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극장들(Theaters)’ 표지. 사진 김진영
사진집 ‘극장들(Theaters)’ 표지. 사진 김진영

일본 사진가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영화 전체를 한 장의 사진으로 촬영한다고 가정해본다면?’ 그는 스스로 대답했다. ‘빛나는 화면을 얻을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촬영을 하기도 전에 결과를 머릿속에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왜 빛나는 화면을 얻게 된다고 그는 생각했을까? 그리고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

영화 전체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촬영한다는 개념에 매료된 그는 머릿속 비전을 실현해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어느 날 오후 대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저렴한 극장에 들어갔다. 다행히 이 허름한 극장에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미리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했다. 영화가 시작되자 그는 어둠 속에서 스크린의 빛을 최대한 많이 필름에 투과시키기 위해 조리개를 활짝 개방한 상태로 셔터를 열었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그는 셔터를 닫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만큼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그날 저녁 암실에서 그는 곧바로 필름을 현상했다. 그의 예측대로 환히 빛나는 스크린과 그 빛을 받은 극장 내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실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촬영을 진행한 사진에는 관객들의 뒷모습이 함께 담겼다. 사진 김진영
실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촬영을 진행한 사진에는 관객들의 뒷모습이 함께 담겼다. 사진 김진영

‘극장들(Theaters)’에는 1976년부터 2015년까지 약 40년간 이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 극장 사진이 담겨 있다. 그는 먼저 유럽과 미국의 유서 깊은 극장이나 버려진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서 실제로 영화를 상영할 때 촬영을 진행한 사진에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뒷모습도 함께 담겼다. 버려진 극장에는 프로젝터를 직접 들고 가 영화를 상영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스크린의 빛 덕분에 사진에는 고전적인 바로크 장식물, 천장의 문양, 건축적 구조, 빼곡한 의자 등 극장의 구석구석이 면밀히 담겼다. 

야외 자동차 극장을 찍은 사진에는 별과 비행기 궤적도 보인다. 사진 김진영
야외 자동차 극장을 찍은 사진에는 별과 비행기 궤적도 보인다. 사진 김진영

실내 극장에 대한 작업에 이어 1990년대 초반부터 그는 야외 자동차 극장에서도 같은 방식의 작업을 이어 갔다. 실내 극장과 마찬가지로 실외 극장 역시 빛이 저문 어두운 밤에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상영한다는 점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실외 극장 사진에는 가로수, 담장, 전선, 놀이터, 공장 등 스크린이 세워진 야외 공간 주위의 세부 요소가 담겼다. 이에 더해 여기에는 정교한 사진 작업을 하는 스기모토가 통제할 수 없는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요소가 함께 담겼다. 그것은 밤하늘 아래 있는 실외 극장 스크린 뒤편에 별과 비행기가 하늘에 남긴 무작위한 선들이었다. 

영화가 시작될 때마다 셔터를 열고 엔딩 크레디트에서 셔터를 닫아 만들어진 이 사진들은 세부 요소는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축적된 빛을 다시 뿜어내기라도 하는 듯 환하게 빛나는 직사각형의 스크린이 사진의 중앙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스크린은 ‘극장들’ 시리즈 전체에 시각적 통일성을 부여한다.

이 작업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이라는 요소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을 ‘찰칵’ 하는 짧은 순간에 찍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 사진을 본다면, 독자는 작가가 애초에 빈 화면을 찍은 것이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두어 시간 동안 장노출을 통해, 즉 과도한 노출을 통해 촬영됐다. 그리하여 스기모토가 사진을 찍기도 전에 예상할 수 있었던, 시각적으로 비어 있는 화면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한다. 시각의 차원에서는 텅 비어 있지만, 의미의 차원에서는 어떨까?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의 모든 이미지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았기에,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사진 속 텅 빈 화면은 실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는 초당 24프레임의 사진으로 구성돼 있기에, 스기모토의 말을 빌리자면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은 17만2800장의 사진 잔상을 보는 것과 같다’. 영화의 재미있는 장면부터 슬픈 장면까지 매 순간 모든 장면이 이 안에 담겨 있음을 상상해보면, 시각적으로 텅 빈 화면이 실은 의미로 가득 차 있다는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영화의 모든 의미를 더했더니 장면마다 존재했던 모든 구체성과 재현성이 사라지고 그 결과가 시각적으로 비게 된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 역설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우선 한 장의 사진은 현실을 정지시켜 우리에게 보여준다. 17만2800장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본다면, 우리는 이미지를 분절적으로 지각할 것이다. 이 사진들을 빠르게 재생해 우리가 영상이라 말하는 방식으로 보게 되면, 수적으로는 같은 양의 사진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지각 시스템 차원에서는 이를 더 이상 분절적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수십만 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영화를 보며 인간은 비로소 움직임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분절적으로 지각되는 사진이든 움직임으로 인식되는 영상이든 그것은 우리가 보는 실제 세계를 닮아 있다. 

그런데 스기모토의 사진은 영화의 움직이는 현실을 다시 한 장의 정지된 현실로 만든다. 그리고 이 현실은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없는 현실이다. 의미로는 가득 차 있지만 시각적으로는 비어 있는 화면을 우리는 현실에서 볼 수 없다. 스기모토는 이렇게 다시 질문한다. “이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것, 그러니까 ‘이 화면’을 보았을까?” 그는 답한다. “이것을 본 건 바로 카메라다.” 

모든 장면이 더해진 결과, 오히려 대상이 사라지고 빛으로 가득한 빈 화면만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빛의 예술인 카메라를 사용해 이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스기모토의 사진은 사진으로 찍힌 것이 존재의 증명이라는 오래된 사고를 되짚는다. 그의 사진은 사진으로 찍힌 것이 우리가 실제로 볼 수 없는 어떤 ‘허구(fiction)’일 수 있다는 점을 제안한다.

하얗게 비어있는 화면을 보며 관객은 저마다 다시 의미를 채워 넣는다. 이 화면은 누군가에게는 살아온 인생의 궤적 같다는 인상을 남길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에게는 매일의 시간에 대한 어떠한 상념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를 이 하얀 스크린에 다시금 채워 넣을지 스기모토는 당신에게도 묻고 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