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우리 인생은 통과의례(rites of passage)의 연속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통과의례를 거친다. 아이가 태어나서 무사히 백일을 넘기면 백일잔치를 하고, 첫해를 넘기면 돌잔치를 한다. 성인이 되면 성인식을 하고, 대학이나 군대 혹은 회사에 들어가면 신고식을 한다. 결혼식도 환갑잔치도 모두가 통과의례의 하나다.

인류학자 아널드 반 즈네프에 의하면 통과의례는 세 단계를 거친다. 과거의 상태에서 분리(separation)되는 단계, 혼란과 고난을 거쳐 새로운 힘과 지위를 얻는 전환(transition)의 단계, 새로운 상태로 공동체로 재진입하는 통합(incorporation)의 단계다. 사회의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과의례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과의례 중에서 가장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이 대통령 취임식(presidential inauguration)일 것이다. 5월 10일에 진행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검사 윤석열은 어느 순간 승승장구해 검찰총장이 됐다. 영광은 짧고 고난은 길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손을 댄 그를 바로 그 살아있는 권력이 그냥 두지 않았다. 그는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대통령 취임식은 혼란과 고난을 거친 자연인 윤석열이 선거를 통해 새로운 힘과 지위를 부여받았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개인적인 통과의례의 자리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통치자가 바뀌었음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국가적인 의례의 자리이기도 하다.

특정 정당의 후보들이 경쟁을 통해 걸러지고 선택받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대표자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아울러 세계 속의 번영하는 나라를 향해 함께 나아갈 최고 지도자다. 취임식은 이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취임식 당일 사전 행사는 오전 10시에, 본 행사는 오전 11시에 각각 치러지고, 현장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8시 30분까지 입장하게 됐다. 입구에서는 행사 팸플릿과 작은 손부채 그리고 마스크를 나눠 줬다. 나는 우리 일행이 배당받은 구역에서 가장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야 행사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눠준 팸플릿을 펼쳤다. 표지 전면에 캘리그래피로 작성된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왔다. 속지 좌측에는 식전 행사, 우측에는 본행사에 대한 순서가 있었다. 행사 내용을 일별하고 나는 좀 실망했다. 

취임식 행사를 총괄한 이도훈 총감독의 말에 의하면 행사의 콘셉트는 ‘국민의 꿈’이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식전 행사는 ‘꿈의 비상’ ‘어린이의 꿈, 날개를 펴다’ ‘청년의 꿈, 날아오르다’ ‘모두의 꿈, 다시 대한민국’의 순으로 세대별 꿈이 국민 전체의 꿈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그리는 식으로 전개됐다. 어린이 그림 그리기 축제에서 그려진 많은 그림이 무대 뒷면에 설치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어린이들이 펼치는 뮤지컬, 청년들의 뮤지컬에 이어 전체 출연진이 함께하는 ‘모두의 꿈, 다시 대한민국’이 식전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전체적으로 너무 밋밋하고 뚜렷한 메시지 없이 별다른 감흥이 없을 것이라는 내 예상은 유감스럽게도 적중했다. 

그냥 그럭저럭 무난한 공연이 괜찮은 출연진들에 의해 무대에 오르고 공연이 실황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4만여 명이 자리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은 단 네 대뿐이었다. 말하자면 1만 명당 1대꼴로 전광판을 줬다는 소리다. 무대 바로 앞에 있는 시민들을 빼고는 대부분 전광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전광판에 거리까지 너무 멀어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최 측은 시골 군수 선거에도 전광판이 몇 대가 등장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대통령 소개 영상도 평소 아는 내용이 재탕되는 느낌이었다. 듣기로 새 대통령은 요리를 잘한다고 들었다. 나는 ‘윤(尹) 셰프’가 영부인과 함께 야외 바비큐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장면을 기대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이나 대원들과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리는 장면 혹은 가난한 어린이를 안고 위로해주는 감동적인 장면을 기대했다. 역시나였다. 혹시나 기대했던 대통령이 그들을 위해 기타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도 없었다. 

대신 위에서 말한 천안함 생존자들이나 소방대원 등의 국민 영웅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함께 낭독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순서(물론 그것 역시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꿈을 꾸는지, 혹은 꾸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본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통령의 취임사와 그 직후에 이어지는 축하공연이다. 취임사는 명문은 아니었지만 ‘자유’라는 단어가 35번이나 나오는 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 공정, 연대를 강조하는 등 선택과 집중으로 명징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취임사에 부합하는 감동은 없었다. 장내를 가득 메운 취임식 현장 속의 시민들과 미디어를 통해 시청하는 국민들, 외신을 타고 소식을 받을 지구촌 사람들을 가슴 벅차게 만드는 ‘킬러 콘텐츠’ 그러니까 ‘감동의 한 방’은 없었다. 

이어진 축하공연에서 세계적인 성악가 연광철 등이 함께 부른 노래는 우리 전통민요 ‘아리랑’과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의 아리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였다. 연광철이 부른 것까지는 좋았지만, 기쁜 취임식 날에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를 가진 아리랑의 선곡은 어색했다. 

네순 도르마는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의 공주가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까지는 백성들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는 폭압적 명령을 내린다는 국민 박해 스토리가 배경이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아리아 마지막에 ‘새벽이 밝아오면 나 이기리라!’라는 가사가 나온다고 그것을 취임식의 축하공연 노래로 선정했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유명한 노래라면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리랑과 네순 도르마의 어색하고 기이한 불협화(不協和)가 취임식 공연의 무감동을 잘 대변한다. 아마도 이는 총감독을 비롯한 기획자들이 공연의 현장성에 대한 개념이 없는 탓일 것이다. 그저 예술의전당이나 롯데홀 같은 대형 공연장에 수십만원짜리 티켓을 자비로 사서 오는 고급예술 마니아들에게 어떤 공연을 선사할 것인가만을 연구해온 그러니까 ‘공급자 중심’의 기획만 해온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나는 강권한다. 제발 야외 공연 현장, 집회 현장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라고 말이다. 모든 것을 문화 운동의 차원에서 선전·선동만 일삼는 행태를 배우라는 말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이 어떤 ‘소비자 중심의 사고’를 하는지는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통령의 취임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하늘에 무지개가 떠서 사람들이 상서롭다고 한마디씩 할 만큼 축제 분위기는 좋았는데, 공연은 낙제점이라 아쉽기 짝이 없었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