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플러스>는 한국과학문화재단과 공동기획으로 5회에 걸쳐 ‘상용화 앞둔 첨단 과학기술의 산실을 가다’를 취재한다. 차세대에너지, 홈네트워크, 첨단 의료기기, 로봇, 미래자동차 등 상용화를 앞둔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사이언스코리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기획이다. 그 세 번째로 우주과학기술로 첨단 의수·의족 보장구를 만드는 러시아 에너지아사를 취재했다.

 천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팔과 다리를 잃은 사람이 암벽등반, 수영, 산악자전거 (MTB) 등 일반인들도 하기 힘든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이 가능할까. 또 이들이 모여 만든 익스트림스포츠(X-Sports)클럽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보장구에 첨단 과학기술이 접목되면서 이  모든 게 현실화됐다. 한발 더 나아가 실제 팔과 다리처럼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한 보장구도 개발되고 있다.

 2005년 9월5일 오후 3시, 취재를 위해 기자가 방문한 러시아 코를요프 우주단지의 보장구 제작 및 재활센터인 오로토코스모스는 운동을 하는 20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며 걷는 사람, 트랙을 힘차게 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마치 헬스장에 온 것 아닌가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언뜻 보기엔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이들 모두가 의족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들은 우주과학기술을 이용, 보장구를 개발하는 에너지아사의 스포츠클럽 회원이다. 실제 장애인들이 직접 에너지아사가 만든 의족, 의수를 달고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는가를 시험하는 일종의 보장구 시험단인 셈이다.

 골로빈 블라디미르(60) 오로토코스모스 대표는 “스포츠클럽 회원들을 통해 직접 제품을 시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테스트”라며, “제품 기능의 유효함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이를 교정해 나가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라고 말했다.

 스포츠클럽의 보장구 테스트는 단순히 뛰고 걷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단순 운동은 물론 암벽등반, 롤러브레이드, 수영 등 모든 스포츠를 통해서도 제품 테스트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스포츠클럽에는 장애인 가족 등 일반인도 참석하지만, 클럽을 이끄는 회장은 장애인이죠. 오히려 이 클럽에서는 일반인보다 장애인들이 더 운동 능력이 뛰어납니다.(웃음) 이처럼 일상생활은 물론 극한 스포츠까지 일반인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는 게 에너지아사 보장구의 특징이자 장점이죠.”(골로빈 블라디미르)

 스포츠클럽 회원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에너지아사의 연구 개발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들 역시 장애인으로 보장구를 달고 회원들과 함께 스포츠를 즐긴다. 제품의 결함이나 개선점을 찾아내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는 세르비아 츠크보바네(31) 보장구 개발연구원은 “보장구를 끼고 회원들과 운동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보장구의 결함이나 개선점이 생기면 이를 즉시 제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고 전했다.



 우주선 소재로 보장구 개발

 장애인들이 일반인도 하기 힘든 암벽등반 등을 즐길 수 있는 건 보장구에 첨단 우주과학기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아사가 보장구에 접목한 대표적인 우주과학기술은 바로 고농축 티타늄. 에너지아사가 최초로 보장구의 재질로 쓴 고농축 티타늄은 우주선의 내·외관을 만드는 데 쓰이던 소재다. 원자번호 22, 원자기호 TI인 티타늄은 알루미늄보다 강도가 여섯 배나 강하고, 열전도율과 열팽창률이 낮은 데다 가볍고 내식성도 강하다. 고농축 티타늄은 압축을 통해 몇 배로 이런 특성을 강화시킨 것이다.

 에너지아사는 1991년 우주선 제작에나 쓰였던 이 고농축 티타늄을 활용해 가볍고 반영구적인 보장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 우주선 및 우주로봇에 활용하던 수학기술과 생체시스템을 활용해 팔과 다리의 관절 역할을 하는 모듈도 개발했다. 보장구의 뼈대 역할을 하는 강한 재질과 실제 팔과 다리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모듈을 만들어 낸 것. 이 두 가지 개발로 에너지아사는 기존의 보장구보다 가벼우면서도 기능이 뛰어난 보장구를 만들었다.

 보장구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에너지아 오이메사의 베라 쿠즈네초바(61) 사장은 “고농축 티타늄을 인간의 팔과 다리의 뼈처럼 만들고 관절처럼 움직이도록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서, “보장구 개발을 위해선 우주과학기술과 함께 정밀하면서도 세밀한 금형기술까지 필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금형을 통해 고농축 티타늄을 인간의 뼈처럼 만드는 과정은 첨단 컴퓨터 과정의 완전 자동화로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과정인 만큼 절대 외부 공개가 안 돼 비디오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만 제작 과정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모두들 보장구에 우주과학기술을 접목한 것에 놀라지만, 사실 보장구 개발에서 더 중요한 건 금형기술과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생체시스템이죠. 보장구 개발에 가장 어려운 점도 바로 이겁니다. 사람마다 신체적 움직임과 반응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이고 일반적인 보장구를 개발한다는 건 매우 어렵죠. 따라서 이 과정을 공개하는 건 사업기밀을 누설하는 것과도 같습니다.(웃음)”(드미트리 에너지아사 보장구 개발 수석기술자)

에너지아 오이메사 사장실에서 시현된 보장구들은 실제 사람의 팔과 다리보다는 정밀성이 다소 떨어졌으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움직임은 대부분 수행하였다. 특히 어깨 움직임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보장구의 경우,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은 물론 톱을 잡고 켤 수 있을 정도였다. 기술자의 제안으로 기자가 보장구와 악수를 했는데, 악력으로 인해 손이 얼얼할 정도였다. 무게 또한 과거의 보장구보다 훨씬 가벼웠다. 보장구는 몸에 착용하기 때문에 가벼워야 하지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실제 팔과 다리의 무게와 비슷하도록 제작한다.

 쿠즈네초바 사장은 “에너지아사는 우주과학기술을 활용해 단순히 보조기구에 불과했던 기존의 보장구를 기능성 기구로 탈바꿈시켰다”며, “우주과학기술로 강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보장구가 만들어지면서 장애인들도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에너지아사가 위치한 코를요프 우주단지는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쏘아 올린 곳으로 러시아 우주개발사업의 요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인정거장 미르호도 이곳에서 개발해 우주로 쏘아 올렸다. 미르호는 지난 2001년 3월 노후해져 폐기될 때까지 수많은 우주정보를 지구로 송신, 베일에 가려진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만큼 이 단지는 기초과학이 발달한 러시아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학 집합단지로 꼽힌다.



 정부 지시 아래 개발 시작

 서울 여의도 크기만한 이 단지에는 우주선 개발 및 우주여행 사업은 물론 자동차용품, 가전, 보장구 등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수많은 회사들이 모여 있다. 이 회사들의 홀딩컴퍼니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에너지아사다. 1946년 설립된 에너지아사의 창립자는 러시아에서 우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코를요프. 러시아는 코를요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우주단지의 명칭을 그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한다.

 우주 개발에 주력하던 에너지아사가 보장구를 개발하기 시작한 건 지난 1989년으로, 정부로부터 보장구 개발 지시를 받으면서부터였다.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는 의료서비스 등 사회복지시스템이 정부 주도 아래 추진된다.

 쿠즈네초바 사장은 “우주 개발에 주력했던 에너지아사로서는 정부의 보장구 개발 지시가 달갑지 않았다”면서, “정부는 장애인들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위해 첨단 보장구 개발을 지시했지만, 당시 우주과학자들은 보장구에 대해선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에너지아사 우주과학자들이 보장구 개발 명령에도 움직이지 않자, 정부는 경제적 지원이라는 당근책을 썼다. 보장구 개발에 참여하는 과학자에게 기존 급여의 두 배 이상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 정부의 당근책은 효과가 있었다. 1990년 20여명의 우주과학자가 보장구 개발 사업에 참여했고, 의사, 보장구 개발자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나섰다. 쿠즈네초바 사장 역시 의사 출신으로 한때는 보건복지부 차관까지 지낸 바 있다.

 “우주과학자와 의사, 보장구 개발자 등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경험이 없어 초기 개발 작업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죠. 수많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보장구 상담과 설문조사, 임상실험이 필요 없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장애인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에너지아사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는 게 입증됐죠. 우주과학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었고, 그로 인해 양질의 보장구를 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러시아에서는 장애인이 보장구를 살 필요가 없다. 에너지아사 등 보장구 개발업체가 제품을 만들면 정부 산하기관에서 이를 사들여 지역 장애인에게 무상 지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급받은 보장구에 대한 A/S 역시 무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에너지아사의 제품은 러시아 내에서만 16만명의 장애인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첨단기술 복합화 가속

 보장구 개발 전문가들은 앞으로 보장구에 첨단기술을 접목 하는 게 빨라지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신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주과학기술뿐만 아니라 IT기술, 로봇기술, 바이오테크놀러지(BT)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앞으로 갈수록 실제 인간의 팔과 다리와 같은 보장구가 개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쿠즈네초바 사장은 “보장구가 인간의 팔과 다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다양하게 접목하면 힘과 속도 등 특정 분야에서는 실제보다 뛰어난 의족과 의수가 생겨날 겁니다”라고 했다. 즉, 터미네이터의 팔과 다리 같은 의족과 의수가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너지아사 역시 우주과학기술 이외에 IT기술, 로봇기술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보장구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특히 의족에 비해 발달속도가 느린 의수 개발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의족보다는 의수 개발이 힘들죠. 발은 주로 힘을 활용하는 데 쓰지만, 손은 힘뿐만 아니라 감각, 지각 등의 능력까지 발달돼 있고, 관절도 더욱 정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첨단 의수 개발을 위해 IT기술을 도입할 계획입니다. 전자센서를 장착한 보장구를 만들 계획이죠. 지금은 힘만 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움직여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의수를 선보일 예정입니다.”(쿠즈네초바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