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 설립을 꿈꾸게 된 배경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파운데이션’을 꼽았다. 사진 블룸버그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 설립을 꿈꾸게 된 배경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파운데이션’을 꼽았다. 사진 블룸버그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국제비즈니스학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국제비즈니스학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1998년부터 2011년까지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던 기업이다. 무려 14년 동안 정상을 유지했던 이 기업은 리더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몰락하고 만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는 2007년 등장한 미국 애플의 아이폰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제품이다. 오직 노키아만이 표준”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사실 노키아는 아이폰이 나오기 3년 전에 이미 스마트폰을 개발했으나 굳이 새로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며 이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1등 기업이라는 자만감에 취해 미래로 나아가는 대신 ‘성공한 현실’에 머무는 걸 택한 것이다.

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카이젠(改善) 정신’을 강조하며 정상을 지키는 기업이 있다. 일본 기업 최초로 연 매출 30조엔(약 315조7560억원)을 달성한 도요타가 그 주인공이다. 2021년 ‘올해의 자동차 구루(스승)’로 선정되기도 한 도요타 CEO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모든 이동수단을 통해 인류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별도 조직을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도요타의 선진기술연구소는 5~10년 후 기술 연구를 담당하고, 미래창생센터는 20~30년 후 방향을 정하는 일을 한다. 미래 프로토타입 도시인 ‘우븐 시티(Woven City)’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달 탐사를 위한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도요다 회장의 시선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다.

1990년대 비디오 대여 체인 1위 사업자였던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서 9000여 개의 비디오 대여 매장을 운영하고, 40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었다. 말 그대로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인터넷으로 영화 DVD를 주문하고 우편으로 반납하는 회사를 차렸다. 당시 인터넷 주문 방식은 생소했고, 우편은 느렸으며, DVD 시장 자체도 작았기 때문에 대다수는 헤이스팅스의 이 아이디어를 조롱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는 ‘앞으로 콘텐츠 유통은 온라인으로 완전히 옮겨갈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집중했다.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영화·드라마를 감상하는 미래를 상상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세상이 도래했다. 지난 10년간 넷플릭스 구독자 수는 1억5000만 명 이상 증가하고, 주가는 40배 치솟았다.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했다.

혁신을 논할 때 헤이스팅스는 “10년 후를 상상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10년 후의 기술이 지금은 빠를 수 있지만 ‘폭발 시점’을 기다리면 너무 늦기 때문에 10년 후를 대비하는 비즈니스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2030년이면 TV 방송 시스템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라며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리더는 남보다 먼저 미래를 보고 혁신을 이끌어야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해당 기업은 살아남기조차 힘들어진다. 리더는 대체 어디서 미래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사고 주간(Think Week)’ 동안 외부와 자신을 철저히 단절하고, 오로지 책을 읽거나 학술 논문과 보고서를 훑어보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인도 여행과 명상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페이스북의 비전에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월마트 CEO 더그 맥밀런은 디지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다른 CEO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많은 질문을 던지며 학생처럼 공부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우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1960년 영화 ‘스타트렉’의 물질 재조합 장치가 3D 프린터라는 현실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우리는 1960년 영화 ‘스타트렉’의 물질 재조합 장치가 3D 프린터라는 현실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파운데이션’ 읽으며 스페이스X 꿈꾼 머스크

여기에 더해 일상 속에서 더 쉽고 재미있게 상상력의 한계를 넓히고, 미래 기술에 관한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 있다. 바로 SF(Science Fiction)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SF 소설 ‘파운데이션’이 스페이스X를 설립하게 된 근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 책은 현대 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으로, 먼 미래 은하 제국에서 암흑시대를 예견한 주인공이 암흑 기간을 줄이기 위해 가상국가 파운데이션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킨다는 스페이스X의 비전과 놀랍도록 닮았다.

머스크는 9세 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독하고 하루 10시간 넘게 책을 읽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SF 소설을 통해 기술과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거나 우주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SF 소설 ‘다이아몬드 시대’를 읽고 전자책 단말기 ‘킨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시대’는 나노와 컴퓨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닐 스티븐슨의 작품이다. 나노 기술의 선구자인 주인공이 손녀를 교육하기 위해 ‘소녀의 그림책’을 만드는데, 베이조스는 이 지점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로 끌고 와 킨들을 탄생시켰다.

닐 스티븐슨이 영감을 불어넣은 비즈니스 리더는 베이조스뿐만이 아니다. 그는 1992년 ‘스노 크래시’라는 SF 소설을 발표했다. 아직 사람들이 인터넷에 대한 개념도 익숙하지 않았던 때였는데, 스티븐슨은 이 소설에서 가상 분신 ‘아바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또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스노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아 영상 지도 서비스 ‘구글 어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3차원(3D) 가상현실 서비스 ‘세컨드 라이프’의 창업자 필립 로즈데일 또한 이 책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언급했다.

1960년대 영화 ‘스타트렉’의 물질 재조합 장치가 지금의 3D 프린터가 돼 무엇이든 찍어내는 현실이 될 줄 그 시대 사람들은 알았을까. 1970년대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한 홀로그램과 1980년대 드라마 ‘전격Z작전’의 자율주행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SF 영화와 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나왔던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 하늘을 나는 택시, 생체 인증 등이 이제는 대부분 실제 기술로 구체화됐다.

2021년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은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불가능의 영역을 극복하고 있다. 어쩌면 부족한 상상력이 유일한 한계인 이 시대에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리더가 있다면, SF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