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1월23일.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에서 두 번 성공하고 두 번 망했다. 한 번은 동업자의 배신으로, 또 한 번은 자만해서 망했다. 다시 일어섰다. 라오스에서 중고차 5대로 출발한 사업은 이제 3억8000만달러 규모의 그룹으로 성장했다. 라오스에선 민간기업 중 최대 규모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그룹 지주사를 한국 증시에 상장시켰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작은 나라, 라오스에서 한인 기업으로 성공신화를 일궈낸 오세영(48) 코라오그룹 회장의 얘기다. 2010년 11월24일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한국 사무소에서 그를 만나 지난 20년간 산전수전 겪은 얘기를 들었다.
“중고차 5대로 시작해 

 라오스 최대 기업 됐죠”

 한국산 중고차로 ‘질주’… 한상 기업 최초 코스피 상장



 자동차 조립 ∙ 판매 외에 물류 ∙ 건설 ∙ 금융사업도 진출

코라오홀딩스가 2010년 11월30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라오스는 물론 동남아시아 기업 중에서도 처음이다. 코라오의 상장 과정에서 이 회사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상장을 위한 수요예측에는 175개 기관투자자가 참여, 8억6700만 주를 접수했다. 경쟁률은 92.4대 1. 이들의 신청가격은 희망공모가밴드(3800~4800원)를 대부분 초과했다. 어떤 값에든 받겠다는 백지 제출도 절반 이상이었다. 일반 공모청약 경쟁률은 395대 1에 달했다. 청약증거금으로 2조2271억원이 몰렸다. 공모가 수요예측 평균은 5800원이었지만 오 회장은 당초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1주당 4800원으로 공모가를 정했다. 상장 첫날에는 전체 유통 가능 주식 수(1173만 주)를 웃도는 1360만 주의 폭발적인 거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라오그룹은 자동차 조립 ∙ 판매를 비롯해 금융, 물류, 건설, 전자, 농업 등 11개의 계열사로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조립 ∙ 판매하는 코라오디벨로핑과 함께 인도차이나뱅크, 건설사인 아이테크, 바이오디젤의 원료가 되는 ‘자트로파’를 키우는 코라오팜과 코라오에너지, 한국의 하이마트 방식을 차용한 전자제품 유통망인 K마트 등이 그것이다. 1997년 100만달러였던 연매출은 2010년 3억8000만달러로 늘어났다. 13년 만에 380배 성장한 것이다.

라오스의 인구는 700만 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내수시장에도 불구하고 코라오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시장의 발전과 기업 성장이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1970년대 한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코스피시장의 다른 한국 기업은 신성장 동력을 고민해야 하지만 코라오는 새로운 성장 사업에 눈을 돌릴 필요가 없어요. 앞으로 2~3년 동안은 새로운 사업보다는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안정화하는 데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오 회장의 인도차이나반도 사업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그의 사업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실패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 회장은 “실패한 경험이 없는 사업가들을 보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밑천이 됐어요. 망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 알게 됐고, 그래서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지요. 20여 년간 몸으로 부딪혀 배운 실패의 경험과 지식이 성공요인인 셈입니다.”

두 번의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



1980년대 말 그는 잘나가는 상사맨이었다. 코오롱상사 말단직원으로 시작한 그는 혼자서 한 부서의 실적을 달성할 정도로 능력이 탁월했다. 이후 신시장개척팀에서 일하면서 자유시장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베트남을 눈여겨보게 됐다.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해 공산품 등이 절대 부족했어요. 또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는 반면 베트남은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화교자본이 축출된 상태였죠. 글로벌 기업들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터라 짧은 시간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하지만 경영진은 베트남 진출을 망설였어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잘 나가던 상사맨의 자리를 박차고 나머지 인생을 베트남에 걸기로 했다. 가방 하나만 들고 세계를 누볐던 그에게 실패란 가정은 없었다.

1990년 11월23일, 오 회장은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가 베트남에서 처음 벌였던 봉제사업은 1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베트남 파트너가 갑자기 거래를 끊으면서 실패로 끝났다. 파트너와의 계약관계를 문서화해두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오 회장이 모든 계약 관계를 문서화하는 버릇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 후 시작한 중고물품 수입상으로 그는 다시 큰 성공을 거뒀다. ‘싸리빗자루부터 중고 헬리콥터까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입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인근의 캄보디아, 미얀마, 방글라데시로 사업을 확대했다. 인도차이나반도는 그의 독무대였다. 그는 30대 초반에 남들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부를 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성공도 한순간이었다. 1996년 베트남이 아세안에 가입하면서 그가 주로 취급하던 건설 중고장비의 수입이 금지됐고, 1억5000만달러에 달했던 사업 기반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성공에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차 심부름을 하던 현지 여직원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는데 말이죠. 부자라고 떵떵거렸는데, 전부 은행돈이더라고요.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됐지요.”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할 정도였다. 오전 11시쯤 이른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첫아이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8개월간 좌절 속에 지내다 라오스로 건너갔다.

“원래는 남미로 가려고 했어요. 신흥시장으로서 남미가 매력적이었거든요. 그런데 비행기 삯이 없어 버스로 갈 수 있는 라오스로 간 거죠. 잘 나갈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나라였어요. 라오스에 갔는데,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라오스도 비었고, 나도 비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며칠 동안 거리에 나가 먹고 살 궁리를 했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텅 빈 도로였다. 도로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그조차도 대부분 일제였다.

“도로에 자동차가 없었어요. 한국산 차는 5대에 불과했죠. 라오스는 좌측운행인데 수입되는 일본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 불법으로 개조해야 했어요. 안전성에 문제가 많았죠. 한국 중고차를 들여오면 대박 터지겠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부품 수입해 조립판매 ‘대성공’



그는 누나에게 돈을 빌려 중고차 5대를 수입했다. 한국 차는 왼쪽에 운전석이 있어 불법 개조로 인한 위험성이 없다는 점을 널리 홍보했다. 회사명은 한국(Korea)과 라오스(Laos) 영문명의 앞 글자를 따 ‘코라오(KOLAO)’라고 지었다.

그는 먼저 A/S센터와 부품창고를 갖췄다. 무엇보다 애프터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 차의 3분의 1 정도의 가격에다 코라오는 믿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산 중고차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운도 좋았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그에겐 기회였다. 외환위기 직후 철수한 한국 기업의 공장을 싼값에 사들였다. 한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가져와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판매했다. 엔진이나 차체는 중고지만 주요 부품을 교체하고 도색하면 새차와 진배없었다.

또 한국에서 중고 부품을 들여왔기 때문에 관세가 낮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코라오의 자동차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제 라오스의 자동차 10대 중 4대가 코라오가 판매한 한국 차다. 현재는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추고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팔고 있다.

2003년에는 오토바이 시장에도 진출했다. 2000년대 초 일제 혼다 제품 일색이던 라오스 오토바이 시장은 저가의 중국산 오토바이가 진출하면서 급변했다. 혼다가 사업 철수를 고민할 정도로 중국산 오토바이가 거의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오토바이의 조잡한 품질이 문제가 됐다. 오 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 태국, 한국, 대만, 일본 등에서 각각 따로 부품을 수입해 라오스 현지에서 조립 ∙ 판매에 나섰다.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높였다. 코라오의 오토바이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시장 점유율 40%에 다가설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자동차 조립 ∙ 판매 외에 물류 ∙ 건설 ∙ 금융 등에도 뛰어들었다. 자동차를 운반하다 보니 물류사업이, 쇼룸을 짓기 위해서는 건설업이 필요했다. 또 자동차 할부금융에서 시작해 은행업에 진출했다.

특히 할부금융이라는 특별한 아이템을 접목시켜 자동차와 오토바이, 가전제품 판매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한 인도차이나뱅크는 설립 1년8개월 만에 자산 규모 6500만달러로 급성장했다. 다른 모든 사람이 하는 것을 찾아내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이 설립된 것은 2008년 12월. 하지만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것은 다음해 2월이었다. 3개월 동안 문을 닫았던 것은 은행에 들어서면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시설은 현대식이었지만 서비스는 취약했기 때문이다.

“돈을 받아 예금하는데 30분이 걸리는 겁니다. 라오스의 다른 은행들도 그랬지만, 그들과 똑같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느꼈어요. 은행 문을 닫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서비스 시간을 5분 안에 끝내라고 했어요. 초시계를 갖다놓고 일일이 검사했어요. 직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요. 그래도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30분이 걸리던 서비스 시간은 3개월 만에 10분 안팎으로 단축됐다. 그제야 그는 은행 문을 다시 열었다. 은행은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2009년 2월부터 9개월 만에 라오스 민간은행 2위에 올랐다. 고객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현대식 시설과 기존 은행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도입해 명품 은행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쓰디쓴 실패 경험 십계명으로 집약

 코라오웨이 십계명

1. 다른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 그것과 다르게 하라. 

2. 고객 만족에 저해되는 일과는 절대 타협하지 말라. 

3. 협의는 의사결정권자와 하고 협의된 사항은 꼭 문서로 남겨라. 

4.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하게 하라.

5. 시대 흐름을 읽고 국가 발전과 함께하라.

6.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브랜드 관리로 기업가치를 높여라. 

7. 정부 관련 이권사업에 개입하지 말고, 현지 중소상인에게 피해 주는 사업은 삼가라.

8. 준법경영을 반드시 실천하고 고위층과의 관계 과시에 주의하라.

9. 이익의 사회환원을 무조건 실천하라.

10. 기업의 경쟁력과 영속성은 현지화에 달렸다.



코라오는 현지화를 기본으로 해 준법경영을 실천하고,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기여, 독창적인 사고, 철저한 브랜드 관리 등 차별화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준법경영을 반드시 실천한다, 남의 돈 쓰지 않는다,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 현지 중소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를 ‘코라오웨이 십계명’이라고 부른다.

오 회장의 사업 경험이 집약된 이 십계명이 빛을 발한 순간이 있었다. 그의 사업이 급성장 궤도에 올라선 2000년, 기존 기업들의 시기와 질투는 라오스 정부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라오스에선 제대로 세금을 내는 기업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탈세가 만연했다. 경쟁 업체 등에서 지레짐작으로 코라오도 탈세했을 거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세금 탈루에 대한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투명경영을 원칙으로 했어요. 세무조사를 스무 번 정도는 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어요. 오히려 라오스 정부에서 깜짝 놀랐지요.”

코라오그룹은 2003년과 2004년 연속으로 라오스 내 최우수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세무조사가 라오스 사회에서 확실한 신뢰를 얻고, 코라오가 한국 기업이 아닌 라오스 기업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이라도 라오스 국민들은 코라오를 ‘국민기업’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사회적 책임도 강하다. 라오스의 글과 말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오 회장이 세운 학교에서 무료로 글과 말을 배우는 학생은 2500명이 넘는다.

“라오스에서 사업을 하면서 높은 문맹률에 놀랐어요. 코라오의 농장이 있는 라오스 시골 지역의 경우 문맹률이 50%가 넘더군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사업과는 관련이 없는 학교를 세웠어요. 일부러 홍보를 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러한 사회공헌활동이 입소문을 통해 퍼지면서 사업이 더욱 번창했죠.”

2020년 아시아 톱 10기업 진입 목표



코라오그룹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현재 주력사업인 자동차 판매는 신성장사업이자 미래의 동력이 되는 효자사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라오스는 최근 연평균 7%대 성장을 이어가며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향후 5개년(2011~2015년) 국가계발계획은 연평균 8% 성장을 목표로 도로, 철도 등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라오스의 1인당 국민소득이 700달러 수준이고 매년 7~8% 성장한다면, 오는 2020년이면 약 1800달러에서 2000달러 정도가 될 겁니다. 포화상태 같지만 전국의 자동차를 모두 합쳐야 겨우 17만 대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발전 속도라면 2020년까지 65만 대 이상의 자동차 수요가 예측됩니다. 현재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 코라오는 매년 2만 대 이상 자동차 판매가 가능한 셈이죠.”

그는 타이와 베트남, 미얀마 등 인도차이나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사업 아이템으로 2030년에는 글로벌 100대 기업에 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도차이나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인구는 6억 명에 달합니다. 시장은 이제 막 열리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련이 남지 않도록 제대로 해야죠. 10년 후에는 아시아에서 톱 10 기업, 20년 후에는 전 세계 100대 기업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오세영 회장은 “잘했다, 대단하다, 더 대단하자”고 말한다. ‘잘했다’는 건 젊은 시절 편안한 삶을 뒤로한 채 막 개방된 베트남으로 첫발을 내딛고, 아무도 찾지 않던 나라 라오스에서 사업 2막을 시작했던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또 한국 차가 5대밖에 없던 라오스의 도로 위 절반 정도를 한국 차로 채우고, 한국 증시에 상장한 것을 ‘대단하다’고 했다. 오 회장은 언젠가는 세계에 우뚝 서는 ‘더 대단한’ 기업을 꿈꾼다.

장시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