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지 2년여 만에 부활했다. 수장에는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던 김순택 부회장이 발탁됐다. 삼성 전략기획실은 그룹 전체 경영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다. 또 전략기획실장은 이건희 회장의 ‘분신’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의 2인자다. ‘영원한 실장’으로 불리던 이학수 부회장이 퇴진하고 김순택 부회장이 기용된 것은 큰 변화를 예고한다. 단서는 김 부회장의 이력과 면모에서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선견·소통·추진력의 ‘혁신 전도사’

삼성 ‘새판짜기’ 적임자로 낙점



김순택 부회장이 지난 2006년 삼성SDI 사장 시절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본 요코하마 평판디스플레이 전시회를 참관할 때의 모습. 그의 옆르오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과 이재용 부사장이 보인다.

지난해 2월초 삼성 사장단은 서초동 본사에서 열린 정례회의에 특별한 ‘강사’를 초빙했다. 주인공은 김순택 부회장(당시 삼성SDI 사장)이었다. 삼성 사장단이 동료 사장의 특강을 귀담아들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김 부회장이 앞장선 삼성SDI의 기업혁신 사례를 통해 미래 환경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경영방식을 배워보자는 취지였다.

김 부회장은 삼성SDI의 CEO로 재직한 10년 동안 회사의 주력사업을 브라운관에서 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로 바꾼 데 이어,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2차전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사양사업에서 과감히 탈피해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신사업을 적극 개척하고 정착시킴으로써 기업 체질뿐 아니라 정체성까지 확 뜯어고친 것이다.

그는 기업이란 모름지기 환경변화를 미리 읽고 철저한 사전준비와 과감한 실행을 통해 끊임없이 변신해야만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이야말로 기업의 기본적인 생존 기반이자 성장 동력이라는 것이다. 삼성SDI는 그의 경영관을 실천적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김 부회장의 혁신 철학과 실질적인 성과는 이건희 회장의 시선을 잡았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을 신설하고 단장 자리에 김 부회장을 앉혔다. 이른바 ‘신수종 사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삼성그룹의 최대 화두로 자리매김했다. 이건희 회장은 신수종 사업 발굴에 삼성의 미래가 달렸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 터에 김 부회장에게 신사업추진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올해 들어 이건희 회장은 수시로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수 있다”, “삼성도 어려워질 수 있다” 등의 발언은 삼성 내부에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10월말 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에게 툭 내뱉은 “21세기는 세상이 빨리 바뀌기 때문에(…) 나이 많은 노인은 안 맞죠”라는 발언은 매우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연말 인사를 앞두고 큰 폭의 조직개편을 암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까닭이다. 게다가 아들 이재용 부사장의 사장 승진도 직접 공식화하기까지 했다.

이 회장의 일련의 발언은 마침내 전격적인 결단으로 이어졌다. 바로 새로운 조직 구축을 통해 ‘뉴 삼성’으로 가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조치가 전략기획실 부활과 김순택 실장 기용인 셈이다.

김순택 부회장이 이끌 전략기획실의 성격은 과거와 많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학수 부회장 시절의 전략기획실이 ‘조직 관리’에 중점을 뒀다면, 김순택 부회장 체제의 전략기획실은 ‘신사업 추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신사업추진단장을 전략기획실장으로 끌어올린 데서도 이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단적으로 읽힌다.

김 부회장도 직접 “(새 전략기획실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며 “(조직 구성도) 신수종·신성장 사업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앞만 보고 인재를 중시하라고 말씀하셨다”며 이 회장의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삼성그룹 핵심인재의 산실인 회장 비서실 출신이다. 비서실 근무 경력만 20년 가까이 된다. 자연스레 그룹 전체의 경영 현황을 꿰뚫어보는 시야를 갖출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삼성SDI 사장으로 가서는 경영자적 역량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히 미래를 도모하는 혜안과 사업을 추진하는 뚝심은 단연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는 또한 소통을 중시하는 CEO다. 삼성SDI 시절에는 임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원활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앞장서 실천했다. 회사의 주력사업을 바꾸고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전사적인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소통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한 덕분이라는 평가다.

미래에 대한 선견과 대비, 저돌적인 추진력, 그리고 조직 구성원과의 소통 능력. 김순택 부회장의 캐릭터는 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희 회장이 그를 ‘뉴 삼성’의 선봉장으로 발탁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전략기획실 복원과 김순택 부회장 발탁을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1세기의 변화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심하다. 삼성이 지난 10년간 21세기의 변화에 대비해왔지만 곧 닥쳐올 변화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그룹 전체의 힘을 모으고 사람도 바꿔야 한다.”

김순택 부회장은 어쩌면 영광보다 부담을 더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점차 다가오는 ‘이재용 시대’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그의 몫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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