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내 몸의 어딘가가 안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혹은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습관처럼 나는 이렇게 되물었던 것 같다. 왜 아픈 건데? 원인이 뭐야? 아픈 몸의 당사자가 내가 되었든 타인이 되었든 간에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뒤따르는 질문들은 예외 없이 마땅한 이유를 찾기 위한 말들이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가족력도 없는데, 꼬박꼬박 검진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심지어는 술도 담배도 안 하잖아⋯. 형태는 질문이지만 내심은 하소연을 하고 싶었거나 섣부른 판단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거봐 그럴 줄 알았지. 

아픈 것이 모종의 결과라고, 말하자면 무언가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우리에게는 있다. 물론 어떤 병증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이유를 들며 원인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 나는 허리와 어깨 통증 때문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거나 읽는다는 것이 고역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일해서 번 돈을 일하기 위한 몸을 만드는 데 그대로 쏟아붓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도 일자목처럼 뻣뻣하게 서는 느낌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끊을 수도 없는 악순환의 고리와 마주하는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진다는 것일까. 의사 선생님은 이런 불분명한 통증들이 다 잘못된 자세가 누적된 결과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당연한 말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내 자세, 노트북 앞에서의 내 자세가 그리 좋은 것일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단히 잘못된 자세였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닐 것이다. 나와 같은 자세를 지닌 사람이 다 나만큼 아픈 것도 아닐 테고.

통증을 하나의 결과라 인식하고 원인을 찾는 데 집착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원인을 알 수 없거나 있다 해도 그것이 내 의지와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픈 몸이 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자책감과 죄책감의 터널을 지나는 일이기도 하다.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몸 관리를 소홀히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내가 조금 더 조심하고 신경 썼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 거라고, 요컨대 전부 다 내 ‘잘못’이라고. 이런 ‘내 탓’이 아픈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과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몸의 통증을 오롯이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사적인 경험이자 건강을 일종의 능력으로 치환하는 문화의 그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픈 몸을 나약함의 상징이자 자기 관리의 실패라 여기는 문화에서는 아픈 것도 죄가 된다.

‘다시 말해 줄래요?’는 채널A의 현직 기자 황승택의 두 번째 책이자 200일 동안 경험한 청력 상실에 대한 에세이다. 마흔여섯의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급성중이염, 그로 인한 청각 상실 경험과 소리 없는 세상에 대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면면들을 기자 특유의 지성과 감성으로 생생하게 기록한 체험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진행된다. 소리를 잃었다는 선고를 받은 이후 청력 회복을 위한 수술을 받기까지 200일 동안 경험한 소리 없는 세상이 전반부다. 이때 세상이 보여 주는 얼굴은 이전에 보여 주던 얼굴과 전혀 다르다. 후반부는 인공와우 수술 이후 외부 장치의 도움을 받아 청력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세상에서 자신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제목인 ‘다시 말해 줄래요?’는 부탁하는 것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다짐을 잘 담고 있다.

황승택 기자와는 이 책이 두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 작업은 2018년 출간된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를 통해서였다. 말 그대로 혈액암에 걸린 이후 재발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조차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지극히 애쓰는 마음에서 삶의 의지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큰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다는 말로 끝나는 첫 번째 책과 달리 이번 책은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아픈 건 아빠 잘못이 아니니까.” 같이 놀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빠의 문자에 딸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 말에서 어떤 말보다 큰 위로를 받았던 건 그만큼 아픈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청력 상실은 혈액암보다 이겨내기 ‘쉬운’, 고통이 덜한 상황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얼마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통의 무게를 재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달았다. 첫 번째 책과 달리 이번 책에서는 청인 중심 사회에서 그 기준에 도달하지 않는 청력을 가진 사람이 경험하는 물리적 소외감에 더해 심리적 소외감이 어떤 과장도 없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물리적인 통증을 극복하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인 통증을 극복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더 어렵다. 때로는 아프다는 것보다 아픈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이 더 가혹한 현실이 된다.

아픈 건 죄가 아니다. 투병기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하기에 소박해 보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 솔직함 속에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화려한 말보다 깊이 각인돼 있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Plus Point

황승택

사진 민음사
사진 민음사

채널A 기자로 재직 중이던 2015년 10월 첫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2016년 2차, 2018년 3차 발병을 겪었지만, 낙천적이고 근면한 성격으로 투병 과정을 극복하고 일상과 직업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2020년 급성중이염으로 청력을 잃는 경험을 하며 또다시 아픈 몸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이를 상실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 장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 계기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두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뉴스의 한복판에 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기자로서 하루하루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저서로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