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안데르탈인 아버지와 딸의 상상도. 시베리아의 한 동굴에서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부녀의 화석이 발굴됐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네안데르탈인 아버지와 딸의 상상도. 시베리아의 한 동굴에서 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부녀의 화석이 발굴됐다. 사진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인류의 사촌, 또는 숨겨진 조상으로 불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처음으로 가족의 모습을 드러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먼저 유라시아에 정착했다가 멸종한 인류다. 지금까지 모두 18명의 화석이 발굴됐지만, 가족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로리츠 스코프, 스반테 페보 박사 연구진은 10월 2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알타이산맥 남서쪽에 인접한 러시아의 두 동굴에서 5만1000년에서 5만9000년 전 사이 혈연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페보 박사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과학자다.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무더기로 나온 네안데르탈인 치아 화석들. 11명에게서 나온 것으로 부녀, 조손 등 가족으로 추정됐다. 사진 네이처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무더기로 나온 네안데르탈인 치아 화석들. 11명에게서 나온 것으로 부녀, 조손 등 가족으로 추정됐다. 사진 네이처

부녀, 할머니와 손자로 이뤄진 가족 확인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약 4만 년 전 멸종하기까지 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온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다. 이번 연구진은 시베리아 차기르스카야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 11명의 화석을 발굴했다. 인근에 있는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에서도 2명의 화석을 확인했다. 두 동굴에서 나온 석기 9만여 점이 재료나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집단으로 추정됐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페보 박사는 2010년 네안데르탈인 DNA를 처음으로 해독해 오늘날 아시아인과 유럽인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1~2%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하며 피를 나눴다는 것이다.

페보 박사의 연구 이후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숨겨진 조상으로 재조명받았다. 현생인류와 무관한 무지막지한 미개인의 모습으로 인식됐던 네안데르탈인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동굴 벽화도 먼저 그린 선구자로 밝혀졌다.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과학자들은 이번에 네안데르탈인 가족을 통해 사회 형태까지 확인했다.

두 동굴에서는 성인 8명과 어린이 5명의 화석이 나왔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중 차기르스카야 동굴의 남녀 5명이 가까운 친척 관계로 밝혀졌다. 우선 남녀 두 명은 유전자 절반이 같은 부녀(父女) 사이로 밝혀졌다. 아버지와 10대 딸이었다. 다른 여성 한 명은 아버지의 여성 친척으로, 할머니 같았다.

또 다른 두 명은 유전자가 25% 일치해 할머니와 손자 또는 이모와 조카로 추정됐다. 다른 사람들도 몇 세대만 이어지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공유해 같은 시기에 살았던 공동체 일원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네안데르탈인은 남성 중심 가부장제 가족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 가족의 유전 다양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10~20명씩 공동체를 이뤘다고 추정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다른 원시인류나 오늘날 인류 공동체보다 유전적 다양성이 더 적었다. 연구진은 멸종위기에 처한 산악고릴라와 비슷한 정도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당시 네안데르탈인이 외부와 아주 단절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 남성이 외지에서 온 여성과 짝을 이루고 부모와 같이 사는 가부장제를 이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남성만 있는 Y염색체 유전자보다 여성에게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더 다양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 밖에 있는 에너지 생성 소기관으로, 난자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여성 유전자가 남성보다 다양하다는 것은 여성의 출신지가 더 다양하다는 의미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이 과거 우리 전통사회처럼 다른 지역에 살던 여자가 남자가 사는 집으로 오면서 가족을 이뤘다는 것이다. 공동 교신저자인 벤저민 피터 박사는 “이번 연구로 네안데르탈인은 오늘날 인간과 더 가까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가 베일에 싸여 있던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집단을 이뤘는지 처음으로 밝힌 성과라고 평가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라라 캐시디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로 볼 때 네안데르탈인 공동체는 20명 정도로 이뤄졌고 여성의 60%가 외부에서 왔다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네안데르탈인 가족을 처음 밝혔을 뿐 아니라 전체 사회가 어떻게 생성됐는지도 알려줬다. 캐시디 교수는 “네안데르탈인 아버지는 성장한 딸이 다른 곳에서 짝을 맺은 사위나 나중에 태어난 손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인구가 계속 늘었다면 이런 혈연관계를 통해 더 광범위한 사회 네트워크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연구의 한계도 분명하다. 조사 대상이 워낙 적아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사회생활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연구진은 앞으로 다른 공동체에 속한 네안데르탈인 화석까지 분석에 포함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촌의 사회 조직을 좀 더 자세히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1. 시베리아의 차기르스카야,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지도의 붉은 점)에서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2. 입구가 북쪽으로 향한 차기르스카야 동굴. 3. 남쪽으로 열린 오클라드니코프 동굴. 사진 네이처
1. 시베리아의 차기르스카야, 오클라드니코프 동굴(지도의 붉은 점)에서 네안데르탈인 13명의 화석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2. 입구가 북쪽으로 향한 차기르스카야 동굴. 3. 남쪽으로 열린 오클라드니코프 동굴. 사진 네이처

근처 데니소바인보다 유럽 동족과 가까워

공교롭게도 네안데르탈인 가족 화석이 나온 두 동굴은 또 다른 화석인류가 나온 데니소바 동굴과 100㎞ 이내에 있다. 이 동굴에서 2008년 손가락뼈와 어금니가 나와 데니소바인으로 명명됐다. 데니소바인은 3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갈라져 아시아에 퍼졌던 인류로 추정된다.

페보 박사는 앞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도 피를 나눴음을 밝혀냈다. 그는 2018년 ‘네이처’에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굴한 뼈 화석 DNA를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12만 년 전부터 데니소바 동굴 일대에 살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한 네안데르탈인 가족은 앞서 이곳에 정착했던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웠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석기 형태도 독일과 동유럽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었던 것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