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가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AI: 트레일 콰트로’. 사진 아우디
아우디가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AI: 트레일 콰트로’. 사진 아우디

“선배 다 비슷비슷하네요.” 지난 11월 내가 쓴 ‘미래의 세단’ 기사를 보고 후배가 한 말이다. 볼보 전기차 브랜드인 폴스타의 ‘프리셉트’, 메르세데스-벤츠의 ‘비전 EQS’, 현대차 ‘프로페시’ 등 자동차 회사에서 최근 선보인 콘셉트 세단을 소개한 기사였는데, 막상 사진을 나열하고 보니 내가 보기에도 겉모습은 물론 실내도 서로 비슷해 보였다. 모든 차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가느다란 헤드램프와 후미등을 달았고, 사이드미러와 도어 손잡이를 없앴다. 대시보드는 커다란 디스플레이로 정리했다. 버튼을 찾아볼 수 있는 건 BMW의 ‘i4’뿐이었다. 직사각형 운전대와 미래적인 시트,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도배한 실내가 정말 미래적인 모습일까? 그렇다면 미래의 오프로더(비포장도로용 차)는 어떨까? 거친 길도 성큼성큼 달릴 수 있는 크로스오버와 픽업트럭도 세단처럼 매끈하고 유려할까? 궁금한 마음에 조금 특별한 오프로더를 살펴봤다.

아우디가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AI: 트레일 콰트로’는 미래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날렵하지만 각이 살아 있고, 선이 살아 있다. 길이와 너비가 각각 4150㎜, 2150㎜로 크기는 메르세데스-벤츠 ‘A 클래스’만 한데 지붕은 물론 바닥까지 온통 유리로 돼 있다는 게 독특하다. 바닥 지형을 수월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콘셉트카는 흙길은 물론 자갈로 뒤덮인 오프로드도 자유롭게 달릴 수 있도록 22인치나 되는 큼직한 휠과 오프로드용 타이어를 신었다. 지상 높이는 34㎝로 50㎝ 깊이의 물속도 거뜬히 지날 수 있다.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담고 있어 웬만한 길은 운전자가 직접 운전대를 쥐지 않고도 갈 수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130㎞이며 네 개의 전기모터를 휠 부근에 달아 네 바퀴를 따로 움직일 수 있다. 덕분에 모래로 뒤덮인 길이나 미끄러운 진흙 길에 빠져도 헛바퀴 돌지 않고 헤쳐 나올 수 있다. 짐작했겠지만 이 차는 전기차다. 바닥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깔고 있는데 아우디는 정확한 배터리 용량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주행 거리가 400~500㎞로 넉넉하다고만 설명했다. 4인승이지만 뒷자리는 캠핑 의자처럼 천으로 돼 있다. 그래서 엉덩이 부분을 말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뒷자리에 짐을 싣기 수월하다.

아우디 AI: 트레일 콰트로가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품었다면 현대차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19’에서 공개한 콘셉트카 ‘엘리베이트’는 스스로 달리고 걸을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품었다. ‘뭐? 걸을 수 있다고?’ 물론이다. 평소엔 네 개의 바퀴가 접힌 채로 있어 도로를 자유롭게 달리지만, 바위로 뒤덮인 길이나 계단 등의 장애물이 나타나면 숨어 있던 네 개의 다리가 펴지면서 차체를 들어 올려 걷기 시작한다. 현대차는 실제로 CES에서 엘리베이트의 축소형 프로토타입을 공개하고 이 모델이 무대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시연했다. 보행 속도는 시속 약 5㎞ 정도이며 걸을 땐 센서가 차체를 수평으로 유지한다. 다리가 제법 길어 꽤 높은 벽도 거뜬히 넘을 수 있다. 현대차는 오프로드를 마음껏 주파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재난 등으로 엉망이 된 지역에서 긴급 구조용 차로 활용하기 위해 이런 콘셉트카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어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고령자 등을 이동시키기에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19’에서 공개한 ‘엘리베이트’. 사진 현대차
현대차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2019’에서 공개한 ‘엘리베이트’. 사진 현대차
닛산의 ‘로그 워리어 트레일 프로젝트’는 바퀴에 둥근 타이어 대신 무한궤도를 달았다. 사진 닛산
닛산의 ‘로그 워리어 트레일 프로젝트’는 바퀴에 둥근 타이어 대신 무한궤도를 달았다. 사진 닛산
GMC가 내년 가을 미국 시장에 출시 예정인 ‘허머 전기차(EV)’. 사진 GMC
GMC가 내년 가을 미국 시장에 출시 예정인 ‘허머 전기차(EV)’. 사진 GMC

바퀴 대신 무한궤도 단 닛산

앞서 소개한 두 차가 먼 미래의 특별한 오프로더라면 지금 소개할 두 차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도 있는 오프로더다. 닛산이 ‘2017 뉴욕모터쇼’에서 공개한 ‘로그 워리어 트레일 프로젝트’는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된 로그 바퀴에 둥근 타이어 대신 철판을 체인처럼 연결한 무한궤도를 달았다. 삼각형 모양의 무한궤도는 길이가 1220㎜, 높이가 760㎜, 너비가 380㎜로 울퉁불퉁한 바위를 거뜬히 타고 넘을 수 있다. 진흙으로 뒤덮인 길도 문제없다. 닛산 엔지니어들은 큼직한 무한궤도가 로그의 휠하우스에 맞지 않아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과 휠을 모두 새롭게 다듬었다. 하지만 로그의 4기통 휘발유 엔진과 X트로닉 트랜스미션은 그대로 남겼다.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4.2㎏‧m로 눈 덮인 언덕이나 모래 둔덕을 넘기엔 충분한 힘이다. 이 특별한 로그는 보디에 카모플라주 무늬를 넣고, 노란빛이 도는 유리를 끼웠다. 검은색 프런트 그릴 아래엔 4t까지 끌 수 있는 윈치를 달고, 지붕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얹었다. 캐리어 앞에 발광다이오드(LED)가 빼곡하게 박혀 누가 봐도 ‘찐’ 오프로더다.

특별한 오프로더 하면 GMC의 ‘허머 EV’도 빼놓을 수 없다. GMC가 되살린 허머의 전기 픽업트럭 허머 EV는 프런트 그릴 대신 박힌 기다란 LED와 ‘HUMMER’란 글자가 미래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35인치로 큼직한 타이어는 누가 봐도 오프로더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반과 13.4인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첨단 분위기를 살렸지만 투박한 운전대와 간결한 실내에서 오프로더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차는 세 개의 전기모터를 얹어 최고출력 1014마력, 최대토크 1590㎏·m를 뿜어낸다. 허머의 DNA를 이어받은 픽업트럭답게 오프로드 주파 성능도 출중한데 네 개의 바퀴를 따로 구동하는 4휠 스티어링과 대각선으로 갈 수 있는 크랩워크 시스템을 챙겨 웬만한 험지는 거뜬히 통과할 수 있다. GMC는 내년 가을 허머 EV를 미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미래의 오프로더는 다행히 세단처럼 마냥 매끈하고 유려하진 않다. 역시 오프로더답게 거친 매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든든한 건 이들의 목적이 단순히 오프로드를 달리는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재해 현장이나 오지를 누비며 활약하는 모습이라. 음, 마블 영화 속 슈퍼 히어로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