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67)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2월에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선임된 것은 미술계와 산업계를 아우른 엄청난 화젯거리였다. 그는 대우전자 CEO 시절이던 1993년에 직접 출연한 '탱크주의'광고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데다,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지냈던 중량급 인사였기 때문이다. 교수(공학박사), CEO, 장관을 거친 그가 차관 아래 실장급(1급)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에 '계급을 낮춰' 응모했다는 사실도 주목받은 요인 중 하나였다. 미술관을 만난 '탱크주의'는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을까. 이제 3년 임기의 절반가량을 보낸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

"'유니크함'으로 승부해 세계 5대 미술관으로 키우겠습니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취임 초 쏟아졌던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일들에 대해 의욕에 가득찬 모습으로 이야기했었다. 그의 구상은 이랬다. “공모 지원서에 이런 구상을 적어냈어요. 정적인 전시 중심이던 기존 미술관 운영 방향을 동적인 퍼포먼스 위주로 바꿔보고 싶다고요. 미술관 옆에 있는 서울대공원과 재즈 페스티벌을 함께 한다든가 하는식으로, 미술관을 ‘익사이팅한’ 곳으로 만들어 봤으면 했죠.” 하지만 임기의 절반을 넘긴 그는 이제 ‘하고싶은것’ 보다는 ‘할수있는것’을최대한 잘하자는 것으로 생각을 바꾼 듯했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이런것들이 잘먹히지 않는 현실 때문이었다.



익사이팅한 미술관 만들고 싶었지만…

“궁극적인 고객층(관람객)은 결국 일반 국민들인데,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미국 MoMA(뉴욕현대미술관) 같은곳에서는 작가가 누드로 문앞에서 있고, 관람객이 그사이를 지나가는 식의 퍼포먼스가 벌어지면 엄청난 반응이 나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작가들이 독특한 퍼포먼스를 시도해도 국민들의 반응이 거의 없어요. 미술관에 오지 않는 이들이 많고,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이 소수에 불과하거든요.”

배 관장은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너무 급격하게 경제 성장을 이뤄 문화수준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인 것으로 풀이했다. 그래서 그는 과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미술 교육을 많이 했지만 일반인들 이미 술에 친숙해지도록 하는게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문화 향유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테니스를 칠때도 잘쳐야 즐겁습니다. 잘치려면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겠죠. 미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와서 일하면서 대중들에게 그런 교육이 시급하다는걸 알았어요. 미국에서는 미술관 방문객의 80%가 어릴때부터 미술관에 와본 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동 대상 미술교육을 강화하고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배 관장 취임 후 미술학원 선생님들과 미취학 아동들에게 미술교육, 체험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을 거친 이들이 무려 100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

‘익사이팅한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 3년 임기 안에 큰 업적이 생길것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공무원 조직인 미술관에서는 사업의 성격과 사람 등이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관장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요소가 별로 없고, 임기도 3년으로 짧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어떤 것을 개선하는 일이 어렵다면 대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일을 하자는 생각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 5대 미술관으로 키우겠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배 관장은 취임 1주년 무렵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세계 5대 미술관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밝힌적이있다.서울 경복궁인근 옛 국군 기무사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배 관장은 “세계적인 미술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세계적인 추세를 따르면서도 매우 유니크해야(독특하고, 개성이 넘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세계5대미술관’은 미술관 건물 규모나 관람객 수, 소장품 수 같은 수치적인 것이 아니다. 해외 유명 미술관들과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장 규모로는 세계 100위권 정도에 들까말까 한 수준이며, 소장품역시 6500점 정도에 불과해 수십만 점을 보유한 해외 미술관들과 비교는 무리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규모가 아니라 ‘유니크함’으로 겨룬다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다. “지난 9월에 전남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 김수자 작

가의 설치 작품 전시를했는데, 이게 아주 호평을 받았어요.”

원자력발전소에서의 미술 전시라? 내용은 이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9월3일부터 19일까지의 기간 동안 영광 원자력 발전소 내에 있는 1136m 길이의 방류제 위에 김수자 작가의 대형 영상 작품<지·수·화·풍(Earth·Water·Fire·Air)>시리즈를 설치 했다.





이작품을 전시 한방류제는 방파제의 일종으로, 원자력 발전으로 데워진 바닷물을 식히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영광 앞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이방류제는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듯한 경관이 일품이다. 한 마디로, 미술관이라는 장소의 한계를 벗어나 산업과 자연, 예술의 접점을 모색한 전시였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시 장소뿐만 아니라 작가 선정, 전시 기간 등에 있어서도 전략적인 아이디어로 기획했다고 한다.

“야외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UAE(아랍 아미리트)에 원자로 수출이라는 큰 성과도 있었죠. 이를 감안해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잡고,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많이해 인지도가 높은 김수자선생을 작가로 선정했습니다. 또 이런 작업을 대내외에 많이 알려야 하는데, 이 전시회만을 위해서 세계적인 미술계 인사들을 초청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광주 비엔날레 기간 중에 전시 일정을 잡았죠.”

배 관장은“덕분에 세계적인 큐레이터, 평론가들이 많이 보고 갔다”며 “이들이 ‘유니크한 전시’라고 호평했다”며 뿌듯해 했다.

“제가 미술계 출신이 아니라 어려움도 있지만 이번 전시회 같은 경우는 저의 경력이 장점으로 작용한 셈이죠. 미술계 사람들 만으로는 기획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공학박사라서 원자력 발전소 건물의 구조를 잘 알아요. 그래서 원자력 발전소라면 방류제 위에 대형 작품 설치가 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추진을 했죠.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겁니다.”



“탱크주의 이미지, 오해 있다”

배관장의 이력은 IT 분야의 전문성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공학박사에다 전자 회사 CEO와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지낸 그다. 물론 자연인 배순훈으로 보자면 미술 분야가 영 낯선 인물은 아니다. 아내(화가신수희씨), 아들(건축가 겸 설치 미술가 배정완씨), 딸(예술이론 박사·미국 변호사 배희영씨) 등 가족이 미술계에 속해 있고, 미국 유학시절에 백남준, 김환기, 최욱경 등 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공식적으로 미술계에서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술계 와의 관계 맺기는 그래서 만만치 않은 모습이다.

이를테면 작년 8월 기무사 터에서 열린 2009 아시아프(ASYAAF·Asian Students and Young Art Festival)행사를 두고 일었던 잡음 같은 것들이다. 아시아프는 프로 화가로 데뷔하기 전인 미술대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사고파는 미술품시장. 당시 미술계에서는 이 행사를 비난하는 이들이 많았다.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결정 후 처음 열리는 전시를기껏 ‘장터’로 시작 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 했던것이다. 문화부기자들의 기사와 칼럼에서는 ‘탱크주의로 밀어 붙인다’는 식의 묘사도 적지 않았다.

배관장도 이런 미술계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물었을때 그는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이를 많이 먹다 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봅니다. 큰 방향은 잘가고 있으니 일희일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는 “‘탱크주의’ 때문에 나한테 단기적으로 뭘 밀어 붙인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고했다.

사실 과거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광고’는 고장 없이 튼튼한 전자제품을 만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탱크주의’라는 단어에서는 튼튼함이라는 이미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쟁터에서 거침 없이 전진하는 탱크의 원형적인 이미지만 떠오르는 듯하다.

“‘탱크주의’는 28년전 광고인데, 지금까지 회자 되는걸 보면 그때 그게 참 잘 된 광고 였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제가 대우 그룹에서 건설회사를 맡았을 때 공사 현장에서 문화재가 나온적이 있어요. 80년대에 경남 창원에 대우차 마티즈 공장을 지을때였죠. 이 공장에 가보면 마티즈 테스트 트랙이 좀 비뚤어져 있어요. 문화재 나온 자리를 피해서 공사를 하느라 그랬죠.

제가그정도양식은있는사람입니다.”(웃음)

웃으면서 말했지만 업무현장에서 ‘탱크주의’ 이미지는 그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했다.

“제가 여기 온 후 말이 많아졌어요. 설득을 많이 해야 해서요. 전에는 한마디를 했다면 지금은 열마디를 합니다. 아직 미술계는 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요. 그래서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미술계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 대화하고 설득을 합니다.”

그가 수많은 미술계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이견을 좁히기 위해 들이는 공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과정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것 같았다. 아시아프, 서울관 건립 추진 과정 등 그간 미술계와의 크고 작은 갈등이 오갔던 논의 과정들에 대해 얘기 할때도 “토론 과정에서는 얼굴을 붉힐 일이 있게 마련”이라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는 이미 교수, 대기업CEO, 국가 행정 부서의 수장 등을 거친 베테랑 리더였다.

배관장은 “기업 경영이든, 행정이든, 미술관 운영이든 ‘지속가능함’을 추구 한다는 점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 기업이란 이익 많이 내는 기업이 아니라 중장 기적인 지속 가능함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행정도 의사결정의 기준은국가를 위해 뭐가 좋으냐를 보죠. 예를 들어 제가 정통부 장관을  할때초고속 인터넷 보급을 위한 기술로 ADSL(비대칭가입자회선)을 선택한 것이 그런 겁니다. 기술자는 업로드와 다운로드 속도가 비대칭인 ADSL을 원하지 않았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정통부 장관 입장에서는 최고의 기술보다는 국가에 초고속 인터넷을 빨리 보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ADSL을 택하는 겁니다. 미술관 운영도 기업이나 행정과 비교해 일하는 이들의 문화가 다를 뿐이지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철밥통 버릴 때 됐다”

배관장은 기업에 대해 미술계가 지닌 오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제가 부임 할때 ‘기업인 출신이 관장이 됐으니 미술관에돈 걱정은 없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요즘 아트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늘어난 것은 맞아요. 하지만 기업이 자선하듯 이미 술행사에 당연히 돈을 내야 한다는 미술계의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술계가 기업이 원하는 가치를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업들이 MoMA, 테이트에서 하는 전시에는 왜돈을 내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배관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조직을 자극하고 있었다.“자동차 공장이나 철강 공장, 아니면 거제도 같은섬과 이어지는 다리 위에서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요?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정상 회의가 열리는데, 주요 국정상들이 다 방한할 예정입니다. 그런 국가적인 행사가 열릴때 휴전선 DMZ(비무장지대)에서 전시 한다거나, 독도에 설치 미술을 시도해 보는 것은요? 독도에서 전시 한다면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세계에 이를 더 확실하게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배 관장은 인터뷰 말미에 얼마 전 중국에 가서 사왔다며 작은 철제 밥통을 꺼내 보여줬다. “이게 바로‘철밥통’입니다. 중국이 개방 하기전에 배급사회였던 시절에 쓰던 거랍니다. 그랬던 중국이 철밥통을 버리고 세계의 중심으로 변하고 있어요. 우리도 철밥통을 지키려는 문화를 혁신적이고 유연한 문화로 바꿔야 해요. 미술계 종사자 들의 마인드 변경도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달라져야죠. 제임기가 2012년 2월까지라 임기 안에 미술관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사고를 전파하는 노력은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창의적인 다음 세대들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요.”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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