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창조경영의 해법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였던 문화인류학자와의 만남(2007년 11월호)에 이어 이번에는 언어학자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언어학자 장영준 중앙대 영문학 교수

“마케팅의 핵심은 언어에 있습니다”

2008년은 유엔이 정한 ‘언어의 해’다. 더욱이 언어학계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세계언어학자대회가 2008년 서울에서 열려 언어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대회의 총무를 맡은 장영준(43)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는 어느 해보다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런 그에게 다짜고짜 “언어학에서 기업 창조경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건네자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언어학자를 괄시하는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밖에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말이 되돌아왔다. 그는 이어 “요즘 기업들의 경쟁력은 마케팅에 있는 것으로 안다”며 “마케팅의 핵심이 언어”라고 강조했다.

 먼저 궁금한 세계언어학자대회 준비부터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세계언어학자대회 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언어학뿐 아니라 인접 학문인 심리학, 철학, 생태학 등에도 상당히 의미 있는 대회라고 생각하는데 정부나 기업 및 각 단체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서울 대회는 2004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확정된 것입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내세우는 등 유치에 열을 올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어요. 이명박 17대 대통령 당선자(당시 서울시장)가 위원회에 편지를 써주는 등의 지원이 도움이 됐습니다.

 세계 언어학자들을 대거 초청하는 등 의미 있는 대회로 만들려면 예산이 넉넉해야 하는데 크게 부족해 걱정입니다. 현재 교육부에 8억원을 신청했는데 다 지원될 것 같지는 않아요. 대기업들의 참여가 있었으면 합니다.

 세계언어학자대회는 1929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국제 언어학 잔치다. 이 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1500여 명의 언어학자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1982년 일본 도쿄에서 제13차 대회가 열린 이후 18차인 서울이 두 번째다. 일본은 당시 천황이 모두연설을 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다고 한다.

이번 세계언어학자대회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언어의 보편성과 다양성’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매일 소수언어들이 사라져가고 있고, 이를 영어가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지식이 사멸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사회라고 떠들어 대는 요즘 시대에 앞뒤가 안 맞는 일이죠. 이번 대회에서는 문자 없는 소수언어들이 한국어 표기를 차용해 보호?발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집중 논의할 계획입니다. 이런 노력은 한국어가 세계어로 성장하는데 일조를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영어는 세계어로 자리를 굳게 잡고 있습니다.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 각국에서 영어 열풍은 이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고 있는 셈이지요. 영어가 이렇게 파워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최근 신간 서적을 보니 초기 영어 사용자는 15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영어를 7억~8억명이 모국어로, 또 7억~8억 명은 제2외국어로 사용하는 등 영어 사용 인구가 15억 명에 이른다고 하니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어가 이처럼 세계어가 된 데는우선적으로 영어를 사용한 앵글로색슨족의 무한한 정복욕에 있을 겁니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원정을 안 간곳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요.

 아울러 라디오가 발명되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것도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디오가 없었으면 (영어가) 그렇게 급속도로 전파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언어학적으로 볼 때 영어의 트렌드는 어떻습니까.

 예전엔 미국 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며 영어, 특히 미국식 영어를 강조했지만 2000년 이후부터는 로컬 잉글리시를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콩글리시(한국식 영어), 맹글리시(말레이시아식 영어), 쟁글리시(일본식 영어) 등이 언어로 인정되면서 잉글리시즈(Englishes)라고 복수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이 같은 영어의 로컬화 현상은 지속되리라고 봅니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앞으로는 중국어도 세계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 보이는 데요.

 (중국어의 세계어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중국 인구가 본토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화교들까지 합치면 20억 명가까이 될 겁니다. 미국의 시골구석을 가도 중국집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중국 경제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에서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공용화할 가능성이 높지요. 아니 그 개연성이 높다고 봅니다. 지금보다는 영향력이 훨씬 커질 겁니다.

언어학의 태두라고 하면 단연 노움 촘스키를 꼽습니다. 그는 창의력이 뛰어난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한데요.

 언어의 습득 과정에 대한 이론을 보면 스키너 등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언어는 백지상태에서 훈련에 의해서 습득한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비둘기가 먹이를 주면 반응하고, 안 주면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도 배고프면 밥 달라고 해서 밥을 주다보니 ‘밥’이라는 언어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촘스키는 달랐어요. 그가 아이들을 보니까 엄마 말을 들은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말을 만들어서 하더라는 겁니다. 예컨대 go(가다)의 과거가 went인데 goed라고 한다든가, 우리말로 보면 ‘학교 안가’해야 옳은데 ‘안 학교가 가’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촘스키는 아이들이 창조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가설에 의해서 세운 이론으로, 상상력으로 학설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촘스키는 다른 언어학자들로부터 ‘사기꾼이니 추방하자’는 등 수많은 인신공격을 받았습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의 특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초기의 모델인 변형생성문법에서 1980년대 이후 포괄적으로 생성문법이라 불리는 촘스키의 언어학은 언어와 관련한 어린아이의 능력, 즉 어린아이가 접할 수 있는 언어 자료로부터 구조적 규칙성(문법)을 이끌어내고, 이 규칙들을 이용해서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과학적 방법으로 규명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촘스키는 특정 언어들, 이를테면 한국어, 영어, 스와힐리어 등의 자연 언어들에서 문법 규칙을 결정하는 일반 원리는 모든 인간 언어에 상당한 정도로 공통된다는 주장을 제시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원리들은 매우 특수하고 뚜렷하므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니까 이러한 원리들은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능력을 설명하고자 하는 철학자나 심리학자는 물론 생물학자에게도 촘스키의 생성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어학자로서 최근 기업인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창조’라는 말을 어떻게 보십니까.

 요즘 창조를 마치 뭔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으로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과 같은 게 창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컨대 독서를 하면서 넘긴 책장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도록 하는 아이디어와 같은 것이지요. 또 자유로운 토론과 이야기의 장을 마련하고 사소한 아이디어도 격려해주는 것이 창조라고 봅니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창조라고 하면 사라지는 언어나 숨어있는 언어에서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창조가 아닐까요. 이런 점에서 기업들마다 직원들이 옛지식을 발굴하게 하기 위해 책을 읽도록 하고, 토론을 하게 해서 그동안 몰랐던 숨겨진 지식을 쌓게 하는 것이 창조경영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겁니다.

언어학은 기업에서 어떻게 활용될수 있을까요.

 언어학은 기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학문입니다. 1994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하버드대학 출신의 언어학박사가 교수 연봉의 몇배를 받고 브랜드 네이밍 컨설턴트로 채용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요즘은 그 보도가 식상할 정도로 외국에선 많은 기업들이 언어학 출신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름을 짓는데 언어학 출신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외국 기업들은 상품 이름을 짓고 이의 성공을 가늠하고자 전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보내 자문을 구하곤 합니다. 저도 뉴욕의 외국 회사들로부터 자사가 지은 상품명을 이메일로 받아 조언을 해준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국내 광고기획사들을 보면 대부분 광고홍보학과 출신들만 데려다 씁니다.

 만약 광고카피를 10자 이내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느 학문의 전공자들이 더 경쟁력이 있을까요. 언어학 출신들입니다. 요즘 기업의 경쟁력은 마케팅 이라고 강조하던데 사실 마케팅의 핵심은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창희 기자 / 사진 : 이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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