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불이아’의 점심 정식. 불이아는 국내에 훠궈를 처음 소개한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이태원 ‘불이아’의 점심 정식. 불이아는 국내에 훠궈를 처음 소개한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사진 조선일보 DB

‘마라(麻辣) 중독증’에 감염된 이가 엄청나게 많아졌다. 물론 진짜 중독은 아니다. 마라는 중국 쓰촨(四川)요리의 얼얼하게(麻) 매운(辣)맛을 뜻하는 표현. 처음에는 혀는 물론 입술까지 마비된 듯 얼얼한 매운맛이 낯설다 못해 기분 나쁠 정도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맛이 자꾸 생각나 계속 찾아 먹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마라는 화자오·고추·팔각·정향·후추·회향·더우반장 등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만드는데, 이 중 화자오(花椒)가 핵심. 얼얼한 맛이 바로 화자오에서 나온다. 작고 동그란 모양이 후추와 비슷해서 서양에선 ‘쓰촨 후추(Sichuan pepper)’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 마라 맛 음식으로는 ‘훠궈(火鍋)’가 있다. 끓는 육수에 얇게 썬 고기나 채소, 생선 등을 담가 익혀 먹는 음식이다. 중국 지역마다 나름의 훠궈를 발전시켜 왔지만, 가장 유명한 건 충칭(重慶)이다. 쓰촨성의 한 도시였다가 너무 규모가 커지면서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독립한 충칭은 중국에서 ‘훠궈의 도시(中國火鍋之都)’로 불린다. 중국에서 유명한 훠궈 전문 음식점 상당수가 이 도시에서 문을 열어 전국으로 확장했다. 충칭 훠궈는 마라맛이 특징이라 ‘마라훠궈(麻辣火鍋)’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훠궈가 충칭 스타일이다.

불이아는 충칭·쓰촨식 훠궈를 국내 처음 소개한 음식점 중 하나다. 마라와 훠궈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기 한참 전인 2002년 서울 홍대 앞에 첫 매장을 낸 이래 전국에 8개 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태원점은 지난 2월, 가장 최근 오픈한 지점이다. 빨간색 한자로 ‘弗二我’라고 쓴 간판 아래 가게 전면이 통유리로, 내부가 시원하게 들여다보인다. 참고로 불이아(弗二我)는 ‘둘도(二) 없는(弗) 우리(我)’라는 뜻이다.

버튼을 누르니 역시 통유리로 된 문이 양옆으로 열린다. 중국 가요가 흘러나온다. 실내는 푸른색과 회색이 섞인 청회색으로, 빨간색 위주인 기존 매장들과 다르다. 벽에는 현대 미술품부터 중국에서 가져온 듯한 한자 현판, 수묵화 등을 걸어 세련된 분위기다. 입구 왼쪽으로 카운터가 있고 그 옆에 각종 중국 술과 쓰촨성의 가면극에 사용되는 가면을 활용한 장식품을 놓아 중국과 쓰촨성 분위기를 살렸다.

예약한 방에 들어가 메뉴판을 펼쳤다. 양고기·소고기·해물·채소를 종류별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육수는 맑고 담백한 백탕(白湯)과 마라 맛 진한 홍탕(紅湯) 중에서 원하는 것만 주문해도 된다. 소스도 마찬가지. 훠궈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리고 가성비를 따진다면 정식을 주문하는 편이 낫다. 한국 손님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불이아 정식’을 시켰다. 테이블 한복판 인덕션레인지에 백탕과 홍탕이 반씩 담긴 훠궈가 놓이고 그 주변에 소고기와 양고기 각각 한 접시와 각종 채소·버섯이 담긴 기다란 접시, 얼린 두부, 연근, 단호박 등 단단하고 오래 끓여도 괜찮은 재료가 담긴 작은 접시, 생숙주 한 접시가 볶은 땅콩, 자차이 등 밑반찬과 함께 놓였다.

소스는 참깨와 땅콩을 갈아 만든 마장에 고추기름 등을 넣은 것과 간장에 고수 등을 넣은 것 두 가지가 나왔다. 훠궈에 익숙하고 직접 만들어 먹기를 선호하는 중국에서는 손님이 소스 바에 가서 원하는 재료를 섞어 자신만의 소스를 만들어 먹는 경우가 더 많은데, 훠궈에 익숙해진 뒤에는 그렇게 해봐도 좋을 듯하다.


혀가 얼얼해지는 중독적인 매운맛

육수가 끓기 시작했다. 먼저 젓가락으로 양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종잇장처럼 얇다. 백탕에 담가 서너 번 휘저으니 금세 핑크빛 미디엄레어로 익었다. 양고기를 얼른 건져 앞접시에서 잠시 식혔다가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연한 양고기가 입안에서 녹듯이 사라졌다. 백탕에서 양고기 본연의 육향(肉香)을 즐겼다면, 이번에는 홍탕에 담가 마라 맛을 입힐 때다. 얼얼하게 매운 마라 맛이 살짝 밴 양고기가 그러잖아도 활발한 식욕을 더욱 돋운다. 고소하고 기름진 마장에 찍으면 마라 맛이 중화되면서 더 깊은 맛을 입안에 남긴다.

채소는 먹고 싶을 때 하나씩만 넣어 익히기를 추천한다. 한국 사람은 대개 육수가 끓으면 채소와 버섯 따위를 왕창 쓸어 넣는데, 이렇게 하면 채소가 익으면서 바닥에 가라앉아 결국에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곤죽 상태가 된다. 홍탕에 담가 겉만 살짝 익혀보자. 풋내는 없고 아삭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고추기름으로 코팅된 배추와 청경채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육수도 맛보기를 권한다. 불이아 윤성준 대표가 충칭에 가서 직접 배워온 방식대로 만드는 육수는 훌륭한 보양식이다. 소뼈와 늙은 닭뼈를 찬물에 담가 하루 동안 피를 뺀 다음, 뼈에 붙은 고기와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한다. 이렇게 해야 잡내가 없고 담백하다. 공들여 손질한 뼈를 기본으로 해서 오래 우려낸 것이 백탕. 여기에 고추·화자오·파·마늘·생강·더우반장 등을 넣고 끓이면 홍탕이 된다. 육수를 마실 땐 백탕과 홍탕을 반씩 섞으면 간이 맞는다.

훠궈가 맛있다고 절대 배 터지도록 먹으면 안 된다. 중국식 고구마 맛탕 ‘빠스’가 들어갈 공간을 남겨야 한다. 한 훠궈 마니아는 “이 집에서 빠스를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다. 설탕을 녹여 만든 시럽에 튀긴 고구마를 버무린 정통 빠스를 국내에선 맛보기가 쉽지 않다. 고구마 빠스가 나오면 바로 시럽에서 떼어내 찬물에 담그면 겉에 뭍은 시럽이 바삭하게 굳는다. 깨물면 바삭하고 깨지면서 뜨겁고 달콤한 고구마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마라로 얼얼해진 입과 혀가 평화를 되찾는다. 다시 훠궈가 먹고 싶어진다.


불이아(弗二我) 이태원점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1 1층, (0507)1408-6690

분위기 훠궈 식당 중에서 고급스러운 편이다.

서비스 친절하고 전문적이다.

추천 메뉴 불이아·소고기·양고기 정식 2만7000원, 점심 정식 2만1000원, 한우·해물 정식 각 4만9000원, 고구마 빠스 1만5000·2만원.

음료 수정방·연태고량주·경주·금문고량주 등 중국 술에 소주, 맥주 등 단출한 편이다.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오후 3시, 저녁 오후 5~10시(주말 브레이크 타임 없음). 연중무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휠체어 접근성 편리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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