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전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전 한국은행 총재, 전 서울시장, 한나라당 총재, 국회의원,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현 서울대 명예교수,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1세대 경제학자인 조순(82) 서울대 명예교수를 지칭하는 말은 이처럼 다양하다.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키워낸 그는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내며 거시적인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고, 초대 민선 서울시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수도의 행정을 맡았었다. 그리고 한나라당 총재와 국회의원을 거치며 정치 현장에서도 몸으로 부딪혔다. 경제와 정치를 두루 망라해 경험을 쌓은 그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이기도 하다. <이코노미플러스>는 창간 5주년을 맞아 조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국내외 경제 현안은 물론 4대강 정비사업 등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핫이슈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국민들의 관심사로 부상한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 이명박 정부의 ‘동시 추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명예교수는 “4대강 정비사업을 한꺼번에 밀어붙이기보다는 하나를 골라 시범적으로 작게 시행해본 후 결과를 보고 확대하는 점진적인 방안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중국의 경제특구를 들었다. 중국은 해안 쪽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장단점을 파악해 보완, 내륙 쪽으로 확대해 나갔다는 것이다.

애제자인 정운찬 총리가 청문회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의혹으로 다소 흠집이 난 것이 안타까운듯 정 총리와 국민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 총리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용기를 갖고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세로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정치권과 국민들 또한 정 총리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며 스승으로서 제자에 대한 애틋한 정을 보였다.

하반기 들어서 세계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가 불황의 골을 벗어났다고 보시는지요.

세계 경제는 다소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1년여 지나면서 하강 국면은 진정이 됐습니다.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 부문은 회복세입니다만, 실물 부문은 아직도 큰 회복을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고용겾六瓚?규모 등에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국 정부의 경기 활성화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각국의 정부들이 재정 확대, 금리 인하, 유동성 확대 등으로 위기에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안정되고 있는 부분은 금융 부분에 그치고 있어요. 금융과 실물의 연계가 더딥니다. 아직 총 수요에 비해 공급 능력이 강합니다. 재고 정리가 세계적으로 조금씩 일어나고는 있지만 아직 수요는 별로 살아나지 않았어요.

고용 증가가 경기 회복의 관건 같습니다. 고용을 늘리려면 일자리를 많이 마련해야 할 텐데요.

기업들은 장래에 수익 전망이 좋아 보일 때 투자를 하는데, 세계적으로 이 부분이 불명확합니다. 총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투자를 하더라도 인력을 많이 쓰지 않는 분야에 투자가 이뤄져 ‘고용 없는 투자’가 늘어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고용이 늘 것으로 보십니까.

사실 세계적으로 그리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실물 부분에서 고용을 증대시킬 유인이 별로 없어요. 국내의 경우 내수 부문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 동안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성장해왔지만 지금은 수출이 잘 안되고, 투자와 고용도 문제입니다. 내수 진작이 말은 쉽지만 시간이 걸리고 잘 되기가 어렵습니다. 국내 경제 회복과 관련해, 정부가 그냥 자꾸 돈(재정)을 풀 게 아니라, 보다 길게 봐야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더 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경제가 많이 성장한 상황이라) 앞으로 성장률은 과거처럼 높아지기 힘듭니다. 정부가 돈을 써서 고용을 늘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요. 지금은 돈을 더 써봐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호주가 금리를 인상하며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출구전략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돈을 풀어도 실물 분야 회복에 효과가 없다면 그 때 출구전략을 써야겠지요. 돈을 써도 실물 부문 투자로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돈이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촉진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후에) 이제 출구전략을 쓸 때인가’하고 나면 이미 늦습니다. 환자의 열이 많이 올라간 뒤에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겁니다. 미리 체온 조절을 해야 하는 거죠. 이제 세계적으로 출구전략을 써야할 때가 가까워온 게 아닌가 합니다만, 실업이 늘어나고 재정 적자가 많이 누적된 미국의 경우 아직 출구전략을 쓰기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출구전략 실행을 검토할 때가 가까워 온 것 같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미국에서 시작되는 등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많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경제는 어떻게 갈 것으로 보시는지요?

이제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승자독식 등의 경제철학은 무너졌습니다. 다시는 그런 시기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금융 위주로 경제를 꾸려가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금융은 실물과 달리 거품이 일어나기 매우 쉽지요. 그래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선진국이 더 고생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적자가 자꾸 증가하고, 양극화가 심화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헬스케어 분야 등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추진이 잘 되지 않아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잡혔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세계은행(IBRD),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등이 이 때 등장했지요. 미국 재무장관은 새로운 달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자꾸 달러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IMF나 세계은행이 지금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세계경제를 효율적으로 주도할 나라가 새로 나타나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당장 등장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일단은 다극화 체제로 가는 걸로 봅니다.

최근 들어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데요.

HSBC의 회장이 얼마 전 홍콩에 왔을 때 “세계 경제의 중심이 여기(중국)에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은행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유럽이 아니라 이제는 중국이라는 것이죠. 중국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 지금, 중국은 달러의 약화가 아니라, 미국이 달러 가치를 유지해 주길 바랄 것입니다. 당장 인민폐의 달러 대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중국의 위상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중국 경제가 아직 그럴 만한 역량은 없습니다. 급히 서둘고 있지도 않습니다. 중국은 천천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리더십을 갖고 책임을 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리더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지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는데, 그에 따른 비용이 엄청납니다. 중국은 이런 걸 절대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미국과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같이 가면 좋겠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내년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정부에서 내년 경제 성장률을 3~4% 정도로 기대하고 있는데, 저도 그 정도면 만족이라고 봅니다.

화제를 바꿔 몇 가지 논란을 빚고 있는 이슈에 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 추진을 놓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을까요.

전문가가 아니라 4대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큰 사업을 추진할 때는 가장 성공하기 쉬운 강 하나를 골라 작게 시험을 한번 해보고 그 결과를 본 후에 확대를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중국에서는 뭐든지 한번 시험을 해보고, 성공한 걸 본 다음 확대를 합니다. 경제특구 만들 때 그런 식이었지요. 연안에 경제특구를 해보고 잘 되니까 내륙으로 확대를 했습니다. 우리의 4대강 정비도 그런 방법이 어떨까요. 엄청난 대규모 공사인데 동시에 4대강에서 시작했다가 잘 안될 경우 돌이키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등 노사 선진화 정책 또한 내년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해법은 없는지요.

노사 문제는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 잘은 모릅니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에 대립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근로자와 사용자들이 법으로 다툴 게 아니라 다른 해결책을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사람들의 의식도 좀 부드러워지고, 남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제로섬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측면이 강해 보입니다. 경제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의 의식도 선진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년도 경제정책 중 중점을 둬야 하거나 보완을 해야 할 부분은 없습니까.

제가 전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 여사의 자서전에서 읽은 내용인데, 우리도 생각할 만한 대목이 있어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대처 여사는 먼저 ‘우리 보수당은 항상 세 가지 기본 원칙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제가 대처주의자는 아니지만 대처 수상의 기본원칙은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습니다.

첫째 원칙은 ‘모든 노력을 당시 영국의 경제 침몰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1970년대 후반이었는데,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영국의 다른 모든 것이 다 안 된다는 판단이었던 거죠. 둘째 원칙은 ‘재정지출은 어떤 경우에도 당초 설정한 제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필요한 기본노선입니다. 셋째 원칙은 ‘우리 당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것을 좀 더 많이 하거나 적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고한 노선이 그의 긴 집권을 성공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제를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우리가 돈(재정)을 얼마나 쓸 수가 있고, 인력을 어떻게 양성을 해야 하는지,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등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정책 구상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금융위기 이전과 달라서 정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아울러 정부의 ‘보이는 손’이 중요하게 됐습니다. 정부가 방향을 잘 설정해서 경제의 청사진을 머릿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만들려면 몇 달 이상 걸리겠지만,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벌써 꽤 세월이 흘렀는데, 좀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확실히 가시화해서 정부도 알고 국민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밀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대처 여사의 3대 원칙은 국민이 환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대처는 그것을 알고 밀고 나갔지요. 무조건 억지를 쓴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세종시 문제, 4대강 정비사업, 복수노조 문제 등을 모두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솔직히 세종시 문제의 경우, 충청도 살리기 수준의 접근은 곤란합니다.

‘경제 개혁’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개혁에는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어서 필요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개혁을 하자면, 비전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비전과 전략이 없는 정책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국민이 따라 오지도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들어 서민위주 중도 실용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중도주의로 간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괜찮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극단은 피해야지요. 다만, 이걸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정치, 경제, 교육 등이 다 여기에 맞춰져야 우리나라가 살아납니다.

애제자인 정운찬 총리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십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기를 갖고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세를 갖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의 시 중에서 ‘구름 뒤에는 해가 비친다. 너의 운명은 다른 이의 운명과 같다. 모든 사람의 일생에는 비가 오는 때가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큰 일에나 작은 일에나 흔들림 없이 몸을 던져서 전력을 다하면 다 좋아질 것입니다. 정 총리가 잘 해나갈 것으로 봅니다. 

정 총리가 지난 번 총리 제의를 받고 교수님께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는데, 사실인지요?

아닙니다. 저는 그때 백두산에 등산을 갔었지요. 압록강 쪽에서 올라갔는데, 백두산 정상쯤에서, 어떤 신문사로부터 전화로 그 얘길 들었습니다. (정 총리가) ‘이제 결심을 했구나’했지요. 이 대통령이 좋은 사람을 뽑았다 싶었습니다.

산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등산을 자주 하십니까?

전에는 많이 다녔는데, 제 나이도 있고 해서 등산은 자발적으로 접었습니다. 뭐든 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산책을 자주 합니다. 우리 집이 봉천동인데 거기서 30년을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오후에 낙성대에서 서울대 후문 직전까지 한 시간쯤 걷지요.

조순 명예교수 프로필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49년 서울대 상대 졸업. 1967년 UC버클리 경제학박사. 1968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1992년 한국은행 총재. 1995년 서울시장. 1997년 민주당 총재. 한나라당 총재. 2000년 민주국민당 대표. 2002년 서울대 명예교수. 現 학술원 회원.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 대담 : 김용태 편집장 / 정리 : 이혜경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