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하얏트서울 ‘테판’ 이희준 셰프가 술을 뿌리고 불을 붙여 술의 풍미가 음식에 배게 하는 플람베(flambé) 조리법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 ‘테판’ 이희준 셰프가 술을 뿌리고 불을 붙여 술의 풍미가 음식에 배게 하는 플람베(flambé) 조리법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데판야키(철판구이)의 한계는 어디일까.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 ‘테판(Teppan)’에서 식사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테판은 데판야키(鐵板焼き) 전문 레스토랑. 우리가 흔히 아는 일본식 철판구이 요리가 아니다.

2016년 문 열 때부터 테판을 총괄하고 있는 이희준 셰프의 창의적인 손에서 철판은 구이라는 본래의 목적 이외에 때로는 찜기로, 때로는 오븐으로 변신했다. 이 셰프는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요리 코스를 막힘 없이 풀어낸다.

손님 코앞에서 치솟는 불길 등 화려한 퍼포먼스로 눈을 즐겁게 하는 데판야키만의 장점까지 더해져 잊지 못할 미식 경험을 선물한다.

테판에 들어선 손님을 가장 먼저 맞는 건 압도적 풍광이다. 남산과 한강, 강남이 통유리창을 통해 한눈에 들어온다. 탁구대 크기의 커다란 철판 주변을 ‘ㄷ’ 자로 둘러싼 바 테이블에 앉으면 식사가 시작된다. 11월 테판에서는 최고급 샴페인 돔페리뇽에 궁합을 맞춘 요리를 맛보는 페어링(pairing) 디너 행사가 열렸다.

2010년 빈티지 돔페리뇽이 잔에 따라지는 동안 이희준 셰프가 첫 코스인 ‘푸아그라(거위간)’와 ‘관자’를 준비했다. 서양 3대 식재료 중 하나로 꼽히는 푸아그라를 철판에 겉이 바삭해지도록 구워 역시 철판에 토스트처럼 구운 빵에 얹었다. 여기에 철판에 소스팬(냄비)을 놓고 졸인 과일 처트니(인도에서 유래한 잼과 비슷한 소스)를 뿌리고 라즈베리와 연보랏빛 식용 꽃, 굵은 천일염 서너 알갱이를 뿌려 마무리했다. 열기를 받아 극대화한 푸아그라의 고소함이 새콤달콤한 처트니와 잘 어울렸다. 철판에 구운 관자는 부드럽고 탱탱한 식감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이 셰프는 관자에 흔히 곁들이는 크림소스에 김치를 다져 넣어 느끼함을 잡으면서도 한국적인 고유의 느낌을 가미했다. 두 요리 모두 샴페인과 찰떡궁합인 건 말해 뭐하랴.

달콤한 복숭아 소르베로 입가심하는 동안, 이 셰프가 이날 전체 식사의 두 번째 코스이자 첫 번째 메인인 ‘한우 갈비와 메로 파피요트(papillote)’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우 갈비는 입에서 살살 녹아내린다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질긴 맛이 전혀 없었다.

이 셰프는 달고 짭조름한 전통 갈비찜 고유의 맛은 살리되, 프랑스 수프 콩소메처럼 맑고 옅고 섬세하게 재해석했다. 덕분에 갈비가 함께 서빙된 돔페리뇽 빈티지 2002 플레니튜드2 샴페인을 압도하지 않았다. 갈비와 샴페인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연인처럼 서로를 감싸 안았다.


철판에 조리한 진한 풍미의 소스가 어울리는 바닷가재.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철판에 조리한 진한 풍미의 소스가 어울리는 바닷가재.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철판 위 장식한 요리와 퍼포먼스

메로 파피요트는 테판의 시그니처(대표) 메뉴라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테판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요리인 건 확실하다. 파피요트는 생선이나 채소 등 각종 재료를 종이로 감싸 굽는 프랑스 요리법. 테판에서는 종이 대신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 투명한 조리용 특수 필름을 사용해 철판에서 파피요트 요리를 구현한다. 비닐랩처럼 보이는 필름에 메로 살을 방울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육수와 함께 담아 끈으로 묶어 철판에 올린다. 곧 복주머니처럼 빵빵해지면서 펄펄 끓는 육수 속에서 생선 살이 익는 모습이 투명한 필름을 통해 고스란히 보인다. 이 셰프가 접시에 먹기 좋게 담아준 메로는 부드럽고 촉촉했다.

돔페리뇽 로제 2006년 빈티지와 함께 세 번째 코스이자 두 번째 메인 ‘한우 안심과 바닷가재’가 나왔다. 한우 안심은 뭐 하나 빠지지 않은 이날 디너 중에서도 가장 특별했다. 다시마로 말고 밀가루 반죽으로 빈틈없이 감싼 안심 덩어리를 철판에 올려 6면을 돌려가며 고루 익힌다. 딱딱해진 반죽을 뜯어내니 안심이 마치 오븐에 구운 것처럼 레어 상태로 익어 있다. 이 안심을 1인분 크기로 잘라 다시 철판에 구우면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또 다른 서양 3대 식재료 중 하나인 송로버섯(트러플)을 얇게 켜서 올린 안심 스테이크가 철판에 구운 채소와 함께 손님에게 서빙됐다. 밀가루 반죽이 완벽하게 밀봉한 덕분에 육즙이 전혀 빠지지 않아 촉촉한 데다, 다시마 감칠맛이 더해져 말할 수 없이 풍성한 맛이었다. 회로 먹어도 좋을 만큼 싱싱한 바닷가재는 철판에서 굽는 과정에서 따뜻하게 데워지며 맛이 더욱 활성화된 상태로 나오는데, 바닷가재 내장으로 만든 깊고 진한 풍미의 소스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바닷가재에 사이드디시로 딸려 나온 버섯 요리.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바닷가재에 사이드디시로 딸려 나온 버섯 요리.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테판의 모든 좌석은 철판을 ‘ㄷ’ 자로 둘러싼 바 테이블에 배치됐다.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테판의 모든 좌석은 철판을 ‘ㄷ’ 자로 둘러싼 바 테이블에 배치됐다. 사진 그랜드하얏트서울

디저트까지 완벽한 식사

저녁 식사의 피날레는 디저트 ‘무화과’였다. 철판에 설탕을 뿌리고 무화과를 올린다. 오렌지 맛 리큐어(liqueur·알코올에 설탕과 향신료를 섞은 도수 높은 술) ‘그랑마니에르’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플람베(flambé) 요리법은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가장 많은 손님이 식사를 하다가 잠시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며 즐거워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렌지 향을 입은 무화과에 수제 아이스크림, 튀일(얇고 바삭한 과자)이 곁들여진 디저트를 먹다가 문득 창밖을 내다봤다.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서울의 야경이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철판 위에서 조리된 음식과 퍼포먼스에 홀딱 빠진 저녁 식사였다.


테판(Teppan)

분위기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한강과 강 너머 강남 전망이 탁월하다.

서비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여유 있고, 경직되지 않은 서비스가 손님을 편하게 한다. 오래된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추천 메뉴 코스 세트만 있다. 점심 익스프레스 메뉴 10만5000원·시즈널 메뉴 11만5000원, 저녁 디너 메뉴 19만원·딜럭스 디너 메뉴 20만5000원.

음료 샴페인을 잔술(글라스와인)로 마실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은데, 이곳은 돔페리뇽 2008년 빈티지(6만9000원)·모엣샹동(3만5000원)·빌카르살몽 로제(4만5000원) 등 3가지나 있다. 이 밖에도 내추럴·소비뇽블랑·리슬링·피노누아·카베르네소비뇽 등 70가지가 넘는 와인을 구비했다.

영업시간 평일 낮 12시~오후 1시 30분·오후 2시~3시 30분·오후 6~9시, 주말 오전 11시 30분~12시 45분·오후 1시 15분~2시 30분·오후 5시 45분~9시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