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는 안면기형 장애 소년 어기 풀먼을 주인공을 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기가 자립하길 바라며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엄마 이자벨 풀먼 역할은 줄리아 로버츠(오른쪽)가 맡았다. 이자벨이 등교하는 어기의 손을 잡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IMDB
영화 ‘원더’는 안면기형 장애 소년 어기 풀먼을 주인공을 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어기가 자립하길 바라며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엄마 이자벨 풀먼 역할은 줄리아 로버츠(오른쪽)가 맡았다. 이자벨이 등교하는 어기의 손을 잡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IMDB

안면기형 장애를 갖고 태어나 열 살이 될 때까지 27번의 성형수술을 받았지만, 어기의 얼굴은 보통 아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영화 ‘스타워즈’를 좋아하고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과학 영재 어기는 가족의 사랑 속에서 밝고 긍정적으로 자랐지만, 밖에 나갈 때만은 우주인 헬멧 속에 얼굴을 감춘다. 세상을 마주 보려 하지 않는 아들을 이해하면서도 언제까지 품 안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어기를 일반 학교에 보내기로 한다.

겉모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다. 내면이 중요한 것은 진실이지만 외모는 인간관계의 시작을 좌우하고 사회생활의 일정 부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마음을 위장하는 데 능숙한 어른과 달리 감정을 숨기는 데 미숙한 아이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을 견디는 게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뒷걸음질 치는 세상을 친구로 만들어야 하는 싸움은 어기가 앞으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다.

같은 반 줄리언은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어기를 괴물 취급한다. 등교 첫날 헬멧도 없이 우주 한가운데 버려진 것 같은 하루를 경험하고 돌아온 어기는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요?”라며 울먹인다.

거짓 위에 우정을 쌓을 수는 없다. 있는 걸 없는 척하고 느낀 걸 안 느낀 척 가장한 채 마음을 나눌 수도 없다. 어기는 학교생활을 통해 타인과 나는 다르다는 걸, 자신은 남들보다 조금 더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데 차츰 익숙해진다. 친구가 되려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외모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어기는 잭과 공부하고 함께 웃고 같이 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세상에서 친구를 갖는 것만큼 신나고 즐겁고 멋진 일이 또 있을까? 태어나 처음으로 또래 친구를 얻은 어기는 달나라에 도착한 최초의 우주인처럼 무중력 상태로 뛰어다니는 것 같은 기쁨을 만끽한다.

둘도 없는 단짝을 얻어서 행복하기만 했던 어기는 핼러윈 축제 날, 유령 가면으로 분장하고 나갔다가 줄리언 무리에 섞여 자신을 흉보는 잭을 보게 된다. 왜 나쁜 말일수록 귀는 얇아지고 가슴은 잠자리 날개처럼 연약해지는 것일까? 그동안 나눈 잭과의 우정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생각에 배신감을 느낀 어기는 깊이 상처받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장애를 가진 소년에 대한 일방적인 이해와 연민을 주제로 하지 않는다. 태양 주위를 도는 크고 작은 행성들이 저마다 없어서는 안 될 주인공이듯 어기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무난하고 평범해 보여서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저마다 어려움을 겪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가, 감추어져 있는가, 그 차이가 있을 뿐.

“어기, 너 혼자만 힘든 게 아니야.” 누나 비아는 가장 친한 친구 미란다가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기가 태어난 날부터 부모의 관심 밖에 존재하게 돼버린 비아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왔지만 외로움만은 어쩌지 못한다. 따돌림당해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자기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어기는 얼굴도 예쁜 누나도 친구에게 절교당하는구나, 조금은 위안을 받는다.

어기는 잭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제야 잭은 얼마나 소중한 우정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처음엔 교장의 당부로 친절하게 대했던 것이지만 어기는 똑똑하고 재미있고 그 누구보다 멋진 친구였다. 하지만 또래들과 다른 감정, 다른 행동을 하며 그들이 배척하는 아이와 친구가 되는 것은 다른 얼굴을 갖고 사는 것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처럼 분위기에 휩쓸려 아이들 앞에서 우쭐대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진심이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다고, 진짜 친구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 잭은 어기의 주위를 서성인다.

어기를 괴롭히던 꼬마 악당 줄리언도 무엇 하나 부러운 것 없어 보였지만 철사에 묶여서 몸을 비틀며 자라야 하는 분재처럼 내내 상처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교장과 상담하는 부모를 보면 줄리언이 왜 그런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랄지 안타까워진다.

어기를 낳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엄마도, 그런 아내와 아들을 격려하고 소외감을 느낄 딸까지 지켜온 아빠도 인생이 쉽지 않았을 텐데 웃음과 유머를 잊지 않는다.

말 못 할 사정으로 비아를 멀리했던 미란다도 뒤늦게나마 다가가 마음을 열어 보이고 손을 내민다. 담임교사는 따돌림당하는 아이와 괴롭히는 아이 사이에서 어른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교장도 후원금을 내는 학부모와 대등하게 마주 앉아 사태를 바로잡는다. 이상적인 주인공과 가족과 친구와 선생님의 모습이다. 현실은 훨씬 더 각박하고 문제는 복잡하게 꼬이고 얽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세상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껏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존속해온 것이 아닐까?


안면기형 소녀 실화 다룬 따스한 스토리

2017년 12월에 개봉한 ‘원더’는 안면기형 장애 소녀를 우연히 만난 뒤 그 얼굴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아 소설로 쓰게 되었다는 팔리시오 작가의 ‘아름다운 아이’가 원작이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이 섬세하게 각색,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로 완성했다.

어기가 자립하길 바라며 사랑으로 지켜봐 주는 엄마는 줄리아 로버츠가, 푸근한 유머로 한결같은 우군이 되어주는 아빠는 오웬 윌슨이 맡았다. 특수분장을 하고도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어기 역을 해낸 2006년생 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성장도 기대된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어기는 외모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처럼 마음에 콕콕 새겨두고 싶은 대사도 수두룩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주목받을 자격이 있다”는 대사를 마음에 새기다 보면, 장애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또 하나의 특권이 되어 평범함을 역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또한 영화가 말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넌 최고야! 소중하고 특별한 기적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깊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다.

지나간 1년과 다가올 1년을 감사하고 축복하는 자리, 모쪼록 이해와 배려, 사랑과 우정이 ‘원더’한 당신과 함께하기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