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국내 회계컨설팅 업계 사람들의 이목을 한꺼번에 집중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 빅4 회계컨설팅그룹으로 꼽히는 언스트앤영(Ernst & Young)과 KPMG인터내셔널이 한국의 한 회계컨설팅 법인에 잇달아 ‘러브콜’을 보냈기 때문이다. 두 곳의 글로벌 빅펌(big firm)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은 주인공은 다름아닌 삼정KPMG그룹(이하 삼정). 삼정은 국내 회계컨설팅 업계에서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법인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랬다. 삼정은 지난 2000년 KPMG인터내셔널과 ‘멤버펌(member firm)’ 계약을 맺고 지금껏 파트너십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근래 KPMG인터내셔널이 멤버펌 대신 ‘원펌(one firm)’ 조건을 자꾸 요구해 매우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멤버펌은 글로벌 빅펌에 대해 자율적인 경영권을 갖는다. 단지 업무협력 라이선스를 통해 빅펌의 브랜드와 기법 등을 공유하는 것이다. 반면 원펌은 그렇지 못하다. 빅펌과 원펌 계약을 맺으면 ‘본점과 지점’ 관계가 되는 것으로 빗댈 수 있다.
이런 때에 언스트앤영이 손을 잡자고 제안했고, 삼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협상에 들어갔다. 뜻밖의 상황 전개에 다급해진 쪽은 KPMG인터내셔널이었다. 그들은 얼른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삼정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 삼정은 긴급이사회를 개최한 끝에 KPMG인터내셔널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물론 명분과 실리도 함께 챙기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빅펌을 상대로 한국 회계컨설팅 업계의 자존심을 한껏 곧추세운 삼정의 CEO 윤영각(57)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객 빛나야 우리도 빛나…

  기업 선진화 동반자 보람”

글로벌 빅펌 2개사 구애 동시에 받으며 ‘위상’ 과시

‘클린펌 선언’으로 분식회계 묵인 풍토 정화에 앞장

 “처음부터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최종 선택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삼정과 삼정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고객 서비스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 기준이었죠. 양쪽에서 제안을 받고 검토했는데, KPMG의 (새로운) 제안이 좀 더 삼정의 독립성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이번 선택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행복한 고민’을 슬기롭게 해결한 윤영각 회장은 표정이 밝고 여유로웠다. 큰 숙제를 풀어냈다는 성취감도 느껴졌다. 그는 이번 결정의 기준을 들면서 ‘국익’을 첫 번째로 꼽았다. 조금은 의아하다. 회계컨설팅 전문가 집단 간의 계약관계에 국익을 언급하니 말이다. 윤 회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글로벌 빅펌들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쪽 경제가 안 좋다 보니까 요즘 빅펌들이 신흥국가 등 해외시장에 직접 진출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어요. 한국도 그 대상 중 하나죠. 하지만 우리 언어와 문화도 모르는 빅펌이 한국에 들어와 직접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과연 우리 기업 고객들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윤 회장은 삼정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그는 창업 당시부터 ‘한국이 실질적인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자’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창업 이념은 삼정의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선진화하는 데 앞장서자. 기업, 법인, 단체 등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그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바로 창업 당시 제가 품은 신념이자 모토였습니다. 다른 업체들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펌(another firm)’이 되는 건 애초부터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경제·경영·법학 두루 섭렵한 경력 눈길

윤 회장은 좀체 보기 드문 다채로운 커리어를 갖고 있다. 그는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친의 뜻에 따라 미국 유학을 떠났다. 윤 회장의 부친은 짧지만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몇 마디 당부를 했다. “미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만큼 공부하고 돌아와라. 그렇다고 미국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미국으로 떠난 윤 회장은 경제학(학사), 경영학(석사)을 거쳐 법학(박사)까지 섭렵한다. 그런 과정에서 미국 공인회계사 및 변호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뿐 아니라 세계적인 정보기술업체 휴렛패커드를 비롯해 회계법인과 법률사무소 등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19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공부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아버지께 ‘이제 귀국하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미국을 정말 이해했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 말씀에 자신이 없었어요. 고민을 하다 미국인 교수들한테 조언을 구했지요. 그들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국은 법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미국을 알려면 법을 공부해라.’ 법학 공부는 그렇게 하게 된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공부가 글로벌 트렌드를 읽는 데 큰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인생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윤 회장은 1991년 시들리 앤 오스틴(Sidley & Austin) 법률사무소를 퇴사하면서 귀국길에 오른다. 자신이 갈 길도 그때 찾았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곧장 회사를 설립했다. 오늘날 삼정의 모태인 삼정법률사무소다. 그는 94년 삼정회계법인, 95년 삼정컨설팅을 잇달아 출범시키는 등 사업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윤 회장은 그 무렵 ‘국익’을 수호하는 첨병으로 나선 적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의 계기가 됐던 우루과이라운드(UR: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가 타결된 1993년 이후의 일이다. 그는 160여 개국 대표가 모여 반덤핑법 개정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회의에 한국측 대표단으로 참여했다.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이 분야 전문가를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협상장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해냈다. 윤 회장의 회고다. “제 역할은 다른 나라 대표들이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었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미국측 규정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짚어내니까 USTR(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슬쩍 다가오는 거예요. 아무래도 좀 뜨끔했던지 커피 한잔 같이 하자더군요. 미국을 오랫동안 공부한 덕을 그때 좀 봤지요. 허허.”

윤 회장이 다방면에서 이름 석 자를 새겨가던 그 즈음, 거대한 격동의 시기가 다가왔다. IMF 외환위기였다. 당시 삼정은 국내 회계컨설팅 업계의 쟁쟁한 상위권 업체들과는 비교 대상이 안 되는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그러던 차에 외환위기는 삼정에게 도약과 역전의 무대를 열어줬다.

외환위기 계기로 본격 성장 전환점 맞아

“삼정의 성장은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당시에는 정부의 개혁 조치와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컨설팅 서비스 수요가 폭증했어요. 우리에게는 중요한 성장의 기회가 온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2000년 ‘클린펌(clean firm) 선언’이라는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또 다시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투명성 강화와 건강성 회복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윤 회장의 ‘클린펌 선언’은 기업들의 분식회계를 결코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그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기업은 분식하고 회계법인은 묵인하는 잘못된 관행의 뿌리가 깊고 넓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제 발로 고객을 걷어차는 격이 될 가능성도 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상당수 고객 기업들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이 뒤따랐다.

하지만 윤 회장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옳은 길을 가는 자는 언젠가는 승리하는 법. 그의 승부수는 결국 통했다. 김명전 부회장의 말이다. “삼정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은 상장기업만큼은 투자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회장님의 굳은 의지였습니다. 그때 삼정에 귀를 기울인 기업들은 이제 신뢰받는 기업으로 완전히 자리잡았어요. 물론 삼정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원칙을 천명하고 지켜나간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객은 소중하다. 하지만 삼정의 고객철학은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삼정은 ‘고객을 최고로 만드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윤 회장은 이렇게 뜻을 풀어준다.

“삼정은 고객이 빛나도록 하는 조력자 역할이 업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지식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지요. 즉 우리가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고객을 최고로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고객들에게 ‘우리를 정말 좀 많이 부려주십시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우리를 자꾸 활용해서 고객이 보다 많은 가치를 창출해야만 우리도 빛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고객을 최고로 만들려면 자신부터 최고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최고가 최고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 윤 회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데서 한 발 더 앞서나간다. 고객에게 필요하지만 정작 고객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까지 찾아서 알려주자는 게 그의 사업 철학이다.

글로벌 안목에서 고객 서비스 개발해

“저는 1년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냅니다. 글로벌 트렌드 변화를 살피는 한편 우리나라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지요.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에게 필요한 지식서비스 상품에 대한 구상을 합니다. 밖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구멍’들이 잘 보입니다. 그런 구멍을 메워나가는 것도 삼정의 할 일이지요. 가령 우리가 개발한 ‘FTA솔루션’이나 ‘IFRS솔루션’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정이 개발한 FTA(자유무역협정)솔루션은 이미 발효됐거나 발효가 예정된 한국과 외국간 각종 FTA에 대해 수출기업들이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는 해결책을 담은 것이다. IFRS(국제회계기준)솔루션도 마찬가지다. 이 솔루션은 국내 기업들이 회계기준을 IFRS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크게 줄여주는 서비스 상품이다. 특히 투자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들에게는 반가운 솔루션인 셈이다. IFRS는 내년부터 국내에 전면 도입된다.

윤 회장은 ‘글로벌화 전도사’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와 한국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특히 기업들에게는 해외 인수합병(M&A)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자산가치가 폭락했습니다. 우리가 당한 외환위기 때는 어땠습니까?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우리 자산을 헐값에 챙겨갔는가 말이죠. 이제 한국에도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도 기회를 못 잡고 있어요. 지금이 바로 해외로 나가 우리가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 알짜 기업 등을 인수할 적기입니다. 삼정은 고객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산업 시대다. 지식서비스 기업을 표방하는 삼정에게는 그들의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윤 회장도 앞날에 대해 낙관적이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지식산업이 발전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지식산업이 국가 수준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죠. 사업을 해오면서 느낀 건데, 한국인의 DNA와 지식산업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두뇌를 가진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지식산업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삼정 같은 회사의 미래도 무척 밝지 않을까요?”

Tip | 삼정 KPMG는 …

▷▶▷ 삼정KPMG그룹은 공인회계사, 경영컨설턴트 등 220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으며, 회계·재무·경영 전반에 대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사다. 세계 4대 종합 회계·재무·경영 자문사인 KPMG인터내셔널의 멤버펌으로, 세계 145개국 14만여 명의 KPMG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해 활동한다.

▷▶▷ 삼정은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정KPMG와 회계감사를 제공하는 삼정회계법인, 재무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정KPMG어드바이저리 등 8개 법인으로 이뤄져 있다. 2008년 기준 매출액은 2755억원(세무서 신고 기준)에 달했다. 연 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20%에 육박할 만큼 성장세가 빠르다. 삼정은 공인회계사 1인당 매출액, M&A 컨설팅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삼정은 지식서비스 기업답게 인재 양성 및 교육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한다. 2007년 회계업계 최초로 민간 부문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Best HRD: Human Resources Developer)’ 인증을 받기도 했다.

▷▶▷ 현재 국내 회계컨설팅업계는 글로벌 빅펌들과 제휴를 맺은 ‘빅4’ 법인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빅4’는 삼정KPMG를 비롯해 삼일PWC, 안진딜로이트, 한영E&Y이다.

김윤현 기자 / 사진 :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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