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만은 태곳적부터 한반도에서 혹한의 겨울을 나는 철새의 쉼터다. 사진 이우석
전남 순천만은 태곳적부터 한반도에서 혹한의 겨울을 나는 철새의 쉼터다. 사진 이우석

새 내려온다, 새 내려온다.

범이 아니라 철새가 전남 순천에 내려왔다. 두루미는 철새, 태곳적부터 한반도를 찾아 겨울을 났다. 오랜 손님이요 이웃임이 틀림없다. 이 중에서도 특히 귀한 흑두루미가 순천만에서 혹한을 나고 있다. 천연기념물 228호 흑두루미는 전 세계 2만 마리도 채 되지 않는 멸종위기종(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자료목록 취약종)이다.

전언에 따르면 황새(천연기념물 199호)도 왔다고 한다. 철새는 아니지만, 흑두루미보다 더 귀한(약 2500마리만 생존해 있는 멸종위기종) 황새 38마리도 순천만에 와 있다고 한다. 반가운 새해 손님이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초읽기에 들어간 순천만은 국내 최대 멸종위기종 조류 서식지다. 올겨울에도 흑두루미 3000여 마리, 가창오리 20여만 마리, 노랑부리저어새 142마리가 온 것으로 관찰됐다.

탐조 여행을 갈 때는 망원경이나 망원렌즈를 챙겨야 한다. 새들을 놀라게 하면 안 된다. 순천만 대대포구 인근 논에는 새 떼를 탐조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꼬막 향이 진동하는 겨울 순천에선 매일 에어쇼가 펼쳐진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대포구 갈대밭 데크 주변에는 다양한 철새들이 눈에 띈다. 하늘엔 오리 떼가 날아들고 갯벌과 땅에서는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겨울 철새를 찾아볼 수 있다.

만화영화 ‘딱따구리’ 주인공처럼 생긴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껑충껑충 다가온 새는 정수리에 긴 털을 세운 것이 록 밴드의 리드싱어를 닮았다. 이름은 댕기머리물떼새. 한반도를 찾는 겨울 철새로 이 역시 위기근접종이다.

갯벌 둑을 중심으로 반대편 논밭은 굳건히 통제되어 있다. “가르르 가르르” “꾸꾸 꾸꾸” 멀리서도 또렷이 새소리가 들린다. 청둥오리가 와글와글한데 멀리 시커먼 녀석들이 눈에 띈다. 출근 시간 9호선 국회의사당역처럼 많이도 모였다. 눈이 커졌다. 확실히 ‘포스’가 다르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는 자태가 우아하고 도도하다.

순천시가 식당 건물을 매입해 개조한 탐조전망대도 있다. 새들이 놀라지 않게 이 안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해야 한다. 전 세계에 사는 모든 흑두루미의 10%를 여기서 볼 수 있다니, 감동이다.

고개를 처박고 낟알을 주워 먹는 놈, 부리로 제 몸을 긁는 놈.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고작 4~5m를 날아 이동하는 놈. 시꺼먼 놈들이 모여 제각각 여유를 부리며 겨울을 나고 있다.

놈들은 겁이 많다. 특히나 북방에서 새끼를 데리고 날아온 가족은 더 그렇다. 조그만 소리나 움직임에도 놀란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소리 지르거나 돌을 던지면,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새벽까지 술 마시다 부모 몰래 방에 들어가는 이른 아침의 대학생처럼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들어가야 한다.


세계적 멸종위기종 흑두루미가 날아들고 있다. 사진이우석
세계적 멸종위기종 흑두루미가 날아들고 있다. 사진이우석
흑두루미와 흰두루미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다. 사진 이우석
흑두루미와 흰두루미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다. 사진 이우석
순천만에서는 댕기머리물떼새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이우석
순천만에서는 댕기머리물떼새를 만날 수 있다. 사진 이우석

예로부터 영물이었던 ‘학’ 보며 새해 시작

신년에는 역시 학(鶴)이다. 계절을 반영한 화투장에도 1월 일광에 학을 그려 넣었다. 흑두루미는 재두루미, 두루미와는 종류가 다르다. 하얀색, 회색, 까만색 각각 깃털 색도 크기도 다르다. 사실 모두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종이다. 흑두루미는 색이 검어 노을 지는 하늘에 몇 마리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은 더욱 선명하다.

해가 저물면 날아오를 것이라고 했지만 그전에 추위에 내가 먼저 저물고 말 것 같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대포구를 떠났다. 내가 떠나는 대대포구 하늘엔 흑두루미 몇 마리가 환송 비행을 하고 있었다.

학은 놀랍다. 그래서 ‘학!’인 것 같다. 우리말로는 두루미. 서영춘 임희춘 콤비의 만담 “서(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덕에 왠지 오래 살 것 같은 이름이다.

사실 두루미가 오래 살긴 하지만 앵무새가 더 오래 산다. 두루미는 보통 30~50년, 앵무새는 약 80~90년을 산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두루미와 학, 황새, 백조 등이다. 두루미는 학이고 뚱뚱한 황새보다는 마른 편이다. 백로라 불리는 해오라기(왜가리 종류)와도 또 다르다. 백조(고니)는 걷지 않고 주로 앉아서 유영한다. 숫자 ‘2’처럼 생겼다.

아무튼 두루미는 예로부터 영물 대접을 받았다. 우아한 걸음걸이와 자태를 선비들이 칭송했다. 궁중 학춤(鶴舞)은 향악정재에 들었고 문인들은 붓을 들어 학을 그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등장하니 선사인들도 학을 영묘하다 느꼈던 것이다. 현대에도 학생들이 색종이로 천 마리 종이학을 접어 짝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전영록은 이를 노래해 대단한 히트를 쳤다.

결국 충무공보다 고액인 500원짜리 주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국내 모든 화폐에는 이(李)씨거나 그 일가만 들어가는데 감히 조류가 당당히 들어갔다. 두루미는 그런 중요한 존재이므로 새해에 일부러 찾아가서 볼 만하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대표,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먹거리 두루미도 식후경이라면 꼬막을 찾으면 된다. 쫄깃쫄깃 탱글탱글한 꼬막에 겨울 맛이 들었다. 한정식집에도 제철 꼬막이 주를 이룬다. 서울과는 달리 삶는다. 그냥 도시락 반찬처럼 껍데기를 까놓고 양념장을 발라 먹기 마련이지만 순천에선 꼬막을 양념 없이 그대로 먹는다.

육즙이면 충분하다. 특히 참꼬막은 껍데기가 벌어져 육즙이 빠지지 않게 삶아야 한다.

황전면 금계포란은 토종닭구이를 잘하는 집이다. 독채 건물에서 닭구이를 맛볼 수 있다. 손질한 닭을 살짝 양념한 다음 직화로 구워 먹는데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토종닭은 푸짐해 한 마리를 2~4명이 먹을 수 있다. 순천 특산 고들빼기 등 맛깔나는 반찬도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카페와 펜션, 야외 바비큐장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둘러볼 만한 곳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 이후 박람회장을 존치해 조성한 공원이다. 독일·멕시코·중국·영국·한국 등 각국 테마 정원과 다리, 숲 등 여러 볼거리를 둔 정원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둘러보는 데 반나절 이상 걸린다. 정원과 순천만을 잇는 모노레일(소형무인궤도차) ‘스카이큐브’도 있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