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 1세대인 장흥순 대표가 이끄는 블루카이트는 세계 LED 조명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장 대표가 들고 있는 LED 조명 시설은 한국이 자랑하는 반도체와 통신장비 기술을 결합하고 빛 떨림과 빛 반사를 해결한 특허기술이 담겨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한국 벤처 1세대인 장흥순 대표가 이끄는 블루카이트는 세계 LED 조명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장 대표가 들고 있는 LED 조명 시설은 한국이 자랑하는 반도체와 통신장비 기술을 결합하고 빛 떨림과 빛 반사를 해결한 특허기술이 담겨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2015년 12월 10일 미국 방송사 CBS는 방송용 헬기까지 띄워 ‘양키스타디움(양키스 구장)의 LED 조명’이란 단독 보도를 내보낸다. 양키스타디움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으로, 공연과 미식축구 경기가 열리는 다목적 경기장이다.

경기장 상단의 가장자리를 따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위한 1400개의 패널이 새롭게 설치되었는데 양키스 구장의 운영 부회장인 더그 베하르는 직관(경기장 직접 관람)이든 TV 시청이든 보는 맛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베하르 부회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잔디 색깔인 초록은 진정한 초록색으로 보일 것이며, 선수들의 하얀 유니폼은 더욱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리포터는 “만일 당신이 공연을 보러 양키스 구장에 온다면 각 조명 패널들이 당신과 함께 춤추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조명은 음악에 맞춰 반응할 수 있다”며 신바람을 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미국 스포츠의 심장부라 할 양키스타디움의 밤을 밝히는 건 국내 LED 조명 업체 블루카이트(대표이사 장흥순)의 특허 기술과 장비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회사가 2014년 설립된 신생 기업이란 것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GE나 필립스 같은 서구의 거대 자본을 국내 신생 중소기업이 누른 결과다. 심지어 블루카이트는 설립하자마자 MLB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LED 조명을 따냈고, 시애틀 원정경기에서 ‘빛 맛’을 본 뉴욕 양키스 타자들 요청에 못 이겨 구단이 새 조명 시설을 깔게 됐다. “시애틀에서 야간 경기를 하면 투수가 던진 공의 실밥까지 보인다. 우리도 그런 환경에서 야구 하고 싶다”는 타자들 성화에 양키스 구단 이사회가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일까? 먼저 조명의 패러다임이 메탈할라이드(예전 운동장에서 보던 고압 방전식)에서 LED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있었다. LED는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전원을 넣으면 불이 바로 들어온다. 램프 발열 온도는 60℃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기존 조명은 불이 들어오는 데 5~10분 걸리고, 300~400℃까지 발열한다. LED조명이 훨씬 효율적인 데다 감전 위험도 적다. 특히 에너지 효율이 40% 이상 뛰어나다.

그런데 LED 조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 두 가지 모두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와 이동통신장비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반도체는 삼성 LED 소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동통신장비 기술력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블루카이트 LED 조명이 밝히고 있는 제주 샤인빌컨트리클럽 코스. 드론 항공 촬영. 사진 블루카이트
블루카이트 LED 조명이 밝히고 있는 제주 샤인빌컨트리클럽 코스. 드론 항공 촬영. 사진 블루카이트

국내에 촘촘히 세워져 있는 이동통신장비는 아프리카 같은 한여름 더위와 시베리아 같은 한겨울 추위를 지닌 한국 날씨에서 24시간 365일 버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조명이 춤을 추려면 통신 연결이 언제 어디서나 원활해야 한다.

세계적인 통신장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중견기업 KMW의 김덕용 회장은 LED로 변화하는 조명 시장의 흐름을 읽고 이 분야에 수백억원을 투자하고 있었다. 블루카이트는 이 같은 모태 기술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 조명 사업을 위해 설립됐기 때문에 세계 시장의 마운드에 서자마자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MLB의 뉴욕 양키스 구장에서 개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블루카이트는 서강대 동문 상장기업들이 2014년 설립한 산학협력기업이다. 서강대를 최대주주로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 KMW와 로케트 배터리로 유명한 세방전지, 인터넷 전문기업 플랜티넷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블루카이트를 이끄는 장흥순 대표이사는 한국 벤처 1세대로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카이스트 공학박사 출신으로 다양한 벤처 운영 경험이 있는 그는 벤처기업협회 3·4·5대 회장을 역임했다.

스포츠 LED 조명에 관심이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와 2014년 연결된 블루카이트는 이후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을 밝히게 됐다.

2016년엔 국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부산사직구장 조명을 맡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최첨단 기술력을 인정받은 블루카이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유수의 조명 회사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 조명을 담당했다. 동계올림픽 인기가 높은 미국과 유럽의 시간에 맞춰 경기 시간이 결정되다 보니 대부분 조명이 필요한 야간에 경기가 열렸다.

장흥순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평창동계올림픽은 동계올림픽 최초로 LED 조명을 도입한 사례였다.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우리 기술로 치르겠다는 각오로 2년간 치밀하게 준비했다. OBS(올림픽 방송 서비스) 관계자 30여 명이 한국에 몇 번을 찾아와서 기술을 테스트했다. 0.001초를 다투는 경기인데, 촬영한 영상을 다시 느린 동작으로 돌릴 때 LED라고 하더라도 전자파이기 때문에 빛 떨림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상의 흔들림이 없는 칩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고, 빛 반사를 막아주는 리플렉터란 특허 기술을 접목해 최고 수준의 방송 화질이 가능한 조명을 제공했다. 스키점프,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 설상 3경기와 빙상 종목 중 스피드스케이팅과 컬링 같은 실내 종목 조명도 우리 회사가 맡았다.”

그런데 어떻게 골프장 조명으로 이어진 것일까? “절약 올림픽을 내세운 평창동계올림픽에 사용된 조명은 렌털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2000대의 조명이 회수됐다. 이 제품을 어디에 적용할까 고민하다가 골프장이 떠올랐다. 국내 골프장의 레이아웃이 스키장과 똑같다. 기존 조명은 벌크빔이라고 해서 큰 전등에서 불빛을 때려주는 방식이다. 빛이 가는 곳은 밝고 안 가는 곳은 어둡다. LED 조명으로 하면서 큰 전등 하나를 5~6개 정도 되는 빛으로 쪼개서 밝히다 보니 작은 빛으로 여러 곳을 비추게 된다. 우리 골프장은 계단식인 데다 굴곡이 심하고 벙커도 많다 보니 이런 방식이 잘 맞았다.”

블루카이트 LED 조명을 쓰는 국내 골프장은 라싸, 써닝포인트, 인터불고 경산, 한맥, 알펜시아, 소노펠리체, 이븐데일, 서서울, 베스트밸리, 파라지오, 클럽D보은, 제주 샤인빌컨트리클럽 등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미 일본 네 곳, 동남아 세 곳 등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밝히던 한국의 기술 덕분에 야간 라운드를 즐기는 골퍼들이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늘고 있다.

장 대표는 “얼마 전 두바이에서 야간 골프 대회가 열리는 것을 봤다”며 “국내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