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잎꿩의비름, 쑥부쟁이, 깽깽이풀, 노루귀, 솜다리…. 깜찍하지만 낯선 이들은 한국에서만 자라는 야생화들이다. 조용경(61) 대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부회장의 연인들이기도 하다. 그는 희귀한 야생화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깊은 골짜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리한 산행으로 팔다리가 후들거려도 꽃만 보면 힘이 솟는다. 조 부회장에게 야생화는 취미생활의 벗을 넘어 경영에 활력을 주는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2008년 7월, 지리산. 조용경 부회장은 ‘솜다리’를 촬영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그만 계곡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커다란 등산배낭이 쿠션 역할을 하면서 머리와 허리의 부상은 피했다. 그러나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그때의 후유증은 지금도 조 부회장을 괴롭히고 있다. 그토록 좋아하던 야구 캐치볼을 못 할 만큼 팔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하지만 조 부회장의 야생화 사랑은 여전하다. 지난해 10월에는 경북 청송의 주왕산 계곡에서 또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둥근잎꿩의비름’이라는 희귀종을 촬영하다 말벌들의 습격을 받았던 것.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독이 단단히 오른 상태였다. 쏘이자마자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동행한 사진동호회 회원들의 재빠른 신고 덕분에 무사히 병원으로 후송됐다. 조 부회장은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아찔하다고 털어놓는다.   



- 조용경 대우엔지니어링 부회장이 촬영한 작품들. 동강할미꽃, 복수초, 깽깽이풀, 변산바람꽃.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

몽골·백두산에도 출사…시작은 ‘아내 사랑’때문

조 부회장의 사진경력은 올해로 10년째다. 2002년 일본 출장길에 아들의 부탁으로 생애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흔한 ‘똑딱이’라는 애칭의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로 당시는 국내에서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고화질 사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조작이 쉬워서 사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 똑딱이로 가장 먼저 촬영한 것이 야생화였다.



조 부회장이 처음부터 야생화에 ‘필이 꽂힌’ 것은 아니었다. 부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야생화 촬영의 계기였다. 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도 부인과 영화를 관람하며 심야 데이트를 즐길 만큼 로맨티스트다. “아내가 앞마당에 야생화를 길렀습니다. 그 꽃들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야생화를 디지털 앨범에 담아서 보관해 두면 기뻐하겠지’ 생각했죠. 그런데 꽃들을 찍을수록 제가 오히려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식물도감을 뒤적이며 품종과 산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죠.”



조 부회장이 말하는 야생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야생화는 청초하면서도 관능적인 자태 속에 놀랍도록 억척스런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꽃일수록 아름다워요. 동해안에 피는 해국(海菊)의 경우 바위틈에서 바닷바람과 짠물을 뒤집어쓰면서 꽃을 피웁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요.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죠. 모진 고난을 겪어야 성숙해집니다. 야생화 앞에 설 때마다 삶에 겸허해져요.”



조 부회장은 시간만 나면 산과 들, 바다로 나간다. 희귀식물의 보고인 제주도 한라산만 1년에 4번 방문한다. 오로지 야생화를 좇아 해마다 몽골 초원과 백두산을 찾을 만큼 열성적이다. 전문가용 DSLR 2대와 각종 렌즈, 지지대 등 사진장비만 10kg이 넘지만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동행하던 부인도 어느새 사진에 푹 빠졌다. 그가 주로 촬영하는 것은 야생의 새들. 한국 자연을 소개하는 정부의 관광안내 책자에 실릴 정도로 실력이 수준급이다.



지금까지 조 부회장이 촬영한 야생화는 종류만 500여 가지다. 사진의 양은 본인도 집계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다. 이 작품들로 지금까지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연말이 되면 야생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배포한다.



“야생화 사진은 경영에도 적잖은 도움을 주지요. 해외 거래처의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제 작품을 담은 액자를 선물하거든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꽃들인데다 제가 직접 계곡과 해안가를 돌면서 찍었다고 설명하면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야생화를 촬영하는 것은 고된 작업이다. 좋은 사진을 건지려면 흙바닥에 얼굴을 묻고 수백 번씩 셔터를 눌러야 한다. 조명에 적당한 햇빛이 들도록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꽃들에게도 지극정성인데 과연 직원들에게는 정성을 다했을까 자문하곤 합니다. 그럴수록 다그치기보다 입장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요즘은 이들과 함께 수시로 야구장과 뮤지컬 공연장을 찾습니다. 회사에 웃으면서 일하는 문화가 생긴 것도 야생화 덕분이죠.”



조 부회장은 배짱 두둑한 모험가다. 회사의 주력사업이 플랜트, 토목 등 대규모 건설공사라 아프리카나 중동, 동남아시아의 해외 현장을 방문할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틈틈이 오지를 탐험한다. 천혜의 자연과 토속문화가 담긴 풍경들을 사진 속으로 옮겨 놓기 위해서다. 모로코의 외딴 마을에서 부녀자들의 독특한 민속의상을 촬영하다 현지주민들에게 구금된 적도 있다. “야생의 오지에서 사는 사람들일수록 낙천적이고 건강합니다. 한국사람들의 찡그린 표정과 다르죠. 야생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제가 야생화를 사랑하는 것도 이런 때묻지 않은 신비감 때문이죠.”

조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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