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경제지표들이 우상향하고 있다. 주식시장과 금융지표는 물론 소비자심리지수 등 실물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들도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기나긴 터널을 벗어났는가, 아니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일까. 미국 월가의 ‘족집게 경제 분석가’로 통하는 손성원(64)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를 만나 현 경제 상황에 대한 그의 분석을 들어봤다. 손 교수와의 인터뷰는 7월27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참석한 이후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승용차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8월10일 국제전화로 보충 인터뷰를 가졌다.

미국 금융위기 오래 갈 것…

‘월스트리트’에서‘메인 스트리트’로 번지는 중”

8월14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26.77포인트(1.71%) 오른 1591.41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7월31일 이후 1년여 만에 1590선을 회복한 것이다. 시가총액도 8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7월 말에는 소비자 심리지수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비심리도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주식시장뿐 아니라 각종 실물경제 지표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 경제의 경제지표들도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주가는 지난 3월 초에 저점을 찍고 상승세를 이어오면서 나스닥 종합지수가 2000선을 넘어섰다.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1.0%로 1분기의 -6.4%보다 대폭 개선됐다. GDP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도 6월에 전달보다 0.4% 늘어나 두 달째 증가세를 기록하는 등 소비도 살아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얼어붙었던 주택 시장도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 징후에도 손성원 교수는 세계 경제 여건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손 교수는 미국곀畸?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제적인 정책 대응이 주효해 경기가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터널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세계 경제가 상당히 불확실한 만큼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다시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더블딥(소폭의 경기 회복 직후 다시 침체)’ 가능성도 우려했다. 그는 “각국 정부의 지출이 하반기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이로 인해 세계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시중 자금들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 거품을 형성하는 것을 막기 위한 출구전략은 더블딥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 부양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했다. 이미 상반기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고, 재정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경제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더블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세계 경제에 이제 빛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경기 부양책이 통했기 때문이지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위기에 잘 대처했어요. 잘못 대처했다면 대공황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가 줄어드는 하반기부터는 경기 부양책 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한국, 미국이 비슷한 상황입니다. 유럽의 경우 경기 부양책이 많지 않았고, 동유럽은 이제 막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일본은 그동안 수출이 잘 됐고, 그래서 위기를 극복한 듯 보였어요. 하지만 이번 위기에서 수출 의존국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어요. 일본 경제도 두고 봐야 합니다. 각국 정부의 경기 부양 효과가 줄어들면 더블딥 가능성도 있어요. 미국의 금융위기도 끝나지 않았어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 미흡한 금융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미국 금융이 재차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 부실이 아직도 시한폭탄인가요.

미국 금융위기는 더 오래 갈 겁니다. 신뢰(Trust)의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죠. 신뢰가 깨진 것은 고장 난 자동차 부속품을 교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회복이 더 어려워요. 미국의 금융위기는 이젠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로 번지는 상황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죽겠다고 난립니다. 매를 먼저 맞은 한국 경제는  그나마 낫습니다.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죠. 위기를 이겨낸 긍지도 있고요. 한국의 금융 시스템만 하더라도 IMF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천지차이입니다. 후진국적인 시스템에서 엄청 선진화됐지요. 이제는 선진국 금융 시스템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지요. 예전에는 정부에서 하라고 하면 다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제는 정부의 입김에도 거의 꿈쩍하지도 않죠. 금융 부문에서는 미국에 비해 미흡한 게 없을 정도지요.

원인과 진행 과정·해법 등이 멀게는 대공황, 가깝게는 외환위기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IMF 외환위기 당시는 세계 경제는 좋았던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등 아시아 경제가 침체된 것이 특징이었어요. 그래서 세계 경제가 아시아 경제의 받침대 역할을 했지요. 하지만 이번 경제 위기는 큰집에서 먼저 불이 나고, 그 불똥이 작은 집에 옮겨 붙은 꼴입니다. 현재 역사적인 측면에서 경제 위기를 분석한 책을 집필중인데, 역사적으로 어떻게 경제 위기가 생겼으며, 그 차이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죠. 최근 경제 위기의 특징은 경제 성장에 따른 크레디트 버블(신용 거품)로 인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전의 경기 침체는 단순한 요인에서 기인했지만, 최근 경제 위기의 원인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이런 위기에는 정부의 정책이 실패하면 더 오래가지요. 이런 위기에는 오히려 약간 과장해서 대응하는 오버 리액션이 더 낫습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펼친 정책은 어땠나요. 미흡한 점은 없었나요.

글쎄요. 그동안 한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을 쭉 지켜봐 왔는데요. 크게 잘못한 것은 보지 못했어요.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잘 해 왔어요. 위기가 닥쳐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선제적 대응을 통해 위기를 헤쳐 왔지요. 하반기 이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책 실패(Policy Mistaking)입니다. 예를 들면 출구전략 같은 거지요. 인플레이션 걱정만 있다면 출구전략을 펼쳐도 됩니다. 하지만 공장 가동률은 낮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도 풀리지 않았고요.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미국의 대공황이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출발은 결국 출구전략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출구전략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는 단계에서 긴축으로 돌아서면 자칫 세계 경제가 다시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출구전략은 과도하게 풀린 자금을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과거 일본이 10년 장기 불황에 빠졌던 사례와 제1차 세계대전 후 경기 부양을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썼던 경기 부양책이 조기에 막을 내리면서 대공황이 왔던 사실을 강조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취임 직후 재정 적자를 우려해 세금을 올렸고, 일본 역시 1994년 침체가 시작된 지 3~4년 만에 긴축으로 돌아섰던 게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경우에도 다시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줄이면 경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며, 부동산 등으로 유동성이 쏠리는 문제는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부의 재정지출로 인해 유동성은 넘치는데, 시중에 풀린 돈이 엉뚱한 곳으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출구전략도 그런 면에서 논의되고 있는데요.

유동성이 많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더 많은 유동성이 필요한 때죠. 통화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유동성뿐만 아니라 회전율입니다. 돈이 안돌거나, 한 군데에 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지금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는데요.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투자를 위해 집을 사는지, 살기 위해 집을 사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투자를 위해 집을 사는 것은 미국에서도 까다롭습니다. 그나마 살기 위한 집을 매입하는 것은 쉬워요.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이자율, 세금 등을 통해 조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동산에 돈이 몰린다고 해서 유동성을 줄일 상황은 아니지요. 회전율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잘못된 출구전략은 더블딥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정부가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할 시기는 언제인가요.

인플레이션이 생기기 시작할 때 (출구전략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더 걱정해야 합니다.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을 치유하는 게 더 쉽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공황은 ‘정책 실패’로 인한 겁니다.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재정지출로 인해 적자가 늘어나자 세수를 늘리는 정책을 펼쳤어요.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장기적인 대공황을 만들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경기 부양책으로 경제가 살아나니까 세수를 올렸고,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진 것이죠.

손 교수는 미국의 재정겧タ?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연말까지 1000~1100원, 내년에는 1200~1300원 선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은 올해 -1.4%를 기록하겠지만 내년에는 2.5%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돼 2011년에는 3.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세계 경제의 회복 지연으로 흑자 확대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 수출 의존적인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겴??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위기에서는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시장과 경쟁의 힘으로 이를 극복한 측면도 있습니다.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는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한국 경제도 같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어요.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그동안 미국의 적자는 한국과 중국의 흑자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젠 미국도 흑자를 내야 할 형편입니다. 또 한국의 최대 소비자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어요. 앞으로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이 피 터지게 싸워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죠.

수출 중심 산업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요.

당분간 교역 규모는 급격히 커지지 않을 겁니다. 교역 규모를 줄이든지 아이템을 바꿔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은 제조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를 이 위치까지 끌어올린 하이테크 이외의 모든 수출 주력 산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이미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중국을 제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동차, 반도체 등 그동안 주력 수출 산업은 오래됐어요. 최근에는 녹색 산업이 떠오르고 있지만 그보다 금융과 유통 산업에서 우리의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금융 산업에서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은 교포나 현지 진출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미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면 미국 회사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한 금융회사가 나와야 하지요. 삼성이 국내에서만 물건을 팔아 성공했나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글로벌한 금융회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수합병입니다. 적절한 규모의 해외 금융기관을 인수합병해 로컬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통 산업은 어떻게 키워야 하나요.

여행하다보면 한국 사람을 참 많이 봅니다. 왜 해외까지 나와 쇼핑을 즐길까 생각할 정도죠. 요즘에는 한국 호텔에 가면 중국이나 일본인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환율 때문에, 중국인은 부유해지면서 해외 쇼핑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이 사람들을 잡아야 합니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가면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a)’라는 유명한 쇼핑몰이 있습니다. 쇼핑, 식당, 유원지, 공원 등이 한데 모여 있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쇼핑몰은 오픈 초기 ‘디즈니랜드보다 방문객이 더 많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어요. 모두 미쳤다고 그랬죠.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실현됐어요. 서울 인근에 이런 쇼핑몰을 3~4개 만들어 부유한 중국과 일본인을 끌어 들여야 합니다. 쇼핑뿐만 아니라 관광 등 다른 여러 가지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겠죠. 외국의 경우 이러한 서비스 산업이 GDP의 85%를 차지합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올해 -1.4%에서 내년 2.5%, 2011년에는 3.5%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셨습니다.

세계 경제 성장률은 굉장히 더딜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한국만이 예전처럼 5~6%씩 성장하지는 못합니다. 세계 경제는 어렵고, 한국은 아직 그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좀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가 관건인데,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지만 경제 성장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좋아야 기업들은 투자에 나섭니다. 경제가 잘 돼야 투자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부는 ‘경제가 잘 될 거다’ 그러면서, 이를 믿고 투자에 나서달라고 하지만 경제가 회복된다는 조짐을 보인다고 투자에 나섰다가 다시 더블딥에라도 빠지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기업의 입장입니다. 요즘에는 정부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기업이 있습니까? 기업 자신이 결정해야 하지만, 앞으로 경제 성장률이 어떤지가 중요하겠죠.

오는 하반기가 세계 경제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를 결정지을 요소는 무엇인가요.

하반기에는 미국과 한국 경기는 상승할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 얼마나 강하게 상승하느냐가 관건이죠. 하락한 영국의 경제도 하반기에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 성장률이 좋지 않고, 영국을 포함한 유럽도 좋지 않으면 더블딥이 생길 수 있어요.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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