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를 지배하는 태양신’ ‘미국에서 가장 덜 미움받는 은행가’ ‘냉전시대 크렘린의 완벽한 재림’···.
자산 2조6000억달러(약 29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은행의 정상에서 ‘돈의 성배’를 쥐고 흔드는 ‘금융계의 수퍼 허브’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61) JP모건체이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다이먼 회장은 5월 10일 자(현지시각) ‘월스트리트 저널’ 전면 광고를 통해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철회하라”는 공개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로버트 ‘밥’ 아이거 월트 디즈니 CEO, 제프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CEO를 비롯, 3M, 알리안츠, 다우케미컬, 뱅크오브아메리카, 듀폰, 골드만삭스, 카길, 존슨앤드존슨, 코카콜라 등 미국을 대표하는 30대 기업 CEO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5월 8일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비상벨을 울려야 할 때”라며 “탈규제 등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어젠다를 지지한다. 초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의 일이다.
지난 4월 4일에는 44페이지짜리 JP모건체이스 연례서한을 통해 미국이 직면한 위기를 수치와 함께 나열하며 ‘모기지 등 금융 규제 철폐’ ‘위대한 미국 건설’을 외쳤다.
평생 민주당원으로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재무장관 후보 0순위’였던 그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이 이끄는 트럼프 경제 자문회의 초대 멤버가 되더니 공화당 정권의 첫 재무장관 물망에 올랐다. 트럼프 당선 소식에 JP모건의 주가는 20% 올랐고 시가 총액은 500억달러(약 56조원)나 늘었다.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퍼부으면서 한편으론 “잘하고 있다”며 초당적 협력을 다짐하는 그의 언행에는 난해한 파생상품보다 더 복잡한 셈법이 숨어 있는 듯하다.
‘태양신’ 이 된 ‘비운의 황태자’
1998년 당시 세계 최대 은행인 시티뱅크에서 해고당한 ‘비운의 황태자’였던 다이먼 회장은 10년도 안 돼 세계 최대 은행을 만들고 자기 손으로 왕관을 쓴 ‘월스트리트의 풍운아’다.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 경영자”(베니티 페어) “키 크고 똑똑한 미남 은행가”(쉴라 베어 전 연방예금공사 의장)라는 수식어가 따르지만 “자신감과 지배욕이 철철 넘치는 경영자”(산드라 나비디)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승부욕과 권력욕의 화신으로 유명하다.
2012년 5월 10일 열린 JP모건의 비상회의는 그의 승부사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승부처였다.
JP모건은 당시 런던 지점 트레이더였던 브루노 익실의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순식간에 62억달러(약 7조원)의 손실을 봤다. 이른바 ‘런던 고래 사건(경쟁사 트레이더들이 익실에게 붙인 별명)’은 JP모건 170년 역사상 가장 큰 투자 실패였다. 게다가 JP모건은 이란과 수단 자금의 돈세탁, 캘리포니아 에너지 회사의 부정 스캔들, 버나드 매도프의 폰지 사기 연루 의혹에 휘말린 상황이었다. 연방준비위원회(FRB)와 FBI 조사를 앞둔 위기의 순간에 감독 소홀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나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다이먼 회장은 “회장에서 물러나느니 차라리 회사를 떠나겠다”는 ‘벼랑 끝 전술’로 반대론을 잠재웠다. 그를 탄핵하기 위해 모인 투자자와 직원들은 그의 재신임을 추인하는 박수를 보내며 회의장을 나왔다.
CEO 취임 6년(2012년) 만에 JP모건을 세계 최대 은행으로 키우고 사상 최대 순이익(213억달러)을 낸 엄청난 실적, 카리스마 넘치는 추진력, 그물망 같은 정·재계 인맥으로 승부한 다이먼 회장의 완승이었다.
다이먼 회장은 기성 권위에 도전해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기만의 독자적인 권위를 쌓고 이를 자기 브랜드로 만든 경영자다. ‘평생 멘토’인 샌디 웨일 시티그룹 회장에게 대들었다가 잘린 뒤 더 큰 금융 제국의 황제로 복귀한 희대의 복수극은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됐다.
고교 시절 흑인을 비하하는 교사의 발언에 항의하며 교실을 뛰쳐나갔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시절 잘못된 이론을 강요하는 교수에게 도전, 학생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받아 냈다.
만찬에서 동료의 아내를 무시한 측근과 몸싸움을 하는가 하면 “금융 CEO들의 보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는 기자들에게 “당신들은 돈을 못 벌지만 우리는 큰돈을 번다”고 쏘아붙였다.
2008년 비크람 팬디트 시티그룹 CEO가 구제 금융 조건을 꼬치꼬치 따지자 “바보처럼 굴지 마라. JP모건이 구제에 나선 것을 고마워해라”는 핀잔을 줘 체면을 중시하는 월스트리트 동료들을 경악시켰다.
2009년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에서 캐나다 중앙은행(BOC) 총재 마크 카니를 반미주의자로 공격했다가 카니가 영국중앙은행(BOE) 총재가 되자 정중히 사과한 ‘굴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악명 높아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워싱턴의 정치가들을 다뤄 ‘월스트리트의 대사’란 별명도 얻었다.
‘월스트리트 적폐 청산’을 다짐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다이먼 회장을 “가장 똑똑한 CEO”라 칭송했다. 2013년 3월 ‘런던 고래 사건’의 증인으로 상원 청문회에 소환됐을 때 오바마가 선물한 커프스 핀을 달고 나와 화제가 됐다.
‘철옹성 같은 대차대조표(fortress balance sheet)’란 말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그는 라이벌 골드만삭스조차 자금난으로 휘청이던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고 부실채권 정리 주간사를 맡아 엄청난 수수료를 챙겼다.
2000년 뱅크원 CEO로 부임하며 “잡초 몇 포기 뽑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체인 쏘(전기 톱)로 베어야 한다”며 7000명을 감원하고, 2005년 JP모건과 합병 이후 다시 7000여명을 자르는 등 무자비한 구조조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2007년 이후 2400개 지점을 늘리고 7만8000명을 추가로 채용, 온갖 악평과 비난을 잠재웠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승부사
다이먼 회장은 1956년 뉴욕시 퀸즈에서 테오도르 다이먼과 테미스 다이먼 사이에 태어났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주식 중개인 출신인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터프츠대에서 심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년간 컨설턴트로 일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제프 이멜트 GE CEO, 스티브 버크 NBC유니버설 최고경영자가 하버드 동기생이다.
아버지의 상사였던 샌디 웨일의 “재미있을 거야” 라는 제안에 쟁쟁한 기업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1982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입사했다. 1985년 샌디 웨일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축출되자 같이 회사를 나와 인수·합병 분야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1998년 스미스 바니 CEO가 되면서, 시티그룹 CEO가 된 샌디 웨일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꼽혔으나 휴가 중 전격 해고됐다. 투자 부문에서 일하던 웨일의 딸에 대한 처우를 둘러싸고 앙금이 쌓인 때문으로 알려졌다.
2000년 뱅크원 CEO로 컴백, 회사 가치를 2배로 키운 뒤 2004년 JP모건과 합병을 성사시켰다. JP모건체이스의 CEO(2006년)가 된 뒤 2007년부터 회장을 겸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만난 주디스 켄트와 1983년 결혼해 세 딸을 뒀다. 2016년 연봉은 2800만달러(약 316억원), 개인 자산은 11억2000만달러(약 1조2600억원)라고 ‘포브스’ 는 추정했다. 2014년 여름 식도암 진단을 받아 8주간 치료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