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면 차세대 전기자동차는 2차전지가 있어야 굴러간다. 그런데 이 2차전지는 리튬이라는 희소금속이 ‘열쇠’를 쥐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튬은 매장된 곳이 전 세계 몇 나라에 한정돼 있다. 만약 이들이 담합해 수출량을 조절하거나 판매를 중단한다면? 2차전지 수출국인 우리로선 상상하기도 싫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강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수용존자원개발연구단장(이학박사)은 우리 산업계의 구세주다. 그는 지난 2009년 바닷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일본에 이어 2번째다. 시작단계지만 채산성과 대량생산 노하우만 쌓는다면 우리나라는 일거에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다.

 몸값 급등 희소금속 리튬 추출기술 세계 2번째 확보

 ‘봉이 김선달’ 비아냥 뚫고 ‘해수광산’ 개발에 앞장

글로벌 자원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 일본 간 외교마찰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로 싱겁게 끝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산업은 발달하고 부존자원은 줄고 있는 상황에서 희소금속의 중요성은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리튬은 수급 사정이 가장 심각한 희소금속 중 하나로 꼽힌다. 쓰이는 곳은 다양해지고 있는데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전기차를 생산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2차전지를 생산하려면 리튬은 반드시 필요한 광물자원이다.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차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에너지원은 하나같이 리튬배터리에 의존하고 있다. 지능화되는 스마트 가전마다 약속이나 한 듯 리튬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희소금속 리튬의 몸값을 올릴 태세다. 관련업계에서는 전기자동차가 대량 생산되는 2020년 경에는 리튬수요량은 11만t으로 늘어나 공급량(7만t)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리튬이 나오는 나라는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몇개 나라와 미국, 중국 등에 제한돼 있다.

지금까지 리튬 생산방식은 땅에서 채굴하는 것과 소금호수(鹽湖)에서 물을 퍼내 자연 증발시킨 후 정제해 생산하는 단 두가지 방법뿐이었다. 중국, 미국은 전자를 선택했다. 리튬이 포함된 리티아 휘석, 페탈라이트, 비늘 운모 등의 광석을 채광한 뒤 제련했는데 문제는 생산량이 적어 채산성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채산성이 소금호수의 50%다. 때문에 전 세계 리튬시장의 80% 이상은 중남미 소금호수에서 생산된 것들이 장악하고 있다.

- 포스코와 국토해양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강릉시 옥계면에 짓는 해수용존리튬자원연구동(위)과 지난해 3월 산업기술연구회 최우수연구자상 수상식(오른쪽 두번째가 정 박사).

1980년대 일본 해수광산 기술 첫 개발

그런데 일본에 의해 또 다른 생산법이 제시됐다. 바로 바닷물에서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채산성이 떨어져 그동안 산업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리튬 값이 급상승하면서 재평가받고 있다. 바닷물에서 희소자원을 추출하는 데 일본은 현재까지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우리 과학자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정강섭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 박사가 바닷물에 녹아있는 희소자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다. 이미 일본은 1980년부터 바닷물에서 희소금속을 뽑아내는 이른바 ‘해수광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정 박사는 초기 일본 기술진의 자문을 받아가며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그의 연구가 성과를 내면서 일본과는 이제 경쟁관계가 돼 버렸다.

“몇 다리 건너 일본 쪽 동향을 살펴보니 자기네가 30년 만에 완성한 기술을 우리가 불과 10년 만에 따라오자 매우 긴장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컨퍼런스와 같은 학술 발표회도 지난 2008년 이후 자취를 감췄어요. 일본에서 발표되는 모든 자료는 2008년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확실히 우리를 경쟁자로 여긴다는 뜻이에요.”

일본이 놀란 이유는 지난 30년 간 계속된 자신들의 기술적 한계를 정 박사가 시작단계지만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데 있다. 바닷물에 녹아 있는 다양한 원소에서 리튬만 뽑아내기 위해서는 고성능 흡착제조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리튬 흡착제는 지름이 10㎛(10만분의 1m) 정도로 매우 고운 분말상태라 물에 쉽게 녹는 특성이 있다. 관건은 이걸 어떻게 녹지 않게 만드느냐인데 일본은 이걸 물에 잘 녹지 않도록 폴리염화비닐(PVC)로 감쌌다. 그러나 이물질이 섞이다보니 흡착성분이 떨어지고 10여차례 정도 사용하면 폐기처분해야 한다. 또 흡착제 제조과정에서 디메틸포름아미드라는 유해물질도 발생한다. 제조단가가 비싸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받는다. 

정 박사가 단장으로 있는 해수용존자원개발연구단은 녹차 티백에서 힌트를 얻어 바닷물은 통과하지만 분말은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그물막 형태의 흡착제를 개발했다. 연구단이 개발한 ‘분리막 레저버 시스템’으로는 흡착 분말 1g에서 45㎎의 리튬을 뽑아낼 수 있다. 일본 기술보다 효율이 30% 가량 높으며 무제한 재활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산업기술연구회가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자상’,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전 세계 육지에서 상업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리튬은 410만t에 불과합니다. 반면 바다에 녹아 있는 리튬 양은 2300억t에 이르죠. 이 연구가 상용화되면 바다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리튬광산이 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개발한 방식은 공급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현재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방식은 소금호수에서 물을 끌어올려 자연 건조시키는 방식이다. 플랜트 등 기간산업이 발달되지 않은 중남미의 열악한 경제사정 탓이다. 최종 생산까지 꼬박 1~2년이 걸린다. 결국 수요에 비해 공급이 탄력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정 박사는 바닷물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생산 기간이 단축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볼리비아에서 리튬 광산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볼리비아 정부의 콧대가 대단합니다. 사회간접자본은 물론 추출기술 이전까지 요구하고 있죠. 순도가 칠레, 아르헨티나만큼 높지도 않은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 기술을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 리튬 시장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그는 2단계 연구에 착수했다. 1단계 연구가 순수 국내 기술로 바닷물에서 리튬을 생산하는 거라면 2단계 과제는 직접 바다에 구조물을 세우고 대량 생산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일단 그는 오는 2015년까지 2단계를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단계까지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마지막 3단계는 공장 설립과 대량 생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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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와 2단계 공동 연구 착수

“2008년 일본이 마지막으로 펴낸 자료를 보면 당시 바닷물에서 리튬을 생산해내는 것이 소금호수광산보다 3배 이상 비쌌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격차가 줄었겠지만 여전히 채산성은 낮죠. 그러나 채산성만 넋 놓고 볼 겨를이 없습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은 오를 테고 그러면 채산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기술 확보가 중요한 거지 채산성은 그 다음에 걱정할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채산성을 생각하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리튬을 생산해내는 것이 2단계의 목표인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연구 장소가 실험실 비커에서 바다로 커지는 것이죠.”

이를 위해 정 박사는 2단계 과정을 포스코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포스코와 같은 대기업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기술이전료 명목으로 포스코로부터 4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또한 포스코와 국토해양부가 각각 150억원씩 투자해 강릉시 옥계면에 짓고 있는 해양플랜트·연구시설도 3월에 완공된다. 

강릉에 해상연구 시설 3월 완공

그는 인터뷰 내내 지나친 관심을 걱정했다. 당장 자원부국이 된 것처럼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기술이 일본을 뛰어넘은 것이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제 연구 결과를 보고 일본 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입니다. 일본과의 격차가 줄어든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힘들거든요. 대량 생산과정에서 또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죠. 사실 일본은 기업, 정부, 연구기관이 협력하는 등 우리보다 더 전방위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30년이 걸렸습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불거진 시행착오도 많았을 거예요. 우리가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의 시행착오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연구가 중요한 것은 이번 리튬 추출 성공이 어쩌면 우리나라를 자원빈국에서 자원부국으로 한 순간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 속에는 리튬 외 우라늄, 백금, 금, 은, 코발트, 니켈, 브롬, 몰리브덴, 붕소와 같은 원소들이 아주 미세하지만 골고루 녹아있다. 가령 리튬만 해도 바닷물 1ℓ에 함유된 양이 0.17㎎이다. 보통 스마트폰 1개에 내장된 배터리의 고순도 탄산리튬 양이 15~20g이다. 단순 계산해도 스마트폰 배터리 1개를 만드는 데 바닷물 100t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바닷물에서 나오는 리튬이 100% 고순도 탄산리튬이라야 한다. 이런 이유로 초창기 그가 바닷물에서 희소금속을 추출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얘기”라며 그를 ‘봉이 김선달’쯤으로 여겼다. 

“저의 랩(연구단)에서는 리튬 외에 마그네슘, 우라늄 추출도 연구 중입니다. 리튬 추출의 경제성만 확보되면 다른 금속에다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관건은 흡착지를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원래 바닷물에서 금속자원을 뽑아내는 연구는 독일에서 시작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독일은 바다에서 금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물론 실패했죠. 그런데 지금 국제 원자재 값이 뛰면서 이 같은 해수광산 기술이 우리에게 기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미래청사진은 ‘동아시아 자원부국 코리아’다.

“바다 속에는 모두 77종의 광물질이 녹아 있다고 합니다. 만약 여기서 희소금속을 맘대로 추출하게 된다면 우리는 한 순간에 자원부국이 되는 거예요. 패전국 독일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석유가 없으면 자동차가 못 굴러가듯 앞으로는 리튬이 없으면 전기차가 못 굴러가는 상황이 올 텐데, 만약 우리가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이 된다면 지금 중동국가들이 누리는 지위, 결코 꿈이 아닙니다.”

정 박사 책상에는 이런 글귀가 걸린 조그마한 액자가 하나 있다.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한국 해양용존자원 추출기술 개발·상용화의 그날을 향해!’

그 글귀를 보면서 자원부국은 이제 그에겐 숙명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약력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수용존자원개발연구단장

성균관대 화학과, 동대학원 석사, 박사(무기화학)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광물자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자원순환공학부 교수

동탑산업훈장(2010년),

산업기술연구회 최우수연구자상(2010년),

국무총리 표창(2007년)

대전 =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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