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며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소극장으로 수차례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 2003년 정 대표가 인수했다. 올 초부터는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 기존의 객석을 100석에서 130석으로 늘리고, 2층에는 드로잉 전문 갤러리를 열어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번 작품은 삼일로창고극장의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준비한 공연으로, 14곡의 음악 중 미국 민요 한 곡만을 제외하고 정 대표가 모두 직접 작곡했다. 그동안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에서 작곡가로 종횡무진 활동해 온 그에게 이번 작품은 색다른 시도였다.

 “이 작품은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스토리상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뮤지컬의 기법을 제대로 살린 음악을 사용하기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인물별로 정해진 테마곡을 사용하는 대신에 각각의 상황에 맞게 음악을 작곡하고, 순간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무대 위에서 다섯 명의 연주가가 라이브로 연주하도록 했습니다.”

 녹음된 음악을 사용하면 보다 다양한 악기를 사용할 수 있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공연의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작곡을 비롯해 연출까지 겸했다.

 “연출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원작과 구조적으로 가장 달라진 하인의 역할입니다. 원작에선 단순히 시간에 맞춰 주인공이 빌려간 물건들을 빼앗는 시간의 집행자와 같은 역할이었다면, 이번엔 사회자까지 겸하면서 관객과 배우들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죠.”

 실제로 하인 역을 맡은 배우가 공연 도중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반응을 유도하는 식으로 참여를 이끌어 낸다. 마치 마당극처럼 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관객과 배우가 함께 호흡하는 공연을 만들려고 한 정 대표의 의도다. 특별히 이강백의 <결혼>을 개관 30주년 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를 묻자, “사람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싶다”고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조연출을 맡은 김민정씨와 의기투합해 만든 <결혼>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가 결혼이 하고 싶어 벌이는 사기극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남자’는 부유하게 보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빌리고 ‘여자’를 초대한다. 대여시간에 제한이 있는 물건들을 ‘하인’이 수거해 감으로써 ‘남자’의 작전을 방해한다. 하지만 ‘남자’의 진심을 느낀 ‘여자’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하인 역에는 <캣츠>, <명성황후>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계환과 최윤, 남자 역에는 박정민과 현순철, 여자 역에는 장선유와 김희선이 열연한다. 11월31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02-319-8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