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 엔지니어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왼쪽)와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분)의 실화다. 둘이 함께 개발한 포드 GT40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24에서 연속 4회 우승했다. 사진 IMDB
‘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 엔지니어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왼쪽)와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분)의 실화다. 둘이 함께 개발한 포드 GT40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24에서 연속 4회 우승했다. 사진 IMDB

스쿠버다이빙을 배운 적 있다. 코로 숨 쉰다는 게 참 좋은 거구나, 경험한 뒤 다시는 물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팔이 부러진 적 있다. 그 후로는 두 바퀴 달린 것은 타지 않는다. 신호 대기로 정지해 있었는데 졸음 운전자에게 뒤에서 받히는 자동차 사고를 당한 적도 있다. 후유증으로 고생했는데도 운전을 그만두진 않았다. 한가한 자유로나 고속도로에서 상황이 허락하는 한 속도를 내며 달리는 건 즐겁다.

전문 레이서의 경우 7000rpm, 시속 300㎞가 훨씬 넘는 어디쯤, 속도 쾌감의 절정이 있는 모양이다. 충돌과 전복, 브레이크 고장과 바퀴 파열, 엔진 과열로 인해 만날 수도 있는 죽음의 경계마저 훌쩍 뛰어넘고 나면, 차와 내가 하나가 되고 눈앞의 풍경마저 정지해버리는, 완전한 고요와 자유가 찾아오는 것일까.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질문, “너는 누구인가?”

캐롤 셸비는 1959년, 지옥의 레이스로 유명한 프랑스 르망24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했지만 심장 질환 때문에 더는 드라이버로 활약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셸비 아메리칸을 창업, 스포츠카를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하면서 레이싱 디렉터로 활동한다. 1963년에는 오랜 친구 켄 마일스와 윌로 스프링스 대회에 참가, 우승한다.

켄에겐 자동차가 인생의 전부다. 아내에겐 다정한 남편이고 아들에겐 한없이 다감한 아빠지만 모든 천재가 그렇듯, 사교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서 세상과 늘 부딪힌다. 스폰서들도 그의 불같은 성격에 놀라 다가오지 않아 좋은 기회를 번번이 놓친다. 경영도 서툴러서 운영하고 있던 자동차 정비소마저 국세청에 압류된다.

한편, 포드 자동차의 사장, 헨리 포드 2세는 고민한다. 미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했던 포드는 ‘꼰대’들이나 타는 늙은 자동차라는 인식이 강해서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었다. 포드 사장은 르망24에서 6연승을 하며 최고의 명성을 누리면서도 파산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의 페라리를 인수, 이미지를 바꿔보려 한다. 하지만 페라리 회장에게 족보도 없는 자동차라는 식의 조롱을 당하고 합병마저 실패하자 르망24에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밟아줄 방안을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포드의 부사장 비비는 캐롤을 찾아와 페라리를 이겨보자고 제안한다. 캐롤은 불가능한 꿈에 함께 도전해보자며 최고의 엔지니어이자 레이서인 켄을 설득한다. 그런데 포드의 신차 발표회에서 부사장을 처음 만난 켄은 속물근성을 가진 그를 모욕하게 되고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이후 영화는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이 아니라 비비와 캐롤, 비비와 켄의 갈등이 이야기의 향방을 가르게 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90일. 캐롤과 켄은 르망24의 승리를 목표로 페라리보다 안전하고 빠른 자동차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대회 직전, 비비는 부사장의 권한으로 켄을 드라이버에서 제외시킨다. 캐롤은 켄을 지켜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포드의 첫 승리도 물 건너간다.

켄 없는 우승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캐롤은 그를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포드 사장에게 도박이나 다름없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캐롤과 켄은 다시 의기투합해서 데이토나24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비비의 야비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역전승의 쾌거를 이룬다.

포드 자동차 GT40의 문제를 끝없이 개선해가던 그들은 1966년, 르망24에 출전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팀워크와 실력을 발휘, 매 순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경기를 이끌어간다. 마침내 페라리들을 모두 제치고 한 바퀴나 앞서 달리며 켄이 우승을 눈앞에 두었을 즈음, 포드 자동차가 1, 2, 3등으로 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비비는 켄의 단독 우승을 방해하는 지시를 내린다.

비비의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다면, 개인의 영광을 빼앗는 비도덕적 승부 조작이라는 것도 눈감는다면 포드 자동차 석 대의 공동 우승이라는 부사장의 연출은, 그동안 대회에 돈을 쏟아부은 기업 입장에서는 욕심나지 않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 그 장면이 전 세계 TV 시청자들에게 생중계되고 다음 날 조간 1면을 장식한다면, 엄청난 광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결정은 켄의 자유라고 캐롤은 말하지만 ‘스폰서가 없으면 자동차도 없고’ 차가 없으면 레이싱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켄은 고민한다. 마음 졸이며 집에서 응원하고 있을 아내와 아들을 떠올린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7000rpm, 켄은 캐롤이 말했던 지고의 고요와 자유를 경험한다. 켄은 팀의 승리와 자신의 영광,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한 가감은 있지만 최고의 스포츠카 디자이너였던 캐롤 셸비와 모터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긴 켄 마일스의 실화다. 그 둘이 함께 개발한 포드 GT40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르망24에서 연속 4회 우승했으며 지금까지도 르망에서 우승한 유일한 미국 자동차로 기록되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운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2019년 작이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개인의 가치, 기업의 역할, 가족의 사랑, 우정이 잘 버무려진 좋은 작품이다. 질주본능을 자극하며 남성호르몬이 무한 분출되는 영화지만 감동의 포커스는 자동차에 대한 켄의 열정 그리고 켄과 캐롤, 켄과 아내, 켄과 아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레이싱을 전혀 모르는 관객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맷 데이먼이 캐롤을, ‘배트맨’의 크리스천 베일이 켄을 연기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운아”라고 캐롤은 말했다. 그런데 ‘이것 아니면 안 돼! 이 길이 아니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모르고 산다. 강물에 떠밀려 가는 통나무처럼.

나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인생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죽는다고 해도, 불평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의미를 아는 사람에겐 셸비에게 건네는 켄의 대사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네가 나에게 약속한 건 레이스였지, 우승이 아니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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