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8시가 넘어 도착한 캄보디아의 네 번째 도시 씨엠립(Siem Reap)은 마치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도시와 같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공항과 멀리서 번쩍이며 밤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제외하면 암흑 그 자체다. 앙코르 유적지의 신비감은 이렇듯 어둠 속에서부터 찾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입국심사대 앞에 설치된 도착비자 창구 앞에는 노골적으로 급행료를 요구하는 이민국 직원들의 호객행위가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접근하는 그들을 거부하고 창구 앞 뒷줄에서 접수를 시키지만 급행료 요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한국 사람들에겐 당연히 요구하는 웃돈이란다.

“버릇을 그렇게 들여놨는데 어떡하겠습니까.” 공항을 빠져나와 만난 가이드의 말이다.

길게 줄을 늘어뜨린 입국심사대 앞에서도 뒤늦게 도착한 30~40명에 달하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옆으로 먼저 빠져나간다. 입국 스탬프는 나중에 가이드가 따로 받아 온다는 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여행사와 가이드의 능력으로 평가된다나. 결국은 내 돈을 가이드를 통해 찔러준 급행료 덕인데도 말이다.

공항에서의 불쾌감을 뒤로 하고 다음날 아침 찾은 앙코르 유적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문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순수함을 넘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문명은 결코 사람을 감동시키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믿음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앙코르 유적지를 품고 있는 씨엠립은 1860년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식물학자였던 앙리 무오가 재발견할 때까지 화려했던 문화 유적을 정글 속에 방치하고 있었다. 9세기부터 15세기 초반까지 앙코르제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정중앙에 있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어졌던 도시다.

유적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앙코르와트(Angkor Wat)다. 너무나 유명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지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수백 개의 사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씨엠립에서 북쪽으로 약 6㎞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잘 보존돼 있는 한편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힐 만큼 최고를 자랑한다.

대부분의 사원이 동쪽을 향해 있는 반면 이 사원은 서쪽을 향해 있어 발견 초기 ‘죽음의 사원’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해 천문대 역할을 했음이 밝혀졌고, 우주의 변화를 표현하려 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즉,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보고 왕의 사후세계를 고려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렇듯 서쪽을 향해 있는 탓에 석양녘 황금빛으로 불타오르는 앙코르와트의 모습은 신의 세계에 근접한 예술의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앙코르(Angkor)는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와트(Wat)는 태국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앙코르와트는 ‘사원 (속의) 도시’라는 뜻이 된다.

소야바르만(Suryavarman) 2세(1112∼1152)에 의해 12세기 전반 약 30~40년에 걸쳐 건축돼 힌두교의 비슈누에게 봉헌되었다. 그러나 곳곳에 조각을 하다 멈춘 흔적과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미완의 사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앙코르와트의 구조는 힌두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우주의 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Meru)산의 정상이며 주변의 5개 탑은 봉우리를 상징한다. 외벽은 세상 끝에 둘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해자(인공호수)는 ‘바다’를 의미한다. 이 해자의 폭은 약 260m, 길이는 약 5.5㎞에 달한다. 이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Naga)난간을 따라 이어지는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바라보는 앙코르와트의 전경은 완벽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감동을 맛보게 한다. 과거 커다란 악어가 살았다는 해자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의 물놀이터로 바뀌어 있다.

석조 건물인 앙코르와트는 그 웅장함이나 건축물 자체에서 풍기는 신비함 못지않게 기둥과 외벽 등 건물 곳곳에 새겨진 조각의 아름다움이 장관이다. 중앙 입구에서부터 사원 내까지 355m의 긴보도와 중앙 탑까지 세 겹으로 둘러싸인 회랑은 해자와 더불어 앙코르와트가 표현하고 있는 동양미의 완성을 보여준다. 특히 세 번째 회랑은 이 사원의 주신인 비슈누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화와 역사를 정교함과 현란함, 조화된 균형으로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화려했던 문화를 대표한다. 특히 가이드가 들려주는 조각의 의미 하나하나는 고대 인도와 힌두교, 그리고 불교의 신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앙코르와트를 왼쪽으로 돌아 약 1.7㎞쯤 가다 보면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남문이 나타난다. ‘톰’은 ‘크다’는 의미로 앙코르톰은 ‘큰 도시’를 의미한다.

앙코르톰은 각 방향에 하나씩의 문이, 동쪽에만 ‘승리의 문’이라 해서 두 개의 문이 있다. 이 중 남문에 놓여있는 다리에서 왼쪽에 있는 54명의 선신들과 오른쪽에 있는 같은 수의 악신들이 뱀인 배수키(Vasuki)를 껴안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생의 우유를 제조하는 신화의 한 장면이다. 이 다리는 중생들의 사바세계와 신의 세계의 연결을 상징한다. 이러한 양식은 각 문들이 공통적이다. 앙코르톰은 한 변이 약 3㎞인 정사각형의 성곽도시다.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에 의해 앙코르와트보다 약 100년 후인 12세기 말에 조성된 불교 사원인데 우리나라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 시기에 해당된다. 앙코르톰 일대에는 승려나 관료, 군인들의 거주지가 광범위하게 분포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목조건물 이어서 세월과 함께 소멸되었다. 인근에는 약 100만 명까지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에 해당된다. 높이 약 8m, 길이 약 12㎞의 성벽을 쌓고 밖으로는 폭 100m의 해자를 둘렀다. 앙코르와트에서 만났던 여러 신들의 이야기는 바이욘사원(The Bayon)에서 인간 이야기로 바뀐다. 

앙코르톰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바이욘사원은 앙코르와트와 더불어 앙코르 유적지의 백미로 꼽힌다. 당시의 생활상과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200여 개의 부조가 1200m에 달하는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54개의 탑들이 화려했던 과거를 재연시키고 있다.

이 사원역시 12세기 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54개의 탑에는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신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을 상징하기도 한다. 입술 양쪽이 약간 올라가면서 짓는 그 미소는 신비로움을 발산한다. 특히 새벽에 동이 트면서 빛을 받기 시작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미소는 그 각도에 따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200여 가지의 미소를 느끼게 한다고 전해진다.

앙코르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마음속에서 깊이 만끽되는 흥분과 감동은 따프롬(Ta Prohm)사원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 설명이 쓰인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영화 <툼레이더>와 <투 브라더스>의 배경으로 유명한 따프롬사원은 ‘브라마의 조상’이라는 뜻으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전혀 보수를 하지 않아 자연 상태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다. 곧게 솟은 이엉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고 뒤엉킨 뿌리가 사원을 들어 올리는 스펑나무는 이곳이 오랫동안 잊혀졌던 곳임을 증명해 준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뜨리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이 저지르고 있는 문명의 파괴와 융합이라는 이중성은 눈으로 만나는 앙코르 유적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함께 또 다른 두려움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 plus tip

캄보디아는…

국명 :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

수도 : 프놈펜(Phnom Penh)

면적 : 181,035㎢(남한의 약 1.8배, 한반도 전체의 약 80%)

기후 : 열대몬순, 고온다습(계절 및 지역에 따라 상이)

인구 : 약 1390만 명(2005년)

인종 : 크메르족 90%, 소수민족(중국, 베트남, 참족, 고산족)

언어 : 크메르어, 불어(50대 이상), 영어(청, 장년층)

종교 : 소승불교(95%), 기타(5%)

GDP : 53억달러(2005년)

1인당 GDP : 380달러(2005년)

화폐단위 : 4128리엘=1달러(2005년)