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헤어짐과 배웅’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집 ‘헤어짐과 배웅’ 표지. 사진 김진영
부모님이 차고 앞에 나와 딸을 배웅하는 모습. 사진 김진영
부모님이 차고 앞에 나와 딸을 배웅하는 모습. 사진 김진영

“이 사진집은 무엇에 관한 책인가요?” 혹은 “이 사진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진 전문 책방을 운영하다보면, 손님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사진은 문자와 달리 이미지이기에 본질적으로 대상을 그저 보여줄 뿐 의미는 열려 있다. 그래서 책에 수록된 텍스트도 읽고 그것이 부족하다면 책에는 실려 있지 않더라도 작가와 작업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사진집과 그 안에 담긴 사진의 의미에 다가가곤 한다.

그런데 어떤 사진집은 그 어떤 텍스트나 배경지식 없이도 그냥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책이 있다. 특수한 주제가 아닌 보편적인 주제와 관련 있고, 사진이 표현적이기보다 기록적일 때, 여기에 더해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느껴질 때, 독자는 사진집에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사진들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로 스며든다. 

가족과 집의 의미에 대한 작업을 주로 하는 미국 사진가 디에나 다이크먼의 ‘헤어짐과 배웅(Leaving and Waving)’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에는 후반부의 짤막한 글 말고는 작가의 내레이션이나 텍스트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마다 몇 년도 몇 월에 찍은 것인지, 촬영 시기가 숫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책을 보는 누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받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책 제목이 암시하듯 헤어짐과 배웅이라는 단순한 사건이 시간순으로 반복되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디에나 다이크먼은 미국 아이오와주 수시티에 있는 부모님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 잔디밭에 물을 주는 모습, 전화를 받는 모습, 뒷마당에서 바비큐를 굽는 모습 등, 많은 스냅숏을 찍었다.

그러다 1991년 여름 부모님 집을 떠나면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부모님의 사진을 찍었다. 이때 작가의 나이는 37세. 무심코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27년간 자신을 배웅해주는 부모님의 모습을 담았다.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떠나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님은 한결같이 차고 앞에 나와 미소 짓고 손을 흔들며 딸을 배웅한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같이 단순하고 반복되며 소박한 행위에 가장 큰 애정이 들어서 있는 게 아닐까? 작가는 헤어지는 슬픔과 아쉬움을 달래고자 작별의 순간에 사진을 촬영하는 일이 곧 가족의 작별 의식이 되었다고 말한다.

“1991년 사진을 처음 찍었을 땐, 이것이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점차 나이 들어가셨고 어느 작별 인사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우리의 작별 의식이 되었다. 짐을 차에 싣고 포옹하고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 나는 차를 타고 떠났다.”


2009년 사진부터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김진영
2009년 사진부터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김진영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 아무도 없는 집. 사진 김진영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 아무도 없는 집. 사진 김진영
물결치는 듯한 글씨체(위)와 어머니가 즐겨입던 옷의 색깔을 딴 색지(아래). 사진 김진영
물결치는 듯한 글씨체(위)와 어머니가 즐겨입던 옷의 색깔을 딴 색지(아래). 사진 김진영

처음 이 사진집을 보았을 때, 나는 부모님이 이미 매우 늙어 있는 시점에서 출발하는 것을 다소 아쉽게 생각했다. 만약 작가가 더 일찍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이보다 젊었을 때의 부모님 모습도 담겼다면, 더욱 긴 시간의 변화를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어쩌면 작가가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주어진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걸 깨달은 점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했듯 ‘헤어짐과 배웅’은 처음부터 기획한 작업이 아니라 작가의 인생사 어느 시점에서 싹이 튼 작업이다. 다음에도 당연히 보는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다음에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관계로 느껴지는 시점이 온 것이다.

이 책은 부모님과 함께했을 수많은 시간 가운데 오로지 헤어짐과 배웅의 순간만을 보여준다. 매년 때로는 날씨 좋은 봄에, 때로는 눈 쌓인 겨울에 작가는 부모님 집에 들렀다 시간을 보내고 떠났다. 떠나는 차 안에서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들은 책에 시간순으로 수록되었다. 갓난아기였던 작가의 아들은 소년이 되고, 부모님의 주름은 깊어져 간다. 계절도 계속해서 순환하고, 부모님은 거동을 도와줄 보조기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2009년 사진을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모습은 더 이상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사진만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홀로 딸을 배웅해준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점차 예전의 환한 미소보다 기력 없는 눈빛이 자리하기 시작한다. 2017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시간의 흐름 속에 순리대로 점차 시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이 사진집을 무겁거나 슬프게 하기보다 따뜻하고 경쾌하게 만드는 요소가 책에는 숨어 있다. 책 제목과 작가 이름, 출판사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딕체인 글자 가운데 알파벳 몇 개가 손 흔들어주는 부모님의 모습처럼 물결치고 있다.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진보라색, 살구색, 하늘색, 진분홍색의 다채로운 색지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어머니가 즐겨 입은 밝고 화려한 옷 색깔을 똑 닮아 있는 이 색지들을 작가는 디자인해 책에 넣었다. 작가는 파란 하늘, 녹색 잔디밭, 붉은 집을 배경으로 분홍색 블라우스나 진보라색 반바지와 같은 옷을 입고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회고한다.

책장을 넘기며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나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별을 조금씩 예감하게 한다. 이 책은 부모님 집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끝이 난다. 차고 문은 닫혀 있고 서 있는 이도 손을 흔드는 이도 없다. 다소 앙상해진 나무와 얕게 쌓인 낙엽이 가을의 어느 날임을 짐작게 할 뿐이다.

“2017년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집 앞의 텅 빈 도로 사진이었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나를 향해 손 흔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이 사진집이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 그리고 어딘가 스며드는 듯한 아픔을 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거스를 수 없게 주어진 시간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91년부터 2017년까지 27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딸을 향해 부모가 보낸 사랑, 그리고 동시에 부모를 향한 딸의 사랑이 이 책에는 누적되어 있다.

한 장의 위대하고 놀라운 사진이 감동을 줄 때도 있지만, 반대로 한 장 한 장은 평범할지 몰라도 그것이 한데 모여 큰 감동을 선사하는 사진이 있다. ‘헤어짐과 배웅’에 담긴 사진들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진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