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는 유명 관광국가로만 알려진 태국. 그러나 현지에는 삼성, LG 등 대기업을 비롯해 전기·전자업체들이 다수 진출해 있다. 33세의 나이에 태국에 취업한 노세환씨의 태국 취업 도전, 성공기.

태국 현지 한국계 전자회사 취업에 성공한 노세환

처럼 맞은 일요일, 오랜만에 개인 시간을 갖기로 하고 미뤄뒀던 세차를 했다. 묵은 때가 하얀 비누거품에 씻겨 나가는 모습을 보니 숙제를 하나 해치운 듯 마음까지 개운하다.

지난 1월, 태국에 들어온 뒤 적잖은 일이 내게 일어났다. 짧은 기간 동안 나는 회사를 옮겼고, 새로운 회사에서 이제 겨우 한 달 보름이 지난 상태다. 회사에서는 업무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열흘 후엔 가족이 함께 살 보금자리로 이사도 해야 한다. 일도 많고, 생각도 채 정리되지 않았지만 해외 취업에 나설 후배들에게 나의 취업 준비 과정과 현지에서의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유학 중 만난 태국인 아내의 ‘간청’으로 떠난 태국 취업

내가 태국으로 해외 취업을 온 데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아내는 태국인으로 우리는 호주에서 유학하면서 만났다. 함께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사랑이 싹텄고, 호주에서 약혼을 한 뒤, 결혼을 했다. 결혼 후 호주에서 직장을 얻은 나는 6개월간 근무를 하다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장남인 까닭에 부모님이 한국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타국에서 살다보니 외로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던 차에 부모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우리는 2004년 7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3개월 뒤인 같은 해 10월, 나는 인천에 있는 대의테크라는 자동차 부품 전문생산업체의 중앙기술연구소에 경력사원으로 취업했다.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호주의 대학원에서 ‘제조경영’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던 데다 호주 현지 업체 취업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취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GM대우의 1차 벤더(납품업체)였을 정도로 규모가 큰 부품업체인 대의테크 중앙기술연구소에서 해외영업팀 대리라는 직책으로 업무를 시작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태국에서 삶의 터전을 꾸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늘의 뜻이었을까. 귀국 후 한 달(2004년 8월) 만에  아내가 계획에도 없는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선택의 폭을 줄여 취업을 서둘러야만 했다. 남편인 나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아내는 임신 전까지만 해도 무리 없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막상 임신을 하자 육체적, 심리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 생활에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단순히 낯선 주변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살 작정을 하면서 아내는 유학 경력을 살려 직장을 잡길 원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데다, 임신까지 하다 보니 고향인 태국 방콕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결국, 임신 3개월이 지나 비행이 가능해 진 2004년 11월, 아내와 뱃속의 딸아이는 태국으로 떠났고 나는 계획에 없던 홀아비 생활을 해야 했다.

태국으로 돌아간 아내는 출산 후 뜻밖의 말을 했다. 출산 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당초의 약속과 달리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나에게 태국에서 살자고 했다. 한국에서는 둘이 함께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지만 태국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던 끝에 나는 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부모님도 “결혼을 한 만큼 아이와 아내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로 태국행을 허락하셨다.

태국행을 결정한 데에는 아내의 의사가 큰 영향을 끼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고 태국에서의 새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근무 경력을 쌓을 수 있다면 점차 국가 간 경계가 엷어지는 추세를 볼 때 국내에서만 근무할 때는 가지지 못한 노하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적성과 맞지 않았던 첫 직장에서 겪은 시행착오

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다. 해외 취업 공고를 살핀 결과, 내 적성과는 맞지 않았지만 관광업체에서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기획 전문가를 뽑는 과정이 있었다. 우선은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에 가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나는 해당 직종에 응모했고 이듬해인 올 1월, 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태국의 유명 휴양지 중 하나인 파타야에 위치한 관광업체에서 나는 새로운 관광코스를 기획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기계공학도인 내가 생소한 관광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외국에서 석사까지 받은 전공을 살리지 못하니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더구나 태국에 오긴 했지만 아내와 딸과 금세 같이 살 형편도 못됐다. 아내는 방콕에 있는 처갓집 대신 방콕에서 3시간가량 떨어진 코랏이라는 곳에서 딸아이와 살고 있었다. 처남이 살고 있는 코랏에서 아내는 국제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아내와 딸아이와 주말에나 잠깐 만나는 생활은 불안정하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급한 것은 무엇보다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일이었다. 태국 내 현지 업체의 구직을 다각도로 알아보던 끝에 지금 몸담고 있는 고산전자의 현지 직원 채용 공고를 보게 됐다. 태국 현지의 삼성전자, LG전자, 한라공조 등에 주요 부품 모듈을 제작 납품하고 있는데다, 향후 독자 브랜드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진 탄탄한 회사라는 점, 무엇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내 전공을 살리기 적합한 회사라는 점에서 바로 입사 지원서를 작성해 보냈다. 태국인 아내와 결혼해 태국에 살고자 하는 나의 상황과 한국에서 부품업체 연구소에서 일한 경력을 회사에서 높이 산 덕분인지 나는 지난 5월 마침내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와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 대리 직급인 나는 마케팅과 연구개발, 품질 관리 등 비교적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업무를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옳겠다.

이곳에서는 TV, 세탁기, 에어컨 제작에 들어가는 주요부품과 자동차 공조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직원은 현지인 직원을 포함해 200여 명에 달한다. 최근 현지 생산업체들의 ‘화두’는 현지화 성공 여부다. 현지 생산인력들이 단순 생산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관리까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표인 셈이다. 업무 능력만을 놓고 볼 때 현지인들의 업무의 자발성, 책임감은 아직 조직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달된다. 지속적인 교육과 시스템 완비를 통해 현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는 것이 업체의 1차 목표. 회사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나 역시 회사의 목표를 하루 빨리 달성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취업 전 내가 알고 있던 건 7%에 불과했다

태국인 아내와 연애, 결혼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태국 사정에 비교적 정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비교적 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아내와 결혼식도 방콕에서 올렸고, 아내와 함께 태국도 여러 번 방문, 여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건 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생각해 보니 여행이나 단순 방문으로 태국에 올 때는 항상 아내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동행만 하면 되었을 뿐, 나 혼자 무언가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직장에서 막상 태국 사람들을 접해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태국은 7% 정도에 불과했다.

태국인은 순박하고 친절하다. 괜히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가 된 건 아니다. 그런데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태국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자신이 폐를 입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 까닭인지 업무에 있어서 책임을 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 직원들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인데, 태국 직원들은 자신의 일 외에는 소극적인 면이 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나와 한국인 직원들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태국인들이 외국어, 특히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생산직에 근무하는 태국인들은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태국인 아내와 결혼해 일상의 태국어 정도는 구사한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업무를 접하고 보니 외국인인 내가 구사하는 태국어를 잘 못 알아듣는 현지인이 많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태국어는 5성조(聲調)로 돼 있어 같은 발음이라도 5단계의 높낮이에 따라 그 뜻이 다 다르다. 아내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대충 눈치로 무슨 말을 하는가를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태국 현지에 취업을 하지 않았을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모습들이다. 또한, 태국인들은 원래 영어 발음을 태국식으로 바꾸어 발음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깜피타”로 발음하는 태국식 영어도 현지 근무를 통해 새로 경험하게 되었다.

근무는 보통 오전 8시에 시작하지만 퇴근은 불규칙하다. 대부분의 한국 직장이 그렇듯 퇴근 후에도 업무가 있으면 추가 근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의 경우엔 아직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추가 근무가 많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요일은 쉰다. 토요일은 격주 휴무제로 운영되고 있다. 업무가 자리 잡으면 지금보다는 여유가 더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업무 파악하랴, 가족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건 앞으로 보름 후면 아내, 딸아이와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태국에서 각각 떨어져 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했다. 돌이 지난 딸아이는 어쩌다 만나는 아빠를 낯설어하곤 해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라용에서 자동차로 4시간(장거리 버스로 6시간) 거리에 살고 있던 아내와 딸이 마침내 이곳으로 온다. 이곳의 국제학교로 전근 와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주 또는 2주 만에 겨우 볼 수 있던 아내와 딸아이를 매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는 걸 어쩌지 못하겠다.

아내와 딸의 고국인 태국은 사람들이 순박하고 정이 많다. 또 음식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날 정도로 맛난 음식의 나라이기도 하다. 낮엔 덥기 때문에 저녁때부터 새벽까지 영업하는 음식점이 많은데, 길거리 좌판부터 고급 레스토랑까지 맛있고 싼 음식이 무척 많다.

전체적으로 물가도 싸다. 택시 기본요금이 900원(1바트 25원 기준)이 채 못 되고 일반적인 의식주에 드는 생활비가 한국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 정도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함께 살 집은 한국으로 치면 35평형의 공동주택으로 월세가 25~30만원 정도 한다. 이 역시 한국의 수도권 물가를 고려하면 절반 이하쯤 되는 것 같다. 지금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한국에서 받던 수준(연봉 3000만원 중반 대)과 큰 차이가 없다. 태국에서 아내와 딸과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액수인 셈이다.

시간과 돈 허락되면 현지 체험 꼭 해야

안정된 직장도 구했고, 곧 가족과 합칠 수도 있으니 비로소 태국에 온 1차 목표를 이룬 셈이다. 이제 미래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탄탄한 중견업체로 태국을 발판으로 해서 동남아시아, 나아가 세계 시장에 독자 브랜드를 가지고 진출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상품 개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회사 업무를 빠른 시일 내 파악해 회사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는 것이 지금의 내 목표다. 회사와 함께 나 자신도 함께 성장하고 싶다.

끝으로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현지 취업을 해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말이 더욱 절실하다. 현지에서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 학습도 중요하지만 현지의 문화나 다양한 정보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사전에 현지를 방문, 체험할 것을 권하고 싶다. 몸소 겪어 보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다. 또, 해당 지역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최대한 현지의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리 = 오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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