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 출신의 보통 샐러리맨. 그는 제조업에 뛰어든 지 10년 만에 평생 호강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회사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동업자에게 넘기고 경영난으로 헤매고 있던 반도체 회사를 인수, 또다시 피 말리는 창업이나 다름없는 힘겨운 생활 속으로 자신을 던졌다. 이번엔 5년 만에 회사를 탄탄대로에 올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금융맨으로도 성공적인 변신을 거듭해 다음 스텝을 향해 맹주하고 있다. 현금자동지급기(ATM) 제조는 물론 최근 신용평가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이스그룹의 김광수(47) 회장이 주인공이다. 10월23일 서울 여의도 본사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나 ‘비즈니스 3관왕’의 비결과 전력질주하고 있는 ‘다음 스텝’에 대해 들어봤다.

“네 번째 성공은 아시아 지역의

  채권평가 부문에서 이룩할 것”

김광수 회장의 사무실은 19.8㎡(6평) 남짓한 공간에 책걸상과 책장이 전부일 정도로 소박하다. 같은 층에 있는 임원들의 사무실도 김 회장의 사무실과 똑같은 크기와 구조다. 때문에 김 회장이나 임원들은 손님이 찾아오면 9.9㎡(3평) 크기의 조그만 접견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는 김 회장이 강조하는 ‘공평’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했다.  

“우리 회사의 사훈은 정도경영, 자율경영, 공평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공평입니다. 공평하지 않으면 정도경영과 자율경영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LG전자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할 때 공평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5년간 LG전자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던 김 회장은 대학선배와 함께 1992년 초정밀 다이캐스팅을 기반으로 전자·통신 및 IT 분야 핵심부품 개발 및 제조업체인 KH바텍을 설립했다.

“돈은 없고 기술만 있는 사람이 큰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제조업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돈 500만원과 은행 차입금 500만원을 합친 1000만원을 마련, 동업자인 대학선배와 직원 3명 등 5명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때 꿈에 부풀어 ‘제조업에서 큰돈 벌고 나면 그다음엔 뭐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금융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겠다고 정했죠. 파이낸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할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창업자와 마찬가지로 김 회장의 사업 초반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하기를 수십 차례. 어느 날엔 새벽에 일어나 주차된 승용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돈방석 박차고 나가 또다시 도전 … 제조업 2관왕 달성

IMF의 고비를 넘긴 김 회장은 사업에 뛰어든 지 10년이 지난 2002년에 돈방석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KH바텍의 매출은 1999년 50억원에서 2002년 577억원으로 11배 성장했고, 순익은 1999년 7억7000만원에서 2002년 137억원으로 무려 17배나 늘었다. 이에 따라 한때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1등에 오르기도 했다. 김 회장이 이런 회사를 떠난다고 하니 회사 안팎에선 “(김 회장이) 미쳤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김 회장이 회사를 떠나던 2003년에도 KH바텍은 매출 918억원, 순익 200억원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내가 공장장하면서 돈 관리도 했습니다. 남 선배(남광희 KH바텍 대표)는 그동안 내게 돈에 관한한, 예컨대 ‘통장 보자’는 얘기도 한 번 안했습니다. 그만큼 나를 믿어줬습니다. 그런데 내가 (회사를) 나가겠다고 하니 주변사람들이 의아해 했겠죠. 매출이 월 100억원 가까이 됐고, 그중 40%가 남을 정도로 마진이 좋았고, 또 보유현금만 해도 600억~700억원이 됐으니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 회장이 10년 고생 끝에 든든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회사를 떠난 진짜 이유는 뭘까. 

“회사가 잘 되자 나는 이마트처럼 금속 부품의 대형 유통매장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회사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이제 살 만한데 왜 쓸데없는 데 돈 쓰느냐”며 리스크 있는 사업에 대해 반대했던 것이죠. 그동안 한 번도 내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던 남 선배도 이번엔 말리더군요. 그렇다면 ‘내가 (회사를) 나가서 만들자’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2003년 KH바텍 지분을 처분한 김 회장은 그해 반도체 등 전자부품 회사인 서울전자통신을 인수했다. 금속부품 유통업이라는 게 국내에서 쉽게 안착하기 힘든 사업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서울전자통신에 대한 2년여에 걸친 경영 정상화 작업 결과, 2003년 72억원 적자에서 작년 82억원의 흑자로 돌려놨다.

또 2007년 서울전자통신에서 독립시킨 카메라 이미지센서 업체 에스이티아이(SETi)는 중국 시장을 석권하면서 글로벌 5위 업체로 급부상했다. 에스이티아이는 2007년 매출 122억원, 순이익 21억7000만원에서 작년 매출 703억원, 순이익 106억원으로 매출 및 순이익 모두 껑충 뛰었다. 이로써 김 회장은 KH바텍에 이은 서울전자통신으로 제조업 2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중국에서 의외로 반도체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우리나라의 IT기술이 최고 수준이다 보니 반도체에 대한 평가도 좋았던 것 같아요. 현재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 로우엔드 부문은 미국을 밀어내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올해는 국내 삼성전자에도 납품할 계획입니다.

 한·중·일 공동으로 아시아 채권평가 주도권 모색

사실 김 회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금융업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던 1992년 제조업으로 돈 벌면 금융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김 회장을 금융업으로 이끈 것은 공교롭게도 2관왕의 타이틀을 안겨준 서울전자통신이었다. 2003년 서울전자통신 인수 때 주간사였던 한국신용정보(이하 한신정)의 제안으로 2005년 한신정의 대주주로 올라섰다. 한신정은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전자금융 등 금융 인프라 관련 계열사들을 두고 있어, 김 회장에게 제조업 CEO에 금융 인프라 프론티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2008년 김 회장은 내친 김에 한신정평가의 경쟁사였던 한국신용평가정보(이하 한신평정보)를 인수, 본격적인 기업 및 개인평가 사업에 진출했다. 이로써 김 회장은 한국 신용평가 사업의 선두주자로 우뚝 섬과 동시에 사업 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2007년 11월 나이스그룹을 선포할 당시 그룹은 국내 최고의 금융 인프라 그룹이라는 시장 지위를 이미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내 금융 인프라 시장 특히 국내 신용정보 시장은 글로벌 업체 1개사 매출에도 훨씬 못 미치는 영세한 규모였고, 이마저도 채권추심 위주의 편중된 시장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영세한 시장 규모 아래에서는 투자를 통한 서비스와 기술의 발전, 공정하고 발전적인 경쟁을 통한 상호 성장 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경쟁력이 우월한 글로벌 업체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또한 개인신용정보 시장의 기준은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준이 들쭉날쭉하면 신뢰가 떨어지잖아요. 외국도 개인신용정보 회사들이 여러 개가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한신평정보를 인수하게 된 겁니다. 최근 개인신용정보가 오남용 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얻는 게 사실입니다. 장기적으로 미래사업단을 만들어 정보의 오남용을 통제하면서, 정보가 좋은 방향으로 활용돼 궁극적으로 전 국민의 이익이 되는 방법들을 찾을 생각입니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21일 중요한 국제적인 행사를 치렀다. 한신정평가, 일본 최대 신용평가사인 R&I, 중국 다공(Dagong·大公) 등 한·중·일 3개국 신용평가사들이 모여 신용 포럼을 가진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 3개국 신용평가사들은 무디스나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아시아 지역의 자본시장과 신용평가의 특수성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대체할 지역 내 독자적인 신용평가 시스템 형성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한신정평가는 아시아 역내 채권시장 발행 기업에 대한 공동평가를 수행하고 상대방 국가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을 상호 인정하는 등 단계별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피치나 무디스가 아닌 한·중·일 평가사들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기업평가 사업 주도권을 거머쥐자는 뜻이다.

“이번 포럼에선 3개국의 공조의견이 탄력을 받았습니다. 다만 일본의 R&I가 국가신용등급 회사이면서 일본 기업의 절반 이상을 평가하고 있는 등 가장 앞서 있다 보니 소극적인 게 사실입니다. 반면 중국 다공은 (아시아 역내 채권시장 발행 기업에 대한 공동평가를) 당장이라도 하자고 주장했지요. 이처럼 일본과 중국은 서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역학구도를 이용하면 우리가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됩니다. 예컨대 공동평가사 설립을 위한 TFT가 만들어진다면 한국에 유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도 영업이익 목표 1000억원 올해 실현 기대

나이스그룹은 올 들어 ‘아시아 제1의 금융 인프라 그룹’이라는 비전을 천명했다. 그동안 국내 1위라는 슬로건을 세웠지만 작년 한신평정보를 인수하면서 목표를 높여 잡은 것이다. 이는 김 회장의 ‘다음 스텝’인 셈이다.

“IT기술을 기반으로 동남아 지역에 금융 인프라와 관련, 진출해 볼 생각입니다. 이미 사장단이 캄보디아, 베트남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크게 성장했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덩치를 키운 이유는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섭니다.”

김 회장은 개인적인 목표와 관련, “아시아 제일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 직원들에 대한 공평한 성과배분을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23개 계열사를 거느린 나이스그룹은 올 상반기 매출 3476억원, 영업이익 5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 10.2%, 16.3% 성장했다. 올 연말 목표는 매출액 7500억원, 영업이익 980억원이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000억원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경기가 좀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목표를 세울 때 항상 가능한 쪽으로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그보다 더 나아질 것 같습니다. 올 매출은 당초 목표(7500억원)보다 많은 8000억원으로 500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내년도 목표인 1000억원이 올해 실현가능할 것 같아요. 내년 매출은 1조원이 가능할 것 같고요.”

아직 경기가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스그룹이 이처럼 쾌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올 초 ‘위기 대응을 위한 선제적 관리경영 강화’ 시스템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룹의 인적자원 관리에 남다른 신경을 썼기 때문이라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교육 예산을 금융위기 이전보다 대폭 늘려 임직원들이 능력계발에 집중 투입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의 3관왕 비결에 대해 물었다.

“문제해결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문제가 발생하면 대충 파악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되면 자꾸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죠. 그러나 저는 문제에 대한 원인을 100% 파악하기 전에는 다음 단계로 옮기지 않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분석하고, 아이디어를 내서 완벽하게 해결하고 넘어갑니다.”

김광수회장 약력

1962년 경북 상주 출생. 1985년 경북대(전자공학) 졸업. 1985년 LG전자 입사. 1994년  KH바텍 창업. 2003년 KH바텍 부사장. 2003년 서울전자통신 대표. 2007년 한국신용정보 이사회 의장, 현 나이스그룹 회장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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