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츠 다니엘 오펜하임이 그린 하인리히 하이네. 사진 위키미디어
모리츠 다니엘 오펜하임이 그린 하인리히 하이네. 사진 위키미디어

필자는 얼마 전 진행한 한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자, 이제 여러분들께 한 가곡을 들려드릴 거예요. 잘 들어본 이후에 이 음악이 말하는 분위기가 일 년 중 몇 월을 노래하는 것일지 직관대로 한번 대답해 주세요.”

곧바로 필자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테너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후 몇 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곡은 곧 끝나고 이윽고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필자는 바로 질문했다. “잘 들으셨나요? 자 이제 각각 한 사람씩 대답해 볼까요?” “2월이요.” “11월이요.” “1월이요.”

대답은 미세한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겨울을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가 재생한 음악은 상당히 차분하고 서정적이었다. 여기에 더해 씁쓸하고 어딘가 외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요즘의 어둡고 쌀쌀한 겨울처럼 말이다.

“이제 시의 내용을 한번 훑어보도록 할까요.” 필자는 독일어로 된 시의 내용을 학생들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해 가며 읽어나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내 마음 안에 사랑이 싹트고 있었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가 노래할 때
내 동경과 갈망을 그녀에게 고백했네.”

시를 읽어나가는 동안 학생들 얼굴에 조금 놀란 표정이 느껴졌다. ‘이렇게 쓸쓸한 멜로디에 이렇게 아름다운 가사가 숨겨져 있었다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금 음악을 듣지 않고 이 시를 읽은 독자들의 눈앞에는 어떤 풍경이 그려졌는지 그 풍경 안에는 어떤 음악이 울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학생들이 들은 가곡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liebe)’에 담은 첫 번째 곡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oenen Monat Mai)’다. 슈만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 시인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서정 시집 ‘서정적 간주곡(Lyrisches Intermezzo)’에 실린 시를 모티브로 이 곡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독일 낭만주의 시대 두 거장의 시와 음악이 만나 또 다른 걸출한 예술작품이 탄생한 셈이다.

필자는 슈만이 왜 이렇게 꽃이 피어나고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봄에, 게다가 거기서 싹트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에, 왜 겨울같이 느껴지는 쓸쓸한 음악을 붙여 넣었는지 궁금했다. 시를 살펴보면, ‘꽃봉오리가 피어날 때’ ‘싹트고 있었네’ ‘고백했네’ 등 과거형으로 적혀 있다. 독일어 원문을 살펴보면 이 시에 나오는 모든 동사가 ‘대과거’의 의미인 ‘Präterium’ 시제로 적혀 있다. 시제를 통해 그가 한 여인을 사랑했고 고백했던 시간이 이미 꽤 지나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슈만은 이 가곡을 해석하며 바로 이 동사 시제에 집중한 듯하다. 봄내가 느껴지는 가사에 쓸쓸한 멜로디를 입혔으니 말이다. 가사와 다른 느낌의 멜로디는 화자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화자는 지금 어느 계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 그의 사랑은 이미 끝난 것인지, 그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났을지 등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연가곡 ‘시인의 사랑’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에 괴로워하지만 끝내 잊지 못하는 한 남성의 사랑을 표현한다. 따라서 이 첫곡도 그가 짝사랑으로 인한 일련의 모든 사건을 겪고 담담하게 감정을 소회하듯 말하는 멜로디를 표현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일차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의 내용은 그의 독특한 시각을 만나 새로워졌고, 슈만의 창작력이 돋보이는 듯했다. 시와 음악의 만남은 감정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슈만의 이러한 작품을 해석해 내는 독특한 감정의 시각은 그의 또 다른 연가곡인 ‘여인의 사랑과 인생(Frauenliebe und Leben)’에도 잘 담겨 있다. 연가곡의 세 번째 곡, 짝사랑하던 남성으로부터 한 여인이 고백을 받는 기쁨의 순간을 표현한 시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네(Ich kann's nicht fassen, nicht glauben)’가 대표적이다. 슈만은 여인이 고백을 받은 뒤 기쁨이 달아날까 봐 극도로 초조해하는 듯한 음악으로 표현해 내며 청자로 하여금 엄청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슈만과 동시대에 활동한 독일 작곡가 카를 뢰베(Carl Löwe)와는 정반대의 형식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를 뢰베는 같은 시를 모티브로 만든 동명의 연가곡(여인의 사랑과 인생)에서 직관적인 감정인 행복한 분위기의 멜로디를 써 넣었다. 어떤 작품이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느끼고 표현하는 예술의 세계가 흥미롭다.


에두아르드 카이저가 그린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사진 위키미디어
에두아르드 카이저가 그린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사진 위키미디어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는 같은 말을 듣고 같은 순간을 경험하더라도 모두 각각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또 기쁨이 배가 되기도 하는 게 또 인생사이다 보니, 우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예술은 또 오죽할까 싶다.

다시 하이네의 시로 돌아가보자. 그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라는 시를 발표한 뒤, 이 시는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슈만의 음악뿐 아니라, 그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은 많다. 19세기 중후반 무렵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로 유명했던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또 다른 시로 패러디하기도 한다. 그는 파리 공연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뒤 서둘러 도시를 떠나며 이 시를 읊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리하르트 바그너는 알에서 기어나왔다.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가 원했던 것처럼
그는 그 차라리 그 알 안에 있어야 했다.”

뿌옇게 흐린 하늘을 보며 다시 이 곡을 들어본다. 추운 겨울 날씨지만, 가사가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사랑을 말하는 지금 이순간이 슬프더라도 그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했던 이의 마음이 어찌 차갑다고만 할 수 있을까.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로베르트 슈만 ‘시인의 사랑’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
피아노 연주 후베르트 기젠

슈만이 자신과 배우자 클라라와의 결혼을 반대한 장인에게 맞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끝에 승소해 결혼한 해인 1840년에 쓴 작품이다.

슈만은 줄곧 피아노 작품을 써 왔지만 그들의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던 1840년에는 130여 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다. ‘시인의 사랑’은 그의 인생에서 행복과 영감이 최고조로 넘쳤던 시기이자 노래의 해에 작곡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곡이지만 피아노가 반주 역할을 넘어 성악가와 대등한 위치로 주목받은 ‘피아노와 성악의 진정한 듀오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곡은 자연스럽고 극도로 섬세한 가사와 슈만의 감수성 넘치는 화성, 멜로디가 어울려져 낭만주의 시대를 통틀어 손에 꼽는 가곡의 명작이라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