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임직원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 아파트. LH 직원들이 부당한 방법을 활용해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
LH 임직원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 아파트. LH 직원들이 부당한 방법을 활용해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연합뉴스

한 중년 남자가 칼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려 한다. 아내가 울면서 옷자락을 붙잡는다. 그러나 더 이상 방도가 없다. 이미 쌀은 떨어졌고 입을 옷도 없다. 아내는 “죽만 먹어도 좋으니 제발 나쁜 짓은 하지 말자”고 애원하지만 죽조차도 먹을 수 없는 절박한 처지다. 애들도 배고파 울고 있다.

이는 ‘동문행(東門行)’이라는 2000년 전 중국의 악부시(樂府詩)에 묘사된 장면이다. 생계형 범죄가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 경우는 동정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공분을 산다. ‘열자(列子)’의 ‘제인확금(齊人攫金)’ 우화가 그 예다. 금을 보는 순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새가 먹이 때문에 목숨을 잃듯이 재물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人爲財死, 鳥爲食亡)’ 일이 곧잘 벌어진다. 이런 세태를 사마천(司馬遷)은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 사람 왁자지껄 모두 이득 때문에 몰려오고, 세상 사람 시끌벅적 모두 이득 때문에 몰려간다(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攘攘, 皆爲利往).” 오늘날 투기꾼들이 몰려다니면서 사방을 투기판으로 만드는 현상을 보면 더욱 실감 나는 격언이다.

성인인들 재물 좋아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다. 공자(孔子)는 “부유함이 구해서 얻어진다면 채찍 잡는 마부라도 하겠다”고 했다. 나라 다스림에서도 우선 풍족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도(正道)를 강조했다. 예컨대 “이득에 따라 행하면 원망이 많다”라거나,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득에 밝다”라거나, “이득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대목들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부귀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 않으면 누리지 않는다”는 소신으로 “불의로 얻는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말들은 “군자는 재물을 좋아하되, 취함에 정도가 있다(君子愛財, 取之有道)”로 요약된다.

물론 공자 말고도 정도를 지키면서 훌륭하게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반대 부류의 인간들로 인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비행을 저지른 자들은 행복을 누리고 그들은 고초를 겪는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도척(盜跖)은 부와 장수를 누렸지만 정도를 걸어간 백이(伯夷)는 굶어 죽었다는 고사가 이러한 세태를 상징하고 있다. 이에 사마천은 “이른바 천도라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所謂天道, 是耶非耶?)”하고 탄식했다. 몇 년 전 공전(空前)의 시청률로 일본 열도를 열광케 했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정의는 가끔은 이긴다(正義はたまには勝つ).” 부조리한 세태에 대한 조롱이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에 묘목들이 심겨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LH 직원 투기 의혹 토지에 묘목들이 심겨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정의가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세상 이치를 많은 사람이 알기 때문에 다들 불로소득을 취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모든 불로소득을 더러운 돈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이 취할 이득을 사악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가로챈다면 더러운 돈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우위에 있는 부류들까지 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몇 년 전 한 교수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주가 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결국 자동 파면되었다. 40대 초반의 전도양양한 인재였다. 또 한 교수는 정부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받고 고전을 번역하다가 한 편씩 잘라내 논문으로 위장, 학술지에 게재하여 교내 연구비까지 받았다. 무려 20회에 걸쳐 수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결국 다른 교수의 제보로 그 비행은 중도에서 그쳤다. 아직 30회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처럼 도리에 어긋난 탐욕의 대가는 왕왕 패가(敗家) 아니면 망신(亡身)이다.

최근 LH 사태로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공무상 정보의 악용은 물론이고 남이 얻을 이익을 교활하게 가로챈 파렴치한 범행이다.

관료사회뿐 아니라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의 대표라는 자들이 부끄러움 없이 더러운 돈을 탐하여 왔다. 대중은 분노를 넘어 절망의 지경에 이르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위의 들보가 바르지 않으면 아래의 들보도 비뚤어진다(上梁不正下梁歪)’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때가 되었지만 아직도 새롭다. 노나라의 실권자 계강자가 나라에 도둑이 많은 것을 걱정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당신이 탐욕스러운 짓을 안 한다면 대중들도 본을 보고 상을 줘도 훔치지 않을 것이오.” 지금 우리의 실상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1980년대 초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 비롯되어 한동안 유행한 ‘민나 도로보데스(みんな泥棒です·모두가 도둑놈)’란 말이 다시 회자될 판이다. “사자 몸속의 벌레는 사자의 살을 먹고(獅子身中蟲, 自食獅子肉)”, 마침내 사자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불경의 경구(警句)처럼 나라를 망칠 자들이다.

‘조선구마사’ 사태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경제 활동에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일은 문제 삼을 바 아니지만,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손상하거나 국익을 해치면서까지 더러운 돈을 탐한다면 매판(買辦)의 오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작금의 절망적인 세태에서도 희망은 있다. 그동안의 여러 정황에서 보듯이 인터넷과 SNS의 비약적인 발달로 우리 사회는 갈수록 투명화해 가고 있다. 때문에 정의가 반드시 이기는 세상은 안 될지라도, 불의로 이득을 취한 자들이 결코 그 즐거움을 오래 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못된 짓을 저지르면 반드시 절로 멸망하게 된다(多行不義必自斃)’는 세상 이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날이 온다. 바르게 산 사람은 비록 선한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평소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으므로 한밤중에 귀신이 문을 두드릴까 두려워하지 않아도(平生不作虧心事, 半夜不怕鬼敲門)’ 된다. 그러다 보면 억지로라도 청렴하고 정의롭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 희망적인 상황은 특히 공정과 평등을 갈망하는 지금의 20~30대가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할 향후 10년 전후면 전개될 것으로 믿는다. 물론 적지 않은 부류는 구태에 오염되어 타락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월등히 선진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 성장 못지않게 국가 청렴도 면에서도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같이 변화해가는 시대에 기업이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