303㎡(1만7970평), 연 면적 1만6020㎡(4860평) 규모에 총 22개의 강의장과 87개의 2인실 숙소를 갖췄다. 연간 교육 가능 인원은 2만4000명에 달한다. 특히 이 시설은 주변 자연환경과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외관이 눈길을 끈다. 이승한 회장이 직접 건물 설계와 디자인을 꼼꼼히 챙기는 ‘총감독’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바다의 파도가 해안가로 물결치는 모습과 대양을 향해 뻗어나가는 기상을 건물 형상화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화가인 강석진 회장은 “건물이 매우 예술적으로 지어졌다. 딱딱한 느낌을 주는 여느 기업들의 연수원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고 품평했다.

강 회장 | 혹시 나중에 인사고과 매길 때 점포 내부 모습 그려보라는 시험문제 내는 거 아닙니까? (일동 파안대소) 그러고 보니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네요. 가장 훌륭한 경영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다 합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사람입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훌륭한 경영자는 가장 훌륭한 종합예술가”라고 오래 전부터 제가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승한 회장님은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거장)’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이 회장님은 홈플러스를 불과 몇 년 만에 톱 레벨 기업으로 키워낸 데다, 한국 경영자로서 유통산업이 수십 년 앞선 영국 테스코의 경영모델이 됐거든요. 이건 참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이뤄낸 것이거든요. 그런데 예술가들이 바로 말도 안 되는 것을 막 그려내잖아요. 예전에 잭 웰치(전 GE 회장)가 미국 유력 경제지 표지인물로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목이 ‘만약 경영을 예술이라고 한다면, 잭은 거장이다’였어요.

이 회장 집무실 한쪽 구석에는 자신의 실물 크기 사진이 비치돼 있다.
이 회장 집무실 한쪽 구석에는 자신의 실물 크기 사진이 비치돼 있다.

이 회장 | (민망함과 동감을 함께 나타내며) 제가 사실 임직원들에게 비전을 이야기할 때 늘 하는 말이 “Look beyond the obvious(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라)”입니다. 그런데 강 회장님께서 꼭 그 말씀을 하시네요(웃음).

이승한 회장은 간혹 에세이를 통해 임직원과 소통한다. 그는 2007년 3월 어느 날 쓴 에세이에서 유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유통은 공간, 상품, 물류, 서비스, 사람, 제조업체, 협력업체, 소비자 등의 전 과정이 한꺼번에 결합한, 한두 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없는 ‘종합예술’과도 같은 산업입니다. 또한 유통산업은 소비자와 만나게 되는 최접점인 만큼 소비자의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산업보다도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는 이미 진작부터 유통업에서 예술적 가치를 발견했던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술경영’은 그의 경영철학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 회장의 핵심적인 경영 모토가 ‘경영을 예술처럼’이다. 그 사상은 이렇게 요약된다. “사람들은 ‘예술은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예술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예술가들은 완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일생 동안 그들의 모든 열정과 마지막 혼을 불사른다. 나는 경영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경영을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서플라이어 뷰포인트’로 협력업체와 상생

강 회장 | 홈플러스는 유통업체라는 속성상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생이나 동반성장과 관련해 홈플러스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이 회장 | 저희가 고객 설문조사를 하듯이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서플라이어 뷰포인트(Supplier Viewpoint: 협력업체 만족도 및 관계 조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협력업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조사하는 거죠. 우리나라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릅니다. 영국 테스코에 이 제도를 설명하니까 “이야, 우리도 이거 해야 되겠다”면서 뒤따라 도입하더군요. ‘서플라이어 뷰포인트’는 협력업체가 원하는 게 뭐냐, 만족도는 어떠냐를 알아보는 겁니다. 이걸 200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최근 동반성장 이슈가 나오면서부터는 더욱 조사를 강화했습니다. “동반성장을 위해 여러분이 진정 원하는 건 뭐냐”고 심도 있게 물어본 거죠. 이런 방식으로 ‘어프로치(접근)’하는 회사는 한국에 없을 겁니다. 동반성장이 이슈가 되니까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 협력업체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걸 작성하는 거죠. 저희는 협력업체 관점에서 동반성장 방법론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진정성과 차별성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강 회장 |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대체로 협력업체가 수백, 수천 개가 되는데 그들도 홈플러스처럼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불만사항과 희망사항 등을 밀도 있게 조사하는 게 필요할 것 같군요.

이 회장 | 저희가 ‘서플라이어 뷰포인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최초로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이라는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주업체가 납품을 받으면 협력업체에게 어음을 발행하는 관행이 있잖습니까? 이건 굉장히 원시적이고 불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보이스(송장·送狀)가 오면 자동적으로 은행과 연결시켜 대금결제를 하는 방식을 채택했지요. 이런 방식으로 결제하는 금액이 연간 7조원가량 됩니다. 저는 이 밖에도 좀 더 진전된 형태의 협력 모델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자기 제품을 가장 잘 아는 벤더가 유통업체의 판매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스스로 발주하는 게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 합니다. 즉 유통업체가 발주하는 게 아니라 벤더가 발주하는 거죠. 이걸 한 번 해보려고 계속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하면 할수록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신임 점장들에게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가죽의자와 구두 한 켤레를 선물로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하기 시작하신 겁니까?

이 회장 | 제가 언젠가 미국 백악관에 초청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장관 의자마다 이름이 새겨진 걸 봤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우리 점장들을 ‘미국 장관급’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에서 이름이 새겨진 의자를 지급하기 시작한 겁니다. 긍지와 자부심,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는 상징적인 격려인 셈이죠. 아울러 구두를 선물하는 것은 열심히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고객의 소리를 더욱 경청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죠.

Tip l ‘협력의 경제’ 추구하는 홈플러스

국내 넘어 글로벌 동반성장 모델 제시해

홈플러스는 ‘협력의 경제(The Economy of Collaboration)’라는 상생철학으로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발전시켜 왔다. 이를 디딤돌로 삼아 일부 협력업체는 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도약해가고 있다. 보국전자, 모나리자, 꽃샘종합식품 등은 지방 소재 소규모 업체였지만 홈플러스와 손잡은 뒤 국내외를 무대로 뛰는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들이다.

보국전자는 홈플러스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는 연 매출 30억원가량의 전기장판 전문 제조업체였다. 하지만 1999년 홈플러스와 PB(Private Brand) 전기장판 납품 계약을 맺은 후 홈플러스의 성장과 함께 덩달아 실적이 급성장했다. 현재 보국전자의 연 매출 규모는 400억원에 육박한다. 10년여 만에 10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보국전자는 홈플러스와 제품개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게 됐다. 그 덕분에 보국전자는 계절상품 전문업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습기, 선풍기, 히터, 믹서, 다리미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갖춘 수출기업으로 도약하기에 이르렀다.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우수 중소기업들의 수출 지원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코트라와 테스코, 홈플러스 3자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한국 중소 제조업체들의 수출을 적극 돕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홈플러스와 코트라가 우수 중소기업을 발굴해 추천하면 테스코는 이들 기업의 제품을 구매해 세계 14개국 테스코 매장에서 판매한다는 게 3자간 협력의 골자다.

얼마 전 영국 테스코 뉴몰든 매장에서는 ‘글로벌 동반성장을 위한 한국 식품전’이 열리기도 했다. 한·EU FTA 시대를 맞아 한국 식품업체들의 유럽시장 진출에 불을 댕기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이승한 회장은 몇 해 전 <창조 바이러스 H2C>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H2C는 ‘How To Create(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의 약자다. 그의 인생을 이끌어온 핵심 가치이자 동력이 바로 ‘창조’다. 또한 ‘창조’는 홈플러스의 경영전략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자신이 체험적으로 깨달은 창조의 원리와 방법론을 널리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창조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의 말이다.

“제가 늘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경구가 있습니다. ‘Take the best, and make it better. When it does not exist, create it(최고를 찾아서 더 좋게 만들어라. 만약 최고가 없다면 창조하라).’ 창조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고 했을 때, 저는 발품과 노력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싶어요. 책상 앞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새로운 창조의 첫 출발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를 먼저 아는 겁니다. 나아가 성공에 대한 확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노력의 결실이 창조라고 저는 믿어요. 에디슨이 20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백열전구를 발명해냈듯이 말입니다.”

강 회장 | 홈플러스는 현재 대형할인점 업계에서 점포 수, 매출 규모 등 양적인 면에서 2위입니다만, 고객만족 등 질적인 면에서는 과거 여러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어 사실상 업계 리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기업인이라면 누구나 질적인 면을 넘어 양적인 면에서도 1등을 하고 싶은 게 당연할 겁니다. 회장님께서는 명실상부한 시장 1위 기업이 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역량을 기울이고 계십니까?

Tip l 이 회장 부부는 잉꼬부부

결혼 37년차에도 “오리” “강아지” 애칭 불러

이승한 회장은 부인 엄정희 여사(서울사이버대 가족상담학과 교수)를 ‘오리’라고 부른다. 신혼 시절 아내가 뭔가에 삐쳐 있는 모습이 마치 ‘도널드 덕’처럼 귀여워서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반면 엄 여사는 이 회장에게 ‘도기(doggy: 강아지)’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남편이 개띠인 데다 충성스러워(?) 선사한 닉네임이라고 한다. 결혼 37년차의 이 회장 부부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여전히 주변에서 ‘닭살 부부’로 부를 만큼 애정이 깊다.

이 회장 부부는 지난해부터 의미 있는 동행을 시작했다.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대학생들의 멘토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부부 멘토’인 셈이다. ‘디자인 유어 라이프(Design Your Life)’라는 주제로 대학생 멘티들에게 시장경제, 기업, 경영을 비롯해 인생, 꿈 등에 대한 조언을 한다고 한다.

이 회장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서포터, 조언자 역할을 하려고 멘토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들을 통해 기성세대가 못 보는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제가 오히려 젊은 멘토들을 얻은 셈이죠”라고 말했다.

1. 2009년 <창조 바이러스 H2C> 출판기념회에서 부인, 딸, 사위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2. 2010년 3월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이 회장(가운데 선글라스에 검은 가죽재킷을 입은 사람)이 직원들과 함께 직접 패션쇼 무대에 올랐다.

‘마인드셰어’ 최고 넘어 ‘마켓셰어’ 1등 노려

이 회장 | 지금 홈플러스는 ‘마켓셰어(Market Share)’에서는 2등이지만 ‘마인드셰어(Mind Share: 브랜드 호감도)’에서는 1등이에요. 브랜드 인지도, 호감도, 만족도, 신뢰도, 충성도 등을 조사해보면 종합적으로 홈플러스가 국내 1위로 나타납니다. 물론 양적인 면에서도 당연히 1등으로 갈 겁니다. 2~3년쯤 뒤에는 가능할 겁니다. 저는 고객과 시장의 변화에 누가 빨리, 올바르게 반응하느냐가 승부를 좌우할 거라고 봐요. 그런 점에서 유통은 ‘반응산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홈플러스의 비전은 ‘세계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는,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유통회사(World Best Value Retailer)’입니다. 저는 정량적(定量的) 측면에서 세계 1등은 어렵겠지만 ‘가치’나 ‘경영의 질’ 등 정성적(定性的) 측면에서는 우리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드는 게 곧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강 회장 | 회장님께서는 스스로를 ‘늘 꿈꾸는 청년’으로 여기신다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경영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이 회장 | 역시 “Look beyond the obvious(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삶과 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고 상상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하면 자연스레 ‘꿈’이 생기거든요. 꿈이 생긴 다음에는 겸손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 허드렛일이라도 현재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들도 그런 직원들을 발탁하기 마련이에요.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단언컨대 자신의 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건 못 봤습니다.

이승한 회장은 펜을 들더니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着眼大局, 着手小局(착안대국, 착수소국). ‘넓게 바라보고, 세밀하게 일한다’는 뜻이다. 그가 평생 동안 일을 도모할 때마다 가슴속에 새겨 넣은 경구다. 문득, 반상의 고수가 전체 판세를 멀리 내다보고 바둑돌 한 수 한 수에 혼을 불어넣는 모습이 떠오른다. 역시 고수들은 통한다. 이 회장은 경영의 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