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바람직한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문명의 충돌도 없고 성전(聖戰)도 없으며 테러리스트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세상을 장악했을까. 중동은 평화로운 민주주의의 낙원이 되었을까. 9·11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정답은 인류 역사에서 이슬람이 없었다고 해도 세계는 오늘날과 꼭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이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이슬람과 관련된 사건이 매일 뉴스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슬람은 광범위한 국제적 혼란의 뿌리인 것처럼 보인다. 자살 공격, 자동차 폭탄 테러, 군사적 점령, 반군의 투쟁, 폭동, 율법적 결정(fatwas), 지하드, 게릴라전, 협박용 비디오, 그리고 9·11테러까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세계를 뒤흔드는 혼란을 이해하도록 해주는 쉽고도 간명한 키워드인 것처럼 생각된다. 아닌게 아니라, 일부 신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 파시즘(Islamofascism)’이 앞으로 닥쳐올 ‘제3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상대해야 할 분명한 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만일 세상에 이슬람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할 것인가. 만일 예언자 마호멧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슬람이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퍼지지도 않았다면 어떠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의 관심은 국제 문제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인 이슈들, 즉 테러리즘 ·전쟁 ·격렬한 반미주의 따위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잠시 감정을 접고 이러한 위기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연 이슬람은 이러한 문제의 원천인가? 혹은 이슬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좀더 깊숙한 요인과 함께 작동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낳는 것인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이슬람이란 것이 등장해 본 적이 없는 중동을 그려 보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발생했을까. 아니면 중동은 지금보다 더 평화스러운 곳이 되었을까. 동양과 서양의 관계는 지금과는 딴판으로 달라져 있을까. 이슬람이 없었다면 국제 질서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기독화된 중동’이면 세상이 달라졌을까?

중동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부터 이슬람은 이 지역 주민에게 문화적 규범 에서 정치적 선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럴진대 과연 중동에서 이슬람을 떼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곧 밝혀지겠지만 이슬람이 없는 중동을 상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종으로부터 출발해 보자. 이슬람이 없었어도 중동은 인종적으로 여전히 복잡한 갈등을 겪는 지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의 주도적인 인종, 즉 아랍인 ·페르시아인 ·투르크족 ·쿠르드족 · 유대인 ·베르베르족 ·파스튠족 등이 중동의 정치를 좌우하고 있을 것이다.

그 중 페르시아족을 보자. 이슬람이 태동되기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페르시아왕국은 아테네의 코앞까지 쇄도하였으며, 소아시아에서 발흥하는 어떤 종족과도 경쟁체제를 유지했다. 이에 대항하는 셈족은 ‘비옥한 반원 지역(Fertile Crescent)’에서 이라크에 이르기까지의 영토를 놓고 페르시아인과 싸웠다. 또 강력한 아랍 종족과 상인들은 이슬람 훨씬 이전부터 중동의 셈족 영역을 파고들며 투쟁했다. 13세기에는 몽골족이 밀려들어 중앙아시아와 중동 대부분의 지역을 휩쓸었다. 투르크족 역시 소아시아 전체, 비엔나에 이르는 발칸 반도와 중동 지역 대부분을 정복했다. 세력과 영토, 영향력, 무역을 놓고 벌어진 이 투쟁들은 이슬람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계속돼 왔다.

그러나 역사적 분석에서 종교를 빼놓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측면을 살펴보자. 만일 이슬람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중동 지역 대부분은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가 장악했을 것이다. 바로 이슬람 창시 직전의 상황이 그랬다. 조로아스터교와 약간의 유대교를 빼면,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어떤 종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중동 전체가 기독교 지역인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서양과 평화롭게 살아왔을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근거지를 찾아 세력과 헤게모니를 확장하며 끊임없이 팽창을 추구하던 중세 유럽인들이 바로 코앞의 중동 지역만은 빼놓았다고 가정해야 한다. 십자군이 무엇이었던가.

본질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구가 감행한 군사적 모험이 아니었던가. 기독교 깃발이 내걸리기는 했지만, 이것은 세속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장도를 떠나는 유럽인을 축복하는 강력한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서방의 제국적 확장 과정에서 정복 대상 지역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인은 “변방의 불모지에 기독교 가치를 심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지 몰라도 실제 목적은 서구 도시들을 먹여 살리고 그 세력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전진기지를 제공할 식민지를 건설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중동 사람이 모두 기독교인 이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대포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서구의 군사와 상인 부대를 환영했을 리 없다. 오히려 중동의 복잡한 인종적 모자이크 덕분에 서구 제국주의는 훨씬 번창했을 것이다. 식민 통치의 고전인 분할 지배(divide and rule)를 적용하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유럽인들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말을 잘 듣는 충실한 심복을 지역 통치자로 앉혀두었을 것이다.

시계를 앞으로 돌려, 중동에서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하던 때로 가 보자. 중동 국가들이 모두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있었다면, 이들이 유럽의 섭정을 두 팔 벌려 환영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은 여전히 수에즈 운하와 같은 핵심 요지를 틀어쥐고 통제하려 했을 것이다. 유럽이 자기들 원하는 대로 국경을 나누고 쪼개며 식민 정책을 추진할 때, 중동 국가들이 이에 강력히 저항한 것은 이슬람교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중동이 기독교 지역이었더라도, 식민지 총독, 외교관, 정보원, 군대의 후원을 받으며 쇄도하는 유럽 제국주의의 석유 회사들을 환영했을 리 없다. 중동이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마찬가지인 것이다. 석유, 경제, 정치에 대한 미국의 간섭에 중남미 국가들이 대응해 온 긴 역사를 보라. 중동 역시 그들 자신의 영토, 시장, 주권과 국가 운명을 외국인의 손으로부터 되찾아 오기 위한 민족주의적 반식민 운동에 나섰을 것이다. 이것은 중동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힌두교의 인도, 유교의 중국, 불교의 베트남, 기독교와 애니미즘의 아프리카에서도 꼭 같이 반식민주의 투쟁이 벌어 졌던 것이다.

프랑스는 기독교 국가였던 알제리를 장악하여 광대한 농장을 확보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탈리아 역시 에티오피아가 기독교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가혹한 식민정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와 비슷한 시도가 기독교 지역인 중동에서도 벌어졌을 것이다. 요컨대 중동이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 영향 아래 있었다면 유럽의 가혹한 식민주의에 대한 대응이 크게 달랐을 것이 라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이 없었다면 중동은 좀더 민주적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유럽 자신의 독재의 역사가 이러한 질문을 일축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살벌한 독재가 끝난 것은 불과 30년 전인 1970년대 중반이다. 그리스에서는 수십 년 전에 교회 세력을 등에 업은 독재체제가 등장했다.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는 여전히 수렁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얼마 전만 해도,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가톨릭교회와 손을 잡은 독재자가 숱하게 널려 있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국가들 사정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중동이 기독교 지역이 된다고 해서 왜 상황이 달라져야 하는가.

그리고 팔레스타인이 있다. 파렴치하게도 천 년 이상 유대인을 박해해 오다, 결국 홀로코스트 대학살까지 벌인 자들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이다. 반유대주의는 서구 기독교 영토와 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유대인은 여전히 유럽 밖에서 조국을 찾았을 것이다.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스트운동이 꼭 같이 일어났을 것이며, 역시 팔레스타인에서 그 답을 찾았을 것이다. 이렇게 건설된 새 유대인 국가는,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던 아랍 원주민이 기독교도라 하더라도 상관없이 75만 명 정도를 추방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상당수가 기독교도였다. 기독교 팔레스타인인 역시 자신의 땅을 지키거나 되찾기 위해 유대인과의 싸움에 나섰을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본질적으로 민족간, 종족간의 영토 분쟁이며, 종교적 측면이 강조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또한 중동에서 아랍민족주의가 태동될 때, 아랍 기독교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아랍 전체를 아우르는 바트당의 이념을 창설한 미셸 아플라크(Michel Aflaq)는 소르본 대학에서 교육 받은 시리아의 기독교도였다.

그러나 중동이 기독교 세계였다면 중동 사람들은 최소한 종교적으로나마 서구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까지 벌어졌던 온갖 종교적 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서구 기독교 세계 스스로가 기독교 권력이 태동할 때부터 다양한 분파로 쪼개져 왔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러한 분파들이 로마나 비잔틴 권력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같은 종교 아래 단합하기는커녕 서구에서도 수많은 종교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략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민족간의 다툼에 종교라는 외피가 덧씌워졌다.

‘기독화된 중동’이라는 말로 중동을 두루뭉술하게 감싸려는 것은 기독교 자체에 들어 있는 수치스러운 분열상을 감추는 꼴이 된다. 이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중동의 종교 형세는 이슬람 등장 당시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즉 주민 대부분이 동방 정교회 소속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증오에 찬 치열한 종교갈등을 벌인 것은 로마 가톨릭과 콘스탄티노플의 동방 정교회였으며, 증오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동방 정교회 기독교인들은 1204년에 서구 십자군이 성도(聖都)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일을 결코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800년 가까이 지난 1999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 교황으로서는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동방 정교회 세계를 방문함으로써, 두 기독교간의 불화를 치유하기 위한 첫 발을 겨우 내디뎠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 영역인 중동에서 벌어질 동서양의 갈등은 오늘날의 갈등과 그 양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를 보라.

동방 정교회의 이념은 이 지역의 민족주의와 반서구 정서를 추동하는 동력이 되어 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리스 정치에서 울려 나오던 열렬한 반서구주의는 오늘날 많은 이슬람 지도자들이 표현하는 서구에 대한 의심이나 적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방 정교회의 문화는, 세속주의, 자본주의,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계몽시대 이후의 서구 사회의 문화와 크게 다르다. 동방 정교회는 여전히 서구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점에서 이슬람이 서구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비슷하다. 즉 서구 기독교의 공격적인 개종 선교에 대한 경계, 공동체와 문화를 보호하고 지탱하는 근간으로 종교를 활용하는 경향에 대한 경원, 서구 문화의 '부패하고' 제국주의적인 속성에 대한 의심 따위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중동이 동방 정교회 세상이었다면 이 종교의 마지막 주요 거점으로 남아 있는 모스크바가 오늘날까지 이 지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또 동서가 대립한 냉전시기에는 동방 정교회가 핵심적인 지정학적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새뮤얼 헌팅턴 역시 서구와 문명충돌을 일으키는 몇몇 문명에 동방 정교회 문명을 포함시킨 바 있다.

오늘날 이라크가 기독교 국가였다 하더라도, 미국의 점령이 이라크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부 세력이 국토를 점령하고 외국군의 손에 자국민이 살해당하는 상황을 환영하는 국민이 어디 있을 것인가.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이슬람교도라서 제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열렬한 민족주의자였고 세속적인 지도자였다. 이라크가 기독교 국가였다 하더라도, 식민 지배에 지긋지긋해 하는 아랍인들은 외부 세력의 점령에 반대하며 이라크의 아랍인을 지원했을 것이다. 실제로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는 집단은 누구나 저항 투쟁을 정당화하고 찬미하는 이데올로기에 이끌리게 된다. 종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바로 이것이 '이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때 나오는 그림이다. 바로 역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서구 사회를 의심하고 적대시해왔던 동방 정교회가 지배하는 중동이 그것이다. 다양한 종족과 종파로 찢긴 지금도 중동은 서구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중동은 서구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리며 자원을 약탈당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국경선조차 서구의 이익에 따라 그들 마음대로 결정지었으며, 서구 독재자의 말을 잘 듣는 충복들이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 이슬람이 없더라도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불타고 있을 것이며, 이란은 여전히 강력한 민족 주의에 경도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러시아에 저항하는 체첸, 영국과 미국에 저항하는 이란, 인도에 저항하는 카슈미르, 스리랑카 신할리즈족에 저항하는 타밀, 중국에 저항하는 위구르와 티베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중동은 2000년 이상 영광을 누렸던 위대한 비잔틴제국과의 문화적, 종교적 일체감을 토대로 하여 이를 역사적 모델로 삼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어느 모로 보나 동-서 대립을 영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렇게 그려지는 상상화는 절대 평화롭고 안정적인 그림이 아니다.

종교는 현실을 덮는 명분

물론 이슬람의 존재가 중동 자체나 동서 관계에 미친 독자적인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이슬람은 넓은 지역에 흩어진 지배 세력을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 되어 왔다. 세계적 종교의 하나로서 이슬람은 폭넓은 문명을 창조해 냈다. 이 문명권에 속한 집단은 철학 ·예술 ·사회 운영의 원칙들, 도덕적 가치관 ·정의관 ·법률체계 ·선정(善政)에 대한 관념 등을 공유한다. 이 모든 것은 이슬람권의 상류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문화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체계로서의 이슬람은 인종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그들에게 거대한 이슬람 문명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부여한다. 이 점만으로도 이슬람은 큰 의미가 있다. 또 이슬람은 현실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이 없었 다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은 힌두교 세력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슬람 문명은 모든 이슬람교도가 서구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다는 공동의 규범을 만들어 냈다. 설령 서구 제국주의의 파도를 막는 데 실패하는 경우 에도, 이러한 저항운동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문화적 자산이 되어 국제 이슬람교도를 공동운명체로 묶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수많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국가를 하나씩 쪼개고 공격하여 마침내 무릎 꿇릴 수 있었다. 여러 국가가 단결하여 저항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들에게는 여러 나라를 아우르며 저항 세력을 결집할, 이슬람과 같은 공통의 문화적 상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슬람이 없었다면 서구 제국주의가 중동과 아시아를 분할해 점령하기는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한 나라가 겪은 피정복의 수치심을 여러 나라가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이슬람 세계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오늘날의 발달된 통신 수단과 위성으로 전송되는 이미지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서구 제국주의가 이슬람 문화를 광범위하게 침략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거꾸로 강력한 자기 정체성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서구식 현대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경계하는 것은 서구가 이슬람 세계에서 전략적 요충지, 자원, 문화를 장악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일이다. 예컨대 중동에 '친미 거점'을 만들겠다는 것 따위다. 불행하게도 미국은 순진하게 자기 자신과 점령지 사이에는 이슬람만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 한다.

그렇다면 테러리즘은 어떨까. 오늘날 서구 사람들이 이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 이슈 말이다. 가장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이슬람이 없었어도 9 ·11테러는 일어났을까? 오랫동안 미국의 정책에 대해 정치적, 감정적으로 분노한 나머지 적대감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의 영향 아래 있었다면 사태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종교와는 무관한 오랜 적대감이 그 실제 원인인데도 이를 외면하고 종교를 그 요인으로 지적하는 일이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 다시 기억해야 한다. 2001년 9월11일에 갑자기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다.

알카에다 공격원들에게 있어 이슬람은 태양 아래의 돋보기 같은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광범위하게 퍼져 공유되어 있는 적대감을 모아 하나의 강력한 광선으로 집약한 뒤, 외국 침략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간명한 행동을 수행한 것이다.

이슬람과 테러리즘을 연결시키는 서구의 관점은 짧은 기억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 게릴라들도 팔레스타인의 영국 세력에 대항해 테러를 사용했다. 스리랑카의 힌두 반군인 '타밀 호랑이'는 자살 공격용 조끼를 만들었으며, 10년 이상 세계 자살 폭탄 테러를 주도했다. 여기에는 인도 총리 라지브 간디 암살도 포함된다. 그리스 테러리스트들은 아테네의 미국 관료를 겨냥해 암살 테러를 자행했다. 인도의 시크교도 테러 조직은 인디라 간디를 살해했으며, 인도 전역을 혼란으로 몰고 갔을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 해외 지부를 두고 인도 여객기를 대서양에 격추시키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마케도니아의 테러 조직은 전발칸 반도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벌어진 주요 암살 사건 중 십여 건은 유럽과 미국의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아일랜드공화군은 수십 년 동안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하여 잔인하고도 효과적인 테러를 구사했다. 베트남에서는 공산 게릴라들이 미국인을 공격했으며, 1950년대에는 말레이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영국군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했다. 케냐에서는 마우마우 테러리스트들이 영국 관리들을 공격했다. 사례는 끝도 없다. 이슬람교도가 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테러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테러 활동만 둘러보아도 이 점은 명확하다. 유로폴에 따르면, 2006년 유럽연합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은 모두 498건이었다. 그 중 424건은 분리주의자 들의 소행이었으며, 55건은 좌익 극단주의자 소행이었고, 기타가 18건이었다. 이슬람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는 단 1건이었다. 물론 이슬람 공동체는 집중 감시를 받기 때문에, 많은 테러 공격이 모의 단계에서 적발된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유럽에서 벌어진 테러의 분석 결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의 이념 분포를 잘 보여준다.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이나 서구 제국주의의 끊임없는 공격, 전복, 개입에 분노 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랍인들이 테러리즘이나 게릴라 공격과 유사한 전술까지 동원하며 벌이는 분노의 행동은 그들이 기독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아마 저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 왜 그들의 분노를 좀더 일찍 이해하지 못했던가 . 급진적 단체들이 적대감을 공공연히 표현해 왔음에도 , 왜 우리는 그들이 서구의 한가운데서 분노를 터뜨릴 수 있다고 예상하지 못했던가 .

만일 이슬람이 혐오하는 것이 서구적 현대화였다면 , 왜 그들은 2001 년 9 월 11일까지 기다린 것인가 . 왜 20 세기 초의 이슬람 주요 지도자들은 이슬람 문화를 보존하는 것과 현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인가 . 오사마 빈 라덴의 초기 관심사에 현대화는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다 . 그는 팔레스타인 , 사우디아라비아 영토 안의 미군 , 미국이 조종을 받는 사우디 통치자 , 현대판 ‘십자군 ’ 등을 언급했을 뿐이다 . 그동안의 역사나 최근 벌어진 사태와 그에 연관된 미국의 정책들을 고려하면 , 이슬람의 분노가 미국 영토 안에서 전면적으로 폭발한 것이 2001 년이나 되어서라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운 것이다 . 9 ·11 테러가 아니었더라도 , 이와 비슷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상황이었던 것이다 .

저항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이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 그 역할을 대신할 대타가 있다 . 바로 마르크스주의다 . 마르크스주의는 지금까지 지구 곳곳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테러리스트 , 게릴라 , 민족해방운동을 배출한 이데올로기다 . 서양 사회에 존재하는 마르크스주의 테러 조직 몇몇만 예로 들자면 , 바스크 ETA, 콜롬비아의 FARC, 페루의 ‘ 빛나는 길 ’, 유럽의 적군파 등이다 . 극단적 테러 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의 창설자 조지 하바쉬 (George Habash)는 동방 정교회 소속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공부했다 . 분노한 아랍 민족주의가 폭력적 마르크스주의에 이끌릴 때 , 많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하바쉬를 적극 지지했다 .

외부의 압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자신의 투쟁을 선전하고 영광을 부여할 깃발을 찾게 된다. 정의를 위한 국제 계급투쟁은 그 훌륭한 명분이 된다. 민족주의는 더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종교다.

명분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계층까지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현실을 초월한 것을 그 내용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지구 곳곳에서 인종 분규나 민족주의와 같은 현실적 투쟁을 뒷받침하는 명분으로 활용된다. 상대측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경우, 종교는 충돌이나 대립의 원인이 아니라, 갈등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운동의 깃발이 내려졌더라도 이렇게 촉발된 적대감은 여전히 남게 된다.

우리는 약자가 언제든지 테러리즘을 그 도구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례 없이 강한 미국의 힘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기타 여러 곳에서 테러리즘에 걸려 곤혹을 겪고 있다. 빈 라덴은 많은 비이슬람 지역에서조차 ‘현대의 체 게바라’라고 칭송받는다. 이것은 미국의 힘에 대한 성공적인 저항이 세계로부터 각광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격하는 약자의 이미지는 이슬람이나 중동 지역을 초월하는 소구력을 갖는다.

<코란>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더욱 평화로운 곳이 되었을까? 동서 간의 갈등 구조를 고려하여 보면, 이슬람은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갈등에 감정적인 동기 하나를 더하는 역할을 하며, 문제를 좀더 꼬이게 만들어 해결을 찾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코란>에서 ‘그들은 왜 우리를 싫어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려는 것은 재치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만 좇다가는 문제의 현상만 보고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슬람교도가 서방을 싫어하는 것은 이슬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슬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이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지구 곳곳에 남긴 발자국의 영향을 살펴보는 것보다 훨씬 간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 세상에 이슬람이 없더라도 세계는 피비린내 나는 갈등에서 비롯된 전쟁과 고난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 종교가 없더라도 모든 투쟁 조직은 민족주의나 독립 쟁취를 상징할 새로운 명분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역사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전개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동양과 서양 간의 갈등은 인류 역사에 존재해 온 거대한 역사적, 지정학적 이슈를 둘러싸고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인종, 민족주의, 야망, 탐욕, 자원, 지도자, 영역, 경제적 이익, 권력, 개입, 외부에 대한 적개심, 침략자, 제국주의자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거대하고도 영원한 이슈들을 놓고서 어찌 종교에 의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20세기를 뒤흔든 끔찍한 공포는 모두 완벽히 세속적인 체제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콩고를 피로 물들였던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 히틀러, 무솔리니, 레닌, 스탈린, 마오, 폴포트 등이 그들이다. 자신의 ‘세계 전쟁’을 두 번이나 지구 전체로 끌고 나온 것은 유럽인이었다. 이슬람 역사에는 유럽인이 벌인 두 차례의 끔찍한 세계 전쟁과 비슷한 것조차 없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이슬람 없는 세상’을 꿈꾸며, 그랬다면 오늘날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슬람이 없었다고 해도 갈등, 경쟁 관계, 위기들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

  참고문헌 

이슬람 세계와 그 정치적 ,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그레이엄 풀러의 생각은 < 정치적 이슬람의 미래 (The Future of Political Islam)>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03) 에 잘 나와 있다 .

서구 사회와 중동간의 관계를 다룬 고전으로는 새뮤얼 헌팅턴 (Samuel Huntington) 의 < 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New York: Simon & Schuster, 1996) 과 버나드 루이스 (Bernard Lewis) 의 < 이슬람과 서구 (Islam and the Wes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가 있다 .

이슬람의 본질 및 다른 주요 종교와의 관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레자 아슬란 (Reza Aslan) 의 < 신 이외의 신은 없다 : 이슬람의 기원 , 진화 및 미래 (No God but God: The Origins, Evolution, and Future of Islam)> (New York: Random House, 2005) 에서 찾아볼 수 있다 . 9 ·11 테러가 일어난 5 년 뒤에 윌리엄 J. 돕슨 (William J. Dobson) 은 ‘ 그날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The Day Nothing Much Changed)’ (Foreign Policy, September/October 2006 )에서 , 9 ·11 테러가 동서양을 갈라놓았다는 대중적 믿음을 재검토했다 .

로널드 잉글하트 (Ronald Inglehart) 와 피파 노리스 (Pippa Norris) 는 ‘ 진정한 문명 충돌 (The True Clash of Civilizations’ (Foreign Policy, March/April 2003) 에서 , 동서양 을 진정으 로 갈라 놓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성 (性 ) 이라고 주장했다 . 마지막으로 , 조세프 조페 (Josef Joffe) 는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중동과 미국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바뀌었을까를 상상해 보고 ‘ 이스라엘 없는 세상 (A World Without Israel)’ (Foreign Policy, January/February 2005) 을 썼다 .

관련 웹사이트나 FP 아카이브 , Foreign Policy 의 관련 기사 목록을 찾으시려면 www.ForeignPolicy.com 으로 접속바람 .

그레이엄 E. 풀러는 CIA 의 국가정보위원회

부의장을 역임하면서 장기 전략 예측을 담당했다 . 현재 그는 밴쿠버에 있는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역사학과 부교수이며 , < 정치적 이슬람의 미래 (The Future of Political Islam)>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03) 를 비롯해 중동에 관한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

이 기사는 미국 워싱턴의 카네기국제평화단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이 격월로 발행 하는 2008 년 1 2 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한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는 폴린폴리시코리아와 < 이코노미플러스 > 의 기사 제휴에 의거 ,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그레이엄 E. 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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