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패티 타와타나낏은 4월 5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평균 323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사진 민학수의 올댓골프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패티 타와타나낏은 4월 5일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평균 323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사진 민학수의 올댓골프

스타 선수는 스포츠와 스포츠 마케팅의 킬러 콘텐츠(핵심 콘텐츠)다. 1996년 ‘헬로 월드(Hello, world!)’란 인사말과 함께 타이거 우즈(46)가 프로 무대에 뛰어든 이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전 세계 골프 산업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가. 우즈에게 열광하는 팬들의 증가 그리고 그를 롤 모델 삼아 골프를 시작한 전 세계 선수들의 질적, 양적 팽창은 골프의 저변을 획기적으로 넓혔다.

태국 방콕에 살던 여덟 살 소녀가 2008년 1월 3일(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TV에서 우즈의 우승 어퍼컷 세리머니 장면을 보고는 아버지에게 ‘나도 골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2021년 4월 5일 여자 선수의 기록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평균 323야드의 장타와 함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자신의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압도적인 비거리 때문에 PGA투어에서 비거리 경쟁을 일으킨 브라이슨 디섐보에게 견줘 ‘여자 디섐보’란 별명까지 생겼다. 태국의 패티 타와타나낏(22) 이야기다.

프로 골퍼의 가치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게 모자 한가운데 새겨지는 후원 기업의 로고다. 태국 선수인 그녀의 모자와 상의에는 하나은행과 하나금융투자, 하나 카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한국의 많은 기업이 여자골프를 후원한다. 골프 마케팅에 대한 VIP 고객의 만족도가 높은 금융회사들은 대회 개최와 선수 후원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용기를 주었던 박세리처럼 세계 무대에서 나라의 명예를 빛낼 재목들을 후원한다는 명분이 컸다. 글로벌 시대이긴 하지만 국내의 대형 금융회사가 태국 선수를 후원하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최연소 프로 대회 우승, 태국의 티티쿨과도 후원 계약

하나금융은 2006년부터 미 LPGA투어 대회인 ‘하나은행 챔피언십’을 2018년까지 13년간 성황리에 열었다. 그러다 2019년부터 세계 여자골프의 중심이 된 아시아 여자골프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기치 아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을 개최했다. 2020년부터는 그동안 국내 선수와 재외 교포 선수를 중심으로 후원하던 것에서 아시아 유망주로 폭을 넓혔다. 그 1호가 태국 타와타나낏이다.

박폴 하나금융그룹 골프선수단장은 “타와타나낏은 태국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부터 눈여겨본 선수다. 워낙 실력이 있는데다 한국 음식과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는 한류 팬이어서 선수 후원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보았다”며 “타와타나낏과 계약 기간은 2년인데 큰 문제가 없다면 앞으로도 같이 가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금융은 최근 태국의 대형 유망주인 아타야 티티쿨(18)과 서브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티티쿨은 2017년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타일랜드 챔피언십에서 14세의 나이로 세계여자프로골프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선수다. 


2019년 9월 30일 김정태(왼쪽)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국내외 13개 골프경기 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최근 태국의 대형 유망주인 아타야 티티쿨(18)과 서브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사진 하나금융그룹
2019년 9월 30일 김정태(왼쪽)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국내외 13개 골프경기 단체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최근 태국의 대형 유망주인 아타야 티티쿨(18)과 서브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사진 하나금융그룹

“아시아 출신 스타가 바로 LAT의 콘텐츠”

아시아의 대형 유망주들을 하나금융그룹이 후원하는 배경에는 ‘레이디스아시안투어(LAT)’ 창설 구상과 맞물려 있다. 아시아 출신 스타들이 이 투어의 가장 훌륭한 콘텐츠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LAT를 주도하는 사단법인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AGLF)’의 회장이 바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다. 박세리도 이사로 참가하고 있다. LAT에는 대한골프협회(K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영국 로열에인션트골프클럽(R&A), 대만골프협회, 싱가포르골프협회, 태국골프협회, 말레이시아골프협회, 인도네시아골프협회, 필리핀골프협회, 베트남골프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20년 11월 국내 여자골프 최대 상금인 15억원을 내걸고 열린 제2회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이 LAT의 공식 출범을 알린 대회였다. 2020년 12월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와 싱가포르골프협회(SGA)가 공동 주관하는 ‘하나금융 싱가포르 여자오픈’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

올해 1월 AGLF는 창립 1주년을 맞아 의미심장한 기념사를 내놓았다. “LAT를 2023년까지 8~10개 대회 규모로 키울 계획이며 아시아의,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를 위한 새로운 여자골프 시리즈를 정착시키고, 아시아가 세계 여자골프의 중심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다 함께 나아가려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LAT는 하나금융의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아시아 시장 확대와도 관련 있다. 하나금융은 2025년까지 글로벌 이익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아시아 각국에서 전략적 지분 투자를 하고, 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제14대 KLPGA 회장에 취임하며 LAT 구상을 더 힘있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됐다. 김 회장은 “끊임없이 발전해 온 KLPGA가 국내를 넘어 진정한 아시아 골프 허브로 도약하고 세계로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며 “KLPGA와 LAT가 공동 주관사가 돼 한국 선수들이 활동할 무대가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은 “세계 여자골프의 중심인 아시아가 서로 힘을 모아 하나의 투어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의가 있다”라고도 했다.

올해 LAT는 DB 한국여자오픈(6월 17일 개막, 총상금 12억원),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9월 30일 개막, 총상금 15억원),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12월 10일 개막, 총상금 10억원) 등 3개 대회가 예정돼 있고 여기에 베트남 대회가 연내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내년 여름에는 세계 명품 핸드백 제조 1위 기업인 시몬느(박은관 회장)의 후원으로 시몬느 인도네시아 여자오픈 창설이 가시화되고 있다. 태국여자오픈도 공동 주관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3월로 연기된 대만여자오픈까지 포함하면 2022년에는 6~7개의 LAT 대회가 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LAT가 본격화되면 글로벌 투어를 표방하며 아시아 시장을 개척해온 미 LPGA투어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서로 상생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당장 대회 후원사를 놓고 경쟁할 수 있고, 일정 조정과 스타 선수들의 대회 출전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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