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통해 쌓아 올려 진 시꺼먼 굴뚝은 이제 IT 혁신을 통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IT가 단순한 정보화의 수준을 넘어 비즈니스 혁신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몇몇 선진 사례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코노미플러스>는 IT를 통한 비즈니스 혁신 사례를 상중하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대구 산업단지는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혔다. 잔업에 야근에 특근에, 밤새워가며 재봉틀을 돌려 옷을 수출하던 우리나라의 전통산업 중심의 생산구조는 현재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산업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그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디지털 콘텐츠 산업은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효자 상품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제조업의 평균 수익률은 10%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디지털 콘텐츠 산업은 30%에 달한다. 같은 양을 팔아도 손에 거머쥘 수 있는 이익이 3배 이상인 셈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한 편을 잘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이 자동차 몇 백만 대 수출하는 것보다 낫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좋은 예로, 월트디즈니사의 <라이온킹>은 자동차 150만 대 수출과 맞먹는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IT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담아낼 디지털 콘텐츠 부문은 크게 뒤떨어진다. 그릇은 멋지지만 그릇에 담을 음식은 풍성하지 않다는 얘기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 백서 2005~2006’에 따르면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올해 20조원으로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한국산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다. 급성장하는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과 같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육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디지털 콘텐츠는 훌륭한 수출 상품으로 부상할 수 있다.

특히 IT 인프라가 고도화하면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IT 인프라와 디지털 콘텐츠는 서로 동반성장하기 때문이다. IT 인프라가 구축되면 대용량 디지털 콘텐츠가 나오고, 이는 다시 더욱 고도화된 인프라 수요로 연결된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으로 떠오른 디지털 콘텐츠는 국경 없이 생산, 유통, 소비된다. 이에 따라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발전은 자원의 제약과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해주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중심에 서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디지털 영상 제작 업체들의 인프라 구축 사례는 IT 인프라가 비즈니스 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글로벌 사례 1: 애니멀로직

고성능 인프라 통해 아카데미상 수상

최근 호주와 뉴질랜드 지역의 많은 업체들이 영화, 애니메이션, 광고 등 디지털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2006년 말 워너브라더스가 개봉해 <007 카지노로얄>을 제치고 미국 박스오피스 3주간 1위를 차지했던 팝뮤지컬 3D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Happy Feet)>를 제작한 애니멀로직사는 전 세계 비주얼 산업의 최전선에 있는 디지털 콘텐츠 생산업체다.

애니멀로직이 제작한 <해피피트>는 호주에서는 처음 제작된 장편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로 펭귄들의 털이나 물 등이 실사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래픽 품질이 뛰어나다. 애니멀로직은 이밖에도 최근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300>의 시각 효과도 맡아 제작했다.

애니멀로직은 1991년에 설립된 이후 비주얼 미디어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데 성공했다. 호주 시드니에 본사를 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등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제작, 배포 뿐 아니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산업 분야에서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주얼라이제이션(시각화)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충분한 컴퓨팅 처리 성능이 확보되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 회사인 애니멀로직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004년 11월 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처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했다. 대략 90분에 달하는 애니메이션 프레임의 복잡한 렌더링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약 2000개 이상의 CPU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렌더링이란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선으로 그려진 1차원의 디자인에 질감과 입체감을 주어 3차원으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3D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는 렌더링 작업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첨단 컴퓨팅 환경이 구축되어야 한다. 애니멀로직에게도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애니멀로직은 하드웨어를 관리하고 소프트웨어를 적용하기 위해 대형 시스템을 운영하는 능력을 가진 별도의 전문 기술진이 없었다. 따라서 대규모의 복잡한 시스템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T 기업이 필요했다.

여러 IT 업체들의 제안을 평가한 끝에 애니멀로직은 IBM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IBM의 시스템은 이미 뉴질랜드 회사인 웨타 디지털사가 제작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의 특수효과에 사용된 바 있다.

IBM의 제안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것은 블레이드센터의 디자인이었다. IBM 블레이드센터는 고성능에 안정성은 물론 확장성까지도 한 번에 해결해주었다. 블레이드 서버는 특수 제작된 새시에 10여 개의 서버를 한꺼번에 꽂을 수 있는 고집적형 서버로 기존 서버에 비해 두께는 얇지만 데이터는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 애니멀로직은 2005년 1월 IBM 블레이드 서버 630대를 구입했다. 2005년 7월에는 392개의 블레이드 서버를 보충, 총 2000개 이상의 CPU를 보유하게 됐다. 2000개 CPU를 단 1명이 관리할 수 있어 애니멀로직은 복잡한 기술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IBM의 도움 덕분에 애니멀로직은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해피피트>로 지난 2월25일 개최된 79회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 최고의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메이저 제작사로 강력한 후보였던 소니픽처스와 픽사를 제친 것은 이변이었다.

글로벌 사례 2 : 웨타 워크숍

“<반지의 제왕> 뒤에는 IBM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눈여겨 챙겨본 관객이라면 웨타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으로 일약 유명해진 피터 잭슨이 설립한 웨타 스튜디오는 두 파트로 나눠져 있는데 시각효과를 담당하는 웨타 디지털과 특수효과, 소품 제작과 기술을 담당하는 웨타 워크숍이 그것이다.

웨타 워크숍은 뉴질랜드 웰링턴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으며, <제나(Xena: The Warrior Princess)> 등 TV시리즈와 수많은 CF의 특수효과를 맡아왔다. 2004년과 2006년에 각각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과 <킹콩>으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수상하는 등 무려 5번이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경력을 갖고 있다. 이 스튜디오에는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 위해 뉴질랜드와 호주는 물론 한국과 일본의 재능 있는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웨타 워크숍은 2000년대 들어 TV 제작 수준의 저렴한 예산으로 영화 수준의 고품질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캐나다의 디즈니라 불리는 넬바나(Nelvana)사가 요청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첨단 IT 인프라가 필요했다. 또 적은 예산 내에서 더욱 진보된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 해결책 역시 IBM이었다. 디지털 이미지들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IBM 블레이드 센터 서버 50대가 그것이다.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4테라바이트의 IBM 디스크 어레이에 고속으로 저장됐다. 많은 사람들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골룸’ 캐릭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캐릭터 뒤에 IBM의 기술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웨타 프로덕션에 의해 개발된 기술들은 배우들이 센서로 둘러싸인,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움직이면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난 배우들의 모든 움직임을 생생한 캐릭터로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적인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거대한 컴퓨팅 파워와 신뢰도를 요구하는 렌더링 프로세스에 있다. 렌더링 프로세스는 초당 24번, 각 프레임당 1000번 반복된다.

웨타 프로덕션은 이러한 복잡한 렌더링 기능을 뒷받침해주는 IBM 블레이드 서버를 통해 넬바나가 제시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현재 웨타는 뉴질랜드 작가 마틴 베인톤의 어린이 동화 <제인과 용>의 26개 에피소드를 만드는 작업을 넬바나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국내 사례 : 광주광역시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동북아 중심지로 우뚝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 디지털 콘텐츠 산업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여러 지자체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광주광역시는 디지털 콘텐츠 제작기지로서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동북아 중심도시로 우뚝 서는 것이 목표다.

지난 2004년 대통령 소속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가 오는 2023년까지 2조원 이상을 투입해 ‘세계로 향하는 아시아 문화의 창’으로 광주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문화 프로젝트로 꼽힌다. 이에 맞춰 광주시는 광주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키우기 위해 문화기술산업(CT)을 육성, 성장 동력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의 핵심에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김영주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은 “광주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문화기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이를 위해 영상과 게임, 애니메이션의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진흥원은 문화관광부와 광주시의 지원으로 지역 특화 문화 콘텐츠 창작 기반을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5년 11월부터 2007년 9월까지 50억원을 투자해 CGI 등 프로젝트 제작 장비를 구축하고, 지역 내 관련 기업을 유치해 제작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동북아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글로벌 선도형 첨단 컴퓨터 제작 기술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해외 메이저 제작사를 유치하고, 국내 CGI 제작사는 집적화를 유도해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전략이다.

진흥원은 이미 관련 소프트웨어와 함께 100개 CPU 규모의 IBM 서버 구축과 워크스테이션을 도입해 렌더링 팜을 구축했다. 이 렌더링 팜은 향후 장비 확충 등에 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1000개 CPU 규모 이상의 CGI센터로 확장된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광주광역시는 명실상부한 3D/CGI 산업의 중심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광주의 디지털 콘텐츠 산업 육성에 따라 지역 업체들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디지털 콘텐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서광애니메이션은 독자적인 캐릭터 개발로 세계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업체다. 지난 2002년 서울에서 광주로 본거지를 옮긴 이 회사는 미국 NBC TV 시리즈 만화 <미라왕 투탕>을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제작해 2004년 에미상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30분짜리 26부작으로 구성된 <미라왕 투탕>은 미국 NBC TV와 디스커버리 어린이 채널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됐는데,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표현으로 우수한 제작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e러닝 첨단 멀티미디어 강의 지원 시스템 개발업체 케이티이에스는 지난해부터 디지털 콘텐츠와 모바일 게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회사는 멀티미디어 교육용 콘텐츠인 <영어마을>을 개발해 온·오프라인 사업에 착수했으며 모바일 게임인 <선 라이트 퍼즐>을 선보이며 게임 시장에도 본격 진출했다.

지난 2002년 설립해 홈페이지 제작 및 e카탈로그 제작 등 IT 사업에 주력해 온 인터세이브는 2005년부터 모바일 게임 분야에 진출하면서 주력 사업 영역을 문화기술 산업 분야로 전환했다.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모바일 게임을 출시한 이 회사는 최근에는 올리브나인과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해 모바일 게임 <주몽> 제작에 착수하는 등 게임 개발 전문업체로서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김영주 원장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지역 업체들의 부상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지역 업체의 업종 전환을 성공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함께 연구 개발 과제 및 지원 제도를 마련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