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카즈의 섀시로 제작한 셸비 ‘코브라’는 레플리카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은 모델이다. 사진 황욱익
AC카즈의 섀시로 제작한 셸비 ‘코브라’는 레플리카 시장에서도 인기가 많은 모델이다. 사진 황욱익

사전적인 의미의 레플리카(replica)는 원래 제작자가 만든 사본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서 레플리카는 단순 복제를 포함해 조악한 ‘짝퉁’부터 고증에 충실한 복제품까지 그 의미가 넓어졌다. 클래식카도 마찬가지다. 원형 생산량이 극히 적거나, 원래 제조사가 없어졌거나, 혹은 역사적인 가치를 지녔지만, 원형이 존재하지 않을 때 대안으로 레플리카가 등장한다. 클래식카 시장에서 레플리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원형을 그대로 복제한 경우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지만, 자칫 잘못하면 원형을 훼손한 이도 저도 아닌 변종이 등장한다.

자동차에서 레플리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가 길다. 자동차 산업이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과거의 희소성 있는 모델을 전문적으로 복각하는(복원과는 전혀 다르다) 회사도 생겨났을 정도다. 레플리카를 만드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더는 생산되지 않는 모델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일부 자동차 회사는 이런 소비자를 겨냥한다. 원형 모델이 흔하지 않고 고가일 경우 자동차 마니아들은 레플리카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는데 셸비 ‘코브라’의 레플리카 제조업체인 슈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높은 완성도 덕에 레플리카임에도 매우 비싸고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레플리카를 만들 때는 대부분 베이스가 되는 도너카(donor car)가 필요하다. 도너카는 엔진과 변속기 등 기본적인 섀시를 가진 부품 차를 뜻하는데, 만들고자 하는 원형의 외관을 그 위에 씌우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포르셰 ‘356’ 레플리카는 ‘비틀’의 섀시를 사용하고, 폰티악 ‘피에로’나 도요타 ‘MR2’도 도너카로 인기가 많다. 이때는 원형과 엔진 레이아웃(엔진 위치)이 같을수록 작업이 쉽다. 도너카를 이용할 경우 철판으로 외판을 제작해 섀시 위에 씌우기도 하지만, 섬유강화플라스틱(FRP) 같은 소재를 이용하기도 한다.

도너카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아예 예전 방식 그대로 제작할 때도 있다. 이때는 예전에 생산했던 도면이나 사진 자료 등을 토대로 철저하게 고증해 충실하게 제작한다. 대표적인 예는 영국의 리스터 벨과 호크 같은 업체로, 이들의 가장 유명한 레플리카는 1970년대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을 주름잡았던 란치아의 랠리카 ‘스트라토스’의 레플리카인 ‘더 STR’ 같은 차다. 영국의 레플리카 업체들은 소비자의 요구 사항에 따라 외관 디자인만 똑같은 완성차를 판매하기도 하지만, 판매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키트카 형태로 판매한다. 소비자가 키트를 구입해 직접 조립하는 방식이다.

섀시와 외관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한데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섀시를 짜서 판매하는 곳도 있고, 페라리 ‘F430’을 도너카로 이용해 제작하는 곳도 있다. 베르토네에서 디자인을 맡은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현재까지도 많은 업체에서 레플리카로 제작하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가 있다. 레이스 호몰로게이션(인증) 모델인 스트라토스는 전체 생산 대수가 492대에 불과하고, 20세기 자동차 디자인을 논할 때 빠지지 않을 만큼 인기가 높다.

미국의 레플리카 제조 업체인 슈퍼포먼스는 전설적인 스포츠카 셸비 모델을 제작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워낙에 오리지널 셸비 시리즈가 생산량이 적어 슈퍼포먼스에서 제작한 레플리카는 가격과 성능에서 오리지널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컬렉터들도 눈독 들이는 대표적인 차종이기도 하다. 슈퍼포먼스의 ‘Mk.Ⅲ’ 시리즈는 셸비 코브라의 아름다운 겉모습은 물론이고 현대적인 엔진부터 셸비가 사용했던 오리지널 427 엔진까지 선택할 수 있다.

코브라 외에도 영화 ‘포드 vs 페라리’에 등장했던 ‘GT40’과 셸비의 역작이라 불리는 ‘데이토나 쿠페’ 레플리카도 제작 중이다. 슈퍼포먼스 모델들이 레플리카임에도 인기가 높고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그 완성도에 있다. 슈퍼포먼스는 셸비로부터 엔진과 설계에 대한 사용권을 가진 걸로도 유명하다. 코브라의 디자인 소유권을 지금은 도산한 영국의 AC카즈가 소유하고 있어 레플리카로 판매되지만, 설계나 제작 방식은 1960년대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총생산량이 53대에 불과한 재규어 ‘D 타입’의 레플리카. 재규어 클래식에서 제작한 것이다. 사진 황욱익
총생산량이 53대에 불과한 재규어 ‘D 타입’의 레플리카. 재규어 클래식에서 제작한 것이다. 사진 황욱익
레이스 인증을 위해 492대만 제작한 란치아의 ‘스트라토스 HF’ 레플리카. 사진 황욱익
레이스 인증을 위해 492대만 제작한 란치아의 ‘스트라토스 HF’ 레플리카. 사진 황욱익

레플리카의 가치

원형의 모든 권리를 가진 자동차 제작사에서 레플리카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재규어, 란치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주로 클래식카 사업부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제작하는 경우다. 이때는 고유 시리얼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리지널 모델과 구분한다. 겉모습과 엔진, 내부 인테리어가 똑같긴 하지만 레플리카에 부여되는 시리얼 번호를 구분해 시장에서 혼동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로 클래식카 경매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클래식카 이벤트에 참가, 혹은 매매할 경우 차대 번호와 원동기 번호를 포함한 시리얼 번호 확인이 필수다.

디자인부터 엔진, 섀시 구조까지 고증에 충실해 제대로 만들어진 레플리카는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고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반면 진품이 아니기 때문에 원형 모델과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가격에 따라 고증이나 사용 부품의 상태가 다른데 조악하고 떨어지는 완성도에 디자인 비율도 맞지 않는 레플리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클래식카 이벤트나 경매에서도 레플리카는 오리지널 모델과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박물관이나 이벤트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는 아직 이런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아 일단 모양만 비슷하면 오리지널 모델의 이름으로 전시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경주나 제주도에 있는 자동차 박물관에 있는 레플리카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악한 레플리카가 명차의 이름을 달고 전시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할 따름이다. 기타 전시 행사에서도 레플리카를 구분하지 않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는 거의 범죄 행위에 가까운 일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어디에서든 레플리카는 분명하게 레플리카라고 표기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동차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논할 때 그 시대에 만들어진 진품과 나중에 만들어진 복제품은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또 레플리카 중에 원형 모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다. 물론 ‘쿤타치’ 레플리카, ‘550 스파이더’ 레플리카 같은 형태로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도의 모델명을 갖고 있다. 체계화된 시스템을 갖춘 레플리카 제조업체 중에는 아예 원형의 엠블럼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엠블럼을 사용한다. 이 업체들은 가능하면 레플리카라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표기한다. 고증에 충실해 잘 만들어진 레플리카는 단순히 복제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동차 디자인이나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레플리카 키트는 쉽게 볼 수 없는 오래된 희귀 모델의 디테일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교보재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