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의대 교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 벤처기업 CEO 그리고 카이스트 교수. 벤처기업의 성공신화로 불리는 안철수 교수의 화려한 이력이다. 그와의 만남은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인터뷰 요청을 한 지 한 달여 만에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 도중 자신에 대한 찬사에는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만,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신중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 국내 벤처 생태계의 현실 등에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애플 아이폰 인기 간과하면 엄청난 위기 맞을 수 있다”

게임룰 바뀌어 국내 대기업 이제 수직적 하청구조 탈피 해야

기업가 정신 공생에서 찾을 때 … 실패 껴안아야 벤처가 살아

그가 명함을 건넨다. 의학박사, 공학석사, 경영학석사, 그리고 카이스트 석좌교수. 그의 변신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고, 의대생 시절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무료로 배포했다. 의대 교수로 있던 그는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해 국내 최고의 보안기업으로 키웠다. 한창 잘나가던 2005년 CEO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008년 돌아온 그는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정부기관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현재 대통령 직속의 두 개의 위원회(정보화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를 포함해 10여 개의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포스코에선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직책은 안철수연구소의 CLO((Chief Learning Officer). 마침 인터뷰가 있던 지난 1월28일 이른 아침부터 안철수연구소의 사내교육 프로그램인 ‘안랩스쿨’에서 강의를 했다고 한다. 강의의 시작 부분은 항상 안 교수가 맡는다. 강의 주제는 ‘안철수연구소가 지향해야할 핵심가치’였다고.

그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판단기준이 같아야 한다”며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의 핵심가치는 10년 전 직원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첫째, 각 개인은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둘째, 건설적인 비판과 조언으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한다. 셋째,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술 이전에 스스로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이 먼저죠. 그래서 연초에는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핵심가치에 대한 교육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의 직원뿐만 아니라 벤처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겐 안 교수가 여전히 ‘롤 모델’이다. 인기가 아직도(?) 대단하다는 말에 그는 “난감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혼자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저를 쳐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여기저기서 주목하기 시작하더군요. 스스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성공을 운운하기보단 열심히 살아야죠.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일에 도전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기업가는 위험 무릅쓰고 도전해 새로운 가치 창출

안 교수는 ‘기업가 정신’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는 CEO 재직 시에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기업가 정신을 줄곧 강조해 왔다. 그는 아직도 기업가 정신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했다. 흔히 기업가 정신을 ‘경영자 마인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와 경영자는 사실 다른 개념입니다.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현상유지입니다. 보수를 받는 대가로 조직의 성과를 관리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죠. 하지만 기업가(안 교수는  ‘앙트르프러너(entrepreneur)’라고 했다)는 불확실성이나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소·벤처기업에 이러한 ‘기업가 정신’이 넘쳐야 하지만 지금은 많이 위축돼 있어요.”

그는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을 쇠퇴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를 낮은 성공확률과 한 번 실패했을 때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무척 어렵다. 대표이사 연대보증 같은 제도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빚을 얻을 때 또는 투자를 받을 때도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대보증을 선다는 것은 기업이 망할 경우 기업의 빚이 모두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죠.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같은 제도를 없애기 힘들다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재원을 확대하고, 실질적으로 빚과 다름없는 잘못된 투자관행을 고쳐야 합니다. 눈 먼 돈은 없애고, 퇴출될 기업은 빨리 퇴출될 수 있게 하는 거시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안 교수는 그나마 최근에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진단하면서도 바뀌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 예로 일자리 창출 계획을 들었다.

“중소기업이 고용 창출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실제로 일자리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일자리가 생겨나려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중소·벤처기업들이 혁신적인 비즈니스들을 끊임없이 쏟아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지부진합니다.”

그는 정부도 문제가 뭔지는 아는 것 같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중심의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창출 계획만 하더라도 정부의 시선은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중소기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해외로 생산기지들을 이전한 대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고용 창출을 요구할 순 없어요.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중소기업들이 의욕적으로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우선적으로 조성돼야 합니다.”  

그가 CEO직을 사임하고 유학을 떠난 것도, 그리고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사회 전체에 ‘기업가 정신’을 불어 넣기 위해서다. 그는 안철수연구소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정직한 경영으로, 공익과 이윤 추구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철수연구소를 통해 소프트웨어 기업의 워킹 모델을 만들려고 했어요. 하지만 한 회사를 잘 키우는 것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 중에는 벤처를 활성화시킬 수단으로 벤처캐피탈에 주목했어요. 자금이 든든해야 의욕적으로 사업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벤처캐피탈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실력만 갖추면 큰 문제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인데, 벤처캐피탈에서 투자할만한 벤처기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때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제대로 된 기업가를 길러내는 조언자 역할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마침 카이스트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다. 학생들에게 도전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는 데 아주 좋은 기회라는 판단이 섰다.

그의 수업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토론 등을 통해 기업가 정신에 대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버드대에서 사용하는 창업 사례집이나 다양한 서적을 미리 읽어오게 하고 토론에 집중합니다. 성격도 기회도 제각각이었던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을 성공적으로 일군 사례를 토론하는 것이죠. 빌 게이츠 같은 유명 CEO의 사례는 다루지 않아요. 식당을 경영하는 폴 홀슨, 철물점을 운영하는 에릭 후드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경영 사례를 공부합니다.”

국내 기업가들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실패 사례들까지 포함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는 캐릭터 기업, 미용실 체인을 비롯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진로를 바꿨을 정도라고 한다.

“카이스트 학생들 대부분이 그동안 의학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엔지니어를 길러내기 위해 만든 학교의 학생들이 의사로 빠져나간다는 것이 참 역설적이었죠. 그런데 제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창업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어요. ‘내가 뭔데 이들의 진로를 바꾸려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죠.”

아이폰 등장은 한·미 비즈니스 문화의 충돌현상

그는 기업가 정신 외에도 기업가의 자질로 강조하는 것이 또 있다. “전략과 마케팅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도 유학 중에 이를 절실히 느낀 겁니다. 의학박사·공학석사·CEO경력 10년을 갖고 있으면서도 MBA과정의 3분의 2는 처음 접한 것이었어요.”

그는 “그나마 컴퓨터 보안이 제게 익숙한 분야라서 안철수연구소를 본궤도에 올릴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만약 파이낸스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내가 계속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했다면 다른 수출기업들처럼 키코(KIKO)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그의 애정은 아직 변함이 없다. 지난 1월12일 안철수연구소의 보안 소프트웨어 V3 오진으로 인해 한때, 전국 민원 전산망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걱정 반, 안심 반이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자체는 걱정스러운 일이지만, 그나마 사고 발생 직후 적극적으로 대처한 점은 잘 한 일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아직도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는 안철수연구소 내에 ‘고슴도치플러스’라는 사내벤처를 직접 경영하고 있다. 그는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할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이라며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사업 계획을 세 번이나 바꿨어요.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선 국내 1위입니다. 벤처기업이 초기 사업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는 1%에 불과합니다.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계획을 수정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특히 그는 대기업이라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은 ‘문화 간의 충돌’, ‘비즈니스모델 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현상에 주목하지 못하면 우리도 엄청난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 비즈니스 모델은 철저한 ‘수직계열화’였어요. 삼성전자나 LG전자, SK텔레콤이나 NHN 모두 마찬가지죠. 최단 납품기간과 최저 가격을 제시하는 하청기업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입니다.”

그는 과거에는 이러한 수직적인 구조가 효율적이었으나 이제는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애플의 아이폰, 닌텐도의 위(Wii)를 사례로 들었다. 애플의 모델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이다. 하청업체가 아니라 ‘서드 파티(third party)’로부터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받는 구조라는 얘기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은 이익이 더 남는 곳을 선택한다.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자발적인 시장 참가자인 ‘서드 파티’로부터 공급된다. 앱스토어는 콘텐츠로 넘쳐난다. 이것이 엄청난 경쟁력이라는 얘기다. 닌텐도의 게임기인 위(Wii)가 보다 성능이 뛰어난 기기들을 제치고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자발적인 개발 파트너들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아이폰 등이 몰고 온 경쟁을 하드웨어 품질 개선으로만 맞서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마인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기존 수직적 비즈니스 모델의 기술 중심적 마인드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애플처럼 전혀 다른 상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사고방식이 절실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 하청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위기에 빠지게 될 겁니다. 조금씩 허물어지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겁니다.”

기업인들 사회적 책임에도 신경 써야

안 교수에겐 휴대전화가 없다. 걸려오는 전화의 거의 대부분이 ‘청탁성 전화’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그게 감당이 안 돼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웃었다. 외부와는 이메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이메일도 강의를 부탁하거나 경영에 도움말을 해 달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루 200~300개에 달하는 이메일에 직접 회신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반나절 이상이라고 한다.

그는 일반 기업에서 요청하는 강의는 사양하지만 소셜 벤처(사회적 기업)의 강의 요청은 대부분 받아들인다. ‘함께하는 재단’, ‘소셜 디자인 스쿨’ 같은 소셜 벤처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공익과 이윤 추구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생각이 소셜 벤처의 개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의 역할이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 등에도 신경을 써야한다는 간접적인 지적이다.

CEO와 교수직 중 어느 쪽이 편할까. 그는 “CEO는 자리를 비워도 메워 줄 임원이라도 있지만 교수는 대타가 없질 않냐”며 “CEO가 더 편한 것 같다”고 했다.

기업 경영 복귀에 대한 물음에는 에둘러 피했다. 그는 40대에는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만 50대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의 경영을 담당하고 있고, 포스코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 기업 경영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덕분에 경영 감각이 무뎌지진 않았어요. 지금도 CEO 제안을 해오는 곳은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는 대학총장직 제의도 있었어요. 그러나 전 경영보다는 직접 변화를 주도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젊은이들도 실패를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일에 즐겁게 도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