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말 상륙한 아이폰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우리의 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을 뒤흔들었다. IT업계는 지난 1년 동안 아이폰 따라잡기에 허둥거렸다. IT 강국으로 불렸던 우리는 왜 이 파괴력 있는 문명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을까. 도대체 원인은 무엇이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코노미플러스>가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를 다시 찾아간 이유다. 지난해 12월13일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물었다.
“한국 IT 강국 아니고

 인터넷 소비강국일 뿐이다”

 세계 IT흐름과 괴리…“이대로 가면 5년, 10년 후 희망없다”



 실패 용인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해 창업 열기 북돋워야

카이스트 석좌교수, 포스코 이사회 의장,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그를 부를 수 있는 직함이다. 하지만 그는 ‘교수’로 불리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거의 1년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아이폰 돌풍이 막 시작된 지난해 1월30일이었다.(2010년 3월호 참조) 그새 세상은 또 많이 변했고, 앞으로도 많이 변할 것이라고 한다. 머릿속에 잘 정리된 파일이 있는 것처럼 안철수 교수의 답변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벤처창업과 IT산업 등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의 무게가 느껴졌다. 

안 교수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한눈팔면 금세 뒤처지는데 한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5년, 10년 후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국내 벤처산업의 구조적 열악함으로 인해 글로벌 벤처 열풍에 국내 기업들이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였다. “지금 세계는 창업과 투자 열풍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IT 흐름과는 동떨어진 듯 잠잠합니다. 5년, 10년 후 희망이라는 꽃봉오리를 터뜨릴 싹조차 없어요.”

그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는 열악한 벤처산업구조와 함께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 등이 창업 열풍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러한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창업에 따른 위험도는 낮추고, 시장의 감시 기능은 강화하는 등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20~30대가 가장 닮고 싶은 역할 모델이다. 의사,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벤처기업 CEO에서 카이스트 석좌교수까지 도전하는 분야마다 성공적인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기업·대학·공공기관 등의 강연 섭외 1순위다. 지난 한 해 동안 그에게 쏟아진 강연 요청만 2500여 회에 달한다.

그는 아이폰·갤럭시S·아이패드·킨들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음성통화는 하지 않고 앱만 사용한다. 아이패드는 미디어를 보는 데, 킨들은 책 대신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일찍부터 이용하고 있다. 트위터는 익명으로 한다. 팔로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페이스북은 실명으로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만 친구요청을 받아들인다.

교수님처럼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스마트 혁명으로 불릴 정돈데요.

애플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우리의 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요. 그런데 아이폰이 나온 것은 3년 전입니다. 세계는 지난 3년 동안 급변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내부의 경쟁력을 먼저 키우고, 기득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IT업체와 정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거죠.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그 여파가 밀려왔고, 그래서 충격이 더 컸어요. 그것도 아이폰에 이어 아이패드까지 연속으로 말이죠.

IT강국이라고 불린 우리나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던가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기 보다 ‘거대한 인터넷 소비 강국’이었죠. 잘 나가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보세요. 모두 외국산 일색입니다. 한국은 외국산 제품과 기술의 시장 노릇만 한 거죠. 특히 무선 인프라 분야는 앞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이폰에 대응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는 갤럭시S도 구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이번 정부가 출발하면서 정보통신과 관련된 업무가 분산되고, 비효율적으로 추진된 게 사실입니다. 컨트롤 타워가 없으면 관심도, 책임도 없어집니다. 이명박 정부는 IT 자체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한계였어요. 그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진 거죠. 

그렇다면 이렇게 급변하는 IT 트렌드 속에서 어떻게 기회를 찾아야 합니까.

과거부터 현재까지 흐름을 보면 트렌드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보입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John Doerr)와 세콰이어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한 코슬라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 등 미국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탈리스트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꼽은 키워드는 4개입니다. 바로 소셜, 모바일, 클라우드, 커머스입니다. 지금 세계에서는 네 개의 조합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이 네 가지를 조합한 것이 트렌드를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흔히 녹색성장 또는 그린 테크로 불리는 ‘클린 테크’에서도 새로운 아이템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교수 역시 이러한 커다란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창업 초기 닷컴기업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블로그인 테크크런치(Techcrunch)를 읽는다.

소셜, 모바일, 클라우드, 커머스 등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현재 인터넷 영향력으로 치면 구글이 1위입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구글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인터넷의 최강자가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이런 소셜 네트워크는 갈수록 강화되고 규모가 커질 것입니다. 이미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설립 3년째인 소셜 게임업체인 징가(Zinga)의 올해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게임 회사인 엔씨소프트의 매출액이 5000억원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거죠. 2008년 설립된 그루폰은 최단 기간 내에 이익을 가장 많이 내는 회사로 자리 잡았고요, 설립 2년째인 포스퀘어는 회원 수가 500만 명에 달합니다. 이런 분야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도 창업 열기가 엄청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새롭게 창업해 기업 가치가 1조원인 기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잠잠했어요.

국내에서 창업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번 실패하면 패가망신해서 다시 재기할 수 없는 열악한 벤처 산업 구조 때문입니다. 창업자 스스로가 경영능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지만 초창기 기업일수록 사회가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를 갖추면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의 요람으로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사실 실패의 요람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10개의 기업이 창업하면 그중 9개는 망합니다. 하지만 실패한 기업가는 다시 도전합니다.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죠. 성공한 1개의 기업보다 실패한 9개 기업이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프라를 만든 거죠.

 제대로 된 창업 환경 만들어야

안 교수는 이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 등도 벤처 창업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우수 인재 빼가기를 불공정 관행 중 가장 악질적인 형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중소기업이 애써 키운 인재를 빼가는 것은 벤처산업의 선순환 고리를 끊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다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이라든지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 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권과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까지 하나같이 부실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잘돼야 국가 경제가 잘 된다며 약육강식의 무법천지를 방조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위기를 풀 방법은 없습니까.

규제완화 등을 통해 시장 활력을 높이는 대신 사기꾼들이 등장해 물을 흐리지 않도록 감시기능과 손해배상제도를 한층 강화해야 합니다. 시장에 활력을 주는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사기로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배상하는 징벌적인 배상구조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벤처의 젊은 인재들도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되는 것을 바라기보다 창업에 도전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전문 영역이 서로 다른 몇 명이 모여 의기투합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정부도 발 벗고 나서고 있는데요. 정부가 하는 일이 미덥지 못한가요.

이제라도 화두가 된 것이 다행스럽긴 하지만 불안합니다. 해결에 나섰다가 현실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길 겁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의 핵심은 기업 총수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대기업 부서 내에서 중소기업 파트너와 일하는 실무팀장입니다. 그들의 인사평가 시스템은 연간 수익과 연계돼 있습니다. 인사고과의 기준, 이 한 가지만 고치면 실제로 바뀔 겁니다. 또 경제의 허리인 건강한 중견기업들이 많아야 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전체 기업 중 4~12%가 중견기업인 반면 우리나라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완충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이 없으면 중소기업이 받는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책결정권을 가진 자리로 가는 것은 어떨까. 총선이나 개각 때마다 안 교수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행정이나 정치는 정말 모릅니다. 오히려 제 생각대로 하는 게 ‘폐’가 될 수도 있고요.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강연을 많이 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는 강연 때마다 한국 벤처 산업의 위기를 풀 해법으로 기업가 정신을 강조해 왔다. 그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현상유지의 수준을 뛰어넘어 위험에도 새롭게 도전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마음가짐과 행동력이다. 마음가짐으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업가 정신이라는 말보다는 ‘가치창조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전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사회적 책임의식,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 읽는 통찰력 또는 비전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때의 통찰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느리고 지루하고 점진적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다는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러한 진화 과정을 겪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듭했고, 자기가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 여러 경험을 쌓다 보니 통찰력이 생기고, 다시 애플로 복귀한 뒤 꽃을 피운 겁니다.”

 전문성과 포용력 갖추는 인재 필요

시대가 급변하면서 인재상도 많이 달라졌지요.

이제는 한 사람의 전문가가 하나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힘을 합해서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인재를 ‘A자형 인재’라고 부릅니다. A자는 사람 인(人)자에 가교가 놓여 있는 모양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A자형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필수입니다. 여기에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 포용력과 함께 커뮤니케이션과 팀워크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기업들은 A자형 인재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실리콘 밸리에 인재를 잘 뽑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요, 비결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I may be wrong(내가 틀릴 수 있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은 겁니다. 왠지 자신감 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신감이 없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실력과 경험, 자신감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 현실에서 A자형 인재를 키우기는 상당히 어렵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빨리’ ‘문제를 풀어’ ‘좋은 성적’을 내도록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교육 현실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조기 졸업에 목을 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성적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게 되면 편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일부 벤처기업인들이 돈만 벌면 된다는 머니 게임에 빠지는 것도 이러한 교육 풍토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인가요. 애플로부터 창의적인 기업문화, 협력업체와의 상생 같은 것을 배우기보다는 흉내 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능을 추가한다든지 좀 더 디자인을 새롭게 만든다든지 또는 좀 더 편리하게 만들면 아이폰을 이길 수도 있지 않겠냐고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입니다.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대기업의 임원을 만나기도 했고요. 아이폰은 하드웨어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나 콘텐츠가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품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하청업체를 이용한 수직적 효율화에 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추구한 것은 전혀 다른 독립적인 회사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수평적인 네트워크 비즈니스 모델인 거죠. 수직적이고 하드웨어만 보는 시각으로 대책을 세우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애플을 따라잡기는 요원할 겁니다.

김용태 편집장 (대담) / 정리 : 장시형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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