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최고경영자)는 우리 시대 최고 선망의 대상 중 하나다. 직장인치고 CEO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CEO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꿈꾼다고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최고는 항상 극소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성공한 CEO가 자신의 ‘멘토’라면 어떨까. 세상을 보는 시야,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 성과를 창출하는 노하우를 쏙쏙 흡수해 CEO가 되는 지름길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꼭 CEO가 되지 않으면 또 어떤가. CEO의 경륜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든다면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당당하지 않겠는가. 만약 CEO들이 자신들의 성공 비결을 아낌없이 나눈다면, 그 사회는 인재가 넘치는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바로 그런 미래를 꿈꾸는 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원결의를 맺었다. 그 중심에 선 조영철(64) 사단법인 ‘CEO지식나눔’ 공동대표(상임대표)를 만나봤다.

“경륜이란 것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경륜을 전수한다는 것은 시간적·사회적 낭비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조영철 대표가 가장 먼저 강조한 키워드는 ‘경륜’과 ‘전수’다. CEO지식나눔을 창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충정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지금 15위인데, 여기서 좀 더 노력해 7위권으로 도약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봅니다.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우리는 지난 시절 소 팔아 자녀를 대학에 보낼 정도로 교육에 열성을 보였지 않습니까? 그 결과 이 정도로 살게 됐어요. 다음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재를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CEO들이 할 일이 뭔가를 고민하다가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경륜과 지식, 노하우와 전문성을 전수하자는 데 뜻을 모은 거죠.”

CEO지식나눔의 출범은 다소 우연찮은 계기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조 대표를 비롯해 김종훈 한미파슨스 회장, 김종욱 한미파슨스 감사, 민경조 전 코오롱그룹 부회장, 박종식 전 삼성지구환경연구소장, 이방주 JR자산관리 회장 등 전·현직 CEO 6명이 모임을 가졌다. 이들 6명은 평소 친목을 나누는 멤버들이다.

이 날도 오랜 만에 모여 서로 안부와 근황을 물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보자”는 공감대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조 대표의 말이다. “현직도 있고 전직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CEO로서 ‘혜택’을 받은 것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사회를 위해 환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내용의 대화가 오갔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뜨거운 화두다. 화두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부족하거나 미진한 때문일 터. 6인의 CEO는 자신들이 사회를 위해 할 일이 뭔지를 진지하게 토론한 끝에 ‘경륜의 전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CEO들이 30~40년 동안 쌓은 노하우가 그저 개인의 것으로 사장된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얻어낸 전문성과 문제해결능력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한다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 말이지요. 우리는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지만 ‘실전경험’은 어느 누구보다 풍부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은 이른바 지식경제 시대다. 지식이 곧 자본이자 경쟁력이다. 부의 원천이 지식과 정보에서 나온다. 이런 시대에 누군가를 돕는 가장 최선의 방식은 무엇일까? 당연히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바람직한 것이다.

CEO 6인의 아름다운 ‘도원결의’

‘지식나눔’이라는 대의에 공감한 6인의 CEO는 그 자리에서 바로 조직을 짰다. 각자 하기보다는 여럿이 뭉쳐서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조 대표가 말했다. “역시 기업에서 CEO를 해본 사람들이라 무슨 일이든 조직적·체계적으로 하게 되더군요. 허허. 사실 그게 일의 효율을 높이는 확실한 방법이기는 해요.”

먼저 김종훈 회장이 “그럼, 내가 사무실을 내겠습니다”라며 깃발을 들자, 나머지 5명도 흔쾌히 각자 자신의 일을 나눠 맡기로 했다. 6개 분과가 금세 조직됐다. 조영철 대표는 기획·전략을 비롯한 살림살이를, 김종훈 회장은 대외관계 및 홍보를, 그리고 김종욱 감사는 회원확대 및 커뮤니티 활성화를 맡았다. 아울러 민경조 전 부회장, 이방주 회장, 박종식 전 소장이 각각 강의, 멘토링, 컨설팅 등 3개 분과를 분담하기로 했다. ‘도원결의’가 굳건히 맺어진 순간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세(勢)가 약하면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조직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몸집 불리기에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는 지식의 나눔을 통한 봉사를 위해 뭉쳤기 때문에 철학을 같이 하는 사람만을 회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긍정적·건설적이면서 국가·사회에 기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회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거죠. 물론 우리부터 ‘구두끈’을 단단히 매자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CEO지식나눔은 5가지 설립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 첫 번째 항목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구체적으로는 ‘지식의 나눔과 봉사를 통해 우리 사회 리더로서 책임 있는 삶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 체계적이고 자발적인 모임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점차 뜻을 같이 하는 CEO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었다. 인맥이 넓은 CEO들답게 “한 다리만 건너니까 동지들을 만나게 되더라”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그렇다고 특정 학연이나 지연을 연결고리로 회원을 늘린 것은 아니란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CEO들이 자발적으로 손을 맞잡았다는 것이다.

지난 9월6일 마침내 CEO지식나눔이 닻을 올렸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CEO들이 이제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달려갈 준비를 마쳤다. 창립 회원은 31명에 달한다. 설립 및 운영 기금은 창립 회원들의 십시일반 출연금으로 조성됐다. 향후 지식나눔 활동에서 생기는 수입은 일부만 운영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전액을 사회복지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150명의 CEO 멘토 확보

CEO지식나눔은 앞으로 회원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일차적인 목표는 올 연말까지 50명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어 2012년에는 100명을 채우고, 나아가 2020년에는 150명까지 회원 풀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구상 중인 사업들을 내실 있게 꾸려나가려면 그 정도 규모는 돼야 한다는 게 조 대표를 비롯한 이사진의 생각이다.

“처음 지식 나눔이라는 봉사 활동을 결의한 뒤, 어디를 ‘타깃’으로 할 것인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우선은 학교 같은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하겠지만, 다음 단계에는 중소기업이나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로 영역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CEO지식나눔의 사업은 강의, 멘토링, 컨설팅의 3대 축으로 이뤄진다. 먼저 강의 사업은 초·중·고·대학생 및 대학원생, 교사, 창업기업가, 중소기업, 정부기관,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한다. 또 멘토링은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데, 멘토(CEO)가 일대일 접촉을 통해 멘티(대학생)의 잠재력과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컨설팅은 성공한 CEO들의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곳에 실질적인 지식을 전수하는 사업이다.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 등 전반적인 경영 역량이 미흡한 기업이 대상이다. 이밖에 장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인재를 양성하는 ‘차세대 리더 아카데미’(가칭)도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이 가운데 강의 사업은 이미 첫걸음을 내디뎠다. 서울사이버대학교, 한양대학교와 잇달아 업무 제휴 협약을 맺고 CEO지식나눔 회원들의 특강 및 멘토링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학자금 지원 전문기관인 한국장학재단과도 손잡고 멘토링 사업을 시작했다. 조 대표를 비롯한 회원 6명은 벌써 멘토링에 나섰다. 이들을 인생의 스승으로 만나게 된 대학생은 모두 50여명이다.

“교육은 있으되 스승은 없는 게 오늘의 우리나라 실정입니다.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의 인생관, 가치관 형성에 길잡이가 되어줬지만 요즘에는 단순한 지식과 기능밖에 가르치지 않잖습니까? 부모들도 먹고 살기 바빠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예요. 이런 때에 인생 경륜이 높은 CEO들이 멘토가 되어준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조 대표는 지난 4월 경북대학교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강단에 섰지만 강의실 분위기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학생들이 너무 우울해 보이고 침체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금세 짐작이 갔다. 취업 걱정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 대표는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젊디젊은 학생들이 왜들 이렇게 처져 있느냐? 멀리 내다봐라. 대기업만 좋은 직장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왜 싫으냐? 거기서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점프업’할 수 있다!”

그는 특강을 마친 후 경북대학교 학생처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1·2학년 학생들에게 비전과 용기를 불어넣을 커리큘럼이나 프로그램을 마련해보라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확고한 지향점을 찾으면 제 갈 길을 진취적으로 찾아가기 때문이다. ‘너무 늦은 때’라는 건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뭐든 ‘좋은 때’가 있는 법이다.

‘멘티’의 잠재력 끌어올리는 데 초점

“이번에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멘티로 맞아들인 대학생이 7명인데 모두 3학년 학생입니다. 4학년 학생들도 저를 선택했지만 일부러 배제했지요. 멘토링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거든요. 저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 그들 안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대화를 많이 나눌 요량입니다. 8주짜리 과정으로 끝나지만 그 후에 학생들이 4학년이 되어서도 연락을 주고받을 생각이에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하려고요.”

혹시 세대차가 소통의 장벽이 되지는 않을까? 조 대표는 “물론 세대차를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세대차가 있다고 해서 세대 간 소통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 역시 기성세대가 먼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는 CJ홈쇼핑(현 CJ오쇼핑) 사장 시절 중국에서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상하이미디어그룹(SMG)과 합작 사업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처음 사업을 추진할 때 그쪽 CEO는 62세의 총재였는데 얼마 후 35세의 젊은 총재로 바뀌더군요.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임 총재가 일종의 고문 역할을 하며 한동안 후임 총재와 함께 경영을 챙기더라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공동 경영을 통해 전임 총재의 노하우를 후임 총재에게 전수하는 기간을 가진 거죠. 그때 중국은 전대에서 후대로의 전수가 참 치밀하구나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이웃나라 중국은 그야말로 불같이 국력이 커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거대한 인구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재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 지도부는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을 통해 국가대계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만큼 인구나 자원이 많지 않지만 중국 못지않은 인재를 갖고 있다. 다음 세대는 물론 그 다음 세대에도 한국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려면 결국 끊임없이 인재를 양성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 중차대한 시대적 과제 앞에 CEO지식나눔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선 셈이다.

조 대표의 말이다. “CEO지식나눔과 같은 모델이 다른 곳에도 널리 전파돼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3만~4만달러로 뛰어오르려면 무엇보다 ‘시행착오’를 줄여야 해요. 그러려면 인재 양성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잠재력이 있습니다. 한국인 평균 IQ가 106으로 세계 2위입니다. 누군가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만 만난다면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죠. 다만 21세기는 창의와 아이디어의 시대인 만큼 인재 양성도 그에 맞춰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