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지난해 폐기물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프로젝트인 ‘리스타일(Re:Style) 2020’을 공개했다. 사진 현대차
현대차는 지난해 폐기물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프로젝트인 ‘리스타일(Re:Style) 2020’을 공개했다. 사진 현대차

친환경 열풍으로 자동차 폐기물이 패션이 됐다. ‘지속 가능한 패션’ 철학을 지닌 패션 디자이너들과 브랜드들은 자동차 폐기물을 활용한 업사이클링(up-cycling·새 활용)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대중화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폐기물 업사이클링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행 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대기오염,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배출되는 폐기물까지 줄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새로운 전기차 공개를 예고한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상반기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처음으로 적용한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출시한다. 기아자동차와 제네시스도 E-GMP 플랫폼을 활용한 준중형 전기차 ‘CV’와 크로스오버 전기차 ‘JW’를 각각 선보인다. 수입차 업계도 전기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작년 10월 첫 순수 전기차인 ‘더 뉴 EQC’를 국내에 공식 출시한 데 이어, 올해 순수 전기차 EQA와 EQS를 선보일 예정이다. BMW의 플래그십 순수 전기차 iX와 X3 기반의 순수 전기 모델 iX3도 올해 국내에 상륙한다. 아우디폴크스바겐도 네 개 브랜드에서 전기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자동차 업계와 패션계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꿈꾸며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브릴리언트 메모리즈’라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업사이클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당시 현대차는 폐기 예정인 자동차를 소유한 고객의 사연을 신청받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현대차는 패션 브랜드 모어댄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컨티뉴와 함께 자동차 시트, 안전벨트, 에어백 등 자동차 부품을 활용한 액세서리도 만들었다. 여름철 고온과 습기, 겨울철 낮은 온도에 강하고 수만 번의 마찰에 견딜 수 있는 등 내구성이 좋고, 가방 1개를 만들 때 1642L의 물이 절약돼 친환경적이다. 현대차 핵심 부품 계열사 현대트랜시스도 미국의 친환경 패션 브랜드 ‘제로 마리아 코르네호’와 협업해 폐기되는 자동차 시트 가죽을 친환경 의상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자동차 시트 연구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투리 가죽을 사용한 총 15벌의 의상이 탄생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리스타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로 웨이스트(zero-waste·쓰레기를 ‘0’으로 만드는 것)’의 철학에 다가섰다. 폐가죽 시트에 한정됐던 소재를 차량 유리, 카펫, 에어백으로 확대했고, 협업 디자이너도 6명으로 늘렸다. ‘알리기에리’는 자동차 안전벨트와 유리 등을 목걸이, 팔찌로 재탄생시켰고, ‘이엘브이 데님’은 자동차의 자투리 가죽 시트와 데님을 믹스하여 모던한 디자인의 점프수트를 디자인했다. ‘퍼블릭 스쿨’과 ‘푸시 버튼’은 에어백 소재에 안전벨트를 어깨끈으로 덧댄 조끼와 에어백 본연의 디자인을 살린 조끼를 선보였다. ‘리처드 퀸’은 에어백을 주 소재로 한 코르셋에 꽃무늬 패턴을 더해 로맨틱한 디자인을 완성했고, ‘로지 애슐린’은 자동차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카펫 원단의 자투리를 고급스러운 토트백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들이 선보인 상품은 영국의 유명 백화점 ‘셀프리지스’가 온 ·오프라인에서 한정판으로 전 세계에 판매했다. 판매 수익금은 친환경 패션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패션협회에 기부했다.


왼쪽부터 영국 쥬얼리 브랜드 알리기에리가 자동차 폐기물로 만든 액세서리와 로지 애슐린이 선보인 토트백. 사진 현대차
왼쪽부터 영국 쥬얼리 브랜드 알리기에리가 자동차 폐기물로 만든 액세서리와 로지 애슐린이 선보인 토트백. 사진 현대차
알리기에리는 자동차 안전벨트와 유리 등을 이용한 목걸이, 팔찌 등을 제작해 자동차 폐기물이 다양하게 재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 현대차
알리기에리는 자동차 안전벨트와 유리 등을 이용한 목걸이, 팔찌 등을 제작해 자동차 폐기물이 다양하게 재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 현대차

자동차 업계와 패션 업계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폐배터리’ 순환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 친환경차인 전기차에 들어가는 폐배터리 처리는 또 다른 무거운 숙제다. 각국 정부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계는 앞으로 무수하게 쏟아질 폐배터리 처리 문제에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 2018년 한국자동차자원순환협회 연구에 따르면 친환경차 폐배터리는 친환경차 보급이 궤도에 오르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폐배터리는 2022년부터 급격히 늘어 2024년에는 연간 약 1만개의 폐배터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2030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 대수 300만 대 목표’가 달성되면 2040년 폐배터리 총누적 발생량은 약 576만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친환경차의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

이 때문에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업체도 발 빠르게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연구 중이다. 그중에서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패션이 화제가 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육성하는 친환경 사회적 기업 ‘라잇루트’가 버려지는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을 업사이클링한 고기능성 원단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라잇루트는 미세한 스크래치, 과잉 생산으로 매달 발생하는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재고가 축구장의 130배에 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20L짜리 종량제 봉투로 환산하면 240만 개다. 라잇루트는 분리막의 재활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 분리막과 천연 소재인 울을 접목해 고기능 울 신소재를 개발했다. 분리막의 단면 구조가 고어텍스와 비슷해 내부의 습기를 쉽게 배출하고 외부로부터 방수 기능이 있는 특성에서 착안된 것이다. 라잇루트가 개발하는 고기능성 원단은 전기차용 폐배터리로 인해 발생하는 분리박 폐기물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전량 수입하는 고어텍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고기능성 원단을 국내 패션계에 공급할 수 있어 경제적 가치도 높다.

일부 자동차 기업은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적용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재활용한 플라스틱병이나 스웨이드 직물인 ‘다이나미카’로 시트커버를 만든다,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수확하는 라탄으로 만든 압축 목재 ‘카룬’을 바닥과 계기판의 트림에 사용한다. 현대차는 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5300여 년 전에 쓰러져 습지에 묻혀 보존된 목재로 대시보드를 만들고 있다. 볼보의 새로운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폴레스타는 재활용 그물로 만든 카펫을 사용했다.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목표는 자동차와 패션을 새로운 방식으로 공존하게 할 전망이다. 패션과 자동차 업계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서로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공동 연구하는 환경 파트너로 성장하고 있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