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소리가 들리세요? 부화한 아기 새가 어미 새를 찾는 소리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와 흙 만지는 것이 좋아서 이곳에 오기도 하지요.”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의 경성농원. 5000m²(1500평)의 땅이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다. 윤문석 VM웨어 한국지사장은 33m²(10평) 남짓한 텃밭에 15가지의 농작물을 유기농법으로 기른다. 돌나물·쑥갓·꽃상추·청경채·들깨·꽈리고추…. 주말마다 이들을 돌보려고 농장에 오는 그는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IT업계 35년 경력의 컴퓨터 전문가다.

 “지난 주말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딸을 만나러 가느라 농장에 못 왔어요. 한 주 손을 안 댔더니 (상추를 가리키며) 이렇게 자랐네요.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일이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언제 심느냐도 중요하지만 거둬야 할 때를 놓치면 낭패지요. IT산업도 마찬가지로 정확한 타이밍이 가장 필요하고요. 아, 여기 이 녀석은 벌써 죽어버렸네요.”



인터뷰가 있은 지난 5월 14일, 윤 지사장은 농작물을 둘러보다 말고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 들깻잎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햇빛이 잘 안 드는 경사진 자리라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다. 그는 ‘지난주에 알았으면 살려내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에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그가 해외출장을 가더라도 2주 이상 농장을 안 비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윤 지사장은 한국오라클 회장·시만텍 사장·베리타스소프트웨어 사장·테라데이타 사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시절부터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서 한국 IT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2000년 오라클 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1년 만에 70%의 매출성장을 달성했고 외환위기 당시 부진했던 실적을 극복해 145개 지사에서 10위로 올랐다. 그런 그가 직접 기른 농작물이라고 하니 더 특별하게 보였다. 그는 기업 경영과 농작물 재배에도 공통점이 많다고 말한다.



“주말농장에 오다 보면 경영 노하우와 삶의 철학을 배워요. 시간나면 한번 작은 화분이라도 키워보세요. 제 기분이 이해되실 거예요. 여기 이 감자들이 다 똑같아 보이시죠? 그런데 제 눈에는 안 그래요. 제 자식들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남이 키운 것과 같겠어요. 직원 관리도 똑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기업마다 인재, 인재 하는데 그게 다 관심과 사랑이 아니겠어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윤 지사장은 어린 시절 과수원 근처에서 살았다. 어머니를 도와 상추 등 간단한 채소를 기르던 취미생활이 서울로 터전을 옮겨서도 계속됐다. 그는 결혼 후 살았던 단독주택의 화단에 어린 두 딸과 나팔꽃을 키운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사무실에 난을 키워서 직원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식물사랑이 대단하다. 이런 그가 주말농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5년 전부터. 그는 부인과 집 근처를 산책하다 우연히 경성농원을 알았다고 한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터라 그는 그 자리에서 임대계약을 마쳤다. 모종이나 씨앗을 심을 때는 시간 가는지도 모른 채 반나절을 훌쩍 넘긴다. 수확할 때의 즐거움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농장에서 주말을 보낸 윤 지사장의 모습은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평일에 그의 삶은 180도 바뀐다. 농장을 운영하는 촌부의 모습은 간데없고 최첨단 IT기업의 사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VM웨어의 지사장으로 취임한 후 그는 클라우드 컴퓨팅(인터넷 소프트웨어 관리서비스)을 알리는 일에 분주하다. IT업계 트렌드로 불리는 클라우드 컴퓨팅은 윈도 등 소프트웨어를 PC(개인용 컴퓨터)에 일일이 넣지 않고 하나의 메인장치에서 관리·저장하는 서비스다. 메인장치로부터 인터넷 선을 연결해서 빌려 쓰는 것. 이렇게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 수만큼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돼 에너지와 비용이 절감된다. 웹 이메일과 같이 회사서버에 편지내용을 저장했다가 인터넷으로 불러오는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의 초기형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최근 구글 컴퓨터가 부팅시간을 8초로 단축시킨 것도 대용량의 소프트웨어를 PC 밖에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이다.

“외부 도움 없이 자란 식물이 강해요”

VM웨어는 이런 클라우드 컴퓨팅을 서비스하는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이 29억 달러(약 3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국내 매출은 전년대비 84%가 증가했다. 삼성·LG·SK 등 여러 기업들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채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폰에도 적용되고 있다. 윤 지사장은 직원면접을 보는 데 지난 반년을 보냈다. 마케팅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새로 채용한 10명을 비롯해 조만간 6~7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이렇게 바쁜 일정을 보내는 그는 주말농장에도 소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에게 그는 7~8종류의 나물과 쌈 채소를 담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약을 안 쳤어도 마트에서 산 것보다 싱싱해요. 외부 도움 없이 주변 환경을 극복하고 자란 덕분이겠지요. 사람도 시련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지잖아요? 그래서 자식과 직원교육도 무조건 도와주기보다는 스스로 도전이나 경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아, 이거요? 내일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직원 줄 거예요. 이렇게 나눠주는 기쁨 또한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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