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회사들이 외채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의 목을 조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잠비아에 이르기까지, 채무국에게 지불을 강요하기 위해 이들은 소송을 하며 성가시게 굴고 창피를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 활동가들은 이른바 \'독수리 펀드\' 회사들이 가뜩이나 가난한 나라를 먹이로 삼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 금융시장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수행할 뿐이다. 부패하고 무책임한 체제를 추궁하는 복수의 천사 노릇이 그것이다.

구세주인가, 피눈물도 없는 ‘청부 폭력배’인가

고공화국의 드니 사수 응궤소(Denis Sassou Nguesso) 대통령은 통 크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에 일련의 유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그와 수행원 일행은 최고급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숙소로 잡았다. 이 호텔은 응궤소 대통령이 단골로 이용하는 곳이다. 엿새 뒤 방값을 계산할 때 계산서에 찍혀 나온 금액은 10만달러가 넘었다. 응궤소는 최고급 크리스털 샴페인을 포함한 룸서비스 비용만으로 2만달러 이상을 탕진했다. 이것은 1인당 국내총생산이 고작 1700달러이고 평균수명이 54세에 지나지 않는 가난한 중앙아프리카 나라의 대통령이 어떻게 흥청망청 사는지 잘 보여주는 최근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2005년에 응궤소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호텔가에 뿌린 돈은 30만달러가 넘는다.

응궤소의 방탕한 생활 습관은 올해 초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삶이 서구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응궤소 대통령 주위에는 대통령의 흥청망청한 행태를 언제든지 폭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능력 있는 적들이 우글우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로 콩고에 수천만달러를 빌려준 빚쟁이들이다.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콩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구의 은행과 투자가들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빌려 썼다. 이론적으로 이런 차관 거래는 합리적인 것이다. 돈을 빌린 나라의 정부는 당장 필요한 현금을 얻을 수 있고, 서구 투자가들은 정기적인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합법적 대출을 해준 것이다. 그러나 콩고는 서구로부터 빌린 차관의 상환금을 제대로 갚을 수가 없음을 곧 깨달았다. 가난하고 국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들 대부분이 비슷한 사정이었다. 결국, 록 스타인 U2의 보노(Bono) 같은 활동가의 노력에 힘입어, 가난한 나라들은 서구 국가나 다국적 기관에 진 빚 수십억달러를 탕감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탕감액은 콩고 같은 개발도상국이 안고 있는 부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외국 정부나 국제기관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나 기업에도 빚을 지고 있다. 이들 중 개인 기업이 돈을 받아내는 데 훨씬 더 열심인 것은 물론이다.

콩고의 경우 엘리엇 어소시에잇츠츠(Elliott Associates)라는 헤지 펀드에 빚을 지고 있다. 이 회사는 외국 정부로부터 빚을 받아 내는 데 탁월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맨해튼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수많은 외국 정부로부터 채무를 받아 내 이 분야의 일인자로 떠올랐다. 흔히 ‘독수리 펀드(vulture fund)’라는 악명으로 불리는 이 회사와 몇몇 비슷한 헤지 펀드 회사들은 빚을 떠안고 있는 외국 정부를 압박해 돈을 받아 낸다. 독수리 펀드의 먹이가 되는 나라는 흔히 가난하고 부패한 국가들이다. 라이베리아, 니카라과, 페루, 시에라리온, 우간다, 잠비아 등이다. 독수리 펀드 대부분은 한적한 곳에 회사를 두고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케네스 다트(Kenneth Dart)는 이러한 종류의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인 사람 중 하나다. 스티로폼 컵 회사의 상속인으로 출발한 그는 카리브해의 케이만섬에 칩거하며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다. 다트의 회사 같은 펀드 회사들은 재정 악화로 시달리는 외국 정부의 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서구 은행들은 도저히 할 수 없고 개인 투자가들은 알 수도 없는 방법으로 빚을 받아낸다. 여기에는 소송을 제기하거나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창피를 주는 등의 방법이 포함된다. 이러한 방법은 꽤 잘 먹혀들며, 결국 채무국은 빚의 일부라도 갚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펀드 회사들은 톡톡히 수익을 올리고 있다. 1998년에 페루는 엘리엇사에 5800만달러 이상을 상환했다. 엘리엇이 이 채권을 사들일 때의 가격은 이보다 훨씬 낮았다. 니카라과는 2억달러 이상을 상환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바로 올해, 잠비아는 브리티시 버진아일랜드에 사무실을 둔 독수리 펀드 회사에 1500만달러가 넘는 돈을 갚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민간 채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채권은 1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선과 악의 두 얼굴을 지닌 독수리

가난한 나라에 대한 부채를 탕감하라고 요구하는 활동가들이 독수리 펀드를 단골 공격 목표로 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부채 경감 활동가들은 “이 작자들은 인간의 참혹함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들이다”고 내뱉는다. 콩고의 응궤소는 독수리 펀드를 ‘바다 속의 구렁이’ 혹은 ‘청부 폭력배’라고 부른다. 채권 환수 회사들을 경멸하는 것은 서구 자본도 마찬가지다. 영국 재무부의 한 대변인은 “이 회사들은 개발도상국의 돈줄을 말려버림으로써 학교나 병원을 짓는 데 쓸 돈을 부족하게 만든다”고 단언한다. ‘주빌리 채무 탕감 운동’의 캐롤라인 피어스(Caroline Pearce)는 독수리 펀드 회사들의 먹이가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돈 갚을 능력이 조금 더 있는 중류 국가라 하더라도 여전히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악성 채권을 사들여 최대한 뜯어내려고 하는 독수리 펀드 회사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이 뉴먼(Jay Newman)은 엘리엇 어소시에잇츠의 분산 투자 매니저다. 맨해튼의 소박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면, 유달리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는 날렵하고 상냥하다. 그러나 뉴먼을 보노와 맞붙여 놓는다면, 목소리로는 몰라도 도덕적 열정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을 것 같다. 갚아야 할 돈을 제대로 갚지 않는 외국 정부에 대한 그의 경멸은 뿌리 깊으며, 독수리 펀드가 채권 거래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를 규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외채 탕감 활동가들은 빚을 못 갚는 가난한 나라를 구원의 대상으로 보지만, 뉴먼에게는 “법치를 무시하고 법 체제를 부정하는” 부패하고 게으른 나라들로 비친다. 뉴먼과 그의 동료는 독수리 펀드가 가난한 나라의 돈줄을 말린다는 주장을 간단히 일축한다. 엘리엇사의 대변인은 “국고를 탕진하고 나서 정당한 부채를 회피하기 위해 죽는 소리나 내는 부패하고 무능한 체제가 바로 부채 경감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외채 탕감론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들 나라가 경제개발을 이루려면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나라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채무자와 채권자는 어떤 형식으로든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과거 경험을 보면, 채권자 대부분은 곤경에 빠진 채무자와 타협해 현실적인 상환 방안을 모색할 자세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독수리 펀드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경우 독수리 펀드는 부채 전액을 완납하라고 요구한다. 채무자의 곤란한 사정을 고려해 1달러 빚에서 60센트만 받을 생각이었던 채권자는 독수리 펀드가 1달러 전액을 다 받아주겠다고 나서면 생각이 달라진다. 많은 외국 정부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클리어리 고틀리브 법무회사의 변호사 리 부크하이트(Lee Buchheit)는 “이것은 마치 만원버스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섰더니 역도부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고등학생 놈이 날름 자리를 차지하는 꼴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독수리 펀드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커다란 먹잇감은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가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자신감 넘치는 라틴 강국이다. 이 나라는 독수리 펀드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세계의 수많은 투자가들이 이를 지켜본다. 싸움의 결과는 세계 자본과 금융시장에 파장을 미칠 것이며, 다른 수십여 나라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채 경감 운동은 할리우드 명사들의 지지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빚을 받아내는 일은 여전히 세계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다. 아르헨티나 사례는 이러한 요소가 제대로 작동할지 시험해 보는 무대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치르는 전쟁

2001년에 아르헨티나를 괴롭힌 금융 및 정치 위기는 그 해 12월 최고조에 달했다. 자본은 나라를 빠져나갔으며, 정부는 빚 수렁에 처박혔다. 정부 지도자는 수만 명에 이르는 개인 투자가들과 연금·기금, 금융 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부채 상환 중단 사태로써는 사상 최대였다. 이 조치는 아시아의 금융 위기와 러시아의 경제 악화로 가뜩이나 휘청거리고 있던 국제 금융시장을 더욱 뒤흔들어 놓았다.

한편, 아르헨티나 국민은 정부의 지급 중단 조치를 금융 독립 선언으로 간주하고 환영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Adolfo Rodriguez Sas)가 의회에서 이 조치를 발표했을 때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 관료는 이러한 조치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임을 인정했다. 한 고위 관료는 “우리는 파산했으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이 조치를 통해 800억달러가 넘는 국채 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었다. 수천 명의 국채 소유자들은 애를 태우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국채 소유자 중 상당수가 분산 투자를 적용한 금융회사들이었다. 이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지불 중단은 성가신 문제였을 뿐 재앙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측은 사정이 달랐다. 1990년대 말에 이탈리아의 연금 수혜자들은 높은 수익률에 이끌려 금융 위기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아르헨티나 국채를 대거 매입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금융 상태가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이 확실해지자 투자자들은 최대한 빨리 아르헨티나를 벗어나려고 애썼다. 이들은 이제 곧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될지도 모르는 채권 쪼가리를 팔아치우기 위해 기를 썼다. 이러한 혼란은 엘리엇 어소시에잇츠 같은 독수리 펀드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마찬가지였다. 경제 위기는 경험 없는 투자자에게는 경천동지할 일이지만 독수리 펀드에게는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엘리엇사는 절망적인 투자자들로부터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아르헨티나 국채를 헐값으로 매입했다. 상황이 급박했으므로 아직 정부가 지불 중지를 선언하기 전이었는데도 액면가의 15%만 주고도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었다.

한편 아르헨티나 지도자들은 국채 문제를 놓고 금융 및 법률 전문가와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정부는 투자자들이 기절초풍할 방안을 발표했다. 기존 국채의 가치를 3분의 1로 평가 절하하겠다는 것이다. 3분의 1짜리 새 국채로 바꾸어 가든지, 아니면 옛 국채를 갖고 있다가 휴지 조각을 만들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채권 시장에서 쓰이는 말로 하자면, 아르헨티나의 투자자들은 ‘머리를 깎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단지 긴 머리를 조금 손보는 정도가 아니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라도 정부가 채권 원가의 50~75%에 이르는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3분의 1만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머리를 박박 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이를 갈면서도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무한정 들 뿐만 아니라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채권을 대량 소유한 주요 금융회사들은 앞으로도 아르헨티나 정부와 계속 거래를 해야 한다. 앞으로 몇 달 안에 다시 거래를 터야 할 큰 손 고객을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뉴욕의 한 헤지 펀드 매니저는 “모건 스탠리사는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 한 푼도 쓰지 않는다. 외국 정부와 법률적으로 싸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외국 정부를 상대로 계속 거래를 해야 한다. 정부들로부터 만일 제어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투자자로 찍히게 되면, 다음에 정부가 채권을 발행할 때 재무장관으로부터 직통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005년에 이르자 전체의 70%에 이르는 채권 보유자들이 이 가혹한 가치 재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몇몇 헤지 펀드는 분노한 개인 투자자들과 연대하여 아르헨티나 정부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개인 투자자 대부분은 이탈리아인 및 독일인 연금 수혜자들이었다. 이들은 채권을 단단히 쥐고, 미국 법원에 줄소송을 했다. 법정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양측의 목소리도 높아갔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네스토르 키르히너(Nestor Kirchner)는 “우리가 1990년대 수준으로 상환금을 높인다면 새로운 대량 학살을 초래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수리 펀드나 탐욕에 가득 찬 은행들은 이미 피폐하고 상처 입은 아르헨티나로부터 계속 돈을 뜯어가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로드리고 드 라트(Rodrigo de Rato)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아르헨티나는 채권자에 대해 좀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조언했을 때 키르히너는 “IMF는 종종 형편없는 조언을 내놓는다”며 코웃음을 쳤다. 가뜩이나 분노해 있는 채권 보유자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이 같은 태도는 오만하고 무모한 것으로 비쳤다. 400억달러어치에 이르는 지불 중지 채권 보유자들을 대표하던 자산 평가 매니저 한스 흄즈(Hans Humes)는 “아르헨티나는 그저 사람들을 윽박질러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내몰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밖에서 독수리 펀드와 아르헨티나가 설전을 벌이는 동안 미국 법원 안에서는 양측의 변호사 부대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감춘 돈을 둘러싼 술래잡기

2006년 5월, 뉴욕의 한 연방 법원은 아르헨티나가 엘리엇 어소시에잇츠에 1억달러 이상을 갚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케네스 다트를 비롯한 다른 채권자들은 더 많은 금액을 판결 받았다. 재산을 놓고 벌어지는 민사소송에서 이러한 법원의 판결은 흔히 최종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각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하는 특수한 재판에서 이런 판결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제 독수리 펀드들은 아르헨티나로 하여금 실제로 빚을 갚도록 압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개인과 기업을 주로 관장하는 법률은 주권 국가에 대해서는 무기력하기 일쑤다. 정치나 국제 관계는 배제하고 오로지 재정 문제로만 얽혀 있다고 해도 그렇다. 수세기 동안 서구의 법제 시스템은 주권 국가를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다루어 왔다. 외국과 돈 거래를 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거래에 문제가 생기면 법적으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분노한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기네 정부를 움직여 어떤 조처를 취하도록 설득하는 것뿐이었다. 보통 이러한 읍소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개인이나 민간 기업의 빚 문제로 외국과 외교 마찰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정부는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채권자들은 자기네 나라 정부를 움직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1902년에 유럽의 전함이 베네수엘라 항구로 쳐들어가 항구를 봉쇄하고 배 몇 척을 수장시켰다. 채권 지불 정지를 선언한 베네수엘라가 결정을 번복하고 돈을 지급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베네수엘라는 굴복했다. 그러나 빚을 받기 위해 군함을 동원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1950년대에 미국과 영국은 좀더 강력한 법안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각국 정부가 복잡한 금융 거래의 주체가 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외국의 정부는 개인과 기업을 관장하는 법률로부터 면책된다는 주장이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제 경제 주체로서 금융 활동에 참여하는 정부는 일반 기업과 똑같이 제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권 국가가 상업적 법률로부터 면책되는 시대는 끝났다. 1980년대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외국 정부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이 돈을 빌리는 패턴을 바꾼 것이다. 과거에는 주로 서구의 큰 은행으로부터 뭉칫돈을 빌리던 나라들이 이제는 채권을 발행하고 누구나 이를 살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부에 돈을 꾸어주는 채권자는 서로 연대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수많은 단위로 자잘하게 쪼개졌다.

이러한 변화에도 채무자로서의 주권 국가는 여전히 특권을 누리고 있다. 국가 재산은 흔히 아무도 모르게 은닉되거나 강력한 법안으로 보호받는다. 채권자들의 손이 법적으로 미치지 않는 스위스 바젤의 국제결제은행에 맡겨 둘 수도 있다. 엘리엇사의 제이 뉴먼이 말하듯, 아르헨티나 측의 변호사들은 지연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뉴욕 법원은 아르헨티나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을 상환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러한 판결은 오히려 이 나라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한 모든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 덕택에 독수리 펀드들은 정부가 감춘 재산의 냄새를 맡고 캐내는 일에 선수가 되었다. 2000년에 엘리엇 어소시에잇츠은 브뤼셀 법원을 움직여 유럽 증권거래소를 떠돌아다니던 페루의 자금을 포착하고 압류했다. 깜짝 놀란 페루 정부가 타협안을 제시해 온 것은 물론이다. 어떤 채권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러시아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 한 스위스 사업가는 러시아 재산이라면 무엇이나 압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개인 제트기, 러시아의 예술 작품, 에어쇼에 나온 러시아 비행기, 보트 경주에 출전한 러시아 배까지 포함됐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채권자들은 굴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제 채무국에게 재산 은신처를 제공하는 금융 기관과 기업들까지 제소 대상에 포함시키며 법적 공격의 범주를 넓히고 있다. 엘리엇의 한 계열사는 콩고 정부의 빚을 받아내려는 노력 중 하나로 프랑스의 거대 은행 BNP 파리바(BNP Pariba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은행이 콩고 정부와 결탁하여 석유 판매 대금을 은닉했다는 혐의 때문이다. 이러한 소송은 은행들이 감추고 싶어 하기 마련인 부패한 정부와의 커넥션을 백일하에 드러내겠다는 위협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과 아이디어로 돈을 받아 내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채권자마저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독수리 펀드들이 압류할 만한 재산을 발견할 때마다, 빚투성이 정부들은 기가 막히게 빠져 나간다. 부크하이트 같은 법률가의 도움을 받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독수리들을 피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지난 1월에 미국 항소 법원은 ‘아르헨티나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 채권자라도 이 나라의 중앙은행에 있는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것은 엘리엇 어소시에잇츠에 큰 타격을 주었다. 승리감에 찬 키르히너는 성명을 내고, 이 지불 정지 문제는 이제 완전히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또 아르헨티나 의회가 이 채무와 관련하여 다시 협상을 개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므로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좋아하기는 아직 이를지도 모른다. 법원의 판결에 분노한 독수리 펀드들이 정치 영역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과거의 채권자들이 썼던 전통적 방식, 즉 정부를 움직여 문제에 개입하도록 로비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메리칸 태스크 포스 아르헨티나’라는 작전명이 붙은 이 로비 프로젝트는 하버드 법대 교수할 스캇(Hal Scott)과 클린턴 행정부 당시 고위 공무원을 지낸 전문가들이 전면에 서서 이끌고 있다. 여기에는 전 상무부차관 로버트 샤피로와 전 국가안보국 참모 낸시 소더버그가 참여한다. 이 작전은 물론 부시 행정부와 의회를 움직여 아르헨티나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샤피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어떠한 나라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일이 단순한 로비가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위험한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노력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도, 더 비참하고 부패한 체제도 이러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샤피로는 채권자들을 밀쳐내는 아르헨티나의 행동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도 이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최근 어떻게 하면 채권에 대한 지불을 중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에콰도르가 아르헨티나에게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어떤 나라가 빚을 갚기 어렵게 되었을 때 차근차근 협상을 벌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오늘날의 국제 차관 시장에 존재한다면 이 모든 움직임은 불필요할 것이다. IMF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개인을 대상으로 한 파산 법원과 같은 장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세계은행도 공격적인 채무자들에 쫓기는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종종 세계은행은 채무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금의 8%만 받고 빚을 청산해 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민영 채권자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부채 경감 활동가들 역시 가난한 나라에 대해 법률적 조언을 해주고, 명망가를 동원해 여론을 조성하여 채권자가 부채를 덜어주도록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남아 있다.

옥석 구분할 새로운 시스템 필요

이러한 상황에서 독수리 펀드들이 위험한 채권을 사는 것은 부패하고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먹잇감이 되기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소송이라는 무기를 통해 일반 투자자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또한 국제 자본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독수리 펀드는 회수가 어려운 채권을 털어버리기를 원하는 점잖은 채권자를 위해 2차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나라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큼직한 금융 기관들이 꺼리는 작업이다. 이런 점에서 독수리 펀드 회사는 국제 차관 시장에서 복수의 천사 노릇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듀크대학 법대 교수인 미투 굴라티(Mitu Gulati)는 “독수리 펀드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효과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채 경감 활동가들에게 이런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활동가들은 독수리 펀드가 얼마나 무자비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현재 잠비아가 처한 상황을 지적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잠비아의 부채는 1979년에 트랙터를 사기 위해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빌린 것이다. 이 부채는 20년 동안 장부에만 기록된 채 그냥 묻혀 있었다. 그 동안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잠비아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정변이 일어났다. 1999년에 한 독수리 펀드는 루마니아 정부를 부추겨 잊혀지다시피 한 잠비아에 대한 채권을 단돈 몇백만달러에 매입했다. 잠비아가 돈을 빌린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고통스러운 가난과 손을 쓸 수 없는 에이즈 사태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이 나라는 빌린 돈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물어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잠비아 같이 딱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르헨티나 같이 능력이 있는데도 돈을 갚을 생각은 없이 채권자들을 조롱이나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채권자들 중에는 노후연금을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한 이탈리아나 독일의 노인이 포함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국제 법률 시스템은 잠비아 같은 경우와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를 구분하지 않는다. 법의 눈으로 보면 받아낼 수 있는 빚은 그저 받아내야 하는 빚일 뿐이다. 따라서 기존의 법체계와는 달리 채무 이행 과정에서 공정함을 추가시킨 새로운 법적 메커니즘이 나와야 할 때다. 잠비아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사정을 봐주고,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는 강력 처벌하는 시스템 말이다. 이런 시스템이 나오기 전까지는 독수리들이 하늘을 빙빙 돌며 먹이를 찾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참고 문헌들

국가간 부채가 가난한 나라들에 미치는 영향과 부채 경감 운동에 대해서는 낸시 버드설(Nancy Birdsall)과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이 쓴 <부채 경감의 진행: IMF의 금괴로부터 새로운 원조 체제까지(Delivering on Debt Relief: From IMF Gold to a New Aid Architecture)>(Washingt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2002)를 보라. 세계은행의 부채 축소 본부(Debt Reduction Facility) 웹사이트도 참고할 수 있다.

케네스 로거프(Kenneth Rogoff)와 제로민 제틀마이어(Jeromin Zettelmeyer)는 <주권 정부의 파산 절차: 이론의 역사적 고찰, 1976~2001(Bankruptcy Procedures for Sovereigns: A History of Ideas, 1976~2001)>(International Monetary Fund(IMF) Staff Papers, Vol.49, No.3, 2002)에서 주권 국가 파산의 역사를 보여준다. 금융 채권자에 대해 정부들이 어떤 법적 대응 전술을 쓰는지는 리 부크하이트(Lee Buchheit), 미투 굴라티(Mitu Gulati), 아쇼카 모디(Ashoka Mody)가 함께 쓴 <주권 정부 채권과 집단 의지(Sovereign Bonds and the Collective Will)>(Emory Law Journal, Fall 2002)에 잘 나와 있다.

독수리 펀드가 잠비아의 부채를 추적하는 실상은 BBC가 제작한 프로그램 Newsnight의 <독수리 펀드, 잠비아를 위협하다(‘Vulture Fund’ Threat to Zambia)>(Feb.14, 2007) 편에서 볼 수 있다. 전 IMF 수석 부총재였던 앤 크루거(Anne Krueger)는 2002년 6월6일 브레튼 우즈 위원회(Bretton Woods Committee)에서 행한 연설 ‘국가 채무 재조정과 분쟁 해결 방안(Sovereign Debt Restructuring and Dispute Resolution)’에서 가난한 채무국과 채권자 사이의 분쟁을 국제 금융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밝혔다. 연설 원문은 IMF의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미국 워싱턴의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이 격월로 발행하는 <Foreign Policy> 2007년  7·8월호에 게재된 것으로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을 발행하고 있는 네오넷코리아와 <이코노미플러스>의 기사 제휴에 의거, 게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데이비드 보스코는 Foreign Policy의 객원 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