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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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고 하루가 지난 10월 30일, 인도에서도 인파가 한꺼번에 다리로 몰리면서 14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날 일몰 직후 현수교를 지탱하던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몇 초 만에 다리가 무너졌고, 그 위에 있던 축제 참가자 500여 명이 그대로 강물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검찰은 현수교 붕괴 참사가 다리 보수 업체의 과실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무리한 일정으로 보수 공사가 부실하게 진행되면서 벌어진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이제 시민의 힘으로 교량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다리를 지나는 시민이 휴대한 스마트폰이 교량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이동형 센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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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인프라 점검에 크라우드소싱 구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카를로 라티 교수와 육군사관학교 토목기계공학과 토머스 마타라조 교수 연구진은 11월 4일(현지시각) 네이처 자매지인 ‘커뮤니케이션스 엔지니어링’에 “자동차를 타고 교량을 지나면서 진행한 실험에서 스마트폰이 진동 주파수 측정에서 다리 곳곳에 장착된 고정식 센서와 대등한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은 사용자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운동 상태를 알려주는 가속도계와 GSP(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 센서를 갖추고 있다. 연구진은 이 센서들이 차량 통행으로 다리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현수교인 금문교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다리를 102번 지났으며,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 운전자들도 72번 다리를 지나며 같은 실험을 했다. 3개월간 실험한 결과, 자동차 탑승자의 스마트폰이 측정한 교량 진동 정보가 다리 곳곳에 설치된 센서 240개에서 수집한 수치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스마트폰으로 교량 상태에 대한 대규모 정보를 저렴하게 수집할 수 있음을 보였다”며 “앞으로 스마트폰이 교통 인프라를 점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나 스마트폰에 교량 점검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으면 출퇴근 길에 다리를 실시간 점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중 참여로 정보를 모으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이 사회 인프라 점검에서 실현되는 셈이다. 크라우드소싱은 ‘크라우드(crowd·대중)’와 ‘아웃소싱(outsourcing·외부 자원 활용)’을 합친 단어로, 2006년 미국 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제프 하우 기자가 처음 만들었다.

이번에 실험을 진행한 금문교는 500m 길이 다리가 케이블에 매달린 형태인 현수교다. 하지만 현수교는 미국 교량 중 1%에 그친다. 그보다 규모가 작은 41% 교량은 콘크리트 기둥에 다리가 얹혀 있는 형태다. 연구진은 이런 콘크리트 교량도 스마트폰으로 점검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연구진은 이탈리아 참피노에 있는 28m 길이 콘크리트 다리 위를 자동차로 280번 지나면서 스마트폰으로 진동 주파수를 측정했다. 스마트폰 센서가 측정한 수치를 다리에 설치된 고정 센서 여섯 개가 측정한 정보와 비교했는데, 역시 2.3%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마타라조 교수는 “이번 방법은 모든 종류의 교량에 적용할 수 있다”며 “차를 타고 가든 스쿠터를 타든 아니면 걸어가든, 다리를 지날 때 스마트폰만 가져가면 된다”고 말했다.


10월 30일 인도 구자라트의 현수교가 붕괴하면서 그 위에 있던 축제 참가자 500여 명이 강으로 빠지고 140여 명이 사망했다.사진 익스프레스구자라트
10월 30일 인도 구자라트의 현수교가 붕괴하면서 그 위에 있던 축제 참가자 500여 명이 강으로 빠지고 140여 명이 사망했다.사진 익스프레스구자라트

대형 사고 방지하고 교량 수명 연장

교량 점검은 고정식 센서로 하면 가장 정확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다리는 사람이 2년에 한 번씩 눈으로 점검하고 있다. 이런 점검 과정이 부실하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인도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는 19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다리에서 일어났는데, 이 다리는 최근 6개월 동안 보수 공사를 마치고 사고 1주일 전에 다시 개통됐다. 보수 공사와 점검 모두 부실했다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 1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출근 시간에 무너진 교량 사고 역시, 전문가들은 다리의 양쪽 끝을 받치는 기둥의 구조적 결함, 부실한 상판 관리로 빚어진 급속한 교량 노후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1994년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상판 붕괴 사고도 부실 공사와 관리 소홀이 결합한 전형적인 인재였다. 상판을 받치고 있는 구조물의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연결핀도 부실했다. 이 상태에서 차량이 오가면서 균열이 발생했지만, 관리 당국이 이상 징후를 무시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MIT의 라티 교수는 “스마트폰 측정은 다리에 설치한 고정식 센서의 정확도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도 “작은 이상을 발견해 추가 분석을 이끄는 조기 경보 시스템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은 다리 수명도 늘릴 수 있다. 연구진은 “스마트폰 교량 점검이 활성화하면 작은 결함도 미리 찾아 보수할 수 있어, 교량 수명을 15~30% 연장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오래된 다리는 수명 연장 효과가 몇 년에 그치겠지만, 신설 교량이라면 15년 가까이 수명이 늘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1994년 10월 21일 다리 가운데 상판이 무너져 내린 서울 성수대교. 이 사고로 출근길 시민 32명이 사망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1994년 10월 21일 다리 가운데 상판이 무너져 내린 서울 성수대교. 이 사고로 출근길 시민 32명이 사망했다. 사진 조선일보 DB

스마트폰으로 감염병, 공해, 도로까지 점검

스마트폰은 도시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저렴하게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스마트폰은 감염병의 확산 과정도 추적했다.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진이 2020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의 이동 형태를 분석했더니 감염병 확산 경로와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교량뿐 아니라 다른 도시 인프라 점검에도 활용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특정 센서를 자동차에 부착하면 공해나 도로 상태 같은 도시의 건강 상태를 원격 감시할 수 있는 크라우드소싱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MIT의 라티 교수는 지난 2019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택시 10대면 매일 맨해튼 거리의 3분의 1을 모니터링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제 자동차에 특수 센서를 달지 않아도 스마트폰에 전용 앱만 내려받으면 누구나 도시 인프라를 점검하는 크라우드소싱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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