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캠핑을 즐기는 가족.
텐트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캠핑을 즐기는 가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에서 우연히 캠핑에 관한 동영상을 봤다. 그 후로 유튜브는 캠핑카, ‘차박(차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 텐트 등 비슷한 프로그램을 수도 없이 추천한다. 요즘은 나 홀로 캠핑, 나 홀로 차박이 대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면서 비대면 시대가 열리고 이 틈새를 비집고 ‘언택트(untact) 캠핑’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 친구 A는 툭 하면 나를 꼬드긴다. “야! 이번 주말에 캠핑 가지 않을래?” 난 심드렁하다. “나는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제일 좋은 사람이야! 멀쩡한 집 두고 무슨 황소바람 들어오는 텐트냐?” “지금이 80년대인 줄 아냐? 요즘 텐트는 외풍 없어. 게다가 캠핑장엔 전기가 들어오니까 전기장판도 깔아 줄게.” “됐거든. 난 방바닥이 절절 끓는 콘도가 더 좋아.”

A는 집요하다. 그의 요청으로 서울 근교 캠핑장에 함께 가서 밤새도록 놀다가 밤 12시 넘어 나 홀로 귀경한 적도 있다. 한번은 동해안으로 캠핑을 가자는 연락이 왔다. 물론 사양했다. “실내가 아주 따뜻한 캐러밴을 빌려놨다니까!” 결국 A의 간청에 못 이겨 나만 캐러밴에서 자고, 다른 친구 셋은 텐트에서 잠을 자고 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캠핑을 가서 텐트를 칠 때 A의 태도는 완강하다. 그는 텐트를 칠 자리를 잡고 폴대를 결합하며 팩을 박고 그늘막을 치는 일 등, 일체를 오롯이 자신의 뜻대로 한다.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전 구매 목록 작성에서부터 캠핑장에서 채소를 다듬고 고기를 굽는 일까지 모조리 그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알다시피 수만 년 전 우리 조상이 사바나 초원에 살던 시절에는 사냥과 채집이 주된 생존 양식이었다. 그날 사냥해서 그날 먹는 하루살이 일상이었지만, 먹을거리가 떨어지거나 큰 사냥감을 포획하려면 베테랑 사냥꾼들이 원정을 나섰다. 그들은 여러 날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가 낯선 곳에 피곤한 몸을 누이기 일쑤였다. 근처의 동굴이나 주변에서 구해온 나뭇가지 등을 긁어모아 얼기설기 만든 임시 텐트가 그들의 거처였다.

저녁이 되면 텐트 주위에 불을 피우고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날 하루를 정리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얘기며 내일의 사냥 계획을 수립하는 일도 당연히 그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밤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몸에 깊이깊이 새겨진 사냥꾼으로서의 야성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안락한 집을 두고 굳이 불편한 야외로 캠핑을 떠나는 것은 우리가 ‘양복 입은 원시인’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내 친구 A도 이런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할까? 그건 경우가 좀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A의 히스토리를 좀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다. A의 부친은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 일가족은 부친을 따라 낙향했고, 셋방을 전전했다. 남부럽지 않았던 서울 부잣집 아이가 땟국물 흐르는 가난한 시골 촌놈으로 전락했다. A는 당시에 이미 계층이동의 설움을 실감했다고 한다.

이런 트라우마가 A를 사회적 지위와 서열에 극도로 민감한 성향으로 만든 모양이다. 우리는 기억도 못 하는 수십 년 전 초중고 시절 동급생들의 성적을 그는 지금까지 줄줄이 꿴다. 그는 맛집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리스트화한다. 리스트는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차례’대로 적은 표가 아닌가. 차례는 순서이고 서열이다. A는 심지어 한 테이블에 앉아 회식하는 친구들의 서열을 매기는 일도 불사한다. 평소 그가 축적한 친구들의 연봉, 아파트 시세, 보유 현금 등의 첩보를 토대로 경제적 서열을 매기는 것이다. 이런 제멋대로의 서열화에 친구들은 어이없어하지만, 본디 그의 품성이 순수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웃어넘긴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주식에 손을 댔다가 ‘폭망’했다. 대출까지 받았던 것이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던 그가 졸지에 서울 변두리 반지하 단칸방의 사글세 신세가 됐다. A는 옛날 부친의 파산 악몽이 되살아났다. 처가로부터 ‘사기 결혼을 당했다’는 악담까지 들었다. 그는 절치부심했다. 일찍 퇴근한 저녁이나 휴일이면 아내를 제치고, 집 안 청소와 요리를 전담했다. 자신 때문에 생고생하게 된 아내와 가족을 향한 마음의 빚을 이렇게 해서라도 갚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역시 경제적인 궁핍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수입 대부분은 빚을 갚는 데 들어갔다.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지출은 최소화했다. 자연히 A의 ‘체면 유지비’도 줄게 됐다. 그의 심리적 지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때부터 A는 캠핑에 몰두했다. A의 상처와 스트레스를 잘 아는 그의 아내는 남편이 틈틈이 친구들과 캠핑을 가는 것을 허락해줬다.

A는 왜 하필 캠핑에 몰두하게 됐을까. 물론 아까 말한 남자의 사냥 본능은 일반론이니까 논외로 하고 말이다. 언뜻 보기엔 캠핑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가 눈에 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A가 캠핑과 요리에 집착하게 된 것은 사회적으로 낮아진 서열을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캠핑이라는 출구를 찾아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자연으로 캠핑 가서 텐트를 세울 때, A는 장막을 세우는 건설자(builder)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심리적 제왕(king)이다.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할 때 그는 제 특기를 맘껏 살려 새 요리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creator)다. 이제껏 가정이나 직장에서 ‘을’의 지위에서 힘들어하던 A는 그때 그 순간만은 진정한 ‘갑’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일종의 자기만의 ‘정신승리’가 아니냐고?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지위에 민감하고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캠핑이나 요리, 조립 등의 일에 몰입하는 것이 상처 치유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혹시 주변에 A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권장해도 좋을 것 같다.

참! 내 친구 A는 다행히 재기에 성공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캠핑과 요리에 몰두하고 있지만 말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