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 있는 골프 아카데미 템포디올에서 김송희(오른쪽) 코치와 지난 9월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이미림(왼쪽), 대형 유망주 성은정을 만났다. 김 코치와 이들은 친자매처럼 다정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털어 놓았다. ‘멘털 게임’인 골프는 때론 골퍼를 집어삼킬 정도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준다. 서로 지혜를 나누며, 용기를 북돋우고 길 없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골프는 인생과 가장 닮은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골프 아카데미 템포디올에서 김송희(오른쪽) 코치와 지난 9월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이미림(왼쪽), 대형 유망주 성은정을 만났다. 김 코치와 이들은 친자매처럼 다정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털어 놓았다. ‘멘털 게임’인 골프는 때론 골퍼를 집어삼킬 정도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준다. 서로 지혜를 나누며, 용기를 북돋우고 길 없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골프는 인생과 가장 닮은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사진 민학수 조선일보 기자

9월 14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 기적의 칩샷 세 방을 성공하며 우승한 이미림(30)은 골프란 게임의 성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는 LPGA투어에서 3승을 거뒀지만 지난 3년간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드라이버를 치면 공이 고작 50야드를 날아가는데 악성 훅(오른손잡이 기준 공이 날아가다 왼쪽으로 급격히 꺾어지는 구질)까지 날 정도였다. 자신감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준우승 전문가’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은퇴한 김송희(32) 코치와 만나 한 달 반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이들이 함께 훈련하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골프 아카데미 ‘템포디올’을 찾아가면서 골프 거장들이 남겨 놓은 어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는 수백 번의 좋은 샷(good shot)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자신감을 잃는 데는 단 한 번의 나쁜 샷(bad shot)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잭 니클라우스의 스윙 코치였던 짐 플릭은 골프란 게임을 이렇게 정의했다. “골프의 90%는 멘털 게임이다. 그 나머지 10% 역시 멘털 게임이다.”

골프의 성인이라고 불린 보비 존스는 “골프는 구력이 오래될수록 어렵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게임이다”라고 설파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는 또 “골프 게임이 벌어지는 주전장은 5와 2분의 1인치(14㎝) 코스다, 당신의 귀 사이의 공간 말이다”라고 했다.

김송희 코치는 골프 아카데미 템포디올에서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를 대상으로 다양한 분석 장비를 활용해 가르치고 멘털에 대한 정기적인 모니터링도 하는 교습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현역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중시하면서도 멘털을 늘 체크하도록 프로그램을 짠다.

인근의 리베라CC 파3 코스도 함께 활용하는데 이곳 훈련이 이미림의 기적의 칩샷 세 방으로 연결된 것이다. 김송희 코치가 가르치는 선수 중에는 아마 시절 동갑 최혜진과 쌍벽을 이루던 성은정(21)도 있다. 그는 2016년 US걸스주니어챔피언십과 US위민스아마추어챔피언십을 석권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45년 만에 US걸스주니어챔피언십을 2연패했다. 하지만 2016년 다 잡았던 국내 프로 대회 우승 기회를 놓친 선수로 더 많이 알려졌다. 인간의 기억은 왜 이렇게 잔인한가.

이미림에게 부진했던 원인을 물었다. “연습은 진짜 열심히 했다. 원하는 성적이 안 나오다 보니 더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미 없는 연습이 많았다. 항상 드라이버샷이 문제였다. 한 번씩 실수가 나오면 어떻게 쳐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 치기 어려웠다.” 이미림은 지난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이틀 동안 13오버파를 치고 컷 탈락하는 최악의 부진 이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김송희 코치를 찾았다. 아버지끼리 가까운 사이이고 둘은 대표팀 선후배 간이기도 하다.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컵을 든 이미림. 사진 AP연합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컵을 든 이미림. 사진 AP연합

‘자신감의 게임’ 골프

김송희 코치는 이미림을 어떻게 진단했을까? 김 코치의 말이다. “미림이는 골프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미림이 옆에 깊이 대화를 하거나 풀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스윙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심리 상태도 안 좋아진 경우였다. 외국인 코치와는 소통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미림이가 한 달 있는 동안에 여기서 연습하면서 재미있게 하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 코치는 “이미림은 자신처럼 복잡하게 파고드는 유형이 아니어서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미림이는 멘털 쪽으로 타고났다. 엄청 단순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렇게 해야 해 그러면 아마추어처럼 이렇게만 한다. 더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미림은 슬럼프를 겪으며 스윙이 위축돼 있었다. 백스윙과 다운스윙에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자신 있게 때리던 예전 스윙을 잃어버리고 공을 맞히기에만 급급해진 것이다.

김 코치는 “50야드를 가다가 눈앞에서 사라지던 공이 조금씩 눈앞에 보이도록 스윙을 하면서 자신감이 붙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런 과정에 집중하면서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미림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 게 친 게 3년인데 한 달 안에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했던 연습을 코스에서 해보자라고만 생각했다. 첫 시합 나가서 예선 떨어졌는데 힘들지 않았고, 그냥 기분 좋게 예선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언니한테 정말 좋아졌다고 통화했다. ANA인스퍼레이션 가서도 예선 떨어지더라도 전주에 했던 것처럼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크게 욕심이 없었던 거다.”

성은정은 활달하고 농담도 잘하는 성격이다. “미림이 언니가 우승할 때, 자고 있다가 일어났는데,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다. 칩샷이 3개가 들어가기에 1~4라운드 다 포함해서 3개가 들어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에. 아 미쳤다. 이렇게 생각했다. 연장전 가는데 미림이 언니가 우승하겠다고 생각했다.

넬리 코르다는 경기가 안 풀렸는지 표정이 안 좋았고, 브룩 헨더슨은 너무 우승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다. 미림이 언니는 편해 보였고. 연장전에 가면 편안한 사람이 어드밴티지를 갖고 가는 거니까. 그런데 진짜 우승해서 소릴 질렀다. 감회가 남달랐다. 얼마 전만 해도 파3에서 덥다며, 치기 싫다며 집에 갈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거기서 어프로치 3개 넣으니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처음으로 응원 많이 해봤다.”

김송희 코치는 성은정에게는 ‘인내심’을 강조한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발전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동안 3~4년 고생했으니 1~2년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계속 꾸준히 가야 한다. 한 번에 뭔가가 나아진다면 슬럼프도 오지 않았겠지. 왜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조급했고, 빨리 바꾸려 했고, 다양한 코치 만났고… 결국 그게 강한 독이 됐다. 오히려 골프가 슬럼프로 넘어가서 입스(yips·심리적인 이유로 찾아오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까지 오고. 나중에는 입스를 이길 수가 없겠구나! 판단해서 선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그런 경험까지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천하의 타이거 우즈도 하루 사이에 10타 이상 스코어 차이가 나거나 짧은 쇼트 게임에서 뒤땅을 치기도 하는 스포츠다. ‘마음의 게임’이어서 그만큼 길을 잃기 쉬운지 모른다. 특별한 비결보다는 기본을 중시하며 때를 기다리고 함께 자신감을 찾아 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골프는 인생과 같다는 말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