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전문가로 민간과 공공 영역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감염병 전문가로 민간과 공공 영역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우한을 방문하고 폐렴 증세가 있는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에서 이재갑 교수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건 지난  1월 7일이었다. 이후 그는 민간팀과 정부팀 공조의 중심에 서서 본격적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협공 작전을 시작했다. 지난 2월 대구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는, 50일째 바깥 잠을 잤다. 낮에는 대구, 밤에는 서울 병원을 오가며 바이러스 현장의 긴급 의료를 진두지휘했다.

현장의 위기 상황을 신종감염병 테스크포스 단톡방에 올려 드라이브 스루와 선별진료소라는 해결책을 끌어냈고,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를 추진해 중환자의 대규모 사망도 막아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폭넓은 감염병 현장 지휘 경험을 갖춘 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부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에볼라(서아프리카까지 날아갔다), 그해 5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거쳐 2020년 코로나19까지 감염병 발생 현장, 수습과 대처 과정에서 ‘이재갑’이라는 전문가는 경험의 깊이를 더해갔다.

8개월이 넘는 코로나19 전시 상황에 전공의 파업까지 겹쳐 파김치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이재갑은 피곤한 기색 없이 쌩쌩했다. 푸른 마스크 위, 안경알 너머 눈동자는 맑고 또렷했다.

“환자 때문에 살고 있다는 걸 새록새록 느껴요. 환자하고 더 가까이 호흡하니, 좋지요. 그게 의사니까요.”

그는 최근 코로나19에 관한 가장 정밀한 백서이자, 바이러스가 침투한 사회 면면을 들여다보는 책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를 펴냈다.


이번에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를 발동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강하게 주장했다. 정부에서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래야 한다. 고연령 발병자가 늘어나면 위험하다. 하루에 200명씩 확진자가 나올 때 60대 이상 어르신이 30% 이상을 차지했다. 일부는 중증으로 갔다. 확진자가 200~300명 나오는 상황이 2주 이상 넘어가면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걸린다. 지금도 중증 환자가 150명을 넘었고,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장치), 인공호흡기 치료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치료 인력과 병상 부족으로 병원마다 초비상이다. 일단 3단계 발동해서 불부터 끄라고 신호를 보내는 거다. 100명 이하로 확진자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전문가는 상황을 아니까 사태의 위중함을 계속 말해야 한다. 2.5단계를 선택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간다.
“(깊은 한숨을 쉬며) 알지만, 과감하게 조치하고 빨리 끝내는 게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 서구에서는 ‘록다운(lockdown)’, 이동 제한령까지 갔다. 그만큼 위험하다. 전문가가 3단계를 강조하면 정부는 고심하며 방법을 찾는다. 카페 출입을 부분 제한하는 2.5단계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태원 발병 때도 2단계로 올리지 않고 고위험 시설을 선제적으로 조정했었다.”

2003년 사스 때부터 감염병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동안 바이러스·방역·의료진과 국민의 반응 등이 어떻게 변화했나.
“과거엔 감염병 하면 식중독이나 A형 간염 정도였다. 교과서대로 원인균 찾고 소독하고 발생자 조사한 후에 ‘어떤 음식만 조심하세요’ 하면 끝이었다. 식중독은 오염원이 분명하지만, 호흡기 감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전파 방법도 사망률도 다 다르다. 메르스는 사망률이 높고 전파율은 낮다. 코로나19는 전파는 잘 되고 치명률은 낮다. 경직된 사고로는 안 되겠구나. 그걸 메르스 를 겪고 깨달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미지의 것이다. 모를 땐 신중해야 한다. 쉽사리 종식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별거 아니라고도 안 한다. 왜? 한두 달 지나면 틀릴 수 있으니까. 조심스럽지만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신중한 능동성’이다. 방역 당국도 민간 전문가도 섣불리 예측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도록 훈련이 됐다.”

K방역의 실체를 임기응변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정말 임기응변이었다. 메르스 끝나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드라이브 스루나 생활치료센터를 계획한 게 아니다. 예상 못 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또 열심히 끈다. 민간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하면서 위기를 통과했다. K방역의 실체는 임기응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국민의 역동성이다. 진단키트나 드라이브 스루 같은 솔루션을 내도록 끌어낸 국민적 역동성이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아이디어를 끌어낸 사람도 이재갑 교수라고 들었다.
“그날이 2월 20일이었다. 당시 대구 현장을 오갔는데, 정말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었다. 확진자는 쏟아지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은 폐쇄되고, 진단 가능한 보건소도 부족했다. 시장을 만나 학교 운동장에 천막이라도 치고 선별진료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해도 ‘시민이 불안해해서 안 된다’는 거다.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때 신종감염병 태스크포스 단톡방에 올렸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러 의견이 오가는 와중에, 내가 2018년에 생물 테러 대응 연구를 했을 때, 드라이브 스루로 시민들에게 백신을 나눠주는 방법을 고민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인천광역시의료원 김진용 과장이 그 일을 상기시키며 4시간 만에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밑그림을 그렸다. 2월 23일 경북대학교병원 권기태 전문의가 바로 받아서 세계 최초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가 탄생했다.”

위기로 뭉친 민간의 현장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정치인과 관료는 늘 한발 늦거나 처리 과정이 복잡했다. 이재갑은 그의 저서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에서 관료 사회의 위계화된 방역 체계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관료주의 행정이 질병관리청의 권고를 무시하면 결국 국민에게 큰 피해가 갈 거라고 경고하면서. 의사 출신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코로나19 시국을 이끄는 건, 대한민국의 축복이라고 했다.


“각 나라는 그 국민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방역 체계를 갖습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각 나라는 그 국민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방역 체계를 갖습니다.”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현장에서 본 정은경 리더십의 정체는.
“그분이 2011년 만성질환센터장 할 때부터 봤다. 청와대에서 처음 질병관리본부장 제의받았을 때, 내게 고민을 말씀하셨다.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고. 그때 놀랐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청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다.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상황이 안 좋아도 화내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평온하다. 보건복지부에서 부탁을 받아도, 부서 간 서열이나 자존심을 안 따지고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한다’다. 무엇보다 국민은 정 청장의 투명성을, 전문가들은 그분의 전문성을 높이 산다. 3번 확진자 관련 브리핑 때 ‘저희가 내막을 파악하는 데 착오가 있었다’고 바로 인정했다. 다들 면피하려고 하는데, 이분은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정확히 얘기한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이런 투명성이 신뢰의 핵심이다. 언론 응대도 디테일에서 전체까지 큰 그림을 보니, 앞뒤 말이 엉키는 법이 없다.”

최근에는 스웨덴 집단 면역 실험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복지 부담 때문에 노인 사망을 방관했다는 의혹도 사지만, 어쨌든 확진자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됐는데.
“스웨덴은 학교는 열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강하게 했다. 록다운을 안 하고 버텼는데 현재까지 인구 1000만 명에 6000명이 죽었다. 우리가 그 모델로 가면 안 된다. 스웨덴은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못 오게 한다. 우리는 감기만 걸려도 A, B, C 약 처방받고 의료 서비스를 누린다. 우리 국민께 ‘아파도 집에 있으세요’ 하면 받아들일까? 방역도 그 나라가 선택하는 거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일단 잘해야 한다. 확진자 진단도 빨리, 유행 잡는 것도 빨리. 지금 사망자 수가 350명이 넘었다. 만약 다른 나라처럼 1만 명 사망했다면 정부는 못 버티고 탄핵됐을지도 모른다. 대만과 뉴질랜드가 방역 잘했다고 하는데, 거긴 섬나라인 데다 자급자족률이 높다. 뉴질랜드는 확진자 나오면, 마을 기준으로 록다운을 해버린다. 반면 대구 경북 때를 생각해 봐라. 집 밖으로 못 나오게 하고 봉쇄령 내리고, 틀어막지 않았다. 그러고도 힘을 합쳐 솔루션을 찾았다. 그 나라가 감당 가능한 방역을 그 나라가 선택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K방역을 수출한다, 그러면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백신이 개발돼도 상황이 획기적으로 나아 지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아마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금 백신 나오면 재선될 것으로 확신하고, 박차를 가한다. 단계별로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백신 효과가 75%만 돼도 성공이라고 한다. 그럼 25%는 효과가 없다는 건데, 미국 확진자를 하루 4만 명으로 보면, 그중 1만 명은 바이러스 차단이 안 된다. 다시 말해 백신 효과는 바이러스 전파 차단이라기보다, 심하게 안 걸리고 고위험군의 사망률을 낮추는 정도다. 유행 차단이 아니라 광범위 확산을 억누르는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정도로는 코로나19 종식이 힘들 것 같다.
“예전처럼 술집 가고 파티하고 공연하면 안 된다. 백신이 나와도 안 된다. 백신 효과는 덜 발생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다들 어느 정도 무뎌지면 그땐 토착화되는 거다.”

‘토착화된다’는 얘기는.
“겨울철마다 오는 바이러스처럼. 신종플루가 인플루엔자로 토착화된 것처럼. 걸렸던 사람이 면역 생기면 유행성으로 자리 잡는다. 독감 주의보처럼 겨울마다 코로나 주의보가 발령될 테고. 백신이 나와도 그렇게 계절성으로 토착화되는 데 2~3년 걸린다. 길면 4~5년 걸리고.”

확진자가 잦아들고 있지만, 가을 겨울 인플루엔자와 겹치는 ‘트윈데믹(코로나19+독감)’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그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는 걸 인정해야 하겠군.
“최소 2년은 더 갈 거다. 환자가 병에 반응하는 단계가 있다. 처음엔 화를 낸다. 그다음엔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다음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마침내 인정하고 수용하게 된다. 전 국민이 그 단계를 겪고 있다. 나도 달라진 삶에 적응하려고 한다. 사람이 고프면, 줌 틀어놓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맥주 시켜 건배하며 스트레스 푼다. 역설적이지만, 체념하면 답이 나온다. 한 달 간다면 이대로 버티잖나. 2~3년 간다는 걸 알면, 그제야 인정하고 무언가를 한다.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역사가 시작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버티지 말고 바꾸라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 살아야 한다. 행동반경을 줄이고 내 바운더리에서 안전하게 살도록, 버티지 말고 삶의 방식을 바꿔라! 밀레니엄은 2000년이 아니라, 2020년에 시작됐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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