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영화 ‘빅 쇼트’에서 위기를 예지한 금융인을 연기한 배우 스티브 카렐(왼쪽 팔짱 낀 이)과 라이언 고슬링(마주 보는 이), ‘인사이드 잡’ 포스터. 사진 IMDB
왼쪽부터 영화 ‘빅 쇼트’에서 위기를 예지한 금융인을 연기한 배우 스티브 카렐(왼쪽 팔짱 낀 이)과 라이언 고슬링(마주 보는 이), ‘인사이드 잡’ 포스터. 사진 IMDB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경제 위기는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예상보다 오래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위기 대처 방식이나 자산 보호 전략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7년 전 보스턴에서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자산운용 부문 회장을 인터뷰했었는데, 고객 돈 4800조원을 주무르는 그에게 운용 비법을 물었더니 “기술만 파고들지 말고 역사·정치를 함께 생각하는 넓고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왜 2008년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엔 이렇게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1907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 공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때의 고통을 경험한 이들은 모두 죽고 없다. 사람들이 과거 교훈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므로 위기가 반복된다. 역사를 익혀 미래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금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번 위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유례없는 초저금리 시대에도 전 세계 중앙은행·정부는 더 많은 돈을 쏟아부을 기세. 그러나 결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경제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요즘, 머리를 잠시 식히며 재미있게 볼 만한그러면서도 이번 위기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 줄 영상 콘텐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1│빅 쇼트(The Big Short·2015)

세계 경제를 공포에 빠뜨렸던 2008년 금융위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로 시작한다.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2008년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었지만, 몇몇 금융인은 그 전부터 위기를 감지했다. 영화는 왜 이 엄청난 위기를 제대로 예측하거나 막지 못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그러나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말단까지 의심하고 검증해보는 까칠한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금융을 다루지만 머리 아픈 내용은 별로 없다. 크리스천 베일, 라이언 고슬링, 스티브 카렐, 브래드 피트 등 스타들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실 이들뿐 아니라 출연 배우 대부분의 연기가 찰지다. 이들이 맡은 배역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각색됐다.

의외의 인물이 의외의 장소에서 왜 금융위기가 발생했는지를 여러 경제 현상을 들어 설명하는 것도 신선하다. 행동경제학 대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가 카지노에 앉아서, 할리우드 여성 스타 마고 로비가 샴페인 잔을 들고 거품 목욕을 하며 이야기하는 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붕괴 직전의 미국 사회와 금융시장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MBS(주택저당증권), CDO(부채담보부증권), CDS(신용부도스와프), 공매도, 롱(Long), 쇼트(Short) 등 다양한 용어가 등장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빅 쇼트’는 쇼트, 즉 값이 내려가는 쪽으로 그것도 아주 크게 베팅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 보기 전에 미리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재미는 없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를 이 영화가 증명한다.


2│인사이드 잡(Inside Job·2010)

‘빅 쇼트’가 다큐멘터리 형식을 활용한 오락 영화라면, ‘인사이드 잡’은 진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금융위기가 터진 이유가 월스트리트와 금융계 전체의 탐욕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어떻게 금융인들이 이런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책임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도 추적한다.

영화는 오염된 전문가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너무나 많이 알지만, 범죄에 무감각한 혹은 돈에 팔린 전문가 그리고 조금 알더라도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찾아낼 줄 아는 일반인, 그 둘 중에 누가 진짜인지를 얘기한다. 금융위기 발발 2년 전까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영화 속 인터뷰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을 묻는 시민운동가 질문에 “당신은 비전문가라 모른다. 잘 대비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이런 내용이 영화에 즐비하다.


왼쪽부터 넷플릭스 미드 ‘오자크’의 포스터, ‘월스트리트’에서 두 주인공을 연기한 찰리 신(왼쪽)과 마이클 더글러스, 헤지펀드 대부인 레이 달리오의 동영상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진 IMDB
왼쪽부터 넷플릭스 미드 ‘오자크’의 포스터, ‘월스트리트’에서 두 주인공을 연기한 찰리 신(왼쪽)과 마이클 더글러스, 헤지펀드 대부인 레이 달리오의 동영상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진 IMDB

3│오자크(Ozark·2017)

넷플릭스가 제작한 미국 드라마(미드).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이 마약제조업에 발을 담그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드 ‘브레이킹 배드’의 회계사 버전이다. 시카고의 잘나가는 회계사 마티는 가족과 함께 미주리주의 소도시 오자크로 이사한다. 목적은 하나. 사업 파트너가 횡령한 마약 조직의 돈 5억달러를 세탁해주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악을 잡고 싶으면 돈의 흐름을 잡아라’라는 것이 마약 수사의 기본이라고 한다. 마약밀매 조직은 필연적으로 거액의 돈세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회계·금융 전문가 도움이 꼭 필요하다. 심지어 거대 금융사가 이익을 위해 이런 돈세탁 과정에 참여하고 사실을 묵인하는 일도 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와 더불어 돈세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이 드라마만 보면 된다. 재미도 보장한다. 다만 시즌 1, 2를 몰아 보려면 주말을 모두 투자해도 모자라다.


4│월스트리트(Wall Street·1987)

“탐욕은 좋은 거야. 제대로 통하거든(Greed is good, greed works).”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이 영화의 주인공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주인공들은 내부자 거래와 주가 조작을 일삼으며 거액을 끌어모은다. 30여 년 전 영화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왜 모든 금융위기가 인간 탐욕의 결과인지 알려준다. 코로나19발 경제 위기도 마찬가지. 방아쇠를 당긴 건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겠지만, 실제로 낼 수 있는 능력 이상을 빚으로 쌓아 올린 결과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비슷하다.


5│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는가(How The Economic Machine Works·2013)

‘헤지펀드계의 대부’ 레이 달리오가 직접 설명하는 30분짜리 유튜브 영상. 이것만 반복해 봐도 코로나19발 경제 위기의 심각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엇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의 설명은 매우 재미있고 쉽다는 것을 이 동영상이 보여준다.

달리오는 2017년 9월 ‘거대 부채의 위기(A Template For Understanding Big Debt Crises)’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출간 후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은 대공황 이후인 1937년 당시와 유사하다”며 “미국 경제는 (야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7회를 치르고 있고, 앞으로 2년쯤 뒤 불황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의 미국 경제 호황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이뤄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앞선 금융위기처럼 버블이 발생했고 그 버블은 터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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