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은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 급속히 경기가 하락함에 따라 올 1, 2분기를 최대의 고비로 봤다. 때문에 정부는 물론 기업, 가계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상반기를 지내왔다. 그러면 하반기 경기는 어떨까. 다시 한 번 몸을 사리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슬슬 기지개를 켜도 괜찮은 것인가. 한국 경제의 사령탑을 맡은 지 5개월을 넘긴 윤증현(63)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그 해답을 들어봤다.

 “감세정책 기조 유지…

대기업 · 고소득자 비과세 감면항목 줄여 나가겠다”

인터뷰 요약

- 최악 국면 지났지만 3분기도 여전히 불투명

- 경상수지 흑자폭 하반기 50억 달러로 감소할 것

- 기업규제완화 지속적으로 추진

- 9월 내수활성화 방안 내놓을 것

- 술 및 담배세금 인상안 “검토한 바 없다”

- 부동산 진정 안 되면 LTV 대상 지역 및 금융기관 확대

- 하반기 대기업 강도 높은 구조조정 추진

7월17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 빌딩 9층 접견실. 장마철인데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에어컨을 안 켠 탓인지 사우나나 다름없었다. 오후 3시쯤 윤증현 장관이 노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 피곤해 보이는 윤 장관의 얼굴표정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쉰 목소리는 ‘마의 터널’을 지나온 한국 경제마냥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이런 모습과 달리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 “한국 경제가 어려운 국면은 지나온 것 같다”며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섰다. 이와 함께 윤 장관은 “정부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기업들이 투자촉진 등의 노력을 보여야 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소리(경제 회복)는 두 손(정부와 기업)을 마주쳐야 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경제는 한 고비를 넘긴 것일까.

“최악의 국면은 지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4분기에 성장률이 전기 대비 5.1% 감소하면서 급속히 경기가 하락했지만 올 들어 1분기에 0.1% 증가했고, 2분기에 2.3%로 당초 예상(1.7%)보다 크게 높아질 것으로 한국은행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주가는 리먼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환율도 경상수지 흑자,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으로 1200원대로 하락했고요. 어쨌든 전기 대비 확실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전년 동기에 비하면 약 마이너스 3% 대로 완전 회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3분기 이후 경기 “현재로선 불투명”

국민과 기업의 관심사는 과거보다는 미래, 즉 3분기 이후에도 계속 경기가 좋아질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래야 소비를 늘리고, 투자를 확대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3분기에도 경기 회복세가 이어질까요.

“(3분기에도 계속 회복될 것인지는) 현재로서 불투명합니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고용이 부진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 및 유가 상승 우려 등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상반기에 경제 회복 조짐을 보인 가장 큰 원인은 재정 투입이었거든요. 아직은 민간의 투자나 소비가 크게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재정의 60%를 조기 투입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재정이 떨어진 것을 민간이 받쳐줘서 소비와 투자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 부분이 현재 불투명합니다. 어쨌든 3분기가 전기 대비 플러스 성장으로 가겠지만, 전년 동기 대비 반드시 플러스로 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윤 장관은 3분기 및 4분기 성장률을 전기 대비 각 1.0%로 전망했다. 다만 2분기 성장률이 2%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 3분기 이후 전기 대비 성장률이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 초부터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올인했는데 나아지긴 했나요.

“추가경정예산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나타나면서 상반기보다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5월까지 큰 폭의 감소세를 지속하던 취업자 규모가 6월 들어 추경효과가 나타나면서 4000명의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윤 장관은 하반기 경제와 관련, 경상수지의 경우 흑자흐름이 지속되나, 흑자폭이 상반기 200억달러 안팎에서 하반기 50억달러 안팎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소비자 물가는 환율의 하향 안정세 및 완만한 경기 회복세 등으로 2% 중반 수준의 안정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이 같은 하반기의 회복세는 기업의 투자 촉진과 가계의 소비 회복이 관건이다. 따라서 윤 장관은 최근 기업들에게 정부가 할 만큼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화답(투자 촉진)을 보여줄 것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정말 정부로서 기업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한 것입니까.

“정부가 (기업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 줬어요. (기업들의) R&D 투자에 대해서도 OECD 국가중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국가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들도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 게 보입니다. 4월까지 -20% 이상 이던 설비 투자 감소가 5월엔 -13%로 감소폭이 줄었습니다. 7월 말이 되면 2분기 설비 투자 지표가 나오는데 조금 더 나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들이 투자에 따른 확실한 수익 모델이 있으면 앞으로 더욱 투자를 늘리겠지요.”

더 이상의 추가적인 투자 촉진촉은 없습니까.

“정부가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해온 게 사실입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아직도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정부가 이것들을 찾아서 하나씩 완화토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투자를 하지 않은 탓에 잠재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요.

“잠재 성장률이 회복이 되려면 인적 자원이 투입되든지 물적 자원이 투입되든지 아니면 생산성 및 기술이 향상되든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안 되는 게 문제입니다. 일자리는 결국 민간이 창출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 어려운 시기를 건너가는 브리지(다리) 역할 정도만 하는 것입니다. 민간의 투자가 있어야 고용이 창출되고, 고용이 창출돼야 소득도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민간 부문의 성장이 더딘 것이죠. 어쨌든 민간 부문의 투자가 활발해지도록 불필요한 규제들은 다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9월 내수 활성화 통한 경기 진작 방안 내놓을 것

윤 장관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소비가 이뤄져야 기업의 투자가 늘고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준비 중인 내수 경기활성화 방안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 아이디어를 수집중입니다. 9월 중에 (내수경기 활성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그러면 해외 소비를 국내로 어느 정도 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규제개혁 방안은 무엇입니까.

“상반기에만도 두 가지를 발표했고, 하반기에는 연말쯤에 전문자격사 서비스의 진입 및 영업 규제 등을 개선한 ‘서비스 산업의 경쟁 촉진 방안’도 발표할 계획입니다.”

서비스산업선진화는 윤 장관이 상당히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규제개혁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교육 및 관광 부문을 중심으로 서비스 수지 개선 방안을 내놨고, 미디어 분야 및 IT·SW 분야 등에 대한 규제도 합리적으로 개선했다. 올 들어서는 지난 1월 서비스 분야의 인적 인프라 확충 및 R&D 투자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5월에는 교육, 콘텐츠, IT 서비스, 디자인, 컨설팅, 의료, 고용 지원, 물류, 방송통신 등 9개 유망 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 합리화, 경쟁 촉진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마련했다.

또 글로벌 헬스케어, 글로벌 교육서비스, 녹색금융, 콘텐츠·SW, MICE·관광 등 고부가 서비스 분야에 대한 공정경쟁 환경조성을 위한 제도개선과 인프라 조성에 중점을 둔 ‘신성장 동력’ 추진계획도 마련했다.

최근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증세냐 감세냐를 놓고 얘기들이 많다. 예컨대 증세의 경우 대상자 선정에 대한 문제와, 감세의 경우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데도 감세기조를 유지할 겁니까.

“기본적으로 확장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여기엔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감세를 해주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공조(확장정책)체제를 갖춰야 세계 경기와 동반해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세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부족한 세입을 방어하기 위해 비과세 감면과 같은 조항들을 정비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은 더욱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이 혜택을 받는 부분을 줄여야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감세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에 따른 대외적인 신인도를 지키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택 전세보증금 과세 및 술, 담배에 대한 세금 인상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정부차원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향후 추진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뿐 아니라 여론 및 국회 의견 등을 참고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밝혀 가능성이 있음을 살짝 내비쳤다. 주택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의 경우 이중과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예치해 받은 이자를 과세소득에서 차감하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하반기 대기업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추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춤했던 국내 부동산 시장이 최근 다시 들썩이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다. 윤 장관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궁금했다.

부동산 시장이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들썩거리고 있는데요.

“지방은 아직 별 움직임이 없어요. 그런데 7월 초부터 수도권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집값이 뛸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부동산 전반으로 확대되면 바람직하지 못하겠죠.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10~20%씩 낮추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그래도 (부동산이) 안 잡히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LTV를 떨어뜨리는 지역을 더 늘릴 수도 있고, 대상 금융기관을 제2금융권으로 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더 큰 문제가 생겨서 돌아올 수도 있어서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하반기 경제보고서를 통해 경제 위험요인으로 기업부실 문제를 지적했는데요.

“최근 기업의 채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와 기업의 영업이익 축소 등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과거 외환위기 때와 비교할 때 매우 낮고, 과거 기준으로 볼 때도 양호한 수준입니다. 부채 비율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말 424.6%였지만 작년 말엔 130.6%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낮은 부채 비율은 채무 연장의 위험을 줄이고, 이자율이 높아지거나 영업이익이 줄어들 경우 현금 흐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작년 9월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됐던 연체율 상승폭이 올 3월 이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지표입니다. (작년 9월 전년 동월 비 상승폭이 0.08%포인트에서 올 2월 0.66%포인트로 높아졌지만, 3월 0.55%포인트로 꺾였다)”

윤 장관은 이미 작년 말부터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설, 조선, 해운업 등에 대해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에는 신용위험 평가를 통해 경영 정상화 계획을 수립한 개별 대기업 등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윤 장관은 특히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신용위험 평가를 통한 중단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며 “기업 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은행은 증자 및 자본 확충 펀드 등을 통해 부실채권 처리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으므로, 기업의 부실이 전반적인 금융권 부실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장관 취임 5개월 “5년 지난 것 같다”

윤 장관은 지난 2월 새 사령탑으로 취임 후 지금까지 5개월이 넘도록 매일 해뜨기 전인 새벽 6시께 출근해서, 한밤중에 퇴근했다고 한다. 머리를 싸매는 회의도 하루에 서너 번씩 연일 가졌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친구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출퇴근하기를 6개월 이상 하면 생체리듬이 변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시점이 될 때를 조심하라며 약을 사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취임한 지 5개월이 조금 넘게 지났는데 5년이 지난 것 같아요.”

지난 5개월이 윤 장관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윤 장관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엔 헬스클럽에서 2~3시간씩 운동을 하거나 집 근처에서 조깅을 한다고 한다. 

윤 장관은 인터뷰 말미에 피곤함이 역력한 가운데서도 다시 한 번 국민과 기업인들에게 정부의 움직임에 화답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정부로서 할 일을 다 했다는 눈치였다.

“지금이 그 어떤 시기보다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 주체들이 합심을 해서 어려운 고비를 제대로 넘겨야 합니다. 왜냐면 자원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자원도 없고 생활 코스트도 높은 우리나라가 중남미, 중동, 동남아시아 등과 같이 자원이 많은 나라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거든요. 그나마 OECD와 IMF에서 한국 정부가 나름대로 지금의 위기 상황을 잘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이젠 국민과 기업이 나서야할 때입니다.”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서울대 법대 졸업.

71년 행정고시 10회로 공직 입문

86년 재무부 은행과장.

92년 재무부 증권국장.

96년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9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2004∼2007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08년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09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