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명품에 대한 열망은 특히 여성들에게 강렬하다. ‘골드 미스(Gold Miss)’, ‘명품 세대(Luxury Generation)’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다. 최근에는 자신만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속파 여성을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자랑스럽게 깨달은 사람들(Proud Realizers of Added Value)’이라는 뜻의 ‘프라브족’이 꾸준히 늘어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명품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여성들이 더 많다. 남성들의 명품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이번 호부터 시리즈로 명품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샤넬’이 첫 번째다.

브랜드 스토리

“드골이나 피카소와 더불어 샤넬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소설 <인간의 조건>으로 유명한 현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로 추앙받던 앙드레 말로가 한 말이다. 그만큼 샤넬이란 인물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얘기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품 ‘샤넬’은 1883년에 태어난 한 프랑스 여성 디자이너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 별명은 ‘코코(Coco).’ 그의 생애가 샤넬이란 브랜드의 역사다. 샤넬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프랑스 서부 페이드라루아르주(州)의 시골 마을인 소뮈르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12세 때 결핵으로 여의었다. 포도주 행상인 아버지에 의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보내져 소녀 시절을 엄격한 규율 속에서 암울하게 보냈다. 그러나 그때부터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싹은 자라기 시작했다. 샤넬의 전형적인 화이트와 블랙의 앙상블은 이때 수녀복, 고아원 아이들의 유니폼에서 나온 영감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 전 세계 유명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 샤넬을 상징하고 있는, ‘C’자가 반대 방향으로 두 개가 겹친 로고는 어릴 적 햇빛에 비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샤넬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숙녀로 자라 수녀원에서 뛰쳐나온 그녀는 파리 남쪽 280여km에 위치한 지방도시인 물랭의 한 카페에서 가수로 일했다.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했던 샤넬은 당시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러 그녀를 좋아했던 손님들이 ‘코코’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이후 죽고 나서도 ‘코코’는 샤넬의 향수 이름으로 남아있다. 여성의 인생행로에서 남자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이때 샤넬이 만난 에티엔느 발상이라는 돈 많은 기병장교는 그녀를 화려한 사교계로 이끌어 오늘날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탄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남다른 안목과 손재주가 있던 그녀는 사교계에서 만난 여자들에게 모자를 만들어 선물했고 입소문이 퍼져 인기를 끌었다. 그녀에게 모자를 선물 받고 싶어 하는 여배우와 부유층 여성들이 많아지자 샤넬은 아예 모자 가게를 열기로 결심한다. 그때 발상은 반대했다. 그리고 그와의 이별. 하지만 그녀는 새로 만나게 된 또 다른 남자 친구인 보이 카펠의 도움을 받아 파리의 번화가 캉봉에 ‘메종샤넬’이란 이름으로 모자 가게를 낸다. 1909년, 지금의 샤넬로 이어지는 그녀 생애 최초의 부티크를 마련한 것이다. 이어 1913년 노르망디의 유명 휴양도시 도빌에 새로 부티크를 열어 모자뿐 아니라 옷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디자이너로서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거추장스러웠던 코르셋과 페티코트를 없애고 무릎까지 짧아진 그녀의 옷은 당시 파격이었다. 전통적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프랑스에서 그녀의 옷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수많은 부자들은 그녀의 옷이 내뿜는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로써 곧 유럽의 유행을 이끌었고 샤넬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샤넬에게 ‘샤넬만의 색깔’을 한층 빛나게 했다. 전쟁으로 남성들이 떠난 도시를 여성들이 지켜야했던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사무실이나 생산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화려함과 사치스러움보다는 세련되고 깔끔한, 그러면서도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샤넬 스타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지 천의 드레스, 검정과 흰색의 단순하고 절제되며 세련된 투피스. 당시 ‘혁명적’이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왔던 샤넬의 디자인에 대해 패션 역사가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샤넬의 의상이 선도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액세서리와 보석을 디자인하기도 했던 그녀는 ‘패셔너블한 여성의 진정한 모습’을 부각시켰고, 당시 미국의 <보그(Vogue)>지에서는 이러한 샤넬의 패션 경향을 ‘토털 룩(Total Look)’이라는 신조어로 호평했다. 전쟁이 끝난 뒤 샤넬은 1921년 그라스 지방의 유명한 조향사(調香士) 에르네스트 보와 함께 세계 최초의 디자이너 향수 ‘No.5’를 내놓고는 사상 초유의 대성공을 거둔다. ‘코코’와 ‘알뤼르’에 이르기까지 샤넬 여성 향수의 원조격인 이 향수는, 한 인터뷰에서 마릴린먼로가 잠자리에서는 무엇을 입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샤넬 No.5만을 입고 잔다’고 한 대답으로 아직까지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의류는 물론 메이크업에서 향수, 액세서리까지 패션의 모든 것을 갖추게 된 샤넬은 그 해에 단순한 실내장식으로 오늘날 ‘샤넬 하우스’의 트레이드마크로 된 파리 캉봉가(街) 31번지에 정착한다. 1935년에는 캉봉가의 5개 건물에 무려 4000여 명의 종업원이 샤넬을 위해 일하게 됐고, 유럽은 물론 미국, 극동 지방까지 아우르는 시장에서 한정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대형 토털 명품 패션 브랜드로서 자리 잡게 된다.

샤넬은 파리에서 디자이너로, 사업가로의 명성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사교계의 중심인물, 예술인 후원자로서 활약을 펼친다. 친분을 나눈 사람도 다양하다. 불세출의 화가 피카소는 물론 살바도르 달리, 노르웨이 여류작가 카밀라 콜레트, 시인 막스 자코브, 소련 출신 안무가 세르게이 리파르, 음악가 조르주 오릭 등 예술가들은 물론 윈스턴 처칠, 윈저공과 같은 영국 총리나 왕실의 주요 인사들과도 절친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재능이 충만했던 러시아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안무가이자 발레 제작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등을 숨은 곳에서 후원했다.

이렇듯 패션의 아성을 지켜오던 샤넬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돌연 사라졌다. 숱한 상류층 남자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자유분방함을 만끽했던 그녀는 전쟁 중 독일 장교와 사랑에 빠진다. 결과는 혹독했다. 전후 부역자 색출이 시작되자 샤넬은 부티크 문을 닫고 사랑한 죄밖에 없었다고 항변하며 조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그녀의 삶이었던 패션을 접는 뼈아픈 벌을 받은 것이다.

1954년 그녀는 돌아왔다. 71세의 나이로 캉봉가에 부티크를 다시 열어 샤넬 스타일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금색체인이 달린 누비 숄더백, 금색 단추에 옷단을 트리밍한 트위드 슈트(tweed suit), 단순하게 보이지만 우아한 실크 블라우스, 하반신이 길어 보이는 베이지색 투톤 구두가 매치되어 완성된 ‘샤넬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렇게 20세기를 풍미했던 샤넬은 1971년 그녀의 마지막 컬렉션을 며칠 앞두고 파리 리츠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는 그녀의 말처럼 21세기 지금도 1983년부터 샤넬의 디자인을 담당한 칼 라거펠트에 의해 계승된 샤넬 스타일은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브랜드 컨셉트&이미지

샤넬은 여성다움을 간직하면서도 자유로운 여성, 과감하면서도 때로는 순수한 여성, 즉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샤넬은 초창기에 지금까지도 ‘샤넬라인’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치마의 길이를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올려 여자들에게 활동성을 선물했다. 여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샤넬은 흑백의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절제미를 보이는, 남성 정장으로만 여겨졌던 바지 정장을 여성들이 입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같은 원형은 점점 진화되어 가면서 마침내 옷의 끝단을 트리밍 처리한 트위드 재킷, 금색 단추, 금색체인이 달린 다이아몬드 마름모 문양의 누비 숄더백, 동백(카멜리아) 문양, 짙은 색과 밝은 색의 대비를 이루는 투톤 슈즈, 색채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인조 보석(costume jewelry) 등이 조화를 이룬 샤넬 브랜드로 전 세계를 매혹시켰다. 샤넬의 창의성은 20세기 중반부터 패션의 본고장 파리는 물론 영국 런던에서 홍콩,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세계 곳곳에 이르기까지 의상뿐만 아니라 화장품, 액세서리에 이르는 토털 룩 제품들을 선보이며 최고의 세련미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샤넬의 사후 1983년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로 명성을 얻고 있던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문화적 유산’에 걸맞은 열정과 독창성,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요소를 조금 더 발전시켜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는 괴테의 말을 신조로 삼았던 그는 ‘기존의 것에 대한 존중과 풍부한 유머’의 개념을 기존 샤넬 스타일에 접목시켰다. 새로운 색채와 소재를 채택하면서도 샤넬만이 갖는 노하우와 고급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전 세계의 유명 매장에서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칼 라거펠트와 함께 샤넬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자크 엘루다. 그는 향수 ‘코코’와 ‘에고이스트’가 담기는 용기와 샤넬 시계 등은 물론 신소재에 따른 다양한 디자인의 핸드백을 디자인해 샤넬의 의상 이외의 제품들에 샤넬의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지난해에는 영화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 키라 나이틀리를 샤넬의 향수 모델로 내세우는 등 샤넬의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미래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의 소원이 이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유연성, 기능성, 경쾌와 세련의 조화라는 디자인의 기본 모드에 눈부신 화이트, 깊이 있는 블랙, 부드럽고 단아한 베이지, 때로는 화려한 금빛을 기본 색조로 마음껏 펼쳐진 샤넬 스타일. 거기에 부드러운 트위드, 광택 있는 새틴, 주름, 체인, 누빔 처리 등 소재와 그가 갖는 매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고급스러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선호하는 샤넬 스타일에 대해 기호학의 대가인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패션의 새로운 문체’라며 극찬했다.

2007 봄·여름 레디 투 웨어 컬렉션

올해 여성복 유행의 주요 트렌드는 스포츠룩의 디테일을 가미한 스포티즘, 심플한 선과 색의 미학을 중시하는 미니멀리즘,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것이 바로 ‘사이보그 패션’ 퓨처리즘으로 요약된다.

칼 라거펠트의 샤넬도 샤넬만의 매력을 간직하면서 대체로 그 범주에서 머물렀다. 그는 2007 봄·여름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서 샤넬 패션 하우스의 코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이들을 진화시킨다. 유머와 경쾌함이 가미된 경이로운 가벼움. 짧거나 긴 라인을 교차시키고 이중적 배분과 대비를 통한 작업은 어떤 색과도 어울리는 블랙과 화이트를 주조로 드러내며 골드와 실버의 금속성도 적절히 매치시킨다. 미래주의적 유행의 실버가 눈에 띈다.

블랙과 화이트에 승부를 건 의상들은 길고 슬림한 새로운 비례를 보여준다. 가볍게 하늘거리는 랩어라운드형 부드러운 스커트는 바디라인을 따라 흐른다. 플리츠 쉬폰 또는 가벼운 실크 크레이프로 만들어진 이 스커트들은 얇은 패브릭, 코튼 블라우스, 티셔츠, 크레이프 혹은 가벼운 트위드 재킷과 조화를 이룬다. 드레스도 즐거운 움직임을 따른다. 매우 짧은 길이에 앞부분 주름장식을 한 드레스는 베이비 핑크와 화이트, 블랙 체크무늬의 라이트 트위드 소재를 이용한 수영복 버전들로 소개된다.

깃털처럼 가벼운 벨트 달린 트위드 슈트는 화이트 코튼의 안감을 보여주며 순수한 코튼 블라우스를 드러내기도 한다. 옐로우 배경에 해진 것 같은 처리를 한 솔로 재킷은 블랙 시퀸 소재 브리프(짧은 바지)와 잔잔하게 주름 잡힌 쉬폰 블라우스 위에 연출된다.

새로운 진(jean), 새로운 비례. 오간자 베일 밑에 데님을 매치시키고 이 보편적인 아이템에 웨이스트라인을 강조한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여러 의상들은 풍부한 액세서리와 어울린다. 네클리스와 체인벨트, 커다란 골든 또는 실버 브레이슬릿, 마드모아젤 샤넬의 어록을 새겨 넣은 아이템도 있다.

샤넬 코리아

우리나라에서 샤넬 제품은 공식적으로는 1986년 이후 면세점 패션 부티크와 향수 및 화장품 카운터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1991년 샤넬 코리아가 설립되어 국내에 화장품과 향수 제품의 유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샤넬 코리아(1996년 샤넬주식회사로, 1998년 샤넬유한회사로 상호변경)의 설립으로 샤넬의 상품과 서비스를 전 세계의 고객들과 동시에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샤넬 코리아는 현재 백화점 유통을 위한 샤넬유한회사와 면세점 유통을 위한 샤넬듀티프리유한회사로 나뉘어 있다. 두 법인은 각각 3개의 사업부서로 나뉘어 있으며 1992년 처음 시작된 향수·화장품사업부는 서울과 지방 유명 백화점 60개, 면세점 15개 카운터를 운영하고 있다. 패션사업부는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을 첫 부티크로 하여 1997년 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서울 백화점 5개, 부산 1개, 대구 1개, 그리고 면세점 7개 부티크를 마련했다. 2002년 시작된 샤넬의 보석을 판매하는 화인주얼리사업부는 서울 갤러리아백화점과 부산 롯데부산면세점에 각각 1개의 부티크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샤넬 코리아의 매출액은 59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정도 신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샤넬 코리아는 정확한 매출 및 영업 이익, 경영 전략 등은 밝히지 않았다.

본사인 프랑스 샤넬 (샤넬SAS)은 전 세계 샤넬 제품 생산과 판매를 관리하고 있다. 샤넬SAS 역시 3개 부서가 밀접한 상호협조 속에 자율적으로 경영되고 있다. 제품 개발 및 판매 분야에 있어서 모든 결정은 샤넬 마크의 일관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품 생산은, 패션의 경우 샤넬 내부 및 외부 워크숍에서, 향수 및 화장품은 자체 생산 라인으로, 시계는 스위스의 샤넬 아틀리에에서 진행되며 엄격한 기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전 세계 판매 또한 엄격한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샤넬 부티크와 화장품 카운터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색조로 통일, 장식되어 있다. 모든 판매 사원들은 본사에서 만든 매뉴얼에 따라 샤넬의 브랜드 가치를 인식하는 한편 고객에게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정민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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