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이희범 STX에너지·중공업 회장을 가리켜 ‘수묵화’ 같은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라고 말한다. 담백하면서 솔직함, 그게 바로 이 회장의 매력이다. 기질로 따지면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학자풍의 이 회장이 한번도 힘들다는 경제5단체 회장직을 두번이나 맡은 데서도 그런 기질을 언뜻 엿볼 수 있다. 그는 한국무역협회장에 이어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아 노사문화 선진화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그만큼 경제계 안팎으로 신망이 두텁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코노미플러스가 ‘강석진 회장의 CEO to CEO’ 첫 대담자로 ‘열정과 화합의 리더’ 이 회장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담은 지난 2월7일 이희범 STX중공업·에너지 회장의 집무실에서 1시간40분 동안 진행됐다.

<편집자주> 이코노미플러스는 이번호부터 ‘강석진 회장의 CEO to CEO’대담 코너를 신설합니다. 강 회장은 20여년간 제너럴일렉트릭(GE)코리아 회장을 역임한 뒤 CEO컨설팅그룹을 창업, 리더십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코노미플러스는 ‘강석진 회장의 CEO to CEO’를 통해 창의적인 리더십으로 한국경제의 업그레이드에 땀을 흘리고 있는 국내외 유명 CEO를 인터뷰 해 그들의 인생역정과 경영 철학 등을 상세히 소개할 계획입니다.

 

“기업 경영의 묘미는 직원들한테     



 이익을 나눠주는 데 있어요” - 이회장





“근로자는 자산입니다.                



 코워커라고 불렸으면 해요” -강회장   






접견실에서 바라본 겨울 남산의 모습이 포근한 느낌이 든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려서 일까. 한폭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10여일째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때문인지 인적은 드물다.

STX중공업·에너지 회장 접견실은 소박함 그 자체다. 여느 CEO 집무실에 있을 법한 휘호 한점 찾아볼 수 없다. 걸려있는 액자라고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STX팬오션의 컨테이너선 사진뿐. 단출한 느낌이다. 정각 오후 3시가 되자 접견실 문이 열리면서 이 회장과 강 회장이 동시에 들어왔다. 마치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듯.

인터뷰가 있었던 월요일(2월7일)은 설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도 새해인사와 서로에 대한 덕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희범 회장 | 제가 원래 언론 인터뷰를 잘 안하는 편인데…. 강 회장님과의 대담이라 기꺼이 하기로 했지요.

강석진 회장 | 이 코너가 명색이 제 이름 걸고 시작하는 시리즈인데, 아무나 할 수 있나요. 일단 취지부터 설명하면 제가 이 회장님과 같은 경영 대가를 만나 후배 경영인들에게 도움이 될 인사이트(통찰력)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인물 선정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이거 부담이 되는데요”라며 웃는 이 회장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후배 경영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야 한다는 말에 부담을 느낀 탓일까. 

두 사람은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한명은 회장, 다른 한명은 고문이다. 지난해 경총이 회장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이 회장에게 회장직을 강력히 요청한 이가 바로 강 회장이다.

강 회장 | 경총 회장에 취임하신 지 6개월 가량 지났는데 해보시니까 어떠세요.

이 회장 | 산업자원부(지식경제부 전신) 장·차관을 할 때도 느꼈지만 경총 회장이라는 자리는 쉽지 않은 자리예요. 당시 제가 정부 쪽 파트너여서 잘 알아요. 무엇보다 대외적인 행사가 많습니다. 그래도 외부 행사를 제외하고 근무시간에는 본업(STX업무)에 충실하려고 해요. 경총 일은 주로 퇴근 후 밤에 합니다. 퇴근하고 서재에 들어가면 거기가 바로 경총 회장 집무실이 되죠. 축사도 쓰고…. 준비한 이 참고 자료도 지난 설 연휴동안 제가 직접 썼어요.

이 회장이 인터뷰 참고자료라는 제목의 인쇄물을 강 회장에게 내밀었다. 얼핏 봐도 분량이 10페이지가 넘어 보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노사문제로 흘러갔다. 현재 재계와 노동계는 복수노조 세부사항과 단체교섭권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최대 경영단체 경총의 수장인 이 회장에게 노사문제는 커다란 현안 중 하나다. 그는 “한해 외국기업들이 국내 투자하는 규모가 130억달러 정도 되는데 이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가 노사문제”라면서 “제도를 개선해 투자가 늘어나면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겠는가”라며 제도 개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강 회장 | 많은 해외 연구기관들이 경제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선진국인데 노사관계는 아직도 20~30년 전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회장 | 타임오프제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금지는 몇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작년에 잘 시행됐다고 생각해요. 다만 올해 복수노조 문제가 남아 있는데, 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선진국들은 과반을 얻은 노조에게만 교섭권을 부여하고 있거든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과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는 겁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면 복수노조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교섭권 단일화와 같은 쟁점은 투명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저희 경총도 태스크포스를 꾸려 정부와 협의 중인데요, 불필요한 제도를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쪽으로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국토면적은 세계에서 108번째, 인구수로는 26번째입니다. 경제규모는 12~13위 수준이고, 수출은 7위죠. 그런데 국가경쟁력지수는 20위권이에요. 바로 노사문제 때문이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경쟁력지수 조사에서 노동 분야는 58개 국가 중 56번째였습니다. 노사문제가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어요.

노사문제에 관해서 이 회장은 막힘이 없었다. 심지어 인용하는 수치 하나까지도 말이다. 자료를 보고 읽는 식이 아니라, 머릿속에 완전히 암기가 돼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거 경제 통계를 인용할 때도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혹시 틀린 수치가 있을까봐 대담이 끝난 뒤 관련 통계를 검색해봤다.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강 회장 | 그러고 보면 올해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바꾸는 전환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기반만 잘 닦아 놓으신다면 대한민국 전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요.

이 회장 | 그렇습니다. 연초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저는 근로자와 경영자의 동반성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근로자는 기업의 자산입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죠. 저도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인재가 많은 기업은 미래가 보장돼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경영자가 기업의 미래자산인 인재를 소홀히 여기겠습니까.

이 회장의 말이 노사 모두의 동반성장에 이르자 갑자기 강 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노사 모두가 동반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강 회장의 오랜 지론이자, 최근 글로벌 경영계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강 회장 | 근로자를 자산으로 보는 그 관점,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최근 네덜란드를 방문해 그곳 교수들에게 “당신들은 아직도 노사라는 말을 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자기네는 이제 더 이상 고용주(Employer), 종업원, 피고용주(Employee)라는 말은 안 쓴다는 거예요. 그 대신 코워커(Co-Worker)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동료, 동반자라고 할까요. 우리도 이제는 종업원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회장 | 강 회장님이 인적자산을 언급하셔서 하는 말인데, 사실 사장도 자산이고, 연구개발자도 자산 아니겠습니까. 생산직 근로자도 마찬가지예요.

강 회장 | 그렇죠. 각자 맡은 분야가 다를 뿐인 거죠. 서로 다른 전문분야라고 생각하면 돼요. 저와 생각이 비슷하시군요.

이 회장 | 저는 그렇게 개념이 정립되면 회사 이익을 나누는 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경험해보니까, 기업경영의 묘미 중 하나가 이익을 직원에게 나눠주는 데 있더라고요. 고생한 직원들에게 나눠줄 때 그 희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코워커, 그거 아주 좋은 지적이십니다.

지난 2009년 3월 그가 STX에너지·중공업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시장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장·차관, 대학총장, 무역협회장까지 맡은 그가 비교적 역사가 짧은, 그것도 해외를 무대로 뛰어 다녀야 하는 STX에너지·중공업 회장을 맡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 | 무역협회장을 마치시고 STX그룹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올해가 STX그룹 창립 10주년이라던데요.

이 회장 | 저희 STX그룹은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합니다. 저희 파트(중공업·에너지)의 국내 사업이라고 해봐야 구미, 안산에서 열병합 발전소 2곳을 운영하고 있는 것뿐이죠.

강 회장 | 놀라운 사실인데요. 매출의 90%가 해외라면 대단한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 회장 | 대단하죠? 저희 STX가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 사업 비중이 크고, 적기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중공업에서 출발해 조선, 해운, 태양광, 신재생 에너지로 그룹의 성장 동력을 자연스럽게 바꿔나가지 않았습니까. 제가 STX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도전 정신 때문이었어요. 

남아공월드컵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가 보유한 지하자원과 인적자원은 글로벌 기업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회장은 국내 몇 안 되는 ‘아프리카 통’이다. 그는 현재 남아공 국영전력회사 에스콤의 사외이사와 전경련 산하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강 회장 | 최근 아프리카 가나를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거기서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계십니까. 

이 회장 | 저희가 벌이고 있는 사업은 가나정부가 경찰, 군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국민주택을 짓는 일입니다. 지난 1월 3만호 착공식을 갖고 왔는데요, 저는 이 공사가 단순히 집을 짓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개발 경험을 공유하는 쪽으로 발전돼야 한다고 봅니다. 집을 지으려면 도로가 필요하고, 그런 대규모 건설을 진행하려면 철근, 시멘트 등을 실어 나를 하역 시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산업발달 역사를 배우고 싶어하는 그 나라들에게 개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강 회장 | 한국이 아프리카로 진출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금융기관, NGO(비정부단체)가 서로 협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이 요즘 아프리카 사업을 싹쓸이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이 회장 | 얼마 전 남아공을 방문했는데 중국이 원전 건설에 기금 지원까지 약속했다더군요. 그런데 과연 아프리카 사람들이 중국을 좋아하느냐,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중국은 자금 지원도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면 자국민을 함께 데리고 들어와요. 아프리카 정부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자국민의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별 남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 지인들은 요즘 “기술력을 갖춘 한국기업이 많이 진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강 회장 | 오히려 우리와 ‘윈-윈’할 게 많다는 뜻이군요.

이 회장 | 저쪽은 우리의 개발경험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원이 없지만 저쪽은 자원이 풍부하고, 대신 저쪽은 기술이 없는데, 우리는 기술이 있으니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죠.

강 회장 | 이 회장님께서 아프리카 얘기를 꺼내니까 말씀드리는데, 사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하고 뛰어든 게 저였습니다. 제 나이 32살 무렵예요. 남아공에 음향기기 등 전자제품을 최초로 수출했는데, 현지에 서비스센터도 운영했으니까요. 그게 1972~73년이었어요. 하도 열심히 하니까 남아공 사람들이 나중에 저한테 ‘명예백인’이라는 호칭까지 붙여줬어요. 남아공은 6·25 참전국인 데다, 요하네스버그에 가면 ‘코리아 스트리트’도 있어요. 그만큼 우리와 역사적으로 가까운 나라입니다.

시간은 어느덧 1시간을 훌쩍 넘어갔다. 당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은 1시간. 몇마디 주고받았는데 시간은 그렇게 금세 지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강 회장이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듣기에 따라 당황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었다.

강 회장 | 공직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밖에서 보시기에 우리 관료조직이 어떻게 일하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보십니까. 솔직한 얘기를 해주시죠(웃음).

이 회장 | (당황한 듯) 그거 뭐…. 역지사지라고 있잖습니까. 만약 제가 공직에 있을 때 민간기업을 생각했더라면 우리 공직사회가 좀 더 성숙됐을 거예요. (목소리를 낮추며) 근데 솔직히 나와서 보니까 공직사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공직에 들어가면 이런 생각, 또 잊어버리겠죠(웃음).

이 대목에서 목이 타는지 이 회장은 여러번 차를 마셨다.

강 회장 |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행정고시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모두 ‘수석’으로 마치셨다면서요. (이공계 출신인 이 회장은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해 화제가 됐다.)

이 회장 | 제가 원래 이공계 출신입니다. 그래서 통계학과 물리학 등 수리과목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행정고시 수석합격과 행정대학원 수석졸업도 남들보다 수리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죠. 조지워싱턴대는 좀 사정이 다릅니다. 국비 연수를 30대 후반에 떠났어요. 남들보다 늦게 가니 처음부터 목표가 ‘수석졸업’이었죠. 아침부터 도서관 문 닫을 때까지 하다 보니 어떤 때는 도서관에서 청소하는 분이 빗자루로 툭툭 치지 뭡니까. 이제 그만 집에 가라는 신호였죠(웃음). 그렇게 2년을 매달렸어요.”

강 회장 | 자제분들 얘기 좀 해주세요.

이 회장 | 1남 2녀인데, 하나는 결혼했고 둘은 아직 미혼입니다. 사실 제가 가장 자신 없어 하는 게 자식 교육이에요. 두 녀석 다 결혼할 나이가 지났는데 결혼도 안하고….

강 회장 |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 회장 | 별로 간섭하는 편이 아니에요. 나랏일에 바쁘다보니 좀 소홀한 면도 있었고…. 서로 바빠서 얼굴 본지도 꽤 됐네요.

부인 최춘자씨는 이화여대 사범대 출신으로 그의 공직생활 내내 첼로학원을 운영했다. 이 회장은 고위공직자 부인이 운영하는 학원이라는 소문이 날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의 둘째딸인 유정양은 첼리스트이다. 유정양은 지난 2007년 한국인 처음으로 몬테카를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화제를 모은 국내 음악계의 기대주이기도 하다.

 

강 회장 | 사모님이 음악학원을 하셨다던데.

이 회장 | 네. 작년까지 첼로학원을 했어요. 어느날 차관이 됐는데, 집사람이 ‘학원을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계속 하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랬죠. ‘학원 잘 되면 내가 차관 그만두고 봉고차 운전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웃음). 대신 크게 키우지는 않고, 영업일수를 줄였어요.

강 회장 | 요즘 경영학계에서는 기업경영이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있죠. 부인께서 첼로학원을 하셨으니, 예술적인 감각이 남다르시겠네요.

이 회장 | 남들이 그래요. 아내가 첼로학원을 하고 딸이 첼로를 전공해서 좋은 음악만 들었겠다고. 근데 안 그래요. 솔직히 ‘깨진’ 음악만 들었어요(웃음). 사무관 시절, 그때는 집에서 피아노학원을 했는데 퇴근할 때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 한잔하고 했어요.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강석진 회장은…

연세대 대학원(공업경영학 석사)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30여년 간 제너럴일렉트릭(GE)에 몸담았고, 그 중 20년은 GE코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 전문경영인학회 이사장, 서강대·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CEO컨설팅그룹 회장이다. 서양화가로도 활동해 세계미술문화진흥회 이사장과 한·일 서양화 교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역서: <당신의 운명을 지배하라>, , <잭 웰치와 GE방식>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